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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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형 캐딜락 쿠페 드 빌의 상향형 테일 핀
1958년형 임페리얼의 상향형 테일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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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형 메르세데스-벤츠 230S의 수평형 테일 핀
1960년형 쉐보레 임팔라의 가로형 테일 핀

1. 개요
2. 역사
2.1. 초반기
2.2. 전성기
2.2.1. 우주시대와 테일 핀
2.2.2. 확산
2.2.3. 콘셉트 카
2.3. 쇠퇴
3. 안전성
4. 문화적 의의
5.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Tail fin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북미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된 자동차 스타일링의 한 양식이다.


2. 역사[편집]



2.1. 초반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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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형 타트라 T77 세단의 테일 핀
테일 핀 디자인의 기원을 살펴보면 오스트리아 태생의 기술자인 파울 야라이[1]가 1920년 공기역학적 안정성을 위해 시제[2]차량 설계에 차체의 중앙을 지나는 날개를 추가한 것이 자동차에 항공기의 설계 요소를 접목시키려 한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그의 특허에 영향을 받은 유럽의 몇몇 자동차 제조사들은 중앙에 날개가 하나 위치한 유선형의 시제차량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아우디 F5 스트림라이너, 타트라 T77[3], 피아트 1100 Aearodynamica(Padovan),등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시제차량이었다.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 1948년 캐딜락이 후미등에 자그마한 테일 핀을 도입하기 전에 생산된 몇몇 캐딜락 차량들에서 후면 펜더로부터 조금 위쪽으로 돌출된 후미등이 있었으나 이 모습이 이후 등장 할 테일 핀의 스타일링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후미등을 가진 캐딜락 차량으로는 대표적으로 1937년형 캐딜락 플리트우드의 일부 차량과 1941년형 캐딜락 시리즈 62, 63 등이 있다. 이후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 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군수품 생산업으로 잠시 전환되었고 제너럴 모터스도 군수품을 생산하면서 캐딜락의 스타일 개발또한 잠시 중단되었다.

이후 1945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며 미국은 승전을 축하하는 분위기와 함께 한층 내부적으로 고무되어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동차 업계에서도 전쟁기에 활약했던 여러 비행기들로부터 모티브를 따와 자동차 스타일링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유행하였다. 대표적으로 제너럴 모터스의 디자이너였던 프랭크 허쉬[4]는 셀프리지 공군기지에서 본 P-38 라이트닝 전투기의 후미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자동차 디자인에 접목시키려 하였다. 그 후 제너럴 모터스의 총괄 수석 디자이너 할리 얼[5]은 처음에 허쉬의 테일 핀 디자인 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이후 여러 디자이너들의 지속되는 건의에 따라 프랭크 허쉬의 테일 핀 디자인 안을 승인 하면서 1948년 캐딜락 차량들에 도입되었다. 동시기 링컨, 허드슨, 내쉬 등의 회사들은 둥근 폰톤[6]양식을 적용한 차량들을 선보였을 때였기에 캐딜락의 테일 핀 디자인은 당대 차량들 중에서 돋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폰톤양식은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의 스타일링 기조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빠르게 구식이 되어갔고 이런 상황 속에서 캐딜락과 GM의 테일 핀 스타일 도입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 테일 핀 디자인은 인기를 얻으며 GM의 다른 계열사들로 확산되었고 곧 다른 제조업체들도 테일 핀 디자인을 도입하기 시작하며 테일 핀은 당대 미국 자동차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2.2. 전성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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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캐딜락 식스티 스페셜의 테일 핀

1948년 캐딜락 차량들에 현대적인 의미의 테일 핀 디자인이 도입되며 당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스타일링 기조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영감을 받은 자동차 디자이너중 한명이었던 버질 엑스너는 1949년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에 합류한 뒤 1957년 “포워드 룩(Forward Look)”이라는 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디자인 양식을 정립하여 테일 핀을 자동차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였다.[7] 특히 버질 엑스너는 테일 핀 디자인을 단지 장식적인 요소로만 보지않고 공기역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차량이 고속으로 주행할 때 차체가 좌우로 뒤틀리는 "롤링 현상"을 억제하고 차체를 안정화 시키는데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동차를 장식하는 '멋'에 주안점을 둔 캐딜락과 GM의 테일 핀과는 다르게 당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테일 핀은 보다 높으면서도 얇고 넓게 펴져있는 양상을 보인다.

