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기(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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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권명서(權明瑞)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889년 5월 7일
충청도 전의현 동면 청송리
(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2]
사망
1933년 2월 1일[3]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592호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권혁기는 1889년 5월 7일 충청도 전의현 동면 청송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에서 아버지 권용집(權龍集, 1853 ~ 1895. 5. 29)과 어머니 광산 김씨(1863 ~ ?. 6. 11)[4] 사이의 3대 독자,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9일, 청송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를 벌이자고 권유하였고 이에 20여 명의 주민이 모이자, 이들을 인솔하여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모닥불을 피우고 대한국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었고, 그해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1933년 2월 1일 별세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으며, 당초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 선영에 안장되었던 유해는 2007년 10월 9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되었다.

3. 여담[편집]


  • 부인 김해 김씨(1906 ~ ?)[5]와의 사이에 4대 독자, 무녀독남인 권처달(權處達, 1926 ~ 1953. 6. 12)을 두었는데, 권처달은 6.25 전쟁대한민국 육군 제3보병사단 제23보병연대 소속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정전 협정을 한 달 가량 앞둔 1953년 6월 12일 동부전선 강원도 김화군 임남면에서 전사했다. 최종 계급은 이등중사(현 하사). 당초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되었다가, 이후 유해가 발굴되었는지 2016년 8월 2일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6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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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밀공파 신(藎)계 36세 혁(赫) 기(奇) 경(景) 영(英) 항렬.[2] 인근의 노장리와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권문용 전 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음력 1월 7일.[4] 김백현(金伯鉉)의 딸이다.[5] 김정재(金正載)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