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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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논쟁
2.1. 비판
2.1.1. 계급 배반의 실체
2.1.2. 나치당의 사례
2.2. 옹호
3. 연구사례
3.1.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2010년)
3.2. 서복경 박사의 연구들
3.3. 강원택 교수의 연구
4. 관련 어록
5. 관련 링크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나폴레옹이 스페인 국민에게 부여했던 헌법은 그들이 종전에 갖고 있던 것보다도 이성적인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국민들은 그 헌법을 자신에게 이질적이라고 하여 뿌리쳐 버렸으니, 왜냐하면 그들은 그만한 정도의 교양을 갖추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새끼의 줄임말.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 이후 디시인사이드 대선 갤러리에서 탄생한 이러한 내용의 신종 이론이다. 단어가 만들어진 곳을 고려할 때 이 단어가 세대 갈등의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다. 심하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렇게 된 건 다 국민이 멍청해서'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전문 용어로 '중우정치'와 '계급배반'이 있는데 이 단어의 인터넷 각색판으로 보면 되겠다.

사실 '국민 개새끼론'이라는 표현을 안 썼을 뿐 비슷한 담론은 이미 있었다. 예를 들면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민주자유당김영삼 후보에 맞선 민주당(1991년)김대중 후보는 농촌 유권자의 친 여당 성향을 비판하며 유권자의 책임을 지적했고, 그 발언에 수긍하지 않는 청중들의 반발을 적잖이 사기도 했다. 김대중은 "민주당은 13대 국회에서 수세·농지세 감면, 농어가 부채의 상환연기, 농·수·축협 조합장 직선제 도입 등 농민을 위해 일한 유일한 정당"이라면서 "3백64일 야당하다가 선거날에만 여당하는 농촌 유권자들은 이제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30여 년간의 군정 기간 중 가장 많은 차별과 천대를 받은 계층이 바로 여러분 농민들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뭐가 좋다고 선거 때만 되면 여당을 찍고 선거가 끝나면 후회를 하곤 합니까"라고 주장했다. 이미 제14대 대통령 선거 대선 때부터 계급 배반 투표의 논리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후보가 유세장서 유권자 비판 1992년 대선 김대중 후보 표 잘못찍어 제 발등도 찍었다, 민주당 유권자 책임강조

국개론의 기본 개념 자체는 민주주의의 단맛, 쓴맛을 다 맛 본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꾸준히 연구되고 있으므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절대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이성적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마지막 투표 기입을 결정하는 것은 원초적인 감성이다. 이것은 국가와 이념, 이해관계를 떠나 거의 대부분의 정치 단체가 자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굳이 정치학 논문을 찾아볼 필요 없이 대중들을 위해 쉽게 페이퍼백으로 나온 서적들도 많다.


2. 논쟁[편집]



2.1. 비판[편집]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인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1]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학자인 체하는 이들이 인민의 자격을 인정하든 말든 상관 없이,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 체제다.

E. E. 샤츠슈나이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의 책임은 도덕적 책무를 부과 받는 시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의사와 요구를 잘 대표해야 할 정당에 있다.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유념할 문제는, 민주주의에서는 그 누구도 시민들을 도덕적으로 압박할 특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최장집,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넘어서"[2]

,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보통 야당의 지지자들이 정권이나 집권 정당의 명백한 실책이나 결점이 보임에도[3] 여당의 지지율/득표율이 더 높게 나오는 현상을 볼 때 쓰인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훗날 다른사람의 똑같은 잘못을 비판할 수 없는 근거는 성립될 수 없다. 이것은 발생적 오류지만 대중들에게서는 내로남불로 비판을 받는다.

