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요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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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
藤原 喜明
본명
藤原 喜明
생년월일
1949년 4월 27일
출신지
일본 이와테현 에즈리코촌[1]
신장
185cm
체중
102kg
별명
関節技の鬼[2]
組長[3]
昭和のテロリスト[4]
問答無用の仕事師[5]
유형
테크니션
주요 커리어
NWA 인터컨티넨탈 태그팀 챔피언 1회
IWGP 태그팀 챔피언 1회
NJPW 재팬 컵 태그 리그 우승 (1986년)
NJPW 칼 고치 컵 우승 (1975년)
FMW 브래스너클 태그팀 챔피언 1회
카쿠토 프로스펙스 토너먼트 우승 (1985년)
후지와라 구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아이언맨 헤비메탈웨이트 챔피언 1회
피니쉬 무브
와키카타메/후지와라 암바[6]
헤드벗
아키레스켄카타메[7]
하라카타메[8]
크룩 헤드시저스
드릴 어 홀 파일 드라이버
캐논볼
태즈미션
테마곡
ワルキューレの騎行
SUDDEN IMPACTのテーマ

1. 개요
2. 커리어
3. 여담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프로레슬러.


2. 커리어[편집]


프로레슬러 이외에 배우, 탤런트, 일러스트레이터, 도예가, 에세이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관절기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따서 후지와라 조장의 애칭으로 사랑받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샐러리맨이나 요리사를 하고 다녔던 후지와라 요시아키는 1972년 11월 2일 23세의 나이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입문 10일 후인 같은달 12일에 데뷔전을 갖게되면서 후지나미 타츠미를 상대로 패하게 된다. 이후로도 출전한 경기마다 패하고만 다니다가 11월 25일에 키하라 신이치와의 경기에서 첫승을 거둔다.

신인 시절부터 칼 고치를 사사해 관절기를 비롯한 레슬링 기술을 배우게 되고, 신일본에서 활동하며 같은 일본레슬러들 외에도 서양레슬러들과도 경기를 가지며 경쟁을 하고 다녔고 안토니오 이노키와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후지와라 요시아키는 도장에서의 젊은선수의 코치역할을 맡아 관절기를 연마하든가, 안토니오 이노키의 스파링 파트너로도 발탁됐고 해외 원정에도 동행했다.

1984년에는 UWF에서 활동하면서 타고난 관절기 테크닉을 선보이며 관절기 후지와라 vs 킥 슈퍼타이거(사야마 사토시)의 경기는 지금까지의 프로레슬링에 없던 리얼리티 있는 명승부가 됐고, 프로레슬링 언론의 백업도 있어 강경파 팬들의 주목을 끈다.

1986년에 다시 신일본에서 뛰고, 1987년에 야마자키 카즈오와 같이 IWGP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며 첫 챔피언 경력을 만든다.

1989년에 제2차 UWF 참가를 거쳐 1991년 3월 프로페셔널 레슬링 후지와라 조를 창단하게 된다. 1995년에 이케다 다이스케와 같이 후지 리키 & 오야 히사카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FMW 브래스너클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1996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도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는 등 여러 단체에서 경기를 가지기 시작하지만, 프로페셔널 레슬링 후지와라 조에서 창단한 판크라스, BattlARTS[9]가 분열되는 등 2차례 레슬러의 대량이탈을 거치면서 단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프리랜서로서 선수활동을 계속하게 되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의 활동이 줄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이나 ZERO1에서 활동하는 일이 많아진다. 2004년에 ZERO1에서 하시모토 신야와 같이 오오모리 타카오 & 코시나카 시로를 꺾고 NWA 인터컨티넨탈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지만 2달 후 오오타니 신지로 & 오오모리 타카오에게 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잃는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ZERO1, BML,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포함해 IGF 게놈에는 계속 참가하게 되고, 2012년부터는 프로레슬링 NOAH, DDT 프로레슬링에도 모습을 보이며 DDT 아이언맨 헤비메탈웨이트 챔피언십 매치가 걸린 로얄럼블에서 살아남아 오랜만에 챔피언에 등극한다. 계속 방어전을 가지나 2013년에 E 요시히코에게 챔피언 자리를 뺏긴다.

