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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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제원
2. 배경
3. 후임 설계자
4. 기체의 구조 및 특징
5. 파생형



1. 제원[편집]


초도비행 : 1941년 4월 12일
전장 / 전폭 / 전고 : 12.18 m / 16.00 m / 3.81 m
익면적 : 40.0 m2
공허중량 : 6,820 kg (15,035 lb)
동력 : Fiat A.74 R.C.38 (840 hp) 2기
최대속도 : 420 km/h
순항속도 : 340 km/h
항속거리 : 1,150 km
상승고도 : 6,930 m
고정 무장 : 37mm Breda 37/54 기관포 1문 / 12.7mm Breda-SAFAT 중기관총 2정 / 방어용 12.7mm 중기관총 1정
탑재 무장 : 160 kg 폭탄 2발 + 2 kg 대인 폭탄 126발




2. 배경[편집]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부근의 카메리(Cameri)란 마을에서 영업하던 작은 비행기 공방인 CANSA(Construzioni Aeronautiche Novaresi S.A. 노바레지 항공제작 주식회사)는 1939년 초에 피아트 그룹에 흡수되어 재벌 기업의 지점으로 영업을 계속하게 된다. 항공 엔지니어인 쥬세페 가바르디니(Giuseppe Gabardini : 1879~1936)가 1918년에 세운 이 업체는 규모는 작더라도 가바르디니 시리즈 같은 괜찮은 경비행기를 자체 개발해 생산하고 있었다. 설립자 가바르디니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나이였다. 화가를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뛰어난 그림 솜씨를 가졌으면서도 공학에도 밝아 비행기 회사를 차린 그는 자동차를 손수 튜닝하고 일류의 운전 실력을 가진 드라이버이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이브를 즐기던 취미가 화근이 된 가바르디니는 토리노에서 밀라노로 돌아가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3. 후임 설계자[편집]


가바르디니가 살아있을 때 그의 설계 작업을 돕던 토리노 출신의 쟈코모 모쏘(Giacomo Mosso : 1903~1988)가 회사를 이끌어갔는데, 정권을 잡은 무솔리니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스페인 내전에 공군을 파견한 탓에 이탈리아의 방산 업체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 무렵 전쟁 특수로 인해 군용기 증산에 바빠진 피아트 사는 이탈리아 공군에 훈련기 같은 소형기까지 팔아먹기 위한 포석으로 CANSA를 합병시켰고, 대기업 산하에 들어간 쟈코모 기사 이하의 CANSA 기술진들은 군용기에 관한 연구 개발에 집중해 본격적인 단엽 군용기 FC.12를 먼저 완성시켰다. 이 기체는 공군성과 항공조달청(Direzione del Genio e delle Costruzioni Aeronautiche : DGCA)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훈련기치고는 너무 비싼 가격이 발목을 잡혔다. 결국 이 단엽기는 채용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공군성은 지상공격기로 연구 시험하는 등 그 잠재력만큼은 있다는 고무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행히, 쟈코모 기사는 공군성에게 설계를 의뢰받았던 쌍발 정찰기를 대지 공격기로 발전시킬 복안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CANSA FC.20이었다.


FC.20은 원래 장거리 정찰 임무를 수행하거나 쌍발 경폭격기로 설계가 시작되었으나 이탈리아 공군은 이런 용도의 기체는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쟈코모의 그같은 발상의 전환은 매우 시기적절하면서도 실용적인 것이었다. 1941년 봄에 완성된 원형1호기는 같은 해 4월 12일에 FC.12의 시험비행을 맡았던 비행사 파우스토 모로니(Fausto Moroni)가 조종간을 잡았다.



4. 기체의 구조 및 특징[편집]


FC.20은 쌍발 엔진을 갖춘 캔틸레버 저익 단엽기로, 가로세로비가 약 6.4인 곧게 뻗은 테이퍼 날개를 가졌다. 매끈하고 심플한 실루엣을 그리는 주익의 익단은 둥글게 다듬었다. 에일러론 같은 조종면은 모두 날개 뒷전에만 설치되었는데, 엔진의 외측 날개 전체에 걸쳐 자리잡았다. 양력을 보탤 분할식 플랩은 하부 엔진 페어링을 지나 날개 뿌리까지 설치되어 보조잘개의 면적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쌍발기는 기존의 수직 미평 미익 대신 트윈 테일 형식의 꼬리날개가 붙여졌으며, 타원형 수직미익이 지느러미와 러더 사이에 수직으로 거의 동일하게 나뉜다. 미익은 이면체 모양의 경사면을 가진 테이퍼형 후미 구조에 장착되었고, 테이퍼형 승강타와 탭이 달려 있었다. 원래보다 연장되어 늘씬하게 뻗은 후방 동체에는 완전히 접혀 수납되는 인입식 테일 휠이 있었다.

비행 시험과 지상 테스트에 동원된 원형기는 기관총을 비롯한 아무런 무장이 올려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정찰기였을 때 사양에 맞춰 만들어진 긴 플랙시글래스 기수가 달려 있어 승무원에게 아주 좋은 시야를 보장해줬다.



5. 파생형[편집]


두 번째로 만들어진 생산형이자 원형 2호기 FC.20bis의 프로토타입은 짧아진 기수와 날개 앞쪽 가장자리 앞에 배치된 조종석에 무장이 추가되었으나 익면적을 약간 확장시켰다. 유리가 제거된 노즈 내부에는 브레다 37mm 중기관포 1문이 탄창과 함께 수납되고 익근부의 날개 앞전에는 12.7mm 브레다-사파트 중기관총이 각각 총구를 내밀고 있었다. 조종석 뒤쪽을 향해 회전하는 밀폐된 방어용 총탑에도 한 자루의 중기관총이 거치된다. 주익에 1개씩 추가된 파일런에는 16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었고, 동체 폭탄창은 그보다 작은 2 kg 소형 폭탄을 126발 수납할 수 있었다.

모두 4가지 타입이 만들어진 이 공격기는 다른 타입도 실제로 비행했는데, 이런 형식의 차이는 주로 장착한 엔진으로 구별되었다. FC.20의 뒤를 이은 FC.20ter은 1,000마력의 피아트 A.80 R.C. 엔진이 기본이었다. 무장을 처음 갖춘 FC.20bis는 고정 무장과 방어 총탑이 있었고, 동맹국 독일로부터 입수한 1,250마력짜리 다임러-벤츠 DB 601 액랭 엔진을 장비한 최후기 형식은 FC.20quater라고 불렸다. 파워가 현격히 늘어난 이 타입은 무장도 마우저-이카리아(Mauser-Ikaria) 37mm 기관포와 한 쌍의 마우저(Mauser) MG 151/20 기관포가 기존의 무기들을 대체했다. 이탈리아가 항복하기 직전인 1943년에 시험된 이 후기형은 FC.20bis 보다 더 강력한 화력에다 80km/h나 더 빠른 500 km/h 이상의 속도로 날았다.

피아트 공장에서는 FC.20bis가 몇 대 생산되었고, 1943년 7월에 3대가 제174전략정찰 비행대대(174a Squadriglia Ricognizione Strategica)를 통해 실전 부대에 처음 배치되었지만, 곧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군에게 항복하는 통에 실제로 전투에서 운용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의 모든 군사 작전은 1943년 9월 휴전 협정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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