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후시미노미야 요리히토 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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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東伏見宮依仁親王
1867년 10월 16일 ~ 1922년 6월 27일, 아명은 사다노미야(定宮).
일본의 황족.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17남.
2. 구황족 가계도[편집]
3. 생애[편집]
구니이에 친왕의 막내아들이다.(진짜 막내는 따로 있다.) 구니이에 친왕이 65세(!) 때 낳은 아들이라, 장남인 아키라 친왕과는 그 당시 결혼 나이를 보면 거의 할아버지와 손자 뻘(!!) 차이가 난다. 그래서 형 아키라 친왕의 양자(!!!)가 된다.[1]
하지만 배다른 형이자 양부인 아키히토 친왕과의 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키히토의 후사는 신적강하한 다른 조카 데루히사(輝久)가 잇고, 요리히토는 고마쓰노미야의 옛 이름인 히가시후시미노미야라는 이름으로 새 궁가를 창설하는 식으로 갈라섰다.
해군의 길을 걸었으며, 하와이 왕녀와의 혼담으로 유명하다.
일본을 방문한 칼라카우아 왕, 가운데가 그이고,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고마쓰노미야 아키히토(小松宮 彰仁)친왕.
5살의 카이울라니 공주, 13세의 요리히토 친왕.
하와이 왕인 칼라카우아 왕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의 외교를 중시해 하와이에 일본인의 이민을 장려하고 1885년 외국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메이지 천황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조카인 카이울라니 공주를 요리히토에게 시집보내는 것인데 괜히 이 제안을 받았다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 메이지 덴노의 거절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1]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또 다른 형 아키히토 친왕이 요리히토를 입양하려 했다가 형님(아키라 친왕)한테 퇴짜를 먹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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