드래곤 게이트 및 리얼 재팬 프로레슬링(RJPW), KAIENTAI-DOJO, WRESTLE-1, FREEDOMS, 대일본 프로레슬링에도 출연하게 되고, 계속해서 프리랜서로써 2020년대에 넘어와서도 선수생활을 이어나가며 여러단체에 출연하고 있다.


3. 여담[편집]



  • 특기는 이전부터 배운 유도 및 검도이다.

  • 직장인 시절에는 플레이보이 평범펀치 등을 읽다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페이지를 찢어 그림을 그렸다.

  • 학교법인 일본의과학종합학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 탤런트 활동도 하고 있어 출연한 영화 및 드라마에서 그 풍모에서 조폭과 관련된 역할이 많다.

  • 취미는 일러스트 집필[10], 분재, 낭곡 감상, 도예이다.


  • 종합격투가나 주짓수 등에게 그래플링을 가르치고 있으며 해외 관절기 강사의 의뢰도 많아 해외로부터의 초빙도 받고 있다. 2006년에는 미국에 2차례, 2008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관절기를 주로 하는 레슬링 세미나를 가졌다.

  • 1988년 ~ 1995년까지 종합격투기 선수로도 활동한 적이 있으며 전적은 6전 2승 3패 1무를 기록했다.

  • 후지와라 본인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생활해 온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막연한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아티스트라고 불리는게 가장 기쁘다며, 어느 것이 본업이고 어느 것이 부업이라는 것은 없이 모두 자신의 직업이라고 한다.


4. 둘러보기[편집]


파일:스기우라군로고.png
스기우라 타카시
후지타 카즈유키
사쿠라바 카즈시
이호 데 독토르 와그너 Jr.
르네 듀프리
켄도 카신
나카무라 다이스케
무라카미 카즈나리
【 전 멤버 】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월드 태그 리그 우승자
1985

1986

1987
후지나미 타츠미 & 기무라 켄고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와라 요시아키

후지나미 타츠미 & 기무라 켄고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감투상
초슈 리키
(1986)

후지와라 요시아키
(1987)


초슈 리키
(1988 & 1989)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점보 츠루타
(1986 & 1988)

후지와라 요시아키
(1989)


텐류 겐이치로
(1990)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노력상
마시오 코마
야마모토 코테츠
테라니시 이사무
(1974)

스네이크 아사미
타카치호 아키히사[11]

후지와라 요시아키
(1975)


후치 마사노부
카이 쇼지
고 류마
(1976)
이시카와 타카시
마에다 아키라
애니멀 하마구치
(1981)

코시나카 시로
후지와라 요시아키
(1982)


후치 마사노부
타카다 노부히코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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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키타카미시.[2] 관절기의 귀신[3] 조장[4] 쇼와의 테러리스트[5] 문답 무용한 일꾼[6] 脇固め. 후지와라의 성씨에서 유래한 후지와라 암바의 명칭으로 전 세계 레슬링 선수들에게 사용되고 있다.[7] アキレス腱固め. 원래 도장 스파링 등에서 쓰이던 뒷기술이지만 1차 UWF 시절 자주 선보여 각광을 받게 됐고, 제2차 UWF 때는 스탠딩식에서 극히 보여준 적도 있다.[8] 腹固め. 양다리로 상대의 한쪽 팔을 극하는 기술.심지어 자신의 양팔로 상대방의 다른 한쪽 팔을 제압하는 경우도 있다.[9] 1995년 11월 19일에 프로페셔널 레슬링 후지와라 조에서 스폰서로부터 소속선수의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제시받고 반발한 후지와라 요시아키를 제외한 소속선수 전원이 퇴단했고, 12월에 이시카와 유키를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였다. 단체명은 프로레슬링 프로모터의 아라이 히데오가 명명했다. 원 소속선수 전원은 어디까지나 스폰서에 대해 반발했을 뿐 후지와라와의 불화는 없다.[10]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림그리는걸 싫어했고 그림수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이래라저래라 하는것이 싫었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게 된다.[11] 훗날 독무의 창시자이자 슈퍼킥의 개발자인 '동양의 신비' 더 그레이트 카부키로 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