이후에도 1960년대 초반까지 진행 된 풍동실험등의 연구와 함께 크라이슬러의 테일 핀은 포워드룩 디자인 양식 특유의 낮으면서도 길고 넓은 차체와 조화를 이루며 점점 거대해져갔다. 당시 포워드룩이 적용된 차량들의 인기는 상당해서 미국 주요 자동차 업계 전반이 더욱 길고 낮으며 넓은 대형 차체와 함께 테일 핀 디자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테일 핀 디자인을 처음으로 도입했던 캐딜락도 포워드룩이 적용된 차량들의 인기에 예정되어있던 1959년형 차량들의 디자인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차체를 더욱 낮추고 이전 세대보다 더 크고 화려해진 당대 최고 크기의 테일 핀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 유행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였던 스튜드베이커-팩커드는 물론 아예 대형차급 자체를 포기하고 소형~중형차급에 집중하던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이하 AMC)에서도 자사 차량에 반영할 정도였다.[8] 이는 한편으로 전 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최고의 호황기를 누렸던 미국의 경제력을 단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미국의 예외주의를 상징했다고도 볼 수 있다.


2.2.1. 우주시대와 테일 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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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 1959년 사이 "피셔 바디"[* Fisher Body.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자동차 코치빌더]의 광고[9]

테일 핀 디자인은 1950년대 시작 된 우주 진출 시대와도 연관이 있다. 소련이 1957년 10월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에 성공하자 자극을 받은 미국이 1958년 익스플로러(인공위성)1호를 발사하고 같은 해 NASA를 설립하면서 시작 된 전세계적인 우주 진출 경쟁에 힘입어 우주시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자 여기에 맞추어 자동차 회사들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로켓을 닮은 테일 핀을 적극적으로 자동차 디자인에 적용시켰다.

이 시기의 자동차들은 특히 측면부와 후면부에서 로켓의 노즐과 날개를 닮은 테일 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1948~1960년 사이 캐딜락, 링컨, 임페리얼, 올즈모빌, 폰티악, 쉐보레, 포드의 차량들과 더불어 "포워드룩"이 적용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산하 계열사들[10]의 차량 등이 있다. 특히 캐딜락의 경우 차량의 측면에서 볼 경우 테일 핀과 미등의 모습이 로켓의 하부와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을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올즈모빌의 경우 이전부터 자사의 V8 엔진을 "로켓"으로 명명하는가 하면 광고 삽화등에 로켓이 날아가는 모습을 배경으로 사용하거나 로켓을 타고 가는 남녀를 묘사하기도 하고[11], 휠 캡등에 행성을 묘사한 문양등을 새기기도 하였으며, 주로 로켓의 노즐을 닮은 테일 핀을 적용하였다. 폰티악의 경우 차량의 측면 트림[12]등에 로켓의 형상을 묘사한 크롬 장식을 추가하거나 별[13]을 표현한 장식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2.2.2. 확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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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형 아우토 우니온 1000SP의 테일 핀
1958년형 파셀 베가 엑셀런스의 테일 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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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형 볼보 P1800의 테일 핀
1969년형 가즈 차이카 M13형의 테일 핀
이외에도 테일 핀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일본에도 도입되었다. 유럽의 경우 독일은 이 시기에 초대 포드 썬더버드의 디자인에 영향을 받은 아우토 우니온 1000SP와 W111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14], SW110계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가 테일 핀 스타일로 유명했으며[15], 프랑스에는 파셀 베가[16] 엑셀런스나 생카 샴보드 등이, 영국에는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의 중~대형 승용차 라인업[17]이나 루츠 그룹의 중형차 라인업, 스탠더드-트라이엄프의 트라이엄프 헤랄드 등이, 스웨덴에는 볼보 P1800[18] 등이 있었다. 특히 미국에 모회사를 둔 오펠복스홀, 유럽 포드오펠 레코드 P1이나 복스홀 벨록스, 포드 앵글리아 105E같은 신차들에 테일 핀을 적용했다. 미국 자동차 디자인을 벤치마킹하고 있었던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도 토요타 크라운[19], 프린스 스카이라인등의 신차들에 테일 핀을 적용했다. 또한 공산권 국가인 소련에서도 ZiL 111, 가즈 차이카[20]등의 고급 차량이 테일 핀 디자인을 채택했다.


