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데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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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성과 인디 시절 (1986 – 1993)
2. 《Dookie》의 대성공 (1994 – 1996)
3. 대중적 침체기 (1997 – 2002)
4. 록 오페라 《American Idiot》과 제2의 전성기 (2003 – 2006)
5. 《21st Century Breakdown》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American Idiot" (2007 – 2010)
6. 3부작 앨범 《¡Uno!》, 《¡Dos!》, 《¡Tré!》 (2011 – 2014)
7.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그리고 《Revolution Radio》 (2015 – 2019)
8. 《Father of All...》와 HELLA MEGA 투어 (2019 – 현재)



1. 결성과 인디 시절 (1986 – 1993)[편집]


1986년, 당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던 밴드 '오퍼레이션 아이비(Operation Ivy)'.[1] [2]에서 영향을 받은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은 중학교 절친인 마이크 던트(Mike Dirnt)와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둘은 베이시스트 씬 휴즈(Sean Hughes)와 드러머 라주 펀자비(Raj Punjabi)와 함께 '스위트 칠드런(Sweet Children)'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을 시작한다.[3] 그러나 1년 뒤에는 드러머가 존 키프마이어(John Kiffmeyer)로 바뀌었고, 1988년에는 씬 휴즈가 떠나면서 마이크가 베이스 기타를 맡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린 데이는 현재와 같은 3인 구성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렇게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활동을 하던 그들은 당시 독립 레코드 회사 'Lookout!'의 사장이었던 래리 리버모어(Larry Livermore)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리고 1989년, 《1,000 Hours》라는 EP판[4]으로 데뷔하면서부터 밴드는 본격적으로 현재의 '그린 데이(Green Day)'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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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90년 초, 그린 데이는 밴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39/Smooth》를 내면서 첫 전국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해 연말 드러머 존 키프마이어가 대학교 진학문제 때문에 밴드활동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린 데이는 당시 '더 룩아웃츠(The Lookouts)' 밴드의 드러머였던 트레 쿨(Tré Cool)을 임시 드러머로 영입한다.[7] 이후 밴드는 1991년 두 번째 정규 앨범 《Kerplunk》를 발매,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투어 공연을 다닌다.


2. 《Dookie》의 대성공 (1994 – 1996)[편집]


앨범 《Kerplunk》가 미국에서만 5만 장이 팔리며 언더그라운드 등지에서 히트를 치자 메이저 레코드 회사들은 그린 데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4년 그린 데이는 메이저 레코드 회사들 중 'Reprise Records'와 계약을 맺게 된다.[8] 3주 간의 레코딩 작업 이후 1994년 2월 1일, 그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자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 《Dookie》가 발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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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싱글 "Longview"와 세 번째 싱글 "Basket Case", 네 번째 싱글 "When I Come Around"가 모두 빌보드 모던 락 트랙스(Billboard Mordern Rock Tracks) 차트[9]에서 1위를 차지하고, 앨범 자체는 빌보드 200에 2위를 기록하면서 그린 데이는 메이저 레이블 데뷔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95년에는 이 앨범으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MTV Video Music Awards)에서 Video of the Year를 포함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노미네이트 된 3개 부문 중 '최고의 얼터너티브 음악 앨범 상(Grammy Award for Best Alternative Music Album)'을 수상하는 등 각종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Dookie》는 1999년, 미국에서만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돌파하며 앨범 발매 5년만에 RIAA에서 Diamond 등급을 인증 받는다.[10] 이후 이 앨범은 단순한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밴드를 지금의 위치까지 갈 수 있게 한 명반으로 평가받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선정한 '최고의 200대 명반(The Definitive 200 Albums)'에서 50위[11]로 기록되는 등 록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앨범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린데이는 이러한 성공으로 인해 자신들의 본고장이었던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퇴출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밴드가 메이저 레이블 회사와 계약을 맺으며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펑크 순수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이 반감을 갖게 되어 '그린 데이는 더이상 펑크 밴드가 아니다'라고 비판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빌리 조 암스트롱은 이후 인터뷰에서 그때의 심정을 얘기하며 이렇게 받아쳤다 - "가끔은 우리가 완전히 (펑크 씬에서) 쓸모없게 되어버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단순히 거대한 밴드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더이상 펑크 록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지만, 결국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당신들이 우리로부터 펑크 록이라는 환경을 빼앗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우리 안의 '펑크 록' 자체를 부정하진 못할 거라고.'[12]"

여튼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린 데이는 1995년, 새로운 싱글 "J.A.R."[13]을 공개하며 또다시 빌보드 모던 락 트랙 차트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에는 4번째 정규 앨범 《Insomniac》을 발매한다. 이 앨범에는 멜로디가 중시되었던 전작보다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곡들이 수록되어있어 비평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Dookie》로 그린 데이를 알게 된 신생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전작 《Dookie》만큼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Insomniac》은 빌보드 200 차트에 2위를 기록한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만 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2x Platinum 등급을 인증받는다. 또 그린 데이는 이 앨범으로 1996년 미국 음악 시상식(American Music Awards)에서 '최고의 아티스트(Favorite Artist)', '최고의 하드 록 아티스트(Favorite Hard Rock Artist)', '최고의 얼터너티브 아티스트(Favorite Alternative Artist)'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 외에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그래미 어워드에서 노미네이트 된다.

