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1974)/사건사고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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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2. 2012년 총선 막말 파문
3. 양원보 기자와의 분쟁
4. 교황 방한 관련 발언
5. 낙선축하화환 배송 논란
6. 루리웹 유저와의 논쟁 사건
7. 김용민 정치쇼 돌연 하차
8. KBS 하차
9. 주진우와의 갈등


1.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편집]


원문(현재 삭제됨) 박제

한양대학교 겸임교수[1] 시절인 2009년 충남대학교 신문에 '너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글을 통해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 내용은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20대에 대한 질타와 촛불시위를 통해 부각된 10대에 대한 기대로 요약된다. 2010년을 전후해 대두되었던 20대 개새끼론의 시초라고 보아도 무방할 사건이었다. 이후 진보진영의 약세를 20대의 정치적 무관심 탓으로 돌리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에 대한 반발로 86세대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김용민이 20대에게 내렸던 평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김용민이 당시의 10대에게 가졌던 기대는 명백하게 허황된 것이었다. 편의상 김용민이 자신의 글에서 칭한 바와 같이 2009년 시점의 20대를 IMF세대로, 10대를 촛불세대라 부르기로 하자. 촛불세대의 상당수는 2016년 시점에서 이미 20대 중반이 되었다. 하지만 20대로서 촛불세대가 보여준 사회적 행동양식은 IMF세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적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김용민이 기대한 '조직적인 봉기'에 대한 참여에서는 촛불세대가 IMF세대보다 훨씬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촛불세대가 대학생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 대학 사회도 생존의 쟁투장이 아니라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될 것이라는 그의 결론도 2016년 시점에서는 실소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김용민 자신이 바란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병○인증'을 받은 것이다. 20대 개새끼론의 요지와 그 부당함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글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11월에는 김용민 본인이 이 글에 대해 잘못 생각했음을 시인하기도 하였으나 그 사과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모로 당시 정황이 미묘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20대들이 현재 3040이 되어 문재인 지지자들이 된 경우가 많은 반면 당시 10대 남자들이 20대가 되어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적 성향 때문에 반문, 보수화가 된 경향이 많다.


2. 2012년 총선 막말 파문[편집]


위의 사건이 물의를 일으키고 시간이 흘러 조금 조용해졌나 싶을 때쯤인 2012년 총선 당시에 노원(갑)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는데 8년 전 김구라와 함께 했던 성적 발언과 막말이 발굴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2시만 되면 공영방송들이 의무적으로 포르노를 틀어 성관계를 유도하고 피임이 나쁘기 때문에 임신공격을 해야한다'는 발언이었다. 또 '등화관제를 해서 10시 이후에 불켜면 모조리 총살해야 한다'고도 했다. 과격한 욕설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무개념한 망언과 성적 비하의 수위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 평소 인격이 의심되는 수준이라는 평을 몰고 왔다. 막말영상링크

당시 2천년대 초반 한국에 휘몰아치던 반미 시류에 영합하여 한국의 살인마 유영철을 미국에 보내 미국에 대해 테러를 감행하고 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하고 죽이자는 무개념 발언,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를 죽이고 여자인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아예 강간하고 죽이자는 주장, 주한미군들을 인질로 삼아 차례로 죽이자는 주장, 노인들이 시위를 못 하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없애자는 주장, 부인하고만 ×(성관계)치라는 법은 없으니 부인 아닌 사람 그 어떤 여자하고도 ×을 치더라도 항상 거기 호적에 기재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 미사일을 날려가지고 자유의 여신상 ××(항문의 비속어)에 꽂히도록 하자는 주장# 역시 논란이 되었다. 그와 같이 대화한 김구라까지도 덩달아서 엄청 까였다.

여성단체와 새누리당은 김용민의 사퇴를 촉구하며 크게 비판했지만 김용민은 '성누리당'의 네거티브 공세라고 트위터로 뻗댔다. 하지만 논란은 더욱 거세졌고 한국일보와 경향신문까지도 김용민을 깠다. 결국 2시간 만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먼저 트위터에서 삐대던 것도 있고 병크의 수위가 너무 세서 별 소용은 없었고 같은 날 노인 폄하발언이 추가로 발굴되면서 확인 사살. 특히 라이스를 강간해서 죽이자는 말은 큰 논란이 되어서 현재까지도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나 종편에서 종종 언급할 정도.#

결국 이 논란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가 점쳐젔던 민주통합당이 패배하는 데 결정타를 날렸다.

리얼미터의 조사에 의하면 총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슈로 김용민 막말 파문이 22.3%로 1위를 차지했다.#[2] 본인 역시 새누리당 이노근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3] 정치 전문가 및 야권 관계자들은 여성·노인·개신교 등을 비하하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으로 인해 민주당이 수도권의 주요 접전지는 물론, 충청·강원·영남 등에서 상당한 표심이 돌아섰다고 분석하였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에 의하면 김용민의 막말파문이 터진 이후 민주당이 5~10% 앞서가던 곳들이 접전을 보이거나 역전되는 등 데이터상 충격이라고 할 정도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한다. 19대 총선에서 2000표 차 이내로 승패가 갈린 지역구는 19곳인데 김용민 막말 파문이 이런 초박빙 지역들의 야권 단일후보에게 1~3%포인트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며 결국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승리를 내주고 말게되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막말 파문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3040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를 약화시켰고, 심지어 야권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진표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증언에 의하면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전원이 김용민 공천에 반대하였으나 당 지도부 일각에서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눈치 보기가 심하여 결국 공천을 할 밖에 없었다고 한다.[4] '김용민 막말 파문'이 아니었으면 경기도에서만 최소한 5석 이상을 더 얻었을 거라며 당시 김용민 후보가 사퇴했어야 민주당이 살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는 김용민에게 사퇴를 종용하였으나 김용민은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반면 새누리당은 김용민 막말 파문을 호재로 여기면서 김용민이 계속 사퇴하지 않고 버텨주며 끝까지 가주길 바랬다고 한다.#

