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부원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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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1. 개요[편집]


고려 후기의 왕족. 충렬왕의 아들 강양공의 장남으로 심왕 왕고, 연덕부원대군의 형이다. 이름은 왕후(王珛), 작위는 단양부원대군(丹陽府院大君).


2. 생애[편집]


충선왕 복위 2년(1310) 종친들이 작위를 받을 때 단양부원대군에 임명된다. 충숙왕 3년(1316) 왕의 (사촌)동생이라고 해서 또 단양부원대군에 임명된다. 충숙왕 7년(1320) 6월 원나라에 가서 황제 영종의 즉위를 축하하고, 이듬해 또 원나라에 파견돼 지치(至治) 연호의 사용과 태후의 책봉을 축하한다. 충숙왕 17년(1330) 왕이 세자에게 양위하고 원나라로 떠나버리는데 단양부원대군은 권정동행성사에 임명돼 임시로 정동행성의 사무를 맡아본다. 곧 충혜왕이 폐위되고 충숙왕이 다시 고려로 돌아가는데, 충숙왕 복위 2년(1133) 왕이 평양에 이르자 찬성사 조적, 밀직사 정기와 함께 국인(國印)을 가지고 알현한다.

단양부원대군의 할머니 정화궁주의 오빠[1]동화사(桐華寺)에 승려로 있으면서 양인 천 몇백여명을 노비로 만드는데 단양부원대군이 혜택을 많이 본다. 나라에서 정치도감을 설치해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민으로 만들자 단양부원대군은 앙심을 품고 압록강을 건넌다. 원나라에 직접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려던 단양부원군의 계획은 본인이 도중에 잡혀 돌아오게 되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단양부원대군은 공민왕 재위중에도 살아있었다. 홍건적이 침입해 개경이 함락되는데, 전리판서 인안과 함께 홍건적에게 항복해 경기 지역에 어느 곳이 살기 좋은지, 어디에 곡식이 많은지 나서서 알려주고 다닌다. 홍건적이 격퇴된 뒤에 단양부원대군 등은 부역자로 지목돼 감찰사의 탄핵을 받는데, 자손이 금고형을 받고 토지와 노비가 몰수된다.


3. 가족관계[편집]


양원군(陽原君)에 봉해진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2], 원나라에서 어사 벼슬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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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화궁주의 부친 시안공 왕인에게는 왕정(王禎), 왕영(王瑛), 왕원(王謜)이라는 아들이 있었다.[2] 이름은 실전되었으며, 고려사에서 같은 봉작을 받은 인물로 인휘(印暉)라는 사람이 발견되는데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