그러나 밴드는 1996년 《Insomniac》의 월드 투어 도중에 남은 일정을 전부 캔슬한다. 《Dookie》 때부터 그간의 쉼없는 공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도저히 유럽 투어까지 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3. 대중적 침체기 (1997 – 2002)[편집]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그린 데이는 1997년 곧장 다음 앨범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레코딩 작업 직전에 밴드 구성원들은 전작들과는 좀 색다른 음악을 시도하고 싶다며 프로듀서 롭 카발로와 합의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같은 해 10월에 발매된 5번째 정규 앨범 《Nimrod》다. 이 앨범은 그린 데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팝 펑크 사운드를 서프 록, 스카 음악, 어쿠스틱 발라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서 밴드의 일탈적인 실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앨범으로 평가되었다.

그전까지의 그린 데이 음악과는 조금 달라서였는지 《Nimrod》는 빌보드 200 차트에 10위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뜻밖에도 두 번째 싱글 "Good Riddance (Time of Your Life)"가 졸업식 파티곡으로 선풍적인 인기[14]를 끌면서 빌보드 모던 락 트랙스 차트에 2위를 기록한다. 이 곡은 또 밴드에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비디오(Best Alternative Video)' 상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1997년 말부터 그린 데이는 《Nimrod》의 투어를 다니며 1998년 한 해를 보낸다. 기타리스트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가 투어멤버로 합류한 것도 이맘때다. 제이슨은 1999년부터는 아예 라이브 공연 시 리듬 기타 파트를 맡게 된다.

그리고 2000년, 그린 데이의 6번째 정규 앨범 《Warning》이 발매된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 "Minority"와 두 번째 싱글 "Warning"은 빌보드 모던 락 트랙스 차트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앨범 자체는 빌보드 200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평단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Warning》을 긍정적으로 본 평론가들은 이 앨범이 전반적으로 전작 《Nimrod》보다 음악적으로 좀 더 다채로운 색깔을 띄는 한 편, 그간의 앨범 전체를 관통하던 90년대 감성코드[15]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사회 비판'의 메세지를 넣기 시작했다며 극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을 아니꼽게(...) 본 일부 평단에서는 오히려 "푸념이나 늘어놓아도 잘 팔리는 밴드로부터 어떤 미친놈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코멘터리를 듣고 싶어할까?[16]"라면서 대차게 까기도 하였다.


[17]
이 앨범은 또 대중들의 호응도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 빌보드 차트에서의 준수한 성적과는 별개로 앨범 판매량이 100만 장에 그치는 미진한 기록을 내었다. 그 결과 《Warning》은 그린 데이 앨범 중 유일하게 RIAA에서 Gold 인증을 받은 앨범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밴드의 인기가 퇴조를 보이기 시작하자 이 당시 몇몇 평론가들은 그린 데이의 마력(mojo)이 다해가고 있다며 밴드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다음 해까지 《Warning》 투어를 다니던 그린 데이는 2001년 11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발매된 히트곡들만 모은 《International Superhits!》 편집 음반을 발매한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blink-182와 함께 합동공연 투어를 다닌다. 같은 해 7월에는 B-side곡과 커버 곡, 미발매 곡들을 담고 있는 또다른 편집 음반 《Shenanigans》를 발매한다. 《Shenanigans》에 수록된 B-side곡 중 하나인 "Espionage"는 이후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된다.


4. 록 오페라 《American Idiot》과 제2의 전성기 (2003 – 2006)[편집]


2003년 여름, 그린 데이는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새 앨범에 담을 20개의 곡 녹음을 끝내며 무사히 마스터 레코드를 완성한 밴드는 이 앨범에 잠정적으로 'Cigarettes and Valentines'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마스터 레코드가 스튜디오에서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밴드 멤버들은 도난당한 이 앨범을 재녹음하는 대신, 이 프로젝트를 없었던 걸로 치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로 한다.[18]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바로 2004년에 발매된 7번째 정규 앨범 《American Idio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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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앨범 형식의 오페라 《American Idiot》은 '교외(郊外)의 예수(Jesus of Suburbia)'로 불리는 한 미국인 청년의 여정을 노래한다. 앨범은 이 가상의 인물이 그 여정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허위와 선동에 침식당하는 현대 미국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American Idiot》은 또 조지 W. 부시의 멍청함을 대놓고 까면서 이라크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 앨범은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기 두 달 전에 발매되면서 '2000년대 최고의 프로테스트 아트(protest art) 앨범'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된다. 그린 데이는 이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도 인정받으면서 평단으로부터 '오늘날의 명작(modern day masterpiece)'을 내놨다는 극찬을 받는다.