막말파문의 영향 탓에 총선 후 한달 뒤 한양대학교 대학축제 강연무대에 섰을 땐 준비된 50석의 좌석은 물론 강연에 예정된 시간 2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1시간 만에 끝났다고 한다.# 김용민의 강연에 대해 한양대 인터넷 커뮤니티 ‘위한’에는 “막말로 지탄받은 인물에게 무슨 배울 점이 있다고 초청하는 거냐”는 내용의 비판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고 한다.#

진보논객인 진중권도 김용민의 막말에 대해 아무리 8년전 발언이라도 발언 수위가 너무 세다며 본인이라면 김용민을 찍지 않겠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막말과 욕설도 하나의 취향으로 인정해줄 수 있지만 ‘라이스를 강간하자’는 얘기는 발설자의 의식 상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각한 망언임에 틀림없다"고 비판하며 김용민의 공천은 한국 정치사 최악의 캐스팅이라며 비판하였다.#

유명 진보 평론가 중 하나인 황진미도 한겨레를 통해 간접적으로 김용민의 막말을 비난했다. 기사 미국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총선 패배 직후인 2012년 4월 13일 김용민은 자신의 블로그에 “나는 중죄인이다. 사죄하며 근신하겠다”고 적었지만, 하루만에 근신을 끝내고 앞으로 "국민 욕쟁이"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하여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런 김용민의 처사에 수많은 언론들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서울신문은 "중죄인을 자처하며 근신하겠다던 김씨가 불과 이틀 만에 이를 뒤집고 활동을 재개하겠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김용민의 망언은 우리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면서 "김용민의 대국민 사과가 표를 얻기 위한 한낱 꼼수요, 쇼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비판하였다.#

동아일보는 "김용민이 저질 본색을 드러냈다"면서 "수준 이하의 저질 막말을 입에 달고 사는 김 씨가 ‘국민 욕쟁이’를 자처한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버릇없는 저질 욕쟁이가 어디 감히 국민을 함부로 들먹이는가."며 김용민의 행태가 "위선적이고 저열하다"며 비판하였다.#

세계일보는 "죽는 시늉이라도 할 것 같던 김용민의 표변에 많은 이들은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다. ‘근신’ 운운하는 사기극에 놀아난 꼴이 됐다."면서 "그동안 해온 엽기적 막말로도 모자라 또 어떤 욕설로 사회를 더럽히려 하는지 걱정스럽다."며 비판하였다.#

해럴드 경제는" 눈과 귀를 의심하고 혀를 내둘러도 모자라는 비열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과오를 고작 하루 이틀 말장난으로 덮겠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을 우습게 아는 처사다."라면사 "속죄한답시고 표현의 자유를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쓰겠다더니 이제는 희대의 욕쟁이에다 국민을 갖다붙이는 무례함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 후로도 김용민은 자신이 막말논란으로 인해 총선을 졌단 의견에 대단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고, 자신이 잘못했단 생각이 없이 당시에 했던 사과에 대해서도 그저 무시하고 넘어갔어야 했다며 자신이 사과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인식이 이러하니 당시 김용민이 한 말을 트위터에 달면 그대로 차단을 시켜버린다.


3. 양원보 기자와의 분쟁[편집]


<2012년 4월 6일> 양원보 트위터

할머니[5]

...저 돼지...저거 어쩔거임!!? 그대로 놔둘거임?

“문자 받은 적 없단다. 막말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거짓말도 수준급이네...”


<2012년 4월 7일> 양원보 트위터

돼지.. 이젠 주인 말도 안듣는구나.. 덕분에 망할 거 같다”

“오늘 전국 교회에서 입달린 목사들은 다들 한마디씩 할거다.. 그럼 대박, 망하는 거다..”


“중앙일보 양원보 씨, 오늘(10/31) 33면에 실린 취재일기 읽었어. 갑자기 당신 트위터가 보고 싶더군. 최소한 과거 막말 비판하려면 본인부터 돌아봐야지. 나는 8년전 막말로 낙선으로 심판받았지만 막말 기자 당신은 당장 무슨 소리 떠들건 상관없다는 겐가?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지 않겠지? 네가 욕한 돼지야.”


양원보 기자 트윗서 과거 ‘막말’ 찾아내 일침 정치부회의에 출연하고 있는 양원보 기자가 2012년 중앙일보 편집국 재직시절에 김광진 전 국회의원에 대해 악성기사를 쓴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를 읽은 김용민이 양원보 기자의 과거 트윗내용들을 소개하며 양원보 기자를 비난하는 글을 쓴적이 있다. 양원보 기자가 쓴 트윗에는 김용민을 돼지로 비유하며 막말을 한 것이 드러나 논란을 일으킨바 있다.

