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만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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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배구인. 별명은 만득이.
2. 일생[편집]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나 대신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3년, 문일중학교와 문일고등학교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부터 2001년 12월까지 한양대학교 배구부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64연승(1996~1999)을 이루어 냈고, 1991년 한국배구 슈퍼리그에서 대학 팀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경수, 김세진, 하종화, 윤종일, 최태웅, 석진욱 등 많은 스타 선수들을 스카웃해 왔다. 1987, 1991, 1996, 1999년에 4차례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기도 했다.
대학교 감독이라는 특성상 지도력보다는 우수 선수 스카우트가 더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배구부를 꽉 잡으면서 유망주들을 한양대학교에 끌어온 수완은 훌륭했지만, 지도력과 경기 운영은 문제가 있었다. 실제 선수 관리 및 훈련은 자신의 제자인 이재구 코치가 주도했으며, 송만덕 감독은 자유계약 시절 자기 밑의 선수들을 실업 팀에 분배하면서 잇속을 챙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경수 항목에 있는 드래프트 거부 및 LG화재 이면계약을 주도한 것. 그 외에도 각종 선수 스카우트 추문에 연관되는 등 선수 장사꾼으로서 악명이 높았다.
이후 2001년 12월에 강만수 감독의 후임으로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문제는 감독이 된 후에 세대교체를 천명하면서 정작 자신이 이끌었던 한양대학교 라인을 심으려고 했다는 것. 농구의 누군가가 했던 짓을 그대로 했는데, 이 때 非 한양대 출신 제거 작업의 일환으로 임도헌[1] , 이인구, 진창욱 등을 강제 은퇴시켰다.[2] 물론 그 와중에 권영민, 장영기, 윤봉우, 이선규, 박철우 등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했지만[3] 너무 지나친
이후 한양대학교로 돌아와 배구부장을 맡은 그는 2004년 1월 30일에 대학배구연맹의 부회장 겸 전무이사로 취임하였으나, 동년 여름, 지병인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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