이렇게 《American Idiot》은 발매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다. 뿐만아니라 27개 국가의 차트에 올라 그 중 19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전세계적으로 1500만 장[19]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200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앨범상(Album of the Year)'을 포함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최고의 록 앨범(Best Rock Album)'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또 그 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는 노미네이트 된 8개 부문 중 7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다. 그리고 2006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그린 데이는 앨범의 2번째 싱글 "Boulevard of Broken Dreams"로 '올해의 레코드상(Record of the Year)'을 수상하게 된다.

여튼 밴드는 2005년 내내 《American Idiot》 월드 투어를 돌며 150일 가까이 순방 공연을 한다. 여담이지만 이게 현재까지 밴드의 최장기 투어 기록이라고. 그 와중에 영국 밀튼 케인즈 지역의 국립 야외 공연장(Milton Keynes National Bowl)에서 진행한 2번의 콘서트[20]는 필름으로 레코딩 되는데, 이는 같은 해 11월, 실황 공연 CD/DVD 《Bullet in a Bible》로 발매된다.



이후에도 《American Idiot》은 'Kerrang! 매거진 선정 21세기 50대 명반(Kerrang! Top 50 albums of the 21st Century)'에서 '21세기 최고의 명반'으로 뽑히고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25위를 기록[21]하는 등 《Dookie》와 더불어 그린 데이의 명실상부한 최고 앨범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5. 《21st Century Breakdown》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American Idiot" (2007 – 2010)[편집]


2006년 1월부터 밴드는 또다시 새 앨범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2007년 10월까지 빌리 조는 45개의 곡을 작곡한 상태였지만, 그린 데이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Foxboro Hot Tubs'의 활동을 하느라 스튜디오 레코딩 작업이 미뤄진다.[22] 그러다가 2008년 10월, 그린 데이의 유튜브 공식계정을 통해 밴드 구성원들이 프로듀서 '부츠 비그(Butch Vig)'[23]와 함께 새 앨범을 레코딩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그리고 2009년 4월 드디어 8번째 정규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이 완성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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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 역시도 전작 《American Idiot》과 같은 콘셉트 앨범 형식의 오페라로,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그러나 《21st Century Breakdown》은 '특정 정부정책에 대한 문제'보다는 좀 더 '시대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빌리 조는 이 앨범을 "우리는 지금 권력자들이 정부 혹은 종교, 미디어 등 어떤 형태의 권한으로든 사람들을 자기 이익에 맞게 조종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이 앨범은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갖으면서도,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대한 스냅샷입니다."[25]라고 묘사하였다. 여튼 전작에 비해 주제는 조금 광범위해졌지만, 오페라적 음반구성을 훨씬 치밀하게 구성하면서 밴드의 음악적 완숙미를 보여준 앨범이 되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평론가 배순탁씨의 평을 잠시 빌리자면,

그 방향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4년 전, 한 편의 장대한 록 파노라마 < American Idiot >으로 지구촌을 강타했던 그린데이(Green Day)의 2009년 신보 < 21st Century Breakdown >은 아찔할 정도로 명백한 걸작이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펑크라는 장르의 극한을 실험 하는 동시에 이 탁월한 재능의 밴드를 더 이상 펑크라는 족쇄로 재단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위대한 예시로서 일제히 찬사를 받을 것이다. 링크