김용민은 또 양원보 기자가 트위터에 ‘병진(신) 새꺄’ ‘암담한 새퀴’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을 두고 양원보에게 미래에 도움이 안 될 테니 트윗을 당장 지우라고 충고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 이후 양원보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였다.[6]


4. 교황 방한 관련 발언[편집]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예포와 관련해서 박근혜가 군국주의자 박정희의 딸이라 무식해서 평화의 사도앞에서 사격을 했다는 등의 정말 무식한 발언을 해버렸다. 출처

예포는 국가원수급 사절이 방문할 경우 외교상 관례적으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발포하는 것이다. 그 유래는 과거 함선 간의 평화적 교섭을 위해 탄약을 모두 처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가 시간이 흘러 해/육상에서 포를 통해 표하는 예법으로 바뀐 것이다. 즉 아무도 해칠 의사가 없다는 뜻과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어서 사격의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게다가 교황이 왔을 때 예포를 쏘는 것은 바티칸의 국가수장인 교황에게 하는 의전 관련 사항이고 따라서 당연하게도 바티칸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하는 일이다.

행사가 문제된 것은 교황청의 원래 요청과 달리 행사가 화려하게 진행된 것이지, 의미가 문제 있는 건 아니다. 때문에 김용민의 트윗은 글쓴이 자체가 예포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썼다는 무식함을 드러냈기에 까임을 당했다.

문제는 이를 지적하거나 반박하는 사람들을 삭제, 차단시키는 독선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것. 위 논쟁의 이유와는 관련이 없는 박근혜=친일파 후예라는 공식으로 계속 비난했다. 예포와 의장대가 제국주의 군사문화라는 건데, 전지구 친일+파시즘설을 새로 내놓을 판이다. 그냥 정부 까고 싶어서 그랬다면 교황청의 요청을 무시한 것만 비판해도 될 일을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내세우며 본인이 증오하기 마지 않는 비민주의적인 독선적인 행태를 보였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미 때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의 사도인 교황과 총성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포를 쏘지 않았는데(“Some might also recognize the dissonance in welcoming a professed man of peace to the White House by repeated firing of weapons”),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 생략한 것일 뿐 교황에게 예포쏘는 거 자체가 결례라서 그런 게 아니다. 예포는 방문하는 국가원수를 상대로 이루어지는 행사이므로,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인 교황도 당연히 예포를 받을 수 있다.


5. 낙선축하화환 배송 논란[편집]


파일:김용민 이노근 낙선화환.jpg

2016년 총선에서 낙선한 새누리당 이노근 후보에게 낙선축하화환을 보내 논란이 되었다.[7] 이노근의 낙선이 확정되자마자 김용민은 ‘祝(축) 이노근 후보 낙선, 막말 선배 김용민’이란 조롱성 문구가 담긴 화환을 이노근의 사무실에 보냈는데 김용민의 행동에 대해 언론의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YTN에서는 정치를 희화화시키는 조롱식 대응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비판하였고#, 일요시사에서는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낙선자에게 축하화환을 보낼 정도로 졸렬한 사람이라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였다.# 조선일보는 김용민의 낙선축하화환 사건을 언급하며 무례한 사람과 건방진 조직은 언젠가 무너진다고 비판하였고#, '만물상'이라는 오피니언 코너를 통해 김용민을 '막말의 제왕'이라 칭하며 신문지 지면에 쓰기조차 아까운 일이라며 비판하였다. 채널A에서는 2012년 총선 당시 막말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용민이 4년이 지난 후에도 낙선화환을 보내 또다시 물의를 일으켰다고 언급하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논평을 남겼다.# 손석희 또한 낙선축하화환 배송사건을 언급하며 그 누구도 모욕하고 망신줄 권리가 없다면서 김용민의 행동을 비판하였다.#[8]

이에 대해 김용민은 자신에 대해 비판 기사를 쓴 국민일보 기자를 향해 자신의 페이스북과 각종 사이트에서는 줄잡아 90% 이상 웃음과 격려, 지지의 댓글이 달렸다는 반론을 하였으나#, 친 민주, 진보 사이트에서조차 찬반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2, #3, #4, #5 그 와중에 고작 10만원만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 루리웹 유저와의 논쟁 사건[편집]


2017년 12월에 신년을 앞둔 대통령 특별 사면에서 정봉주만 복권된 반면, 한상균, 이석기가 사면 안 되어서 안타깝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에서 이를 비판하는 네티즌의 글 제목에 "돼지Xㄲ" 표현이 들어가있어, 이 게시글을 보고 화난 김용민은 고소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해당 커뮤니티 회원들과 설전이 있었으나, 해당 유저(비판한 네티즌)가 김용민 씨에게 문제가 된 표현을 사과하며(비하의도는 없었으며 목아돼 시사돼지라는 애칭? 별명?을 과하게 표현하다 나온 실수라고 밝힘) 사건이 일단락 되면서 김용민은 고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용민씨가 해당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하여 얼굴 인증을 하기도 하였으며 해당 논란이 일자 루리웹 북유게에서 활발할 토론이 이루어졌다.