2.2.3. 콘셉트 카[편집]


파일:[1960년 포드 스페이스라이너 콘셉트](전측면)0-34.jpg
파일:[1960년 포드 스페이스 라이너 콘셉트]1-50.jpg
{{{#fff 1960년 포드 스페이스 라이너 콘셉트[* Ford Spaceliner. 우주선의 느낌을 조금 더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조수석 방향의 문은 용접하여 고정시키고 문틈을 모두 메움으로써 차체의 측면이 매끄럽게 보이도록 하고 후면에는 우주선의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을 표현하기 위해 1959년형 캐딜락의 후미등을 가로로 배치하였으며 중앙에는 1951년형 포드 차량의 그릴 중심에 있던 장식을 수정하여 제트 추진기의 모습을 형상화한 장식으로 장착했다. 또한 당시 콥셉트 카의 유행이었던 "버블 탑"을 장착하였는데 원래 계획은 맞춤 제작하는 것이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실제 항공기의 캐노피를 사용했다고 한다.] }}}


2.3. 쇠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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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형 캐딜락 엘도라도의 후면. [22]
이후 1960년대부터는 테일 핀 스타일링 시대를 열고 주도하던 할리 얼버질 엑스너가 은퇴하며 할리 얼의 후임인 빌 미첼[23]과 버질 엑스너의 후임인 엘우드 엥겔[24]등의 디자이너들이 화려하며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었던 테일 핀 디자인을 서서히 줄이고 유럽산 차량들의 보다 절제된 스타일링을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테일 핀은 점차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한 테일 핀 디자인 자체가 본래 항공기에서부터 시작 된 디자인이다 보니 몇몇 비평가들은 자동차의 본질적인 기능과 관련없는 불필요한 디자인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25] 북미 시장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일반적인 의미의 테일 핀을 유지했던 회사는 캐딜락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었다. 그 후 몇몇 브랜드에서 하향형 테일 핀을 1970년대까지 차량에 적용하였고 1980년대 부터는 1970년대에 일어난 2차례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연비가 좋은 유럽산 차량들과 일본산 차량들이 인기를 얻으며 공기역학적 디자인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선형의 매끄러운 면을 가진 디자인이 인기를 끌며 그 윤곽만이 세로배치 후미등의 형태로 반영되는 형식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몇몇 미국 제조사들의 자동차 후면에 미미한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26]


3. 안전성[편집]


테일 핀 디자인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생산하는 동안 안전성에 있어서 여러 비판을 받아왔다. 그 중 몇몇 우려는 실제 사건으로 이어졌는데 대표적으로 1963년 "Kahn v. Chrysler" 사건의 경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어린이가 주차된 자동차의 테일 핀에 충돌하여 머리 부상을 입었다. 테일 핀의 전성기 시대인 1958년 발생했던 "Hatch v. Ford"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테일 핀에 부딪혀 부상을 입은 경우였다. 결국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소송을 접수했지만 예시로 1963년 발생했던 "Kahn v. Chrysler" 사건의 경우 법원은 크라이슬러가 사람이 자동차에 부딪혀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예상 할 책임은 없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며, "Hatch v. Ford" 사건의 경우 원고는 라디에이터 캡과 그릴의 돌출 정도를 규제하는 법률에 호소하려 했지만 법원은 이 법률이 테일 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4. 문화적 의의[편집]