- izm 별 네개 반 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렇게 《21st Century Breakdown》은 2009년 5월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히트를 치며 25개 국가의 차트에서 1~4위를 기록한다. 이 중에서도 빌보드 200 차트, 유로피안 100대 앨범(the European Top 100 Albums) 차트와 UK 차트(UK Albums Chart)를 포함한 16개 차트[26]에서 1위를 차지하고 19개 국가에서 Gold나 Platinum 등급을 따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그린 데이의 앨범 차트 성적 중 가장 뛰어난 기록이다. 또 이 앨범은 201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쟁쟁한 선배 밴드 AC/DCU2를 제치고 그린 데이가 '최고의 록 앨범(Best Rock Album)'상을 거머쥐게 하는 쾌거를 안겨주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월마트에서는 이 앨범을 팔지 못하겠다고 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월마트 측에서 그린 데이에게 '우리는 Parental Advisory 스티커[27]가 붙어있는 앨범은 팔 수 없기 때문에 검열삭제 판을 추가 발매하지 않으면 이 앨범은 이곳에서 팔 수 없다'며 판매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밴드는 앨범의 그 어떤 가사도 바꿀 수 없다며 이러한 요구를 거절한다. 빌리 조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 해프닝에 대해 "우리의 레코드에는 그 어떠한 불순한 것도 담겨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아티스트들이 레코드를 팔고 싶다면 아티스트 스스로 검열삭제하길 바라더라구요. 우린 그래서 싫다고 했죠. 단 한 번도 그런 짓 따윈 하지 않았으니까. 꼭 무슨 1953년도로 돌아간 느낌이네요."[28]라고 덧붙인다.

여튼 그린 데이는 2009년 5월 초부터 3년 만의 라이브 공연을 다니며 7월부터 있을 월드 투어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밴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29]의 감독 마이클 마이어(Michael Mayer)와 제작진들에게서 앨범 《American Idiot》을 연극화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뮤지컬 "American Idiot"은 2009년 말 버클리 레퍼토리 극장(Berkeley Repertory Theatre)에서 처음 올려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010년 4월 20일에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게 된다. 그에 따라 그린 데이는 앨범 《American Idiot》에 수록되지 않았던 미발매곡 "When It's Time"을 공개한다.[30]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 "American Idiot"은 2010년 토니 어워드에서 '최고의 뮤지컬(Best Musical)' 부문을 포함하여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 중 2개 부문에서 상을 탄다. 그리고 2011년 4월 24일에 막을 내릴 때까지 총 422회 공연하는데, 가끔 빌리 조가 극 중의 St. Jimmy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2009년 7월부터 시작된 《21st Century Breakdown》 월드 투어는 2010년 초까지 계속된다. 그러다가 2차 투어 도중 밴드는 또 새로운 앨범을 내자는 계획을 세운다. 월드 투어를 다니며 틈틈이 레코딩한 데모 음반을 모아 발매하겠다는 것이 당초 계획[31]이었던 모양인데, 이후 이 계획은 수정되어서 투어 당시 찍어놓은 라이브 공연과 미발매곡 "Cigarettes and Valentines"를 수록한 CD/DVD[32] 《Awesome as Fuck》이 2011년 3월 발매되었다.


6. 3부작 앨범 《¡Uno!》, 《¡Dos!》, 《¡Tré!》 (2011 – 2014)[편집]


2012년 2월, 밴드는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하여 그 해 9월 21일에는 9번째 정규 앨범 《¡Uno!》를, 11월 9일에는 10번째 정규 앨범 《¡Dos!》, 그리고 12월 7일에는 《¡Tré!》를 발매한다. 이 3부작 앨범은 《American Idiot》과 《21st Century Breakdown》 같은 록 오페라나 콘셉트 앨범이 아니었지만 빌리 조의 말에 따르면 조금은 색다른 시도를 한 앨범이라고 한다. 특히 《¡Uno!》에는 팝 펑크에서 팝적인 요소를 더 부각한 곡들이, 《¡Dos!》에는 개러지 록의 색깔을 입힌 곡들이 수록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그동안 밴드 구성원들이 해온 사이드 프로젝트의 영향이 묻어나온 느낌을 준다. 여튼 이 3부작 앨범은 오랫동안 투어 멤버로 함께했던 기타리스트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를 4번째 구성원으로 정식 영입하며 레코딩한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33]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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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앨범 중 가장 먼저 나온 《¡Uno!》는 발매되기 무섭게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오르고 전세계 29개 국가 차트에서 1~8위를 기록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는다. 그러나 그 뒤 약 한 달 간격으로 차례대로 발매된 《¡Dos!》와 《¡Tré!》는 그린 데이의 앨범 커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일주일 판매량[34]이 10만 장을 넘지 못하는 등[35] 흥행에 실패한다.