7. 김용민 정치쇼 돌연 하차[편집]


2018년 11월 29일, 연초부터 계속 진행해 왔고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9] SBS 러브FM의 김용민의 정치쇼에서 돌연 하차했다. 청취자에 대한 작별인사도 없는 전격 하차라서 다음날 진행자가 바뀐 것을 안 애청자들이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일단 사건의 발단은 2018년 5월부터 이정렬 변호사가 김어준-김용민과 각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이정렬과 김용민의 인연은 2013년부터 시작되는데, 이정렬이 판사에서 잘리고[10] 변호사 개업도 불허되었을 때인 2013년 정봉주가 자신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 김용민과 함께 이정렬을 출연시키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계속 이정렬은 김용민-김어준과 함게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해왔으며, 이들의 팟캐스트에 자주 출연했고. 2017년 말에도 이정렬이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에 나와 가카의 형량을 계산하며 김어준-김용민과 히히덕거리던 사이였다.

하지만 김용민-김어준과 친했던 이정렬 변호사가 2018년 5월부터 소위 혜경궁 김씨 사건에서 문파의 고발인 대리인을 맡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이정렬은 문파를 대리해 김어준-김용민과 대립각을 세워왔고, 그들을 가리켜 "노무현을 참칭하며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자들"이라고 비판을 했다.[11] 사실 초기에는 그다지 갈등이 심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정렬은 김용민이 4월부터 맡게 된 정치쇼의 한 코너였던 삼변시대(수요일 2, 3부)에 출연하고 있었다.(당시 3변시대 출연자는 이정렬, 김태현, 백성문) 그런데 2018년 5월 9일 이정렬은 홍대 누드 도촬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곁가지로 빠져 이재명을 지칭해 "일베 도지사"라고 지칭했고,[12] 김용민은 이에 놀라서 "이것은 이정렬 판사님의 개인의견임을 밝힙니다"고 급히 수습을 했다. 이후 이정렬이 하차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김용민에게 "이 건 때문에 하차한 거냐?"고 물어본 모양이다. 하지만 이당시 김용민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정렬 판사가 다시 나와주셨으면 한다"고 썼다. 5월 30일 이정렬이 변호사 등록을 했고 그 사실을 페북에 올리자, 김용민은 거기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사이가 나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10월에 이정렬 변호사가 몇달만에 삼변시대에 복귀하면서 불거졌다. 이정렬은 그동안 혜경궁 김씨사건에 깊숙히 개입하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김어준-김용민을 SNS상에서 계속 디스했으며, 심지어는 김어준의 취재원을 고발하겠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3변시대는 그동안 양지열, 김태현, 백성문 원년멤버 체제로 운영되다가, 백성문 변호사가 하차하고, 그 자리에 여러 변호사가 교대로 나오다가 다시 이정렬 복귀.[13] 원래 삼변시대는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이정렬은 출연할 때마다 이재명이나 이재명측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아냥조나 조롱조로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보면 김용민을 에둘러 도발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수위가 높은 것도 있었지만, 김용민은 웃으며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김용민 하차의 계기가 된 2018년 11월 28일에는 혼자 무쌍을 찍으면서 계속 이재명 지사 측을 디스하고, 이재명에 동정적인 김용민까지 조롱조로 이야기했다. 사실 이날은 이정렬 변호사가 공동출연자인 양지열, 김태현 변호사는 물론 김용민이 끼어들 틈도 없이 2-3부 내내 이재명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등, 다른 때보다도 더 열을 올려서 이정렬의 성향을 아는 사람마저 조금 의아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14][15] 김용민은 이정렬이 "범인은닉" 운운하며 결정적으로 자신을 건드리자 (화를 삭이느라고 했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서, 방송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으며, 청취자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김용민이 몇 분간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끼리만 이야기했는데, 그동안 양지열 변호사가 상황을 눈치챘는지 김용민을 대신해서 '이정렬의 발언은 고발인 입장에서 한 말이다'라고 진행자가 해야 할 멘트를 하면서 이정렬의 발언을 끊고서야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김용민은 양지열 변호사의 멘트 후에야 간신히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서 이재명 건을 끝내고 윤장현 前 광주시장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주제로 끝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렬이 직접적으로 김용민 자신을 거명해 디스를 하니 김용민은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정렬이 수위를 넘어서 자신마저 조롱하니 김용민으로서는 폭발한 거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정렬 자신도 밝혔지만, 이정렬은 김용민의 권유로 방송계에 진출했기 때문에, 김용민 본인은 더욱 배신감과 불쾌감을 느낀 듯 하다. 해당부분(3부)은 SBS측도 이정렬이 너무 오버했다고 생각했는지, 자사의 고릴라 앱이나 팟빵, 팟티에 올리지 않았다.[16] 또한 SBS가 만드는 팟캐스트인 김용민의 뉴스관장도 원래 매주 5부까지 제작되지만 주초에 녹음된 부분(1, 2부)만 올라오고, 이후 에피소드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이것도 SBS가 제작하는 것이라서 잠정 중단된 듯. 해당 방송분(11월 28일 3, 4부)은 12월 3일경에 올라왔다. 올린 날짜가 11월 28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일단 올린 후에 비공개로 했다 공개로 바꾼 듯하다.

