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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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호철 작곡가.jpg

1. 개요
2. 생애
3. 음반
3.1. 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
3.1.1. 흐르는 강물 따라서
3.1.2. 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
3.1.3. 사랑은 빗소리에
3.1.4. 해방의 나라
3.1.5. 되돌아 가는 날
3.1.6. 동지들 잠든 밤에
3.1.7. 쏘주
3.1.8. 백령도야 기억해다오
3.1.9. 미련
3.1.10. 잘린 손가락
4. 작품 목록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민중가요 작곡가. 1959년생이며, 본명은 김수호다. 한때 '민중가요 자판기'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많은 곡을 지었으며, PD 계열 운동가로서 NL 계열의 윤민석과 노동가요의 쌍두마차를 달리던 인물이다.


2. 생애[편집]


원래는 엘리트 체육계에 몸담고 있던 인물로, 1978년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에 입학해 1980년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투신해 서울의 봄 당시 서울역 회군에 반대하기도 했으며, 그 결과 녹화사업 대상자로 지목되어 군대에 징집되고 군악대원이 되면서 처음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군대에서 트럼펫을 배운 김호철은 제대 후 밤무대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다가[1] 80년대 중반 여동생을 따라 노동운동에 투신,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며 민중가요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노래단을 이끌면서 민중가요의 패러다임을 운동가요에서 노동가요로 전환시켰으며, 단결투쟁가, 파업가, 깃발가, 포장마차, 잘린 손가락, 전노협 진군가와 같은 레전드 민중가요를 탄생시켰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김호철의 활동은 그야말로 '민중가요 자판기'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으며, 1987~2000년 사이 발표된 민중가요 중 7%를 작사하고 9%를 작곡했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94년 노동가요 활동을 하며 만난 민중가수 황현과 결혼했다.

2000년 이후에는 활동이 뜸해졌다가, 2006년 신 한국노총가를 작곡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이 로고 교체 등 쇄신 작업을 진행하면서 김호철에게 노총가 제작을 맡기려 한 것이다. 본래 민주노총 인사이기에 한국노총의 제안을 수차례 거절했지만, 한국노총이 이소선 여사[2]까지 거론하며 호소하자 마지못해 한국노총가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추모곡 네 모습 그대로-4.16 내 아이에게를 만들어 공개했다.

2018년 파업가 공개 30주년 기념으로 김호철의 곡들을 리마스터한 김호철 헌정 음반이 제작되었다. #

2021년 암 투병생활을 하던 아내 황현과 사별했다. #

한편 김호철은 1995년 장애해방가 작곡을 시작으로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 이동권연대투쟁가, 태수야, 턱을 헐어요, 덤벼, 그날들을 기억해, 내 몸의 급수, 휠체어 타고, 짱이, 저상버스, 세상 속으로, 천천히 즐겁게 함께, 옹달샘, 새길을 간다, 코딱지, 내 친구 등 장애인운동과 관련한 많은 노래도 작곡했다.

현재 노동의소리를 운영하고 있다. 노동의소리 누리집에서는 김호철의 대부분의 곡과 많은 노동가요의 악보, 반주,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다.


3. 음반[편집]



3.1. 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편집]



2013년 11월 10곡으로 구성된 음반 "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를 발매하였다. 프레싱 방식이 아닌, LightScribe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파일:김호철_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png


3.1.1. 흐르는 강물 따라서[편집]



3.1.2. 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편집]



3.1.3. 사랑은 빗소리에[편집]



3.1.4. 해방의 나라[편집]



3.1.5. 되돌아 가는 날[편집]



3.1.6. 동지들 잠든 밤에[편집]



3.1.7. 쏘주[편집]



3.1.8. 백령도야 기억해다오[편집]



3.1.9. 미련[편집]



3.1.10. 잘린 손가락[편집]





4. 작품 목록[편집]




5. 여담[편집]


  • 전노협, 민주노총 출신 PD 활동가답게 가사에서 PD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는 편이다. 또한 군대에서 음악을 배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곡이 군가 내지는 행진곡 풍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노래가사 바꿔부르기나 서정적인 가락으로 제창하기 어려웠던 기존 민중가요와 달리 군가풍의 김호철표 민중가요는 군필자인 대다수 노동자가 따라부르기 쉬웠기 때문에 민중가요 대중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 민중가수 박준과 친분이 있어 김호철이 만들고 박준이 부른 노래들이 상당히 많다. 2006년 한국노총가를 지을 때도 박준과 협업했다.
  • 양대노총의 상징곡인 민주노총가와 한국노총가를 모두 작사, 작곡한 데서 노동가요계에서의 김호철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 윤민석이 김호철을 매우 존경한다. 김호철을 '호철이형'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유튜브에 김호철 대표곡 메들리나 김호철 신곡 마스터링을 자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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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생운동 탄압의 일환으로 군대에 간 사이 제적을 당했다고 한다.[2] 전태일의 어머니로,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