그러나 3부작 앨범의 성적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된 건 빌리 조의 건강이었다. 2012년 9월 21일 iHeart Radio에서 주최한 콘서트에서의 사건[36]으로 문제가 대두되자 밴드의 매니저 펫 매그나렐라(Pat Magnarella)와 밴드 멤버들은 상의 끝에 빌리 조를 재활원에 보내기로 한다. 공연 전에 술을 마시는 습관이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심각해져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게다가 빌리 조는 만성적인 불면증[37]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이 증상이 더 심해지면서 처방받은 항불안제와 수면제를 술에 칵테일처럼(...) 섞어서 먹는걸 즐기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38] 마이크가 빌리 조에게 죽고 싶은 거냐고 윽박지를 정도였다니 심각하긴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빌리 조가 몸을 좀 추스리고 난 뒤 밴드는 2013년 3월부터 3부작 앨범 기념 "99 Revolutions" 투어를 돌기 시작한다. 그 해 6월 영국 에미레이트 스타디움(Emirates Stadium)에서 열리는 공연에서는 6만 개 이상의 표가 팔리며 해당 스타디움 관객수에 있어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한다.[39] 이렇게 투어를 도는 와중 4월에는 이 3부작 앨범을 만드는 작업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DVD "¡Cuatro!"가 발매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린 데이가 뮤지컬 "American Idiot" 제작에 참가한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Broadway Idiot"도 공개된다. 그러나 2014년 마이크의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밴드는 남은 투어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마이크 가족들을 돕기로 한다.

2014년 4월, 미발매곡 "State of Shock"와 3부작 앨범의 스튜디오 세션 버전을 레코딩한 편집 음반 《Demolicious》이 발매되었다.


7.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그리고 《Revolution Radio》 (2015 – 2019)[편집]


2014년 12월 15일, 그린 데이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결과가 발표된다. 이로써 밴드는 자격요건[40]이 갖춰지자마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18일, 후배 밴드 '폴 아웃 보이 (Fall Out Boy)'의 헌정연설과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American Idiot", "When I Come Around", "Basket Case"를 차례로 기념공연을 하였다.



2015년 12월 24일에는 밴드의 공식 계정을 통해 "Xmas Time of the Year"라는 크리스마스 송을 공개하는 팬서비스를 한다.

드디어 2016년 8월 11일, 새로운 앨범의 첫 번째 싱글 "Bang Bang"이 발매되었다. 이 곡은 빌보드 얼터너티브 송(Alternative Songs) 차트,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Mainstream Rock) 차트를 포함한 5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곧이어 9월 9일에는 타이틀 곡 "Revolution Radio"가, 9월 23일에는 "Still Breathing"이 공개되었다.[41] 앨범이 발매되기 약 일주일 전에 앨범 전체가 유출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2016년 10월 7일, 예정대로 12번째 정규 앨범 《Revolution Radio》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부터는 3부작 앨범 《¡Uno!》, 《¡Dos!》, 《¡Tré!》에서 합류했던 제이슨이 빠지면서, 밴드가 다시 예전의 트리오로 돌아왔다.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200 차트를 포함한 5개 국가 차트에서 1위로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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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데이는 9월 26일부터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를 시작한다. 11월 20일에는 미국 음악 시상식(American Music Awards)에서 공연을 했는데, "Bang Bang"을 부르던 도중 도널드 트럼프극우적 포퓰리즘에 반대하며 "No Trump! No KKK! No Fascist USA!"를 제창하여 화제가 되었다. 밴드가 《American Idiot》 때부터 보여준 정치적 행보로 짐작 가능하듯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그린 데이는 sns 계정과 공연을 통해 트럼프의 인종차별적·여성비하적 발언, 그리고 그의 성소수자 혐오를 지지하는 행보와 "MAKE AMERICA GREAT AGAIN"으로 축약되는 인기 영합적 정책 등을 계속 비판해왔다.[42] 그렇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때문에 극우 단체와 폭스 뉴스에서는 엄청 까이는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린 데이는 이번 미국 음악 시상식에서의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거라고 한 상황.

현재 월드투어 중인 2017년 11월 17일에 《Greatest Hits: God's Favorite Band》[43]편집 음반이 발매되었다. 1994년부터 2017년까지 발매된 히트곡들만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새로 선보인 싱글 "Back In the USA"가 수록되어있다.[44] "Back In the USA"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내용 자체가 맹목적인 국수주의를 조장하는 정치계와 그에 찬동하는 애국보수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풍유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팬들은 "American Idiot 2.0"라고까지 부르며 환호하고 있는 중. 게다가 뮤직비디오에서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의 메세지도 꼽사리 껴놨다. 아예 대놓고 상당히 수위높게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는 건 덤(...). 하지만 American Idiot 시절의 곡들처럼 마냥 까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더 성숙해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제목과 후렴구를 봐도 알 수 있듯,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이 나라는 우리들의 고향이자 우리가 가꾸어나가야할 터전'이라는 메세지가 주요 내용이기 때문.



그리고 2017년 11월 20일 기점으로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가 끝났다.