2018년 11월 29일부터 친한 동생이기도 한 평론가겸 방송인 고현준이 대타를 맡게 되었다. 김용민의 페이스북에 따르면, 2018년 11월 28일에 방송을 끝낸 뒤 바로 제작진에게 그만둔다고 통보했다고 한다.[17] 제작진은 문자를 보내 만류한 모양이지만, 김용민 스스로는 '이미 결정을 한 사안인데, 돌이킬 수 없다'고 결심한 듯. 본인의 페북에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김용민입니다. 지난 수요일자(2018년 11월 28일)로 SBS '김용민의 정치쇼'를 그만뒀습니다. '오늘까지 복귀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다른 진행자를 찾겠다'는 내용의 문자가 SBS측으로부터 와서 많이 놀랐네요. 당일 분명히 그만둔다고 밝혔는데. 그래서 이미 페이스북 페이지 프로필에서도 지웠는데. 그래서 김용민은 적어도 간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님을 주지시키는 차원에서 못을 박습니다. 저, SBS 관뒀습니다. 다만 경청해주시고 성원해주신 애청자 여러분께는 송구한 마음, 감사한 마음을 피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매일 유튜브로 생방송하던 뉴스 브리핑도 2018년 11월 29일에는 걸렀다. 뿐만 아니라 이날 매주 목요일에 유튜브 생방송되던 자신의 팟캐스트인 황금선박에도 출연하지 않았다(황현희, 선대인, 박원석만 출연).

김용민의 라이브 방송들의 단편적인 멘트들을 가지고 추리해보자면, 김용민은 이정렬 변호사를 제작진이 삼변시대에 계속 출연시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는데[18] 이정렬 변호사가 생방송중에 자신마저 비아냥대자 제작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여 바로 하차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SBS가 이재명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재명 조폭연루설을 제기하곤 했었다. 하지만 경찰조차 혜경궁 김씨 사건이나, 친형 강제입원사건은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음에도 조폭연루설은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는데도# 다시 SBS가 이를 문제삼자, 김용민은 SBS 제작진 혹은 경영진이 조직적으로 이재명 죽이기에 나섰다고 판단한 듯. 본인과 불편한 사이임에도 SBS가 이정렬을 계속 자신의 프로에 꽂는 것도 그런 견지에서 생각한 듯하다.

이정렬은 김용민과 마찰을 빚어 김용민이 하차하는 사태를 일으켰음에도, 정기적으로 SBS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으며, 심지어 김용민이 하차한 이후의 삼변시대에도 다시 출연했다. 이를 볼 때, SBS가 이정렬의 행보를 적어도 문제삼지 않는 것을 넘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위에서도 나왔지만 SBS가 이정렬의 발언이 지나치다고 봐서 해당 부분의 다시듣기를 올리지 않았을 정도인데도 이정렬을 다시 삼변시대에 출연시킨 것을 보면, SBS 제작진 혹은 경영진이 이정렬을 호의적으로 본다는 것은 확실한듯.

사실 김용민은 지상파 방송중에는 자신의 색깔이나 주장을 거의 내비치지 않는다. 보수적 패널인 진수희. 차명진, 이준석, 김태현변호사의 의견도 (본인의 평소 지론과는 다르더라도) 잘 경청하고 말을 끊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출연해 자신의 신경을 긁는 이정렬과 이정렬을 묵인하는 SBS제작진[19]에 대해서는 상당히 기분나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김용민은 자신의 트위터에 "하차 이유에는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겠지만,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지 않으려 한다"며 간접적으로 SBS 제작진에 대한 불만임을 강하게 암시했다. 그만둔 이후 얼마 안 가 <이작가와 이박사의 이이제이>에 출연했을 때, "나는 양아치(이정렬, 혹은 SBS)와 같이 방송 안 한다"고 하여 결국은 SBS 제작진이나 이정렬 때문에 그만둔다는 것을 밝혔다.

게다가 2019년 7월경에 김용민은 제작진이 김용민에게 SNS활동 자제를 요구를 한 것[20]과 이정렬을 게스트로 출연시킨 것에 화가 나서 그만두었단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상기했다시피 김용민이 방송에 자신의 주장을 내비치지 않았단 말대로 중립 요구에 대한 반발을 보였단 증거도 없고 이정렬의 발언에 대해 현장에서 어떠한 말도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 사안이 쌓이니 화나서 갑작스레 잠수를 타버렸단 결과만 남아있는 셈이다. 김용민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에 대해선 소인배적인 기질을 보이는 걸 생각하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고.

다만 KBS에서 방송되는 김용민 라이브는 시간대를 옮겨 계속되고 있다. 정치쇼는 김용민의 색깔이 분명한 프로였기 때문에 김용민이 하차하자 팟캐스트에서의 순위가 급락하고 있다. 팟빵순위로만 보면, 김용민이 진행했을 때는 10위 안에 들었으나, 김용민이 하차한 후 20위 근처에서 놀고 있다.

이후 개인 SNS를 통해 언급을 하지 않고 후임으로서 정한성 PD가 고정진행자가 2시대 프로듀서인 이재익PD가 결정된만큼 SBS와의 사건은 마무리된 셈. 다만 SBS 정치쇼에 출연했던 김용민 사단(아래 참조)은 김용민이 떠났음에도 계속 출연하고 있다.

