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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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i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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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악
파일:폰티악.png
정식 명칭
Pontiac Motor Division of General Motors
한국어 명칭
제너럴 모터스 폰티악 자동차 사업부
설립일
1926년
해산일
2010년
본사 소재지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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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미시간디트로이트
업종
자동차 제조업
소유
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2001-2010).svg

흥분을 선사하다 (We Build Excitement.)

1980~1990년대 브랜드 슬로건

1. 개요
2. 역사
3. 몰락
4. 생산 차량
5. 기타



1. 개요[편집]


1926년부터 2010년까지 제너럴 모터스 산하에 존재했던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2010년 브랜드가 폐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미국인들에게 폰티악은 GM의 스포츠성을 나타내는 주요 브랜드로 기억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 1926년 시작된 브랜드로 역사가 상당히 길다. 당시 GM은 자기네 산하에 존재하던 오클랜드보다 더 고급스러운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로 폰티악을 출범시켰는데 7년 만에 오클랜드를 넘어서면서 아예 대체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쉐보레와는 형제 관계 정도로 볼 수 있다. 쉽게 비유하자면 현대기아의 관계랑 비슷하다. 북중미 전역에 걸쳐 판매되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수용 브랜드에 가깝다.

특징으로는 스포츠성을 강조한 차량을 주로 생산했다는 것과, 본국인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인기가 좋았다는 것. 캐나다에서 판매된 폰티악 차량들을 보면 쉐보레지오 계열 차들의 뱃지 엔지니어링인 경우도 존재하는데, 캐나다에서는 폰티악을 일종의 염가 브랜드로 인식하여 점유율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2. 역사[편집]


1926년에 제너럴 모터스가 설립한 고급 브랜드이다. 1960년대는 폰티악의 전성기로, 본래 올즈모빌 및 뷰익처럼 중산층 중심의 준고급 브랜드였던 걸 청년층 중심 브랜드로 전환하면서 전성기를 이끌어 냈다.[1] 폰티악의 전설적인 베스트셀러였던 그랑프리[2], 머슬카의 시초 중 하나인 GTO, 카마로의 형제 격인 차이자 60~70년대를 풍미한 파이어버드/트랜스 앰을 출시하면서 지금의 스포티한 이미지를 쌓아갔다. 판매량 역시 1973년과 1988~1989년에 쉐보레와 GMC를 이어 3위를 기록했던 적이 있었고, 캐나다에서는 1위까지 차지했었다.

이렇듯 폰티악은 대중적이고 스포티한 성격의 차를 적절한 가격으로 내놓아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었고, 라디에이터 그릴이 BMW의 키드니 그릴과 비슷했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BMW'라 불렸다.[3] 특히 1987년에는 이를 대상으로 한 'Ride Pontiac Ride' 캠페인을 열어 젊은 고객들을 결집시키기도 했을 정도. 때문에 2000년대에 GM의 부회장이었던 밥 루츠도 '미국의 BMW처럼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을 겸비한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라고 발표했었고, 정작 폰티악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숫자만 보면 그게 맞지만 직감대로라면 살려뒀어야 했다'라고 밝힌 바도 있었다.[4]

과거에는 북미에 대우 르망을 판매할 때 폰티악의 로고를 달고 판매했으며, 한국에서는 파이어버드가 전격 Z 작전에 나온 '키트'라는 차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에 그랜드 앰이나 트랜스포츠 같은 차들이 수입되기도 했다.


3. 몰락[편집]


하지만 1980년대 초부터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브랜드에게 승용차 시장을 잠식당하기 시작했고, 신생 브랜드의 역습과 소홀한 품질 관리 및 차량 개발,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안일한 자세로 인해 망하기 시작했다. 분명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일본 등의 수입 완성체 기업들의 판매량이 말해주었지만 이들은 최소 십수 년간 소비자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부터 폰티악은 전성기에 비해 판매량이 70%나 줄었고 그룹 내에서도 돈먹는 하마 신세를 면치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5] 또한 폰티악이라는 브랜드 자체도 GM의 가혹한 원가절감에 휘말려 개성을 잃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클래딩을 씌워 억지로 개성을 입히려는 시도와 아즈텍 같은 무리수까지 터지면서 브랜드의 가치를 많이 상실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매우 참혹했다.[6][7]

비록 2000년대 이후로 GTO, 솔스티스, G8 등의 새 라인업을 투입하고 브랜드 방향을 다시 잡는 등 개선이 있긴 했으나 수익성은 여전히 낮았다. 판매량은 GM 브랜드 중 쉐보레, GMC에 이은 3위였지만, 같은 판매망을 공유하는 뷰익 수익률의 절반에 불과했다. 결국 2009년 4월 27일 GM이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그들은 더 이상 폰티악의 존속이 힘들다고 판단, 브랜드와 산하의 모든 생산 차종을 2010년까지 단종시키기로 결정했다. 같이 구조조정당한 새턴, 사브, 허머의 제조 과정과 다르게, 폰티악은 제조 과정이 쉐보레, 뷰익과 완전히 통합되어 있어 처음부터 매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009년 12월 마지막 폰티악 로고를 단 차가 생산라인에서 나오고 모든 재고 소진을 끝낸 뒤, 프랜차이즈 계약이 종료되었고 2010년 10월 31일 폰티악 딜러십도 전부 문을 닫게 되었다. 83년간 이어진 폰티악은 새턴, 허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 생산 차량[편집]




  • 보네빌
  • 선파이어
  • 선버드/J2000/2000
  • 피닉스
  • 디럭스
  • 치프틴
  • 마스터
  • 아스트레
  • T1000/1000/아카디안
  • G2/마티즈
  • G3/웨이브
  • G4/G5/퍼슈트
  • G6
  • G8[8]
  • GTO
  • 그랑프리
  • 그랜드 앰
  • GTP
  • 토렌트
  • 6000
  • 바이브
  • 파이어버드
  • 솔스티스[9]
  • 아즈텍
  • 트랜스 스포트[10]
  • 몬타나
  • 카탈리나
  • 르망
  • 이