또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판단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그 판단 능력을 기초로 그들에게 주권을 주고 그들의 대리인을 투표로 뽑게 한다. 그들의 판단 능력을 싸잡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정상적인 현대[4]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과거의 제한적인 선거 제도를 사용한다면 가능하지만, 그 기준이 시에예스 이론에 따라 교양 있고 넉넉한 재산을 보유한 자라면 국개론을 부르짖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재산 기준에서 미달하므로 탈락하게 되며, 투표권은 소수의 상류층만이 정치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가 합리적일지는 의문스럽다. 상류층이 언제나 하류층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집단사고 등)

한편 특정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차원이 아닌, 자국 혐오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국개론을 외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애초에 상류층 하류층 할 거 없이 국민 전체를 싸잡으며 일부 집단의 잘못을 전체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극단주의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전제정 시절 왕에게 모든 책임을 묻다가 국민이 주권이 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이제 책임이 국민에게 있음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는 간접민주주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간접민주주의는 권한은 국민에게 있으나 책임은 지도자에게 짊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본인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정치에도 참여하는 제도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데 이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거의 없다.

2.1.1. 계급 배반의 실체[편집]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기존 복지 정책의 수혜를 받던 저소득층이 복지 중심적 정책보다 신자유주의에 더욱 지지를 보내는 모순적인 계급 배반은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 국가들에게서 대부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또한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여건이 충분한 고소득층도 이러한 정책에 지지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중산층이라 불리는 경제적 중간 계급은 약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고소득층의 경쟁력(개인의 노력이 아닌 자본과 사회적 위치)을 가지지 못했으며, 저소득층만큼의 복지 수혜도 받지 못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확보된 지점에서 이들은 안전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예를 들어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사고) 이들 계층은 순식간에 저소득층으로 몰락하게 된다. 고소득층으로의 계층이동 가능성은 줄어들고, 몰락할 위험성이 커지니(특히 현재와 같이 신자유주의가 유행하는 시대에서는) 중산층이 지지하는 정책은 복지 위주의 정책이 된다.

저소득층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는 일은 대개 서구 국가나 한국, 일본과 같이 저소득층의 복지가 충분히 갖춰진 국가에 한정된다. 반면 개발도상국에선 극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복지 정책을 우선순위로 두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국개론과 비슷한 계급 배반에 대한 논란이 민주주의와 국민소득이 바탕이 된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선에 있다. 개발도상국 혹은 부유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충분한 기반을 이루지 못하거나 부의 불균형이 심한 국가에서는 계급 배반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2.1.2. 나치당의 사례[편집]


나치당이 합법적인 선거로 당선되었다고 이것을 국개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약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나치당은 바이마르 시대 중반까진 극단 성향 정당이었으나 말기로 갈수록 주류 기득권층은 물론이고 사무직, 대학생, 소상공인, 주부, 농민들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여론 조작이 가능한 건 정권 획득 이후였다. 극우 타령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역시 나치당은 집권 전 극좌 노선도 표명했고 돌격대, 그레고어 슈트라서처럼 이념 성향의 좌파도 상당했다.

1919년 이전의 독일에 민주적 선거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독일이 황제의 통치를 받는 제국이기는 했지만 헌법도 있었고 선거를 통한 의회와 지방자치 정부를 갖추고 있었고 황제가 무조건적인 권력으로 통치하는 절대군주정 국가는 아니었다. 사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체를 현대적 민주정의 효시 중 하나로 보는 것은, 단순히 헌법 구조가 현대 헌법의 모범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반적인 운영 자체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운영은 19세기 이후의 경험 축적에 의한 것이다. 이렇듯 독일인들이 민주주의 절차 그 자체에 생소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1차 대전 이전까지 경험했던 민주주의 절차는 오늘날에 비하면 민주주의답지 못한 점이 많았다. 더군다나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 등으로 인해 독일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현대적 민주주의(선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되고 인민의 지지로서 성립하는 민주주의)를 영미권으로부터의 수입품이라 여겨 좋아하지 않았다. 독일인들이 민주주의를 거부했던 것이다. 또한 프란츠 폰 파펜의 무리한 연립내각 형성 시도 또한 히틀러가 총리, 더 나아가서는 총통이 되도록 유도하였으니 어찌 보면 선거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중우정치론을 비판하며, 20년 이상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 국가 중에서 민주주의가 전복된 사례는 우루과이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 외의 국가들의 경우에는 민주적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 민주주의 전복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도 오해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민주주의가 완전히 전복되었다고 해서 사회가 썩어버린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5] 가볍게 예를 들어 필리핀을 보면 엄연한 민주 국가이고 그 역사도 나름 길다. 하지만 필리핀이 정말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민주 국가는 아니다. 외부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절차에 의해서 선거가 실행되고 있지만 야당은 그저 추임새만 넣어주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고 이미 권력과 부를 쥔 여당이 모든 선거를 승리하고 있다. 그 여당은 국민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조차 없다.