아무튼 2019년 1월 9일 이정렬 변호사가 또 돌발발언을 했고 SBS 제작진은 결국엔 안될 것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정렬변호사는 수용을 했고 하차로 결정되었다.

한편 SBS가 손혜원의 목포 적산가옥 구입건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자, 그동안 SBS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왔던 김용민은 "토건방송", "조폭방송"이라면서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돌연 하차에 대한 내막을 이후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조금씩 밝히고 있는데, 일단 쇼를 진행할 때, SBS측이 SNS에 관한 내용으로 문제를 삼은 적이 많다고 한다. 특히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내용을 문제삼았다고. 얼마나 쌓인 게 많았는지 이후 관훈라이트클럽에서 "SBS 보도국은 정치감각 자체가 없는 집단"이라는 수준의 독한 디스를 매번 날리고 있다.

2019년 7월 SBS PD들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이승훈, 이재익, 김훈종 PD)과 이에 관련해 싸움이 붙었다. 김용민은 "SBS가 김성준건으로 시사전망대를 무책임하게 폐지해서 작가들이 실업자가 되었다"고 비판했는데, 이승훈 PD가 씨네타운에서 "무책임하게 하차했으면서 SBS를 비판한다"고 비난을 했다. 김용민은 자신이 운영하는 관훈 라이트 클럽에서 "정치쇼 작가는 자신의 하차로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자신이 전격 자진 하차한 것은 "SBS가 자신에게 이재명 실드를 못 치게 경고하면서도, 이재명을 까기 위해 이정렬을 정치쇼에 넣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21]


8. KBS 하차[편집]


기사

2020년 KBS 시사교양 거리의 만찬 시즌 2에 새로운 MC로 배우 신현준와 같이 발탁되었다. 그러나 예전에 2012년 여성막말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으면 특히 양희은이 트위터에서 거리의 만찬 제작진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게 된다. 결국 첫방송 전인 2월 6일에 본인이 자진 사퇴함으로써 일단락하였다. 후에 신현준의 매니저 갑질논란이 터지며 결과적으로 안한 게 다행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어서 2월 18일까지 그동안 맡고 있었던 라디오 프로인 김용민 라이브에서도 하차한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라디오 하차도 120% 본인의 의지"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마도 총선을 앞두고 편파적인 팟캐스트와 중립을 유지해야하는 공영방송을 함께 진행하면서 생길 수 있는 논란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한 듯 하다. 총선 후 복귀를 염두에 둔 건지 후임 진행자들 두지 않고 라이브 비대위라는 이름으로 주진우, 최경영, 최영일 등이 임시 진행했다. 2020년 5월 4일부터 주진우 기자가 정식 진행자가 되면서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KBS에서 하차할 때 본인의 의지라고 강조하기는 했으나, 이후의 맥락을 보면 실제로는 타의에 의해서인 듯으로 보이는데 주부 커뮤니티 82쿡에 하차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으나 게시글이 삭제되어 볼 수 없다. 다만 검색을 통해서 본 일부 내용에서 주진우가 언급된 걸로 봐서 하차 및 복귀무산 과정에 주진우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 주진우와의 갈등[편집]


2020년 4월 총선 직후부터 팟캐스트에서 "어떤 진보언론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게 누구인지 청취자들은 궁금해했으나 결과적으로 그 진보언론인은 10여년동안 행동을 함께 하던 주진우였다. 사실 11월 김용민이 공개적으로 주진우를 디스하고 나서야 김용민이 항상 우호적으로 옹호해왔던[22] 주진우를 연초부터는 언급하지 않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23] 아마 이 때쯤부터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상기하듯이 김용민의 지상파 하차에 주진우가 모종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24]

2020년 11월 말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무정지를 당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지자 주진우는 방송에서 윤석열 측의 잘못이 있다고 언급하는 한편 정의당 등 진보 단체에서도 너무 나간 것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주진우가 양정철과 윤석열을 함께 만났다거나 그를 두둔했다고 하면서 주진우를 윤석열 패밀리로 규정하며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친문 네티즌들 사이에서 주진우를 믿어보자는 측과 주진우가 사과(...)를 해야 한다는 측으로 내분이 일어나고 말았다.

주진우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해명을 했으며[25] 방송을 마치면서 김용민에게 전화받으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에 김용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재중 통화내역을 공개하며 주진우로부터 어떠한 연락이 온 적이 없음을 밝혔다. 주진우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어떠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뻔뻔하게 라디오 방송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2020년 12월 20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김용민과의 갈등으로 촉발된 나꼼수 멤버 분열에 대해 총선 이후에도 함께 고기를 먹는 사이라고 주장했지만, 다음날인 2020년 12월 21일 김용민은 자신의 프로그램(김용민 브리핑) 오프닝을 통해 주진우가 자신이 제기한 답변에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자신은 나꼼수 멤버가 아니라며 반박, 탈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링크도 지우는 등, 김어준과도 결별한 것으로 보인다.[26] 이동형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이동형 사단인 제보자X 및 손혜원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제보자X는 주진우를 윤석열사단이라고 폭로한 사람이며, 손혜원은 열린우리당 몰락에 김어준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김어준과 사이가 좋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에 문정부 지지층 사이에서도 김용민 의견에 동의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의견이 나뉘고 있는 상황이다. 김어준의 영향력이 큰 커뮤니티(딴지자게)에선 김용민의 행동에 적개심을 품는 부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세가 큰 커뮤니티 (클리앙) 같은 경우는 김용민을 옹호하는 의견이 대세다.

