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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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외부 링크
4. 보물 제981호


1. 개요[편집]


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에 위치한 선법사 경내에 있는 마애불상으로, 고려시대인 10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바위에 약사여래를 새긴 것이다.

선법사(善法寺)는 태고종 소속의 아주 작은 사찰로, 이 절의 연혁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워낙 경내가 작아 암자라고 봐도 될 정도의 작은 절이지만, 본 마애불상이 존재하는 점으로 보아 불상이 조성되기 전에 이미 현재 위치 혹은 부근에 어떤 절이 들어섰으리라 추정한다. 아무튼 2023년 현재 선법사에는 본 마애불상 외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하남 선법사 석조보살좌상도 모셔져 있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1989년에 보물 제981호로 지정됐다.


2. 내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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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현지 설명판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전체 높이 93cm의 마애불상으로, 선법사 경내에 위치한 약수 옆 바위의 높은 곳에 새겨진 약사여래상이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약수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이 있어서 작은 절벽 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불상에 접근하여 예를 올리기 좋게 축대를 쌓아 올렸다. 본 마애불상은 조각술이 정교하고 전체적인 비례도 잘 맞춰져 있으며,[1] 바위에 새겨진지 천년도 더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도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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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근경. 불상 좌측에 명문이 보인다.
새겨진 불상을 살펴보면, 연꽃형 대좌 위에 부처가 가부좌를 하고 올라 앉아 있는데, 오른손을 들어서 여원인[2]수인을 하고 있고 왼손 위에는 약합(약그릇)을 올려놨다. 약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가 확실하다. 약사여래의 뒤로는 광배가 있는데, 머리 뒤의 두광(頭光)과 몸체 뒤의 신광(身光)이 각각 묘사되어 있으며 두광과 신광 모두 3중의 원으로 표현됐다. 광배의 뒤는 불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불꽃무늬로 장식됐다. 연꽃형 대좌 상단에 묘사된 연꽃잎들은 아주 생생하게 잘 남아 있는데, 두겹으로 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중단은 4개의 기둥이 있고, 대좌의 하단에도 아래로 펼쳐진 연꽃잎들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불상과 광배, 대좌 모두 보존이 잘 되어서 그 형상이 아주 뚜렷하게 잘 남아 있으며 각기 비례감도 어색하지 않고 조각의 수준도 훌륭하다.

파일:마애불상의_명문_부분.jpg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명문 확대
한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의 왼편[3]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아주 높은데, 여기엔 '太平二年丁丑七月卄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脩爲今上皇帝萬歲願(태평이년정축칠월입구일고석불재여석을중수위금상황제만세원)'이라고 적혀 있다. 이를 해석하자면, '태평 2년(977년) 정축년 7월 29일 옛 석불이 있던 것을 금상이신 황제를 위해 중수하오니 만세하시기를 기원합니다.'는 뜻이다.[4]

다만 여기서 말하는 태평은 약간 애매한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서기 977년임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태평이라는 것은 송나라 태종이 사용했던 첫 연호태평흥국을 말하는 것일 수 있는데, 이는 976년부터 984년까지 사용하였다. 한편 동시기의 고려 경종 역시 연호를 사용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도 공교롭게도 태평으로 송태종의 것과 명칭이 동일하다.[5] 아무튼 경종의 태평은 그가 즉위한 976년부터 그가 사망한 981년까지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태평이 송태종의 것이든, 고려 경종의 것이든 간에, 연대를 특정하는데에는 큰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정말 고맙게도 태평 뒤에 육십갑자의 정축을 병기해놔서 정확하게 서력으로 환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6] 따라서 여기에 적힌 태평2년은 고려 경종 2년인 서기 977년이 확실하다.

다시 명문의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새롭게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옛 석불을 중수했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본 마애석불은 977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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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원경
한편 인근의 주민들에 의하면, 본 마애불상의 우측에 있는 바위에도 본래 또다른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통째로 떼어갔다고 전한다. 실제로 본 마애불상 우측의 바위를 보면 마치 일부분이 인공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7] 이에 환수 주장이 있으나, 정말로 또다른 마애불상이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으며 실제로 도난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워낙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남아 있는 증거가 전혀 없어 실질적으로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기 때문에 환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8]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비록 크기는 작지만 표현 기법 등이 수려하여 아름답고, 제작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고려 불상 편년 자료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 등의 가치가 있는 귀한 마애불상이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이와 같은 점을 인정받아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가, 1989년 4월 10일에 보물 제98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편집]





4. 보물 제981호[편집]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바위 남쪽면에 전체 높이 93㎝로 새겨져 있다.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이라는 글을 통해 만든 시기가 고려 경종 2년(977)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에서는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져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대좌(臺座)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5잎의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이 불상은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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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2] 與願印: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이 위를 향하도록 하여 밖으로 향하는 자세[3] 이하에서 말하는 좌·우는 본 마애불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한다.[4] 은 20을 뜻한다.[5] 이로 인해 경종의 연호인 태평이 독자적인 것일지 송나라의 것을 갖다 쓴 것인지 애매하다는 문제가 파생된다.[6]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정축[7] 출처: 김성근, 김덕묵(2006): 경기도 전통사찰을 찾아서.Ⅱ, 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 pp.253-254. 원문 링크[8] 참조: 경기신문 - “또 다른 마애불 일제에 강탈당했다” - 2014년 10월 20일자 기사 / 하남타임즈 - 하남시 국외반출 문화재 환수해야 - 2016년 4월 29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