8. 《Father of All...》와 HELLA MEGA 투어 (2019 – 현재)[편집]


그러던 2019년 9월 10일, 갑자기 그린데이의 13집 정규 앨범 《Father of All Motherfuckers》가 나온다는 소식과 함께 동명의 타이틀 곡이 공개됐다. 그와 동시에 폴 아웃 보이위저와의 합동 월드 투어인 HELLA MEGA TOUR가 확정되었음이 발표되었는데, 각자 밴드의 솔로 공연과 합동 공연 2가지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거기다가 2020년 3월 22일에는 그린데이 단독 내한 공연까지 잡혔다. 2010년 내한 공연 이후 거의 10년만의 내한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모든 일정이 연기되었다.


참고로 2020년에 발매 예정인 13집 앨범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었다. 《Dookie》 시절부터 함께 했던 'Reprise Records'와 그동안 갈등이 많았던 모양인지 이번 13집 앨범으로 계약 조건을 충족시키는 대로 계약을 종료, 밴드 단독으로 내년에 곧장 다른 앨범을 내려고 한다는 후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그린데이의 공식적인 활동은 모두 연기되었으나 현재 활발한 사이드프로젝트[45] 활동을 하고 있다.

2021년 12월 19일부터 약 3개월 간 그린 데이 인스타그램에 '1972' 라는 제목의 앨범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영상들이 올라왔으며, 팬들은《Father of All Motherfuckers》의 유사 트롤링이 끝난 것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그 때 이후로는 새 앨범에 대한 암시나 게시글 등이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다.[46]

지금까지 올라온 '1972' 관련 게시물들의 곡들은 전체적으로 'American Idiot' 의 느낌과 비슷하다. 팬들은 '¡UNO!', '¡DOS!', '¡TRE!' 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전통적인 그린 데이 노래의 컴백으로 화합의 장(...)을 이루는 중이다.

갑자기 공식 채널에 Snooze라는 로고와 10월 24일에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있는 달력이 나오는 티저가 나오며 어느정도 복귀가 기정사실화 되었다. https://youtube.com/shorts/avIXSbM22CQ?si=TUqZhJwdEvYLHP7H

2023년 10월 24일, 새 앨범 소식과 함께 신곡 'The American Dream Is Killing Me'를 공개했다. 앨범의 제목은 'Saviors'로, 2024년 1월 19일 발매 예정이다.