이를 두고 네티즌 21대 총선 전후로 벌어진 더불어시민당 지지파와 열린민주당 지지파의 대립이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27]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사건으로 김용민-주진우 지지자들끼리 대판 싸우는 것과 별개로 이동형-김용민같은 당사자들은 보수진영의 뉴스공장 폐지 서울시장 공약을 줄기차게 씹어대며 김어준을 감싸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스뵈이다 링크 하나 지웠다고 해서 완전히 김어준과 연을 끊었다고 볼 수 없다. 이동형도 중국 홀대,더 플랜K값 허구 등 김어준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던졌어도 지지자들이 서로 물고 뜯기 바뻤지 본인들은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애시당초 이들에겐 다른 것보다 민주당 정권 재창출이 중요하고, 많은 지지자들을 끌고 다니는 김어준은 친문 최고의 입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성향이 달라 지지자들끼린 치고박는다 해도 본인들끼린 목적은 같기에 서로 협력하는 관계지 적대적인 입장이 될 수 없다.

[1] 직함상 교수이긴 했지만 방학기간에 급료가 나오는 점을 빼면 시간강사와 비슷한 직무였다고 알려져 있다. 겸임교수란 원래 그런 것이며 정식 교수라고 보기는 어렵다.[2] 막말 파문외에도 종북이미지가 있는 통진당과의 연대나 임수경 비례대표 문제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구 동교동계 의원들의 정통민주당 창당을 막지 못한거나 야권연대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 한명숙 지도부의 무능한 대처 역시도 이에 포함시킨다.[3] 서울 성북, 강북, 도봉, 노원구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야권연대 후보였다.[4] 당시 김용민의 사퇴를 주장한 최고위원으로 확인되는 사람으론 이해찬(기사), 문재인(자서전인 1219 끝이 시작이다, 뉴스관장 시즌 1 참조), 이인영 등이 있다. 이 앙금과 후술할 자기 책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인지, 김용민은 훗날 201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이재명을 지지했고, 2018년에 있던 당대표 경선에서 이해찬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진 않았지만 언급이 없었으며, 김용민에게 총선패배책임을 언급한 김진표에겐 이참에 마음의 고향인 새누리당으로 가버리란 비난을 일삼았으며, 2019년에 있던 원내대표 경선에선 이인영이 자신을 내쫓았음을 대놓고 자신의 방송에서 말하기도 했다.[5] 할머니는 한명숙 당시 당대표를 언급하는 말이다.[6] 현재는 새로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7] 김용민은 2012년 총선에서 이노근과 맞대결을 벌였지만, 막말파문에 휘말려 패배한 적이 있다.[8] 하지만 김용민은 이미 4년 전에 탈당하였고, 야당과 더이상 직접적인 관계가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행동이라고 봐야지 야권과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9] 김용민이 MB시절인 2009년에 지상파에서 퇴출된 후, 얼마나 지상파를 복귀를 바랐는지는 2011년부터 진행한 나꼼수를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박근혜 탄핵 이후인 2017년부터 SBS의 아침 뉴스 브리핑을 진행했는데, 이후 정봉주가 진행하던 정치쇼를 물려받아 2018년부터 진행해 왔다. 김용민은 항상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시청률부진으로 하차하지 않도록, 청취율 조사에서 자신의 프로를 거명해 달라고 애청자들에게 부탁하곤 했다.[10] 본인의 트위터에 비속어를 사용해 이명박 비판을 했다는 점에서는 서기호 판사와 유사했지만, 이 때문에 재임용에서 잘린 서기호 변호사와는 달리, 이정렬의 직접적인 퇴직 사유는 층간소음문제를 이유로 남의 자동차 타이어에 빵구를 내고 차키 구멍에 본드칠을 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이정렬 참조. 때문에 바로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서기호와는 달리 이정렬의 변호사 개업이 몇 년 동안 불허된 것도 개인처신 문제 때문이다.[11] 때문에 김어준과 친한 김용민이 진행하는 김용민의 정치쇼에 출연하게 되자 그를 조롱하는 반응이 주를 이를 정도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소위 "문파"를 대리하는 이정렬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을 찍었다고 밝혔다는 것.[12] 당연히 이런 막말은 방통위로부터 징계 받을 수 있다.[13] 백성문 변호사는 현재 EBS에서 평일 오전 10시 법률시사전문 프로 <오천만의 변호인> 진행을 맡고있다.[14] 이정렬의 발언은 이렇다. "이제 와서 얘긴데 제가 잠깐 삼변시대 쉬었던 적 있잖아요. 그게...존경하는 진짜 우리...저를 법률평론계에 데뷔시켜 주신 우리 김용민 교수님께서...(김용민 : 하...아이고) 그때 이제...김어준 총수님한테 들으셨다고 하시면서 이게 혜경궁 아닌 거 같다고...그래서 제가 그때 그랬어요. 제가 뭔 얘기 했냐면 그때...뭐야 저...드루킹 그거 터진 게 혜경궁 이거 덮으려고 한 거 아니냐 그...