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라오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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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済(くだら(おう(じん(じゃ
구다라오 신사 | Kudarao Shrine




소재지
오사카부 히라카타시 나카미야니시노초 1-68
(大阪府枚方市中宮西之町1-68)
제신(祭神)
백제국왕(百済国王)
우두천왕(牛頭天王)
사격(社格)
구 촌사(村社)
창건
불명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찾아가는 길



1. 개요[편집]


파일:kudarao01.jpg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에 있는 신사.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나라 시대에 활동하던 백제왕(百済王, 구다라노코니키시) 가문의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상세[편집]


백제왕경복(百済王敬福)이 죽었다. 그 선조는 백제국 의자왕으로부터 나왔다…(중략) 덴표 연간(729∼748)에 벼슬이 종5위상 무쓰노카미(陸奧守)에 이르렀다. 이 때 쇼무 덴노도다이지 대불을 만드는 데 주조를 끝낼 즈음에 칠할 금이 부족하였다. 이에 무쓰국(陸奧國)에서 역마로 달려와 오다군(小田郡)에서 나온 황금 900냥을 바쳤다.[1]

우리나라에서 황금은 이 때부터 나오기 시작하였다. 쇼무 덴노가 매우 가상히 여겨 종3위를 주고 궁내경(宮内卿)[2]으로 옮겼다가 얼마 되지 않아 가와치노카미(河內守)를 더하였다.

속일본기 권27 쇼토쿠 덴노 덴표진고 2년(766) 6월 28일#

백제 왕족인 부여선광이 처음으로 백제왕(百済王, 구다라노코니키시)의 씨족명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를 모셨을 가능성이 크다. 부여선광 가문은 원래 셋쓰국(摂津国) 백제군(百済郡)[3]에 모여 살고 있었다. 749년 그의 후손인 백제왕경복(百済王敬福)이 궁내경과 가와치국의 책임자인 가와치노카미(河内守)에 임명되면서 그의 일족이 현재 구다라오 신사의 소재지인 가와치국(河内国) 가타노군(交野郡)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파일:kudaraji01.jpg
구다라지(百済寺)의 가람배치. 왼쪽 아래에 구다라오 신사가 있다.
신사 바로 옆에는 백제왕 가문의 씨사(氏寺)인 구다라지(百済寺) 터가 있다.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1932년, 1965년, 2005년에 발굴이 있었으며, 2015년부터 재정비 공사에 들어갔다. 발굴 조사 결과 사방 140m 가량의 대지에 남문, 중문, 금당, 강당, 식당, 북문이 일직선상에 늘어서 있었다. 2탑 1금당의 형식은 나라에 있는 야쿠시지(薬師寺)와 같은데, 중문에서부터 이어진 회랑이 탑을 둘러싸고 금당까지 닿아 있는 것은 경주 감은사지와 닮았다. 유물은 대형 전불(塼仏)과 금동제장신구 등이 출토되어 상당한 위세를 가진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 구다라지는 신사와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족이 쇠퇴하며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지 않았다. 속일본기에는 783년 간무 덴노가 백제사에 행차해 세입을 내리고 백제왕 일족에게 관위를 수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왕 가문은 헤이안 초기까지는 황실의 외척이자 상위 귀족으로 권세를 누렸지만 이후 사서에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워질 정도로 쇠퇴했다. 백제왕 가문의 후손을 자처하는 미츠마츠씨의 가계도에는 백제왕경복의 4대손 풍준(豊俊)이 성을 미츠마츠(三松)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도 미츠마츠 가문이 대를 이어 제사를 지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토지 조사 때에 이 지역의 땅을 몰수당하고 인근의 오가이토(大垣内)[4]로 이주했다. 오가이토에도 작은 구다라오 신사가 있는데, 1650년에 미츠마츠씨의 저택 내에 지은 사당이었다고 한다. 조상신의 사당으로서의 입지를 잃어버린 신사의 성격은 이 시기에 인근 거주민들이 받드는 향토 신사로 변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사 건물은 대부분 에도 시대 이후 지어진 것들이다. 신사 본전은 가스가타이샤[5]에서 이축한 것으로, 난간의 명문에 분세이(文政) 10년(1827년)이라는 글귀가 있어 1805년에 지은 것을 1827년에 옮겨온 것으로 추정한다.


3. 여담[편집]


  • 신사가 있는 히라카타시에서는 히라카타・백제 페스티벌(枚方・百済フェスティバル)이 해마다 열렸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이후에는 열리지 않은 듯.


4. 찾아가는 길[편집]


케이한 미야노사카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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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다군은 오늘날의 미야기현 도다군(遠田郡) 동부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금광으로, 코가네야마 산금유적(黄金山産金遺跡)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2] 궁내성의 우두머리.[3] 현재의 오사카시 덴노지구이쿠노구 일부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4] 히라타카시 오가이토초(大垣内町).[5] 가스가타이샤에는 신전 건물을 20년마다 다시 짓는 시키넨조타이(式年造替) 전통이 있다. 교체하게 된 예전 건물은 인근의 신사에 내려 주어 옮겨 짓게 하는데, 이것을 가스가우츠시(春日移し)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