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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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명성황후의 아버지, 고종의 장인, 순종의 외할아버지이다. 인현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유중의 장남인 민진후의 현손이자 5대 종손(宗孫)이다.
세자익위사세마[4] 및 장릉[5] 참봉을 지냈던 학자 오희상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그의 딸 오씨와 혼인했다. 그러나 오씨 부인은 자식없이 1833년(순조 33년)에 사망했다. 이후 좌찬성을 역임했던 이규년의 딸 한산 이씨와 재혼했다. 이씨 부인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으나, 명성황후를 제외하고는 전부 요절했다.
민유중의 종손 자격으로 '여양부원군사손의입승전(呂陽府院君祀孫擬入承傳)'으로서 그의 묘소를 지키는 일을 맡았다.
1826년(순조 26년) 음서로 장릉[6] 참봉 직을 맡았다. 이후 제용감 주부, 의금부 도사, 사복시 주부, 충훈부 도사, 조지서 별감, 사옹원 주부, 장악원 첨정, 선혜청 낭청 직을 두루 역임했다. 또한 과천현감, 임피현령, 덕천군수, 영주군수 등 지방직도 지냈다.
사도시 첨정을 지내던 중인 1858년(철종 9년)에 병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59세.
후사를 정하지 않고 죽어 시묘살이는 훗날 명성황후가 되는 그의 딸 민자영과 부인 이씨가 했다. 제사를 지낼 아들이 필요해 1861년(철종 12년)에 민치록의 11촌 조카 뻘이자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 민승호가 양자로 들어왔다.
고종이 즉위한 후인 1866년(고종 3년)에 딸 민자영이 왕비가 되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여성부원군'으로 추증받았다. 시호는 처음에 '효정(孝貞)'이었다가 '순간(純簡)'으로 바뀌었다.
묘는 처음에 경기도 여주군 금교리[7] 에 있었다. 그러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충청도 제천, 경기도 이천과 광주로 계속 옮겨졌다가 1894년(고종 31년)에 충청남도 보령군 청연리에 안장되었다. 그러다 2003년에 원래 묻혔던 자리로 다시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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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명성황후의 아버지, 고종의 장인, 순종의 외할아버지이다. 인현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유중의 장남인 민진후의 현손이자 5대 종손(宗孫)이다.
2. 생애[편집]
세자익위사세마[4] 및 장릉[5] 참봉을 지냈던 학자 오희상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그의 딸 오씨와 혼인했다. 그러나 오씨 부인은 자식없이 1833년(순조 33년)에 사망했다. 이후 좌찬성을 역임했던 이규년의 딸 한산 이씨와 재혼했다. 이씨 부인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으나, 명성황후를 제외하고는 전부 요절했다.
민유중의 종손 자격으로 '여양부원군사손의입승전(呂陽府院君祀孫擬入承傳)'으로서 그의 묘소를 지키는 일을 맡았다.
1826년(순조 26년) 음서로 장릉[6] 참봉 직을 맡았다. 이후 제용감 주부, 의금부 도사, 사복시 주부, 충훈부 도사, 조지서 별감, 사옹원 주부, 장악원 첨정, 선혜청 낭청 직을 두루 역임했다. 또한 과천현감, 임피현령, 덕천군수, 영주군수 등 지방직도 지냈다.
사도시 첨정을 지내던 중인 1858년(철종 9년)에 병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59세.
3. 사후[편집]
후사를 정하지 않고 죽어 시묘살이는 훗날 명성황후가 되는 그의 딸 민자영과 부인 이씨가 했다. 제사를 지낼 아들이 필요해 1861년(철종 12년)에 민치록의 11촌 조카 뻘이자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 민승호가 양자로 들어왔다.
고종이 즉위한 후인 1866년(고종 3년)에 딸 민자영이 왕비가 되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여성부원군'으로 추증받았다. 시호는 처음에 '효정(孝貞)'이었다가 '순간(純簡)'으로 바뀌었다.
묘는 처음에 경기도 여주군 금교리[7] 에 있었다. 그러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충청도 제천, 경기도 이천과 광주로 계속 옮겨졌다가 1894년(고종 31년)에 충청남도 보령군 청연리에 안장되었다. 그러다 2003년에 원래 묻혔던 자리로 다시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