제 개인적인 견해를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그 말씀하셔가지고 제가 아...그럼 제가 청취자를 상대로 잘못된 견해를 말씀드려서 제가 책임을 지겠다...그래서 방송을 하차한 거에요...하여튼...그러니까 이...이런 상황들을 보면 여러 가지...그래서 그 50대 남성(주석: 김용민-김어준이 주장하는 혜경궁 홍씨의 진짜 주인) 어디갔나...그게 너무 궁금한 거에요...그거 한번 기자님들도 그거 한번 파보셨으면 좋겠어요 진짜...그거 어디로 갔나...이거 범인 은닉 같은데..." 즉 김용민에게 "범인(혜경궁 김씨의 진짜 계정주)를 은닉한다"고 디스한 것이다.[15] 이정렬은 늘 "김용민 피디님" 또는 애칭인 "용디"라고 하다가 여기서 갑자기 김용민을 "교수님"이라고 호칭했는데, 이것을 반어법적 조롱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격분했을 수 있다(이정렬은 평소에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소위 "소년등과"를 하고 엘리트 법관 코스를 거쳐온 사람이라 법률문제에 관한 한 일반인을 얕잡아보는 태도를 보인 적이 좀 있다. 김용민도 "정봉주의 전국구" 초기 시절(2013년)부터 이정렬과 팟캐스트를 공동진행하는 등, 상당히 오래 어울렸기 때문에 이정렬 어법을 잘 알고, 그 의도를 바로 포착한 듯). "교수님"은 김용민이 지상파에서 퇴출된 후 겸임교수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꼼수에서는 자주 썼던 호칭이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정렬이 여기서 갑자기 이 호칭을 쓴 것. 이 부분에서 "교수님"이라고 호칭한 것은 김용민에게는 이정렬이 자신에 대해 '니가 법률 알면 얼마나 아냐?'고 말한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 김용민은 항상 자신이 비명문대를 나온 것에 대해 자학개그를 하곤 했지만, 다른 사람이(그것도 학벌로는 대한민국 최고인 이정렬이) 이를 조롱조로 이야기하는 것은 김용민을 상당히 격분시켰을 것이다.[16] 다만 일부 유튜버들이 직접 녹음해 파일화한 것은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17] 건강도 상당히 안 좋다고 한다. 자가운전자였으나 몸이 안 좋아서 기사를 고용했고, 라이브로 진행하는 프로를 봐도 몸이 안 좋아보인다.[18] 김용민 브리핑의 한 코너에서 유튜브 시청자가 "왜 삼변시대에 이정렬이 자꾸 나오냐"고 항의하자 "제작진이 넣어서 저는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19] 이정렬은 한때 동지였던 김어준-김용민과 2018년 여름에 결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이며, 김용민에게 한 것처럼, 김어준과 이동형에게도 비슷한 조롱이나 비아냥을 한 적이 있다. 김어준은 다스뵈이다나 뉴스공장에 이정렬을 구속영장 문제에 대한 해설자로 자주 부르곤 했는데, 이정렬이 이재명건에 깊숙히 개입한 이후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2018년 8월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어렵게 전화연결되어 김어준이 "오랜만에 반갑다. 그동안 전화연결도 잘 안되었는데..."라고 인사조의 말을 하자, "작전세력이 그렇죠"라고 비슷한 비아냥을 시전한바 있고(김어준은 이재명을 이용해 여권지지층을 분열시키려는 작전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이정렬은 '이재명을 디스하면 작전세력이냐'라는 것을 비아냥조로 말한것이다. 문제는 당시 전화 연결은 이재명과 무관한 일인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을 해설해달라는 목적으로 했는데, 이정렬은 그와 상관없는 이재명건으로 김어준에게 비아냥거린 것. 이후부터는 김어준도 이정렬을 부르지 않는다.), 이동형과의 YTN 인터뷰에서도 언쟁을 하다가 조롱을 해서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자세한 전개는 이정렬 항목 참고.[20] 그것도 비단 SBS만의 언급이 아니라 KBS에서도 자제를 부탁했다고 한다.[21] 그러나 김용민은 피디들 개개인에 들어서는 일체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인듯. 이재익 PD 역시 김용민과 가까운 혁명동지 정상근 기자에게 오해가 있었다며 김용민 PD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22] 주진우가 2019년 12월 MBC 스트레이트를 하차할때 누구보다도 옹호했던 인물이 김용민이었다.[23]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모친상 뒷이야기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언급할때도 주진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빈소 사진에서도 김용민과 주진우는 서로 다른곳을 쳐다보는 사진이 있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24] 반대로 김어준 총수나 정봉주 전 의원은 언급을 하긴 했다. 다만 페이스북 폭로 이후엔 언급이 되지는 않고 있다.[25] 해당 영상은 잠시 내렸다가 김용민의 나꼼수 탈퇴 선언 이후 다시 올라왔다.[26] 다만 김어준 평전 책 이미지는 지우지 않았는데 본인 저서라서 내리지 않은것으로 보인다.[27] 마침 시사타파TV의 이종원과 열린민주당의 손혜원 역시 갈라선 시점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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