도미니크 하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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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하셱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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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키 명예의 전당 로고.svg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자(2014)







파일:NHL 로고.svg NHL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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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HL 로고.svg NHL 스탠리 컵 파이널 우승(2002, 2008)



파일:NHL 로고.svg NHL All-Rookie Team(1992)



파일:NHL 로고.svg NHL All-Star Game(1996, 1997, 1998, 1999, 2001, 2002)



파일:NHL 로고.svg NHL First All-Star Team(1994, 1995, 1997, 1998, 1999, 2001)












국제 대회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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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미국 미네소타 IIHF World Junior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은메달



1983 소련 레닌그라드 IIHF World Junior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은메달



1985 핀란드 헬싱키/투르쿠 IIHF World Junior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은메달



1983 서독 IIHF World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은메달



1987 오스트리아 IIHF World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동메달



1989 스웨덴 IIHF World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동메달



1990 스위스 IIHF World Championship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동메달



파일: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로고.svg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체코 국가대표팀 금메달



파일: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로고.svg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체코 국가대표팀 동메달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관련 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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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최우수 골텐더(1986, 1987, 1988, 1989, 1990)



Golden Hockey Stick(1987, 1989, 1990, 1997, 1998)



올해의 체코 스포츠 선수(1994, 1998, 2001)



20세기의 체코 하키 선수(1998)



체코 엑스트라리가 우승(2010)




파일:NHL 로고.svg 보유 중인 NHL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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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최고 선방률(.922)
최다 세이브 셧아웃(70세이브, 1994.04.27)
월간 최다 셧아웃 타이 기록(6회, 1997-98)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 오버타임 결승골에 어시스트를 기록한 최초의 골텐더



파일:버팔로 세이버스 로고.svg 버팔로 세이버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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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최다 세이브(2024세이브)
시즌 최고 선방률(.937)
시즌 최저 경기당(60분) 평균 실점(1.87)
시즌 최다 셧아웃(13회, 1997-98)
세이버스 최다 OT/SO 패배(70회)
세이버스 최다 선방률(.926)
세이버스 최저 경기당(60분) 평균 실점(2.22)
세이버스 최다 셧아웃(55회)





파일:도미닉 하셱.jpg

버팔로 세이버스 No.39
도미닉 하셱
Dominik Hašek

출생
1965년 1월 29일 (59세)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파르두비체
국적
[[체코|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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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85cm, 75kg
포지션
골텐더
입단
1983년 NHL 드래프트 10라운드 전체 199번 (CHI)
소속
HC 디나모 파르두비체 (1980~1989)
HC 두클라 트렌친 (1989~1990)
시카고 블랙호크스 (1990~1992)
버팔로 세이버스 (1992~2001)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2001~2005)
오타와 세너터스 (2005~2006)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2006~2008)
HC 디나모 파르두비체 (2009~2010)
H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10~2011)
별명
The Dominator[1]

1. 개요
2. 선수 경력
2.2. 시카고 블랙호크스 : 지명 7년만의 데뷔
2.4. 올스타팀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첫 우승
2.6.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2기와 두 번째 우승
2.7. 유럽에서의 선수생활 말년과 은퇴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5. 기타
6. 연도별 기록
6.1. 정규 시즌
6.2. 플레이오프



1. 개요[편집]


체코의 前 아이스하키 선수. 자크 플랑트에 이은 베지나 트로피 수상 2위(6회)이며, 수상 규정 변화 이후로는 1위에 빛나는 현대 하키 최고의 골텐더. 이 사람이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10라운드 전체 199번[2]이라는 데뷔가 가능할까 하는 순번으로 지명되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버팔로 세이버스에서 뒤늦게 꽃을 피운 인간승리자이면서,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올스타급 선수로 무장한 캐나다를 틀어막아버리고 조국에 금메달을 안겨다준 체코 하키 최고의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편집]



2.1. HC 파르두비체[편집]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파르두비체 출신인 하셱은 6살 때, 5살을 위한 트라이아웃에 아버지가 데려가면서 하키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스케이트조차 없었지만 신발 밑창에 칼날을 박아서 빙판 위에 처음 서봤고, 키는 커서 마침 골텐더가 비어있던 9살 짜리 경기하는 데 투입되었다.