이와 더불어 히틀러와 파시즘을 정신 나간 것으로 손쉽게 치부할 수 있는 현대의 관점을 투사하여 당시의 시민들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것도 좋은 접근 방식은 아니다. 당시 민주주의를 도입한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헌법만 잘 짜 놓으면 체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대공황 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매우 무기력하였으며, 따라서 파시즘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15년 현재의 시민 의식 상태에서도 프랑스에서 경제난과 파리 테러 등의 사태로 극우 정당의 지지가 매우 높아졌다. 과거보다도 훨씬 시민 의식이 높아졌음에도 나치 때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을 간과한 채 마치 오늘날과 같이 비교적 평등한 경쟁과 선거를 통해 나치가 집권한 것으로 생각하고,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면에서나, 정치학적 분석 면에서나 문제가 있다.

한편 나치당 집권을 국개론의 근거로 삼기에는 미약하다는 근거로, 나치당 집권 후 보수적 기득권층 독일 관료와 법조계의 지지를 얻어 투표 용지에 나치당만 아주 크게 표시하는 등의 행위 등 상류층이 편향적인 사회를 유도하도록 한 사실은 있다. 다만 이것은 현대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얼마든지 있는 일이고 인류 역사상 거의 항상 일어나왔던 일이기에 반론의 근거로 삼기에는 좀 미약한 부분이 많다.


2.2. 옹호[편집]


독재는 민주주의의 반의어인가. 국민의 다수가 ‘독재’의 지배방식을 지지한다면, 그 독재 체제는 독재인가 민주주의인가. 다수에 반하여 소수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6]

밑으로부터 ‘국민’ 다수의 동의 아래 소수를 타자화하고 억압하는 다수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

임지현[7]


국개론은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까지 비난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사람들이 면밀히 생각한 뒤 전체를 위해 찍는 것인가? 혹은 국가를 위한다는 애국심살피지도 않고 찍는가? 국개론의 대상은 후자를 칭한다.

국개론을 펼치는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이것이 국가를 부정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답답함을 경험해서 표출된 결과.

일제 강점기부터 전쟁, 독재, 최근의 민주화까지 여러 체제를 다 겪어본 현 시대의 한국 국민은 당연히 여러 체제에서 자라난 세대 간의 갈등 혹은 지역, 사상적인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다. 국개론이라 말하는 행태도 결국 구시대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아니꼽게 보거나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을 펼치는 이념적인 행태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결국 100년도 안된 신생 국가가 여러 체제를 한 번에 겪다 보니 나오는 진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감세 정책을 통해 얻는 혜택이 적은 '빈곤한 백인' 계층은 공화당을 더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이미지나 이념 공세로 인해 투표하는 경우가 많으며, 결국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져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이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공약과 정책보다 오히려 개인적 품성이나 비전의 호소력에 맞추어 투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역시 대공황을 자신의 정책 프로그램을 통해 극복한 것이 아니며, 리더십은 개인적 품성이나 비전을 관철시키는 능력을 통해 더 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이의 주장이다.

