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라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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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라흐
Gerlach[DVD판]/Gerlache[LD판] ・ ゲルラッハ

파일:Lichtenlade 1.jpg
파일:Gelrach_DNT.png
OVA(우측)
DNT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SE ? ~
가족 관계
불명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책
은하제국 부재상
최종 작위
자작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OVA 야나미 조지
파일:일본 국기.svg DNT 하시 타카야[1]


1. 개요[편집]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을지서적판에선 겔라하, 서울문화사판에서는 게를라흐로 번역됐다가 이타카판에서 겔라흐로 번역됐다.

은하제국의 귀족이자 관료로 작위는 자작. 우주력 796년 기준 재무상서를 맡고 있었으며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의 심복이었다. 귀족 출신 관료로 정략과 행정에 능통했지만 시각이 제국의 제정에만 제한되어, 제국이 쇠약해져 감을 탄식했지만 골덴바움 왕조가 어느 '금발 애송이'에 의해 무너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 작중 행적[편집]



2.1. 별을 부수는 자[편집]


시계열상 첫 등장은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제3차 티아마트 회전 직후 리히텐라데 후작과의 회동 자리에서 회전 직후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가 투덜대면서도 라인하르트의 대장 승진에 반대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저 황제의 진노를 사지 않기 위해 한 일로 치부했다. 그러나 리히텐라데는 더 이상 궁정에 파벌이 늘어나는 것은 원치 않으며, 라인하르트는 일개 군인이지만 내년에는 로엔그람 백작가의 당주가 되니 지위를 경시할 수 없다고 라인하르트를 경계했다. 그러자 겔라흐는 갑자기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생각이 미친 이유를 묻자 리히텐라데는 잠시 망설이더니 'B 부인이 G 부인을 해하려 한다'는 쪽지를 보여주었다. 겔라흐는 그 쪽지를 보고 단번에 B 부인이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G 부인이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가리킴을 알아보았다.

쪽지의 뜻을 알아차린 겔라흐는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난감한 분이라고 씁쓸해하며 후작부인이 10년 전에 낳은 아들이 장성했다면 후작부인이 황후로 책봉되었을 테니 포기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바로 리히텐라데가 입을 막으면서 더 이상 말하지는 못했다. 이후 열탕에 손을 집어넣었다가는 한순간의 아픔으로 끝나지 않으니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고 의견을 내더니 "황태자 전하가 건재했다면..."라고 탄식했다.


2.2. 카스트로프 동란 ~ 제국령 침공작전[편집]


이후 15년간 재무상서로 재임하며 부를 쌓은 오이겐 폰 카스트로프 공작이 사망하자 그가 횡령한 공금과 받은 뇌물을 국고로 회수하기 위해 재무성 조사관을 파견했으나 아들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는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여 유각견을 풀어 조사관을 쫓아냈다. 두 차례 파견된 조사관이 모두 쫓겨나자, 겔라흐는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막시밀리안을 궁정으로 호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은하제국자작 작위를 가진 인물로 재무상서의 위치에 있었다. 카스트로프 동란 당시 재무성 공무원들이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가 풀어놓은 유각견에게 모욕당하자 강력한 항의와 함께 카스트로프의 오딘 소환을 요구하였다. 뒤늦게 공포에 질린 막시밀리안을 반란을 일으키고 선전했으나 결국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소장이 이끄는 제국군에게 진압당했다. 막시밀리안이 사망하자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의 저택으로 찾아가 후작에게 카스트로프 일가로부터 5천억 제국마르크에 달하는 재산을 환수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리히텐라데는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이 보고한 자유행성동맹제국령 침공 계획을 화제로 꺼냈다. 겔라흐는 크게 놀랐으나, 리히텐라데는 반란군을 격파하여 황실의 위엄을 살릴 기회로 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통치를 풀어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겔라흐는 너무 풀어주면 평민 놈들은 기어오른다며 '급진파'들의 지하문서를 보았는데 "인간은 의무보다 먼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등 헛소리만 적어놓았다며 사상범을 특별사면했다가는 급진파들이 활개칠지도 모른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리히텐라데가 그렇다고 너무 조이면 통치를 하지 못하고 다독이자 겔라흐는 화제를 돌려 정보의 출처가 페잔 자치령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냐고 묻자 리히텐라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겔라흐는 혀를 차더니 반란군보다 도저히 꿍꿍이를 알 수 없는 페잔이 제국에 더 위협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의견에 동감한 리히텐라데가 누구를 보낼지 고민하자 겔라흐는 바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을 추천했다. 리히텐라데가 라인하르트가 이긴다면 자신들로는 라인하르트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지면 제국령 한복판에서 사기충천한 3천만 대군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비관적인 의견을 내자 겔라흐는 이에 반론을 제기했다. 라인하르트는 절대 무능한 자가 아니니 만약 지더라도 반란군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며, 반란군은 본거지와 멀고 지리에 익숙치 않은 곳에서 싸워야 하니 제국은 지친 반란군을 지구전으로 끌고 가 자진 철수를 유도한 뒤 그 뒤를 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이긴다 쳐도 벼락출세한 금발 애송이는 언제든지 요리할 수 있으니, 필요할 때까지 놈의 재능을 이용하다가 반란군이 사라질 때쯤 숙청하면 된다고 냉랭하게 덧붙였다.

이후 제국령 침공작전이 동맹군의 대패로 끝나고 리히텐라데 후작과 로엔그람 백작이 연합하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자, 겔라흐도 부재상으로 승격되었다.


2.3. 립슈타트 전역 ~ 황제 납치 사건[편집]


립슈타트 전역 동안 별다른 활약이 없었으나, 상관인 리히텐라데 공작이 라인하르트 원수부 제독들의 쿠데타로 숙청당하자 겔라흐도 숙청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겔라흐는 라인하르트가 권력을 잡자 스스로 지위를 반납하고 근신하여 숙청을 피했다. 근신한 겔라흐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의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우주력 798년 7월, 니콜라스 볼텍을 통해 황제 납치 사건 계획이 라인하르트에 전해지자 그는 겔라흐를 황제 납치 사건의 공모자로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사실 라인하르트나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모두 겔라흐가 여기에 연루됐거나 주동적으로 나섰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몸이라 사건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설령 겔라흐가 이 사건에 가담했다면 못해도 추후 모습을 드러낼 황제옹립파의 수반자리를 약속받아야 될 정도로 거물급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즉 황제를 납치하는 세력에서 무리하게 끌어들일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인하르트는 "아마 겔라흐도 그 죄목이라면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라 말하며 황제 납치 공모죄를 뒤집어 씌웠다. 이유는 간단한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은 라인하르트를 따르지 않는 구체제 귀족들 중에서는 가장 거물이었으므로 혐의를 덮어씌우기에는 제일 적당한 인물이었다.

이후 겔라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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