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안골 고분군

덤프버전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420호
부여 능안골 고분군
扶餘 陵안골 古墳群
Ancient Tombs in Neungangol, Bu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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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75-7번지 외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164,701㎡
지정연도
2000년 7월 22일
제작시기
백제시대(6C ~ 7C)
위치




파일:부여_능안골_고분군_전경-1.jpg

능안골 고분군의 전경

1. 개요
2. 위치
3. 특징
4. 역사
5. 조사내용 및 주요고분
5.1. 36호분
5.2. 45호분
5.3. 58호분
6. 출토유물
7. 의의
8. 여담
9. 외부 링크
10. 사적 제420호



1. 개요[편집]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 귀족층의 무덤군이다. 사적 제420호로 지정되어있다.


2. 위치[편집]


백제의 왕족들이 묻혀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보다 더 동쪽에 위치한다. 능산리 고분군(왕족) - 능안골 고분군(고위 귀족) > 염창리 고분군(하위 귀족) 순으로 위계에 따라 동쪽으로 순차적이게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월명산 남쪽 능선 끝자락 부분의 작은 언덕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4번국도(대백제로) 바로 옆에 위치해있고 지대도 낮아서 방문 시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3. 특징[편집]


대표적인 백제 사비시대 귀족층의 무덤군이다. 규모가 큰 사비시대 귀족의 합장묘가 다수 발견되었다.

보통 백제의 고분들은 도굴당하기 쉬운데 능안골 고분군은 워낙 철저하게 잊혀진 유적이라 그런지 도굴 피해가 현저히 적어서 처녀분[1]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4. 역사[편집]


성왕의 사비천도 이후 이 곳은 백제 고위 귀족층의 집단 매장지로 사용되었다가 백제멸망전 때 백제의 상류층 상당수가 당으로 압송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선 점차 잊혀진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후에도 유적이 위치한 장소는 현지 주민들에게 '능안골(陵안골)'이라 불리며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지명에 남아 후대까지 전해졌다.

이후 1994년 부여군 공설운동장 조성 과정 중 백제시대의 고분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1995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후 백제 후기 귀족들의 집단 묘역이라는 점과 출토유물들이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7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깔끔하게 묘역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주차장과 화장실 및 탐방로 등이 설치된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5. 조사내용 및 주요고분[편집]


파일:고분군전경.jpg
발굴 당시 고분군의 모습

2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고 그동안 조사단은 총 5,000평에 대해 정밀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굴식 돌방무덤 30여기, 돌덧널무덤 20여기, 독무덤 4기 등 모두 58기의 백제고분과 세가지 유형의 묘제가 확인되었다.[2] 대부분 땅 속 깊이 돌방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것이 특징이다.


5.1. 36호분[편집]


대표적인 사비시대 귀족의 부부 합장묘이다.


5.2. 45호분[편집]


고분군 남쪽의 만들어진 무덤인데 경사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작은 돌들로 3단 축대를 만들어 묘역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5.3. 58호분[편집]


무덤 남쪽을 별도로 좁게 파고 내려간 뒤, 바닥에 작은 돌들을 덮은 배수로를 L자형으로 약 11m 길이가 되게 조성하였다. 다른 고분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독특한 구조라고 한다.

6. 출토유물[편집]


파일:44호분(출토은제관식및요대장식일괄) (1).jpg
은제관식 및 요대장식 일괄(44호분)

파일:32호분(출토금제이식).jpg
금제귀걸이(32호분)

파일:AKR20180312047300005_02_i_P2.jpg
은제관모장식(36호분)


7. 의의[편집]


수많은 고분들과 그 속에서 나온 부장품들은 백제 사비시기 고위 귀족층의 다양한 무덤형식 연구와 당대의 의복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되어주었다.

또한 무덤을 파묘[3] 혹은 이장하는 등의 행위를 한 무덤터도 여럿 발견되어 기록 부족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백제의 장례문화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4]


8. 여담[편집]


백제세계유산센터[5] 에 의해 백제역사유적지구 확장 등재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차후 세계문화유산으로 편입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9. 외부 링크[편집]




10. 사적 제420호[편집]



부여 능산리고분군 동쪽에 있는 백제의 무덤이다.

1995∼1996년 사이에 조사되어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30여기, 돌덧널무덤(석곽묘) 20여기, 독무덤(옹관묘) 4기 등을 발견하였다. 홑무덤(단장묘)이나 합장묘, 어린아이 무덤 등 다양한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주(紬)·사(紗) 등의 옷감 및 금귀고리, 은제관장식과 띠드리개장식(요대장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식과 출토된 유물을 통해 6∼7세기경 백제 귀족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백제 후기 무덤형식과 의복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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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번도 도굴당하지 않은 무덤.[2] 참고로 여말선초의 토광묘도 2기 확인되었다.[3] 옮기거나 고쳐묻기 위해 무덤을 파내는 행위.[4] 이장을 위해 무덤에서 석재를 전부 꺼내고 흙으로 메웠다고 한다.[5] 문화재청 산하의 재단법인.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통합관리기구 역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