[1] 같은 암스트롱 가문인 랜시드의 팀 암스트롱이 랜시드 결성전 이끌었던 지역 전설의 밴드.[2] 실제로 둘은 친척형제 사이이다 둘다 펑크락에 사촌은 Clash 영향을 받은것도 특징.[3] 이때는 마이크가 리드 기타를 맡았고 빌리 조는 주로 보컬을 하며 간혹 리듬 기타 파트를 맡았다.[4] Extended Play 레코드판. 싱글판보다는 더 많은 트랙을 담을 수 있지만 앨범이나 LP판보다는 재생시간이 짧다.[5] 사실 '스위트 칠드런'이라는 밴드명으로 계속하려고 했는데, '스위트 베이비(Sweet Baby)'라는 또다른 로컬밴드와 헷갈릴까봐 바꾼거라고 한다.[6] '그린 데이'라는 밴드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리화나와 관련된 이름이다. 그걸 피면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나...[7] 트레가 그린 데이의 정식 구성원으로 안착한 것은 조금 이후의 일이다.[8] 이후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Reprise Records'를 선택한 이유가 프로듀서 롭 카발로(Rob Cavallo)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나본 프로듀서 중 롭 카발로와 가장 말이 잘 통하고 죽이 맞았다고. 여튼 그래서인지 롭 카발로와의 만남 이후 그린 데이는 자기들이 프로듀싱한 앨범 《Warning》과 《Revolution Radio》, 프로듀서 부츠 비그(Butch Vig)와 작업한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을 제외한 모든 앨범을 그와 함께 프로듀스 하였다.[9] 이 차트는 이후 얼터너티브 송(Alternative Songs) 차트로 이름이 바뀐다.[10] 참고로 이 앨범의 판매고를 논할 때 보통, 전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는 결과가 많이 인용되는데, 이는 2000년에 집계된 기록으로 그나마 가장 정확하게 집계되었다고 여겨지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별 갱신 날짜 기준이 다르다보니 정확성이 떨어지지만, 2016년 기준 약 2500만 장으로 추정된다고. 확실한 것은 《Dookie》가 아직까지도 그린데이의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11] 참고로 《American Idiot》 역시도 200대 명반으로 선정되었는데, 《Dookie》보다 조금 낮은 61위에 기록되었다.[12] 해당 원문 : "Sometimes I think we've become totally redundant because we're this big band now; we've made a lot of money – we're not punk rock any more. But then I think about it and just say, 'You can take us out of a punk rock environment, but you can't take the punk rock out of us.'"[13] 마이크 던트의 어렸을적 친구 이름 'Jason Andrew Relva'의 약자. 이 곡 자체가 19살의 이른 나이에 죽은 친구를 기리며 쓴 곡이라고 한다.[14] 현재까지도 이 곡은 각종 매체에서 주관한 'Top 10 Prom Songs' 인기 투표에 거의 항상 껴있다(...).[15] 90년대 감성코드 중 하나는 '루저 의식'(?)이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네오 펑크는 주로 패배자의 신변잡기 혹은 권태로운 푸념을 주제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네오 펑크를 대표하던 밴드였던 그린 데이는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 《Dookie》 때부터 이미 안티들에게 (그들의 선배 클래쉬섹스 피스톨즈처럼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 정신 혹은 사회 비판 메시지가 없다는 이유로) '저게 무슨 펑크 락이냐'하고 대차게 까이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항목에도 추가로 후술되어있다.[16] #[17] 앨범 《Warning》의 두 번째 싱글이자 타이틀 곡 "Warning"은 모순어법과 그린 데이 특유의 조소로 권위에 대한 의문을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후 이 곡은 초기 그린 데이가 조금씩 사회비판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를 보여준 대표적인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18] 심지어 몇몇 곡들은 백업이 되어있던 상태였으며, 심지어 데모테이프는 온전히 존재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팬들은 이 앨범의 노래 중 몇몇 곡은 이후 앨범에 재활용 된게 아닌가 추측 하기도 한다.[19] 2010년 집계 기록.[20] 이 콘서트는 영국의 록 전문 매거진 Kerrang!에서 진행한 독자투표에서 '지상 최고의 쇼(The Best Show On Earth)'로 선정되기도 한다.[21] 참고로 여기엔 그린데이의 3번째 정규 앨범 《Dookie》도 포함되어 있는데, 《Dookie》는 193위로 《American Idiot》보다 조금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22] 이러한 이유 때문에 7번째 정규 앨범 《American Idiot》과 8번째 정규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 사이에는 거의 5년 가까이 빈 갭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게 그린 데이 정규 앨범 커리어의 최장 공백기라고 한다.[23] 밴드 '너바나(Nirvana)'의 명반 《Nevermind》를 프로듀싱한 사람이다.[24] 여담으로 이 앨범은 3년 동안 4개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만들었다고 한다.[25] 해당 원문 : "There is a whole lot of selfish manipulations going on around us, whether it be the government, religion, media or frankly any form of authority. 21st Century Breakdown is a snapshot of the era in which we live as we question and try to make sense of all these situations."[26] 국가로만 따지면 유럽 차트는 제외가 되므로 15개 국가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 된다.[27] '부모의 조언 필요' 스티커로,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가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음악 작품에 첨부하는 권고이다. 이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미성년자는 앨범 구매가 불가능하며, 부모의 동의 하에만 청취 가능하다.[28] 해당 원문 : There's nothing dirty about our record... They want artists to censor their records in order to be carried in there. We just said no. We've never done it before. You feel like you're in 1953 or something.[29] 이 뮤지컬은 2007년 토니 어워드에서 '최고의 뮤지컬(Best Musical)' 부문을 포함하여 8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30] 이 곡은 이미 뮤지컬에서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해당 곡은 공개된 후 같은해 6월에 iTunes에서 싱글로 발매된다.[31] 영국 록 전문 매거진 Kerrang!