테일 핀은 1950년대 내내 수많은 자동차 디자인을 탄생 시키며 단지 자동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당대 미국의 경제력과 문화, 나아가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디자인들중 하나였다.[27] 또한 테일 핀 디자인이 적용된 차량은 당대를 비롯해 이후에도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여러 매체에서 묘사되며 흥청거리는듯 하지만 여유로움을 내재한 당시 미국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5.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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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 핀이 있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미키 마우스
고전 애니메이션인 톰과 제리의 1956년 방영 된 일화 "리무진 사고를 당한 톰"[28]에서 테일 핀 디자인이 적용된 리무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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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 Jaray.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자동차 업계로 들어오기 전에는 독일의 비행선 회사 체펠린을 비롯한 항공기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2] 試製[3]타트라 T77은 양산 차량이었다.[4] Franklin Quick Hershey[5] 흔히 알려져 있기로 테일 핀을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은 할리 얼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기록에 의하면 자동차 스타일링에서 테일 핀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당시 디자인 담당 부사장인 할리 얼의 휘하 디자이너였던 프랭크 허쉬였다.[6] 3박스 욕조 스타일[7] 흔히 "포워드 룩"이 1955년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포워드 룩"이라는 명칭이 명명된 것은 1957년이며 이전에는 포워드 룩의 시초가 되는 양식으로 1955년 첫 선을 보인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이 있었다.[8] AMC는 당대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 중 테일 핀의 도입이 가장 늦었다. 당시 AMC의 회장이었던 조지 W. 롬니는 1958년형 램블러 신차 라인업에 테일 핀을 추가한 점에 대해 "고객이 컴팩트카를 타게 하는 데 필요하다면 쓰겠지만 언젠가는 테일 핀 없이 말끔하고 장식 없는 차로도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9] 당시 GM의 차량들을 바퀴를 생략하고 후미등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연출을 통해 SF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우주선처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차량의 후드와 전면 펜더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마치 시공간을 워프하는 듯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였다.[10] 임페리얼, 크라이슬러, 닷지, 플리머스, 드 소토[11] 파일:Roger Wilkerson, The Suburban Legend!.jpg[12] Side Trim[13] 파일:BeautyPlus_20230908153850697_save.jpg주로 사각 별 문양[14] 1959년식[15] 메르세데스-벤츠는 이 테일 핀 디자인을 자신들의 용어로 "Peilstege"라 명명하였다. 독일어의 단어 Peilen과 Steg를 합친 것으로 의미는 "후진을 돕기 위한 주차 보조 장치"라고 한다.(현대 차량들의 후진시 바닥에 보여지는 주차 보조선과 조금 유사한 개념으로 보인다.)[16] Facel SA.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이다. 본디 자동차용 강판 부품을 생산하던 철강 업체였으나 후일 자체 설계로 차량을 생산했다.[17] 1950년대 말 피닌파리나와 공동개발한 중형차 및 준대형차 라인업. "파리나(Farina)"라는 별칭이 붙었다.[18]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역을 맡았던 배우 로저 무어가 1962년 부터 1969년 까지 방영 된 TV 드라마 "The Saint"에서 운전 하면서 유명해진 차량이다.[19] 1세대-2세대[20] M13형[21] 엘도라도의 하드 탑 사양[22] 파일:1694138646984.png 사진은 1959년형 캐딜락 "엘도라도 스빌"[21]의 모습이다. 1959년형과 비교해 볼 때 테일 핀은 수직으로 세워져 얇은 후미등의 형상과 상단의 트렁크와 측면 펜더가 맞닿는 부분이 약간 올라온 모습을 통해 흔적으로만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3] William L. Mitchell[24] Elwood Paul Engel[25] 다만 기원이 된 유럽에서 테일 핀을 자동차에 도입했던 처음 계기는 자동차의 공기역학적 특성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26] 특히 세로배치 후미등을 일부 모델에 근근히 유지해 온 캐딜락이 90년대 후반부터 정립하기 시작한 디자인 랭귀지인 "아트 & 사이언스(Art & Science)"에 세로배치 전조등 및 후미등을 반영하며 아주 약간의 흔적을 꾸준히 남겨왔다.[27] 일례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제조사들도 테일 핀 디자인을 도입해 적용하였다.[28] Tom in a limousine acci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