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훈(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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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훈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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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35번
르나드 존스
(2001)

최지훈
(2012~2013)


델본 존슨
(2014)
안양 KGC인삼공사 등번호 35번
마퀸 챈들러
(2007~2009)

최지훈
(2013~2015)


듀본 맥스웰
(2023)
부산 kt 소닉붐 등번호 15번
아이라 클라크
(2013~2014)

최지훈
(2015~2016)


민성주
(2016~2017)
울산 모비스 피버스 등번호 2번
리오 라이온스
(2015)

최지훈
(2016~2017)


김광철
(2017~2019)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등번호 2번
김광철
(2017~2019)

최지훈
(2019~2020)


이현민
(2020~2022)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파일:현대모비스 2019-20 최지훈.png

최지훈
출생
1989년 3월 7일 (35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92cm|체중 88kg
포지션
농구선수(포워드 / 은퇴)
학력
서울동산초등학교 (졸업)
대경중학교 (졸업)
대경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레저학 / 학사)
프로 입단
2012년 2군 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 전주 KCC)
현역시절 등번호
35[1], 15[2], 2[3]
병역
신협 상무 (2017~2019)
소속
전주 KCC 이지스 (2012~2013)
안양 KGC인삼공사 (2013~2015)
부산 kt 소닉붐 (2015~2016)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16~2020)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선수 시절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선수. 경희대학교 1년 선배인 김우람의 뒤를 이어 제2의 2군 신화를 꿈꿔왔지만 오랜 기간 커리어를 쌓아가지 못했다.


2. 아마추어 시절[편집]


어렸을 때부터 축구, 야구, 농구 등 모든 스포츠 종목은 가리지 않고 좋아했었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공 튀기는 소리에 궁금해서 들어간 집 근처 학교 체육관에서 농구 코치를 만난 이후부터 인연을 맺고 농구를 선택하였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소극적이었던 플레이 때문에 최부영 감독으로부터 요구받았던 플레이로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 일을 도맡아왔다. 그럼에도 제46회 전국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에서 이정현연세대학교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작년 대회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며 5경기 전승을 달성했고, 2011 KB국민은행 대학농구리그에서는 통합우승에도 기여하며 경희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3. 선수 시절[편집]


2012년 2군 드래프트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 지명되었으며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팀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허재 감독으로부터 1군에서 출전할 기회를 보장받은 덕에 47경기를 뛰어 평균 4.5득점을 기록했다.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은희석, 김성철의 은퇴와 이정현의 군 입대로 인하여 부족한 외곽 자원을 늘리기 위해 안양 KGC인삼공사로 사인 앤 트레이드되었지만 두터운 선수층에 밀리면서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군에 입대해 육군사관학교 조교로 가길 원했지만 부산 kt와 울산 모비스로부터 영입이 들어왔는데 경기에 많이 출전해 자신이 없던 수비를 더 배우고 발전하라는 조동현 감독의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부산 kt[4]를 선택했으나 손가락 부상 등으로 인해 29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타구단으로부터 영입이 오지 않았다가 고민 끝에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이적한 울산 모비스에서도 출전기회가 많지 않았으며 시즌 종료 후 그가 원했던 상무에 입대해 육군사관학교의 조교를 맡았다. 2019-2020 시즌 팀에 복귀했음에도 1군에서의 활동이 이전보다 적었고 결국 그대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후 2년간 농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3x3 선수로 KXO리그의 홍천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


4. 여담[편집]


  • 아버지가 중학교 때 농구선수였다. 힘들다고 반대했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싶어 허락해주었다.

  •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동계훈련을 갔었는데 힘들어서 숙소를 무단이탈했다가 우연히 대만의 한국 선교사를 만나 며칠동안 지내기도 했었다.
[1] KCC 이지스 및 KGC인삼공사 시절[2] kt 소닉붐 시절[3] 현대모비스 피버스 시절[4] 여담으로 최지훈의 부모님이 kt로 가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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