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헨시오 예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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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초대 국가 원수
풀헨시오 예그로스 이 프랑코 데토레스
Fulgencio Yegros y Franco de Torres


출생
1780년 2월[1]
파라과이 키키오(Quyquyhó)
사망
1821년 7월 17일 (향년 41세)
파라과이 아순시온
국적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재임기간
최고행정위원회 의장[2]
1811년 6월 17일 ~ 1813년 10월 12일
파라과이 제2대 집정관
1814년 2월 12일 ~ 1814년 6월 12일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파라과이의 군인이자 독립 이후 초대 국가 원수에 오른 인물이다.


2. 생애[편집]


예그로스 가문은 1600년경 정착한 스페인 이민자의 후손이며 파라과이에서 가장 전통있는 가문 중 하나였다. 그의 할아버지 풀헨시오 예그로스 이 레데스마는 파라과이의 총독이었고 아버지 호세 안토니오 예그로스는 군인이었다. 이후 스페인 군에 입대하여 1801년 포르투갈에 파병되어 코임브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1807년엔 영국이 라플라타 강 침공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방어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1810년 대위로 진급했다. 1811년 1월 19일, 아르헨티나의 파라과이 침공을 방어하고 중령으로 진급했다. 1811년 3월부터 6월 16일까지 미시오네스 주지사가 되었다. 1811년 5월 혁명의 핵심으로 활약하여 파라과이의 독립 선언을 이끌었다.

1811년 6월 17일부터 1813년 10월 12일까지 5명으로 구성된 군부의 최고행정위원회(Junta Superior Gubernativa)의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호세 가스파르 데 프란시아의 정적으로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서로 번갈아하며 지도자직을 역임했다. 1814년 6월 12일, 집정관직에서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1821년 6월 9일 예그로스는 프란시아를 실각시키기 위한 쿠데타에 가담했다. 하지만 반정부 음모 계획이 적힌 편지가 발각되어 투옥되었고 결국 1821년 7월 17일 처형되었다.


3. 기타[편집]


그의 이름에서 따온 프로 축구팀 Club Fulgencio Yegros가 있다.[3] 현재 2부 리그인 '파라과이 세군다 디비시온' 소속이다. 홈경기장 이름 역시 'Estadio Parque Fulgencio Yegro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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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생 일자가 불분명하다.[2] 군부의 최고 행정 결정권자이며 스페인어로 'Presidente de la Junta Superior Gubernativa'라고 한다. 당시엔 집정관(Cónsul)이라는 직위가 없었다.[3] 센트랄주의 녬비(Ñemby) 시를 연고로 한다. 2022년 5월 14일 창단 98주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