또한 비판 항목에 인용된 샤츠슈나이더와 최장집의 발언은 나쁜 의미의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최장집은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미국 대중들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발언하며 #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오바마 케어’를 폐기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트럼프가 극우이고 반흑인 인종주의자라고 비판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 정부의 출현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져온 세계적 격변을 정치적으로 완화하지 않고 부정적 측면을 더 악화시킨다면, 우리는 그것을 파시즘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라며 사실상 트럼프가 복지를 축소할 때 그때 가서야 파시즘이라고 불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직은 파시즘이라고 칭하기 부적절하다는 투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파시스트들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복지국가를 추구했다. 파시즘은 포퓰리즘에 기반하며 근현대의 극우(파시즘 포함)주의의 주 특징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반동적 견해를 가진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평범한' 다수자가 '평범하지 않은' 소수자를 억압하고 타자화한다면 그것은 다수의 폭정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폭정이 아닌 다원주의에 기반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시민들도 어느 정도 도덕적 의무감을 가져야 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폭주하기 쉬운 집단인 대중 및 국민 다수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정당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3. 연구사례[편집]


국개론에 대한 연구 사례가 아니라 국개론과 관련한 주장을 판단해볼 수 있는 연구 사례다.


3.1.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2010년)[편집]


민주노총 대변인을 5년간 지낸 손낙구는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와 2002년~2008년까지의 선거 통계를 기반으로 하여 2010년에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여기서는 부동산(재산)과 학력, 그리고 종교 간에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음을 통계적으로 추론하였으며, 부동산과 학력, 종교가 정치적 선택과 관련이 있음을 통계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적어도 서울/수도권에서는 정치적 선택과 선호가 계급성을 띄고 있으며, 실제 투표에서도 계급 지향적임을 증명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저서를 참고하기 바람.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손낙구"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며 "수도권편"이 1,695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으로 값이 100,000원(...) 내용은 통계 분석이 대부분이고 실제 연구 내용/주장/결론의 내용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읽어볼 사람은 가능하면 도서관을 이용하자. 최근 동별 수치를 제외하고 분석 결과와 거시적 통계만이 수록된 만 원대의 축약판이 나왔으니 이것을 구매하는 것도 괜찮다.


3.2. 서복경 박사의 연구들[편집]


서강대학교 서복경 박사는 위에서 소개된 손낙구의 문제 의식을 계승하여 부동산 및 소득과 투표 행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투표 불참 유권자 집단과 한국 정당체제"(2010) "‘강남3구 현상’,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2011) 의 두 논문에서 해당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결론은 손낙구의 그것과 거의 유사하다. 서복경 박사의 연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결론은, 소득이 낮은 계층은 보수적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투표에서 이탈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에서 나온 연구 보고서 역시 동일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계급 배반 투표가 아니라, 계급에 따른 차등적 대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3.3. 강원택 교수의 연구[편집]


서울대학교 강원택 교수는 "한국 선거에서의 '계급 배반 투표'와 사회 계층"(2013)에서 '계급 배반적 투표'의 원인을 저소득층 유권자 가운데 60대 이상의 고령층 유권자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찾았다. 고령층의 강한 보수적 투표 경향이 저소득층 유권자의 ‘계급 배반적’ 투표란 착시 현상을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고령층 유권자를 제외한 분석에서는 ‘계급 배반적’ 속성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파적 지지나 이념에 있어서 소득 계층별 차이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4. 관련 어록[편집]


이탈리아인들이 자기들에 맞지도 않는 민주주의 놀이를 하다가 나라를 망쳤다.

윈스턴 처칠, 선거를 없애버린 무솔리니를 고평가하며 그 이전의 혼란상이 민주주의 때문이라 평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코끼리[8]

는 생각하지 마 :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Don’t think of an elephant!: know your values and frame the debate : the essential guide for progressives) 中


"Do I think we should leave? I don't think we should be given a vote. I see politicians on TV every night telling us that this is a fxxx momentous decision that could fxxx change Britain forever and blah, blah, blah. It's like, okay, why don't you fxxx do what we pay you to do which is run the fxxx country and make your fxxx mind up? What are you asking the people for? 99 percent of the people are thick as pig shit."

