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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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의공왕의 왕비
광화부인 | 光和夫人


신라 신무왕의 왕녀

출생
823년(헌덕왕 15) 이후[1] 또는
830년(흥덕왕 5) 이전[2]
사망
865년(경문왕 5) 이전[3]
본관
경주 박씨[4]
부왕
신무왕
모후
정계부인
형제자매
형제 - 문성왕, 김영광(金英光), 김흥광(金興光), 김익광(金益光)
부군
의공왕
자녀
슬하 2남 1녀
장남 - 경문왕
차남 - 혜성왕
딸 - 단의장옹주

광화부인(光和夫人)
이칭
광의부인(光義夫人),
강화부인(康和夫人)[5]
시호
광의왕태후(光懿王太后)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신라 하대의 공주이자 추존 왕후. 제 45대 신무왕의 딸이자 제 46대 문성왕의 누이. 제 47대 헌안왕에게는 조카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희강왕의 아들 김계명과 혼인했는데, 희강왕은 그녀의 아버지 신무왕과 사촌이지만 흥덕왕 사후의 왕위 쟁탈전으로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특이한 점이다. 김계명과의 사이에서 경문왕, 김위홍, 김단의 세 자식을 두었다.

생전에는 공주였지만 경문왕 6년(서기 866년) 왕태후로 추봉되었다. 890년 차남 김위홍을 기리는 혜성대왕원당이 지어지는데, 강화부인이 그의 아내일 것이라고 후대에 추측된 것을 보면 혜성대왕과 함께 신위가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인 김계명과 합장하지 않은 이유는 불명.
[1] 아버지 신무왕의 외조부 김충공의 출생년도 778년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2] 광화부인의 장남 경문왕의 출생년도 846년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3] 866년(경문왕 6년) 1월에 그녀가 ‘광의왕태후’로 추존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나온 경문왕의 혼인설화를 보면 최소 860년(헌안왕 4년)까진 생존해 있었던 듯 하다.[4] 신무왕의 딸이지만 박씨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단순 오기이거나 어머니의 성씨를 따랐을 수 있다.[5] <해인사전권(海印寺田券)>에 따르면, “혜성대왕—즉 이는 혜성을 운한다—은, 그가 위홍임에 의심이 없으며, 그리고 강화부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필시 위홍의 아내일 것이다.(惠成大王, 則此云惠成者, 其爲魏弘無疑, 而康和夫人者, 亦必弘之妻也.)”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제의 무왕이 사료에 따라 무강왕 또는 무광왕으로 나타나는 점을 보면, 강화부인은 광화부인의 오기이며 후대에 모자관계가 부부관계로 혼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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