성장하여 1980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최상위 리그인 엑스트랄리가(Extraliga)의 고향 팀 HC 파르두비체에 입단하여 데뷔했고, 이 때 그의 나이가 만16세였다. 역대 최연소로 프로 하키에 데뷔하여 일찍이 체코슬로바키아 최고의 골텐더로 각성했음에도, 1983년에 시카고 블랙호크스10라운드 전체 199순위에 지명되었다. 당시 NHL 팀들은 공산권 선수들을 기용하는 것을 꺼렸는데, 미국 및 캐나다의 반공 정서도 있지만 소련 당국에 의해 공산권 선수들의 NHL 활동을 금지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1983년에 지명했음에도 고향팀과 군 하키 팀에서 1990년까지 선수경력을 이어나갔고, 1987년과 1989년, 1990년에 우승과 MVP에게 수여하는 골든 하키 스틱을 수상 및 4년 연속 리그 최우수 골텐더로 선정되었다.

2.2. 시카고 블랙호크스 : 지명 7년만의 데뷔[편집]


1983년에 드래프트 지명된 이후 무려 7년이 지나서야 NHL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잡은 출전 기회조차도 에드 벨푸어의 백업에 지나지 않았고, 1990년 11월 6일 하트퍼드 웨일러스전에 데뷔전을 치렀고 첫 승은 1991년 3월 8일 버팔로 세이버스전에 거뒀다. 첫 셧아웃은 또다시 해가 지난 1992년 1월 9일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전에 기록했다. 팀은 1992년 피츠버그 펭귄스와의 스탠리 컵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마리오 르미외야로미르 야그르, 백지선 등을 앞세운 활약에 스윕당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과 활약에 관심을 가진 팀이 있었으니... 바로 고질적인 골텐더 문제를 겪어 우승을 놓치던 버팔로 세이버스였다.

2.3. 버팔로 세이버스[편집]


파일:도미닉 하셱 세이버스.jpg
호크스가 벨푸어-지미 웨이트 체제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버팔로 세이버스로 트레이드를 결정했다. 하지만 세이버스에는 그 왕조 시절 오일러스의 문을 지켰던 그랜트 퓨어의 존재로 이적과 동시에 자리를 차지하기는 무리였다. 1993-94시즌에 퓨어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늘려나가면서 주전으로 승격, 첫 주전 풀타임을 보내자마자 58경기 GAA 1.95, .930 SV%, 셧아웃 7번이라는 신들린 활약으로 베지나 트로피윌리엄 M. 제닝스 트로피를 수상했고,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는 아쉽게도 2위에 그쳤다. 풀타임 2년차인 1994-95시즌에도 락아웃으로 단축 시즌을 보내게 되었지만, 무난하게 베지나 트로피를 수상했다.

1996-97시즌, 이러한 그의 활약에도 테드 놀란 감독과 갈등을 빚었고 클럽하우스 내부에도 파벌이 형성되는 등 팀 내부 상황이 말이 아니였다. 오타와 세너터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차전에 우측 내측측부인대 부상을 진단받고 교체되었지만, 감독과의 불화설이 이미 퍼져있던 상태라 사람들은 부상을 핑계로 경기에서 빠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버팔로의 비트라이터였던 짐 켈리라는 기자가 이에 대한 칼럼을 게재했고, 5차전 패배 이후 하셱을 인터뷰하다가 하셱이 기자를 공격하는 바람에 $10,000의 벌금을 무는 등 분위기는 더욱 시궁창이 되어갔다. 어찌저찌 7차전 끝에 2라운드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2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에게 1승 4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레스터 B. 피어슨 상, 베지나 트로피에 퍼스트팀 선정 등 타이틀을 휩쓸었음에도 나락간 팀 분위기로 빛이 바라는 모양새.

시즌 종료 이후, 단장 존 머클러가 "올해의 경영인(프런트)"으로 선정되고도 놀란 감독과의 불화로 경질당했다(...) 그 와중에 하셱은 타이틀 시상식에서 "놀란을 경질시키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직설적인 인터뷰를 날렸고, 후임 단장이 놀란에게 1년 연장 계약을 제시했는데 놀란은 계약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거절해버리고 팀을 떠났다. 올해의 감독상인 잭 애덤스 상도 받았던 놀란은 팬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팬들은 하셱이 놀란을 쫓아내려고 수작부렸다고 인지했다.

