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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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야구인. 前 롯데 자이언츠 1군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 코치, 수석코치, 감독대행, 감독까지 오를 수 있는 모든 자리에 올라 본 인물이다.
2. 선수 경력[편집]
부산 감천초등학교, 부산대신중학교, 경남고등학교,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 동안이 전성기였다. 특히 1992년 우승 때는 .314의 타율과 21도루로 남두오성의 일익을 담당했고, 14개의 3루타를 쳐내 단일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세웠다.[7]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늘 김응국과 전준호라는 걸출한 외야수에 밀려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1996 시즌 초반 미친 듯한 맹타를 휘두르며 기량이 만개하나 싶었지만, 6경기만에 경기 도중 다리 골절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고 다시는 예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1997년 10월 3일 외야수 강대호를 상대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으며, 1998 시즌 후 거기서 은퇴했다.
마지막 1시즌만 뛰고 은퇴한 한화 이글스 현역 선수 시절. 이 시기에 한화에서 뛰고 있던 장종훈과 친분이 생겼다고 한다.
베트를 짧게 쥐고[8] 커트를 해가며 원하는 공을 골라 안타로 연결시키는 스타일의 타자였다. 주력도 준수해서 팬북에는 100m를 12초 플랫에 끊는다는 말도 있었다.
델동님이 되면서 이미지를 많이 망쳐서 그렇지 짧은 전성기의 이종운은 지금의 이용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발 빠른 타자였다. 다만 이종운보다 좀 더 정교하고 좀 더 발이 빨랐던 전준호와 이종운보다 역시 좀 더 정교하고 발 빠르기는 비슷했으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장타력이 있었던 김응국에 좀 가려진 면이 있다. 하지만 서건창이 깨기 전까지 최다 3루타 기록을 20년 넘게 지켜올 정도로 전성기의 주루 센스는 탁월한 편이었다.
수비에서는 의외로 돌글러브 기질이 좀 있었다. 특히 염종석의 승을 날려먹는 멋진 실책은... 당시 직관 갔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공을 놓치자 마자 온갖 육두문자와 함께 외야 관중석에서 오물이 날아들었다고.
오래된 팬들은 실력에 비해서 캐릭터가 부족했던 선수로 기억하는 면이 강하다.
전준호같은 독기도, 김응국같은 다재다능함도 없었고 전성기가 길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롯데의 마지막 우승에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이며 감독으로서의 실책이 아무리 많았다 해도 이 조차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종운/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종운/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6. 역대 감독 전적[편집]
7. 여담[편집]
-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롯데 감독 역사상 보기 드문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 감독이다. 자이언츠의 원년 멤버로 '미스터 롯데'라고 불렸던 김용희 감독에 이어 2번째.[10] 다만 김용희와 달리 순수 롯데 순혈은 아니다. 선수 생활 마지막 해를 한화 이글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즉, 요미우리 자이언츠식 순혈주의라면 역대 롯데 감독 중 김용희 말고는 자격이 없다. 그나마 이종운이 순혈에는 제일 가깝긴 했지만...
- 용모 자체는 그럭저럭 온화하고 무난한 편인지라 사진빨은 제법 잘 받는 편이다. 이 사진 구도를 보면 나름대로 인생짤. 가끔 컨셉 사진이라며 까인다. 하지만 체형이 상당히 마른 편이어서 북한 사람같다는 말도 있다.
- 인사발표때 왼쪽에서 두번째로 위치한 사람이 이종운인데, 안타깝게도 탈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저래 봬도 머리를 심은 것. 경남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시절엔 앞머리 탈모가 거의 진행된 상태였다.
- 투수 이성민이 영남대학교 재학 시절에 경남고등학교와 몇 차례 연습경기를 가지면서 이종운 감독과 구면이 있었는데, 이성민이 롯데에 트레이드로 입단했을 때 "이종운 감독님이 경남고를 이끄실 때부터 나를 좋게 봐 주신 것같다"며 본인이 응원하던 팀인 롯데로 불러들인 이종운 감독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 롯데 1군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직후 스포츠조선의 객원기자를 했었는데, 프런트가 선진 야구를 배워야 한다는 기사로 롯데 팬들의 어이를 빼놓는가 싶더니 또 나름대로 유망주나 야구 전반에 대한 혜안은 있어서 '역시 감독보단 스카우트를 시켰어야 한다' 라는 롯데 팬들의 또다른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1] ~8월 20일[2] 8월 21일~[3] ~6월 26일[4] 6월 27일~8월 28일[5] 8월 29일~10월 16일[6] 정식 임명 전인 8월 17일 경기와 8월 28일 경기에서도 래리 서튼 감독의 건강 문제로 감독대행을 맡았다.[7] 그리고 2014년 9월 6일 롯데전에서 서건창이 그 기록을 15개로 경신하는 장면을 바로 그 현장에서, 그것도 상대 팀 코치 입장으로 지켜봐야만 했다.[8] 당시 이종운은 리그 전체에서도 가장 배트를 짧게 쥐는 선수였다. 거의 한 뼘 이상 짧게 쥐었을 정도.[9] 두산 베어스의 일수 강점기를 이끌었던 송일수 감독에 빗대어 부른 것. 돡갤과 꼴갤 사이의 흔한 논쟁거리가 둘 중에 누가 더 나쁜 감독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정도일 것이다. 이종운은 2015년 용병 3명이 모두 터진 롯데를 데리고 8위를 했고, 손아섭, 김민하 등 수많은 문제까지 일으켰다. 송일수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매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그 전력 탄탄하다는 두산을 데리고 6위를 찍었다. 둘 다 1군 감독으로의 능력은 추호도 없다는 뜻.[10] 김용철 감독대행을 포함하면 3번째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이다. 그러나 김용철 대행은 백인천 감독이 경질되고서 수석코치 신분에서 감독 대행을 한 인물인 지라...[11] 물론 김용희는 롯데의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기록하고 5년여간 감독생활을 하다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지만 이종운은 고작 1년만에 기행을 일삼다가 경질되었다는 점에서 역량차이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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