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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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모데나 레조 공국의 마지막 공작으로 그 유명한 루트비히 2세의 고모부.
2. 생애[편집]
1819년 6월 1일, 모데나 레조 공국의 모데나에서 프란체스코 4세와 사보이아의 마리아 베아트리체 사이에서 태어났다.
1842년 3월 30일, 바이에른 왕국 국왕 루트비히 1세의 딸인 아델군데와 결혼했다.
1846년 1월 21일, 부친 프란체스코 4세가 사망하자 모데나 레조 공작으로 즉위했다. 1848 혁명이 일어나자 모데나 레조 공국을 탈출했고, 얼마 뒤 다시 돌아왔다.
1848년 11월 16일, 루이지 리차티에게 암살될뻔 했으나, 가까스로 총알을 피했다.
이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주도한 리소르지멘토로 폐위되었고 본가인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건너가 빈에 있는 모데나 궁전(Palais Modena)에서 생활하다가 1875년 11월 20일 사망했다. 자녀를 남기지 못해 명목상의 공작위는 프란츠 요제프 1세에 의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에게 양도되었다.
3. 가족 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배우자[편집]
1842년 3월 30일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인 루트비히 1세의 딸인 바이에른의 아델군데와 결혼해서 1녀를 두었다.
3.3. 자녀[편집]
4. 여담[편집]
- 영국의 수상인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은 1861년 3월 7일에 영국 하원에서 그의 잘못된 판단을 맹비난했다. 그해 후반에는 콘스탄틴 핍스가 글래드스턴의 의견을 반박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의 외손자이고[2] , 오스트리아 제국 페르디난트 1세의 황후 마리아 안나는 고종사촌이자 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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