다음 시즌 개막부터 엄청난 홈팬들의 야유를 받으면서 경기를 치러야했고, 경기장 직원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관중들이 응원하는 녹음 테이프를 주구장창 틀었다. 하지만, 하셱이 워낙 잘했기 때문에... 야유는 6~7주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쳤고, 하셱은 그런 야유에도 불구하고 12월에 이미 리그 최다인 7번의 셧아웃을 거두는 괴물같은 활약을 펼쳤다. 결국, 72경기 출장하여 프랜차이즈 최고 기록인 13회의 셧아웃을 거두면서, 지난 시즌에 받았던 타이틀을 고대로 사수했다. 특히, 12월 한 달동안에만 6번의 셧아웃을 거둬 NHL 타이 기록을 세웠고, 3년 $26M 연장 계약으로 당시 골텐더 최고 연봉을 경신했다. 이 중 버팔로 버라이어티 클럽에 $10,000을 기부했다.

1998-99시즌, 1.87의 GAA와 .937SV%를 기록하면서 3연속 베지나 트로피 수상에 성공했지만, 팀은 동부 컨퍼런스 7번 시드에 머물렀다. 하지만, 하셱의 활약으로 센스, 브루인스, 립스를 차례대로 꺾고 프레지던트 트로피를 수상한 댈러스 스타스와 스탠리 컵 파이널을 치르게 되었다. 시카고 시절의 주전 골텐더 에드 벨푸어와 맞붙은 6차전에는 오버타임에 브렛 헐에게 결승골을 먹히고 2승 4패로 또다시 우승의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하지만, 경기 이후 세이버스 측의 비디오 판독 요청으로 헐의 스케이트가 골 크리즈[3](Goal Crease) 내에 있었던 것이 판명되어 하셱과 세이버스 측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번복되지는 않았다.

1999-2000시즌을 앞두고 가족과의 시간이나 부상 등의 이유로 은퇴를 고려했을 정도로 부상으로 고생한 하셱은 시즌에 들어가서도 계속된 사타구니 부상으로 신음하여 40경기나 결장하여 몇년 만에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플레이오프를 위해서 복귀했지만, 결국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에게 1라딱.

00-01시즌에 화려하게 부활하여 6번째 베지나 트로피와 두 번째 윌리엄 M. 제닝스 트로피를 수상했다. 1라운드에서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자신의 백업이었던 로만 체흐마넥이 있는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꺾고 지난 시즌의 복수를 했지만, 2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펭귄스마리오 르미외야로미르 야그르의 활약을 앞세운 피츠버그 펭귄스에게 7차전 끝에 석패했다.

2.4. 올스타팀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첫 우승[편집]


파일:도미닉 하셱 2002.jpg
버팔로 세이버스는 페이롤 감축 및 하셱이 조금 더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으로 보내기 위해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로 트레이드시켰다. 윙스는 라이벌 앱스가 두 번째 우승을 거두자 하셱을 포함하여 2년전 파이널 골 판정논란의 당사자(...)였던 브렛 헐뤽 로비타유까지 영입하면서 또 한번의 우승을 기대했다. 윙스와의 첫 시즌부터 41승 15패로 커리어 하이를 작성했고, 팀의 프레지던트 트로피 수상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의 활약을 빛나서 밴쿠버 커넉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윙스의 피튀기는 라이벌 콜로라도 애벌랜치까지 파죽지세로 꺾고 스탠리 컵 파이널에 진출했다. 앱스와의 3차전에서는 스티브 아이저먼의 오버타임 결승골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 최초의 오버타임 골 어시스트를 기록한 골텐더로 이름을 새겼다. 파이널에서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를 꺾고 NHL 지명 19년만에 커리어 첫 우승을 거두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서만 무려 6번의 셧아웃을 거두며 신기록을 작성한 것은 덤.[4]

우승도 했겠다, 이전부터 은퇴를 고려했던 하셱은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다음 해에 디펜딩 챔피언 윙스가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에게 1라딱으로 광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 시즌의 공백만에 은퇴를 번복해버렸다. 하셱의 은퇴로 커티스 조셉과 트레이드 금지 조항을 삽입하여 3년 $24M으로 계약한 레드윙스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라이벌 앱스가 파트리크 루아의 은퇴로 골텐더를 물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윙스에게는 더욱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결국, 하셱을 주전 골텐더로 선언하고 기존에 있던 조셉과 매니 르가스까지 유지하는 방침으로 가면서 윙스는 무려 3명의 주전급 골텐더를 보유하게 되었다.

