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훈(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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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선수. 경희대학교 1년 선배인 김우람의 뒤를 이어 제2의 2군 신화를 꿈꿔왔지만 오랜 기간 커리어를 쌓아가지 못했다.
2. 아마추어 시절[편집]
어렸을 때부터 축구, 야구, 농구 등 모든 스포츠 종목은 가리지 않고 좋아했었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공 튀기는 소리에 궁금해서 들어간 집 근처 학교 체육관에서 농구 코치를 만난 이후부터 인연을 맺고 농구를 선택하였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소극적이었던 플레이 때문에 최부영 감독으로부터 요구받았던 플레이로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 일을 도맡아왔다. 그럼에도 제46회 전국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에서 이정현의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작년 대회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며 5경기 전승을 달성했고, 2011 KB국민은행 대학농구리그에서는 통합우승에도 기여하며 경희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3. 선수 시절[편집]
2012년 2군 드래프트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 지명되었으며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팀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허재 감독으로부터 1군에서 출전할 기회를 보장받은 덕에 47경기를 뛰어 평균 4.5득점을 기록했다.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은희석, 김성철의 은퇴와 이정현의 군 입대로 인하여 부족한 외곽 자원을 늘리기 위해 안양 KGC인삼공사로 사인 앤 트레이드되었지만 두터운 선수층에 밀리면서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군에 입대해 육군사관학교 조교로 가길 원했지만 부산 kt와 울산 모비스로부터 영입이 들어왔는데 경기에 많이 출전해 자신이 없던 수비를 더 배우고 발전하라는 조동현 감독의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부산 kt[4] 를 선택했으나 손가락 부상 등으로 인해 29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타구단으로부터 영입이 오지 않았다가 고민 끝에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한 울산 모비스에서도 출전기회가 많지 않았으며 시즌 종료 후 그가 원했던 상무에 입대해 육군사관학교의 조교를 맡았다. 2019-2020 시즌 팀에 복귀했음에도 1군에서의 활동이 이전보다 적었고 결국 그대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후 2년간 농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3x3 선수로 KXO리그의 홍천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
4. 여담[편집]
- 아버지가 중학교 때 농구선수였다. 힘들다고 반대했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싶어 허락해주었다.
-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동계훈련을 갔었는데 힘들어서 숙소를 무단이탈했다가 우연히 대만의 한국 선교사를 만나 며칠동안 지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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