에서 인터뷰 당시 빌리 조가 "베를린스톡홀름에서도 몇몇 데모를 레코딩했어요. 글래스고 교외지역과 암스테르담에서도 조금 작업한게 있는데, 그 곡들을 빨리 발매하고 싶어서요. 조만간 새 앨범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32] CD/Blue-ray 형태로도 발매되었다.[33] 2016년에 정식 멤버에서 탈퇴하고 다시 투어 멤버로서 함께 다니게 되었다.[34] 발매 첫 일주일 동안 미국에서만 팔린 앨범 판매량을 말한다. 《¡Uno!》만해도 일주일만에 139,000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무난한 출발을 했지만 《¡Dos!》는 69,000장, 《¡Tré!》는 58,000장에 그쳤다. 참고로 《¡Dos!》와 《¡Tré!》도 그린 데이의 평균적인 기준으로 망했다는거지 일반적인 기준으로 망한게 아니다. 《¡Dos!》는 빌보드 200 차트 9위로 데뷔하였고, 《¡Tré!》의 경우에는 빌보드 200 차트 13위로 데뷔하였다.[35] 이 앨범들 이외에도 일주일 판매량 10만 장을 넘지 못한 앨범이 현재까지 두 개가 있는데, 정규 12집 Revolution Radio와 정규 13집 Father of All Motherfuckers로 각각 95,000장, 48,000장이 팔렸다.[36]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 콘서트 당일 그린 데이에게 배정된 45분의 공연시간을 주최측에서 갑자기 리한나어셔에게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해 사전 양해없이 20분 넘게 잘라버린 것.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빌리 조는 노래를 중단하고 욕을 섞어 항의하며 무대 위에서 악기를 부셔버린다. 충분히 항의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난폭한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날 밤에 빌리 조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그날의 거친 항의가 신경 쇠약으로 인한 해프닝이었단게 알려진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국내언론에선 공연시간이 통보없이 단축된 앞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린데이 보컬이 약물을 복용하고 공연 도중 난동을 부렸다'라는 식으로 오보하기도 하였다.[37] 이런 불면증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도 꽤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4번째 정규 앨범 《Insomniac》에 수록되어있는 곡 "Brain Stew"다. 게다가 앨범 제목도 Insomniac, 즉, '불면증 환자'라는 뜻이다.[38]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상하게 빌리 조가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도 수정 전까지는 이렇게 써져 있었는데, 빌리 조는 마약이 아니라 알코올과 처방알약(prescription pill) 중독이었다. 더 정확히 하자면 항불안제(anti-anxiety drugs)와 수면제(sleeping pills) 중독이었는데, 특히 항불안제는 중독성 있는 약이 많아 주의해서 복용해야한다. 보통 영어로 drug라고 하면 불법적인 마약을 먼저 떠올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튼 drug는 의약품이라는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 그러니 제발 약물 중독을 마약 중독과 헷갈리지 말자.[39] 해당 스타디움 관객수의 신기록이다. 그린 데이의 당일 최다 관객 기록은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엄(Wembley Stadium)'에서의 9만 명이다. 또 공연 최다 관객 기록은 이틀 동안 열린 'Milton Keynes National Bowl' 콘서트에서의 13만 5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 두 추정기록 모두 2010년 기준임. 갱신 요망.)[40] 첫 레코드 발매 후 25년이 지나야 헌액 대상자로 심사될 자격이 주어진다.[41] 두 번째 싱글로써 "Still Breathing"을 발매한 건 11월 12일이다.[42] 특히 빌리 조는 Kerrang! 매거진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는 등 맹비난을 해왔다.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영국에서의 일정 때문에 런던에 가있었는데, 이 날 소식을 듣고 하루 뒤 팬들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Instagram에 올리기도 하였다. 해당 링크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밴드 구성원들은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43] 이 앨범의 제목이 'God's Favorite Band'가 된 역사(?)가 재미있는데, 이 얘기는 팬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하다. 시작은 《American Idiot》 월드 투어 중 영국 밀튼 케인즈에서의 콘서트를 담은 실황공연 CD/DVD 《Bullet in a Bible》에 나온 장면으로, 그 당시 영국 날씨가 안 좋아서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콘서트 당일 날씨가 좋자 마이크가 "왜 하늘에는 구름이 없을까? (Why are there no clouds in the sky?)"라고 묻고 트레가 "신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밴드를 다시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지! (Because God wants to watch his favorite band again!)"라고 답하며 장난치는 모습이 담긴 장면이었다.(해당영상) 그런데 트레의 이 말을, 이번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 중에 밴드가 게스트로 출연한 스티븐 콜베어레이트 쇼에서 '신(God)'이 밴드를 소개한답시고 "...5번 그래미 수상의, 신이 가장 사랑하는 밴드 그린데이를 환영해주세요! (...Please welcome, five time Grammy winners, and God's favorite band - Green Day!)"라고 하면서 다시 사용하였고 (해당영상), 이걸 다시 밴드가 콜베어에게 고맙다며 앨범 이름으로 붙이면서(해당포스트) 어째 "신이 가장 사랑하는"이 그린데이를 위한 수식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건 그린데이 멤버들과 스티븐 콜베어가 서로 팬이고, 또 밴드가 콜베어 이전 데이비드 레터맨 시절의 레이트 쇼와도 친분이 깊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일종의 팬질(?)을 하다가 생긴 웃긴 사례인 셈이다.[44] 뮤직비디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메이킹 필름을 보면 여러나라의 국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45] 빌리 조도시 봉쇄 기간 동안 No Fun Mondays라는 프로젝트로 자기 집에서 혼자 단독 앨범까지 냈다. 한편 2020년 12월부터는 그린데이의 사이드밴드 'The Network'가 15년만에 다시 돌아왔다.[46] 밴드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있던 1972 글귀도 삭제되었고, 밴드 인스타그램에서 글귀가 삭제된 이후에도 유일하게 자신 바이오에 '1972’ 를 적어놓았던 마이크 던트까지 삭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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