2003-04시즌에 들어간 하셱은 고질적인 사타구니 부상으로 14경기 출전에 그쳤고, 하셱은 스스로 부상 기간동안 급여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팀에 얘기했다. 결국, $6M의 연봉 중 절반인 $3M을 거절하고, 고국 체코으로 돌아와 프라하에서 수술을 받고 고향인 파르두비체에서 휴양에 들어갔다.

2.5. 오타와 세너터스[편집]


휴양을 마치고 돌아온 하셱은 레드윙스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컨텐더 팀에서 뛸 것을 선언했고, 2004년 7월 6일에 오타와 세너터스와 단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04-05시즌이 직장폐쇄(락아웃)으로 취소되었고, 자연스럽게 05-06시즌에 오타와에서 뛰게 되었다. 오타와에서 뛰는 동안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참가했지만, 골텐더 장비를 실수로 오타와에 두고 오는 바람에 연습 경기 시간이 많이 줄어버렸고, 그렇게 들어간 예선 1차전 독일전부터 오른쪽 관자놀이 부상으로 9분 25초만에 리타이어되었다. 이 때문에 남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까지 전부 결장하게 되었고, 하셱은 재개약한다면 $0.5M + 인센티브의 저렴한 조건에 뛰겠다고 했지만 2라운드에서 탈락한 센스는 하셱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6.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2기와 두 번째 우승[편집]


2006년 7월 31일, 만41세의 나이로 스탠리 컵을 들었던 레드윙스에 복귀하여 $0.75M의 이름값에 비하면 저렴한 연봉에 플레이오프 진출 시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만41세의 노장 골텐더는 팀을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획득하면서 38승과 2.05 GAA로 엄청난 가성비를 보여줬고, 181분 17초 무실점[5]으로 커리어 베스트를 썼다.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백투백 경기를 뛰지 않는 일정 관리가 있었기 때문. 4월 21일과 22일, 캘거리 플레임스와의 서부 컨퍼런스 쿼터파이널 5-6차전에서 시즌 첫 밤경기 백투백 출장을 기록했고 승리로 이끌면서 세미파이널로 진출시켰다. 산호세 샤크스와의 세미파이널 역시 1승 2패에서 3승을 거둬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애너하임 덕스에게 패하면서 덕스는 그대로 오타와 세너터스까지 꺾고 우승을 거뒀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은퇴를 고려했지만, 결국 1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부상으로 출전이 어려워지면서, 00-01시즌까지 윙스의 주전 골텐더를 맡다가 하셱의 이적으로 웨이버 공시되어 떠났던 크리스 오스굿이 주전으로 출전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주전으로 출장하여 내슈빌 프레더터스와의 1,2차전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두 경기에서 부진하자 다시 오스굿에게 밀려났다. 하셱은 주전에서 밀린 것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오스굿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한 편 팀원들을 지원해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결국 시드니 크로스비-예브게니 말킨 듀오의 피츠버그 펭귄스를 꺾고 두 번째 스탠리 컵을 들었다.

우승 5일 후인 2008년 6월 9일, 진짜은퇴를 선언했고 오스굿과 함께 윌리엄 M. 제닝스 트로피를 수상하면서 그의 굴곡이 많았던 커리어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2.7. 유럽에서의 선수생활 말년과 은퇴[편집]


NHL 은퇴를 선언한 지 한 시즌 지난 2009년 4월, 고향팀 파르두비체와 단년 계약을 맺으며 약 20년만에 복귀했다. 09-10시즌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플레이오프에서 3번의 셧아웃 및 결승전에서도 1번의 셧아웃으로 총 4회의 셧아웃 승리 및 플레이오프 12연승으로 단 1패만을 거두고 우승했다.

2010-11시즌에는 KHL H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 단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2년 5월, 돌연 NHL 복귀를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2012-13시즌이 락아웃으로 연기되자 10월 9일에 은퇴를 선언했다(...)은퇴 선언만 몇 번째?

2015년 1월 13일, 버팔로 세이버스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경기에서 세이버스가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한마리 야수와도 같이, 본능적인 감각과 순발력으로 모든 슛을 막아내는 어떤 의미에선 아주 원시적이자 골텐더의 존재이유 그 자체를 몸으로 보여주는 수비를 하지만 프로로써 체계적 훈련과 전략 전술 습득을 통해 전통적으로 분류되는 스탠드업 및 버터플라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NHL관계자들에게는 이상했던) 스타일이 그의 데뷔를 늦췄던 것도 한몫했다. 그에게 방어수단이란 그야말로 온몸 그 자체다. 브레이크어웨이[6]에서 과감하게 크리스를 튀어나와 막는가 하면, 온몸과 심지어 머리까지 이용한 역동적인 세이브를 따내거나 앞으로 튀어나가 체킹을 걸기도 하고, 보통 글러브 핸드로 퍽을 잡는 대부분의 골텐더와는 달리 하셱은 스틱을 떨어뜨렸을 때 스틱핸드로 퍽을 막았다. 도대체 어떻게 막을지 예상이 안되는 사도의 극단에 가까운 스타일이 캐나다의 보수적인 코치들에게는 영 탐탁잖았던 것.

하셱은 이에 대해, "사람들은 내가 정통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데, 나는 물고기마냥 빙판 위를 뛰어다닌다. 내가 퍽을 막는 한은 누가 신경쓰겠나?"라고 자신의 스타일에 확고한 모습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전술과 전략, 예측과 경험보다는 자신만의 동물적 감각과 본능, 1대1 상황에서도 상대 스케이터를 존재감으로 제압하는 아우라로 승부를 걸던 선수로 아이스하키 골텐더라는 행동적 제약이 많은 포지션이라는 것 자체를 정면으로 대항하던 선수다.

코치들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눈에 띄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 덕분에 팬들의 경기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특유의 유연성 덕분에 '토-스톱(Toe-Stop)'과 '하셱 롤(Hašek Roll)'[7] 등 다른 골텐더들은 막기 어려운 것들을 선방할 수 있었다. 이런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엄격한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다만 파란만장한 커리어와 서술된 잦은 부상 이력에서 알 수 있듯, 골텐더라는 특성상 무거운 방어구를 상시 장비한채로 차디차고 딱딱한 아이스링크에 온몸을 마구 던지는 하셱의 스타일은 필연적으로 부상을 유발할 수 밖에 없었고 부상 누적은 그의 커리어를 굴곡지게 만들었다.

4. 기록[편집]


위의 기록 이외에도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NHL 통산 선방률 1위 : .922
  • 유럽 태생 골텐더 출장 경기 3위[8]
  • NHL 통산 셧아웃 6위 : 81회
  • NHL 통산 GAA 7위 : 2.20
  • NHL 통산 승리 11위 : 389승격
  • 정규시즌 GAA 1위를 차지한 첫 유럽태생의 선수(1993-94)
  • 1974-75시즌 이후 첫 2.00 미만의 GAA를 기록한 선수(1993-94)
  • 월간 최다 셧아웃 타이 기록 : 6회(1997.12)
  • 단일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 셧아웃 2위 : 6회[9]
  •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 누적 셧아웃 3위 : 15회
  •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 승리 10위 : 61승

5. 기타[편집]


  • 현대의 하이브리드 골텐더 마스크가 아닌 전통적인(?) 헬멧과 케이지를 사용한 마지막 골텐더들 중 한 명이다.

  • 전 부인 사이에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씩 있다. 부인과는 결혼 23년만인 2012년에 이혼했으며, 그의 딸 도미니카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22체코 대표로 참가하여 2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하는 한 편, 자유시간에는 시간을 나눠서 스쿼시 인라인 하키를 한다.


  • 프로레슬링의 헤비팬이며,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스티브 오스틴과 돈 무라코.

  • 운동에 전념하는 여타 선수들과는 다르게, 대학교에서 사학과 체코어를 전공하여 학위까지 취득했던지라, 교원 자격도 부여받아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 1998년에 자선 하키 경기를 가져서 체코의 병원에 기부했다.

  • 2001년 5월, 고국 체코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도미닉 하셱 청소년 하키 리그'를 창설했다.

  •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우승 직후, 자신의 별명 '도미네이터'를 브랜드 삼아 의류 사업을 했지만, 망해서 10년만인 2008년에 접었다고(...)

6. 연도별 기록[편집]



6.1. 정규 시즌[편집]


정규 시즌 기록
소속
시즌
GP[10]
GS[11]
W
L
T[12]
OT[13]
SA[14]
GA[15]
GAA[16]
S[17]
SV%[18]
SO[19]
MIN[20]
CHI
1990-91
5
3
3
0
1
-
93
8
2.46
85
.914
0
195:13
1991-92
20
17
10
4
1
-
413
44
2.60
369
.893
1
1,014:20
BUF
1992-93
28
22
11
10
4
-
720
75
3.15
645
.896
0
1,428:37
1993-94
58
53
30
20
6
-
1,552
109
1.95
1,443
.930
7
3,357:46
1994-95
41
41
19
14
7
-
1,221
85
2.11
1,136
.930
5
2,416:27
1995-96
59
58
22
30
6
-
2,011
161
2.83
1,850
.920
2
3,416:58
1996-97
67
66
37
20
10
-
2,177
153
2.27
2,024
.930
5
4,036:59
1997-98
72
72
33
23
13
-
2,149
147
2.09
2,002
.932
13
4,219:36
1998-99
64
64
30
18
14
-
1,877
119
1.87
1,758
.937
9
3,816:43
1999-00
35
35
15
11
6
-
937
76
2.21
861
.919
3
2,066:26
2000-01
67
67
37
24
4
-
1,726
137
2.11
1,589
.921
11
3,904:11
DET
2001-02
65
64
41
15
8
-
1,654
140
2.17
1,514
.915
5
3,871:40
2003-04
14
14
8
3
2
-
324
30
2.20
294
.907
2
816:33
OTT
2005-06
43
42
28
10
-
4
1,202
90
2.09
1,112
.925
5
2,583:58
DET
2006-07
56
56
38
11
-
6
1,309
114
2.05
1,195
.913
8
3,340:51
2007-08
41
40
27
10
-
3
855
84
2.14
771
.902
5
2,350:04
NHL 통산
(16시즌)

735
714
389
223
82
13
20,220
1,572
2.20
18,648
.922
81
42,836:22

6.2. 플레이오프[편집]


플레이오프 기록
소속
시즌
GP
GS
W
L
T
OT
SA
GA
GAA
S
SV%
SO
MIN
CHI
1990-91
3
0
0
0
-
-
39
3
2.62
36
.923
0
68:37
1991-92
3
1
0
2
-
-
70
8
3.05
62
.886
0
157:31
BUF
1992-93
1
0
1
0
-
-
24
1
1.34
23
.958
0
44:48
1993-94
7
7
3
4
-
-
261
13
1.61
248
.950
2
483:34
1994-95
5
5
1
4
--
-
131
18
3.49
113
.863
0
309:14
1996-97
3
3
1
1
--
-
68
5
1.96
63
.926
0
153:24
1997-98
15
15
10
5
--
-
514
32
2.03
482
.938
1
947:55
1998-99
19
19
13
6
--
-
587
36
1.77
551
.939
2
1,217:08
1999-00
5
5
1
4
--
-
147
12
2.39
135
.918
0
301:13
2000-01
13
13
7
6
-
-
347
29
2.09
318
.916
1
833:00
DET
2001-02
23
23
16
7
-
-
562
45
1.86
517
.920
6
1,454:42
2006-07
18
18
10
8
-
-
444
34
1.79
410
.923
2
1,139:49
2007-08
4
4
2
2
-
-
89
10
2.91
79
.888
0
205:58
NHL 통산
(13시즌)

119
113
65
49
-
-
3,283
246
2.02
3,037
.925
14
7,316:53

[1] 이름 도미닉과 터미네이터의 합성어.[2] 종목은 다르지만, 톰 브래디도 6라운드 전체 199순위로 동일한 순번으로 지명되었다.[3] 골텐더 앞의 붉은 선의 반원 내 공간[4] 다음 해에 뉴저지 데블스마르탱 브로되르가 7회로 경신했다.[5] 여담으로, NHL 기록은 1927-28시즌 舊 오타와 세너터스의 알렉 코넬이 460분 49초(!)로 6경기 연속 셧아웃을 거둔 기록이다.[6] 골텐더와 스케이터의 1:1 상황.[7] KHL 스파르타크 시절에 선보인 하셱 롤.구르고도 실점한 것은 안 비밀[8] 1위는 스웨덴 출신의 헨릭 룬드크비스트의 887경기.[9] 기록 당시에는 최고 기록이었지만, 마르탱 브로되르가 7회로 경신했다.[10] 출전 경기[11] 선발 경기[12] 무승부[13] 오버타임 패배[14] 총 샷 수[15] 골 허용 수[16] 경기 평균(60분) 골 허용 수[17] 세이브[18] 선방률[19] 셧아웃 경기 수[20] 출전 시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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