"우리가 탈퇴해야 하냐고? 애초에 투표를 하지 말았어야지.[9]

TV에 매일 밤 정치인들이 나와서는 마치 이게 무슨 X나게 큰일이고, 영국을 X나게 많이 바꿔 놓을 것처럼 지껄이는데, 좋아. 알겠는데, 우리가 너희들한테 X같은 나라 일을 X나게 잘 처리하라고 돈을 주는 거라고. 왜 사람들한테 그걸 물어봐? 99%의 사람들은 돼지 똥 만큼이나 멍청한데.

노엘 갤러거, 2016년 브렉시트 투표 결과 EU 탈퇴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은 것을 보고. 출처번역본초월번역


지금 이 순간, 내 입을 막으려고 누군가 전화통에 고함을 질러대고 곧 총 든 사람들이 오겠죠.

왜일까요? 정부가 대화 대신 곤봉을 휘둘러도 언어의 강력한 힘이 의미 전달을 넘어서 들으려 하는 자에게 진실을 전해서죠.

그 진실이란 이 나라가 단단히 잘못됐단 겁니다.

잔학함, 부정, 편협함, 탄압이 만연하고 한때는 자유로운 비판과 사고, 의사 표현이 가능했지만 이젠 온갖 감시 속에 침묵을 강요 당하죠.

어쩌다 이렇게 됐죠? 누구의 잘못입니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고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브이 포 벤데타브이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거 뭐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이강희. 영화 내부자들에서


파일:der_untergang.png
영화 몰락에서 나치 정권의 폭주로 독일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 "나치 정권을 뽑은 건 너희들이잖아?"라며 나치 정권의 책임은 독일 국민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나치 선전부 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

"민중들은 고생하길 싫어했거든."

"고생하길 싫어해?"

"그렇고 말고. 스스로 노력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디서 뚝 떨어진 초인이나 성자가 자기들 고생을 전부 혼자 짊어져 주기를 기다렸던 거지. 루돌프는 그걸 이용한 거야. 너도 잘 들어둬. 독재자는 독재자를 만들어낸 쪽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잠자코 지켜봤다면 공범이야.(후략)"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54~55


5. 관련 링크[편집]


자발적 복종 - 라 보에티
지지율 50%의 비밀과 원숭이
국개론 총정리
국개론(국민이 개XX다 론)
지도로 보는 세계통계 - 언론지수-정치지수-부패지수
후보가 유세장서 유권자 비판 1992년 대선 김대중후보
이젠 국민을 넘어 민족까지 까기에 이르렀다. 민개론


6. 관련 문서[편집]


예전엔 입진보들의 국개론을 비판했지만, 2016년 이후론 이들 또한 국개론에 젖어있으며 자국 혐오일빠 성향을 아무렇지 않게 보이고 있다.
이 문서 맨 위에 인용된 노엘 갤러거의 발언을 비롯해, 국개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여러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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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성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는데, "율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율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도행전의 구절이 그것이다. 다만 성경의 그 구절의 경우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사례처럼 율법이 사람을 옥죄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경계하고 있다.[2] 『경제와 사회』 2010년 봄호(통권 85호)에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하나의 논평"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이다.[3] 물론 어디까지나 야당 지지자들이 볼 때의 실책이나 결점을 의미하는 것이다.[4] 근대 민주주의에서는 참정권이 일정한 학력과 재산 이상을 지닌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기준은 일반 대중으로의 참정권 확대 여부다.[5] 물론 전복해서 새로 새운 사회의 지배층이 고인물이 되어버리면 빠른 시간 내에 썩을 가능성이 높다.[6] 이 표현 자체는 플라톤이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중우정치라 비판하고 철인정치를 주장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즉, 중우정치 문제와 국개론은 고대부터 끊임없이 논의되어오던 사례다.[7] 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8] 미국 공화당의 상징이다.[9] "애초에 투표권이 주어졌으면 안 돼."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상 더 어울린다. 글의 내용을 마저 읽어보면 알겠지만, 어차피 대중이 멍청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투표권을 줘봤자 좋을 게 없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