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키트 바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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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ᠮᠡᠷᠬᠢᠳ ᠪᠠᠶᠠᠨ / Мэргид Баян / 蔑兒吉䚟 伯顔
(1285년 이전[1] ~ 1340)
원나라의 권신. 메르키트 부족 출신으로, 세조 쿠빌라이 칸 때의 명장인 바린 바얀과 구분해서 주로 메르키트 바얀이라고 불린다.
2. 생애[편집]
카이샨[2] 의 부하로 카이두의 난을 진압할 때 전공을 올려 바아투르의 칭호를 받았으며, 카이샨이 황제로 즉위한 후에 이도상서, 어사중승이 되고, 1309년에는 상서평장정사, 아스트 친위군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원인종 아유르바르와다가 즉위하자 강남행대 어사중승으로 좌천되었고, 어사대부, 강절행성 평장정사를 역임했으며, 태정제 예순테무르 때는 강서 평장정사, 하남 평장정사를 지냈다. 1328년 7월에 예순테무르가 붕어하자 엘테무르와 협조해서 원문종 투그테무르를 옹립했다.
엘테무르가 정권을 잡으면서 중서좌정승, 지식추밀원사 등을 역임하고, 준녕왕에 봉해졌다가 엘테무르가 죽고 1334년에 혜종 토곤테무르가 즉위하자 상서우승상, 태사가 되었으며, 1335년에 엘테무르의 아들인 텡기스가 토곤테무르를 폐위하려고 하면서 대도를 공격하자 사전에 매복시켜 둔 군대로 텡기스를 포함한 엘테무르의 일족을 모조리 죽였다.
이 공으로 진왕에 봉해졌다. 바얀은 승상이 되자 권세를 휘둘렀고 장, 왕, 유, 이, 조의 한족 5대성을[3] 학살할 생각을 할 정도로 한족 문화를 금지했다.
1340년 2월에 메르키트 바얀은 사냥을 하러 성을 나갔다가 조카인 토크토아가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하남 행성좌승상에 임명되어 쫓겨났으며, 4월에 양춘현으로 옮겨지다가 병사했다.
3. 창작물에서[편집]
김용의 대하소설 《의천도룡기》에서도 바얀이 언급된다. 소설 속에서, 한독에 중독된 주인공 장무기는 훗날 명나라의 개국공신이 되는 상우춘과 함께 접곡의선 호청우를 찾아가다가 원나라 병사들과 조우한다. 병사들은 승상 바얀이 공포한 도살령 시행을 위해 행인들을 검문하고 있었고, 도살령에 해당하는 성 씨를 가진 한족 백성들을 추려 살해하였다. 장무기는 살해 대상인 장 씨였으나 의부인 사손의 성을 대어 위기를 모면하였다.
기황후 에서는 김영호가 백안으로 연기했다. 백안은 바얀의 한자표기.
[1] 동생이자 토크토아의 아버지인 마자르타이가 1285년생이므로 그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이다. 예시로 드라마 기황후에 묘사된 것과는 다르게 그는 연철(엘 테무르)보다 나이가 많다.[2] 훗날의 원무종[3] 이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한족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니, 사실상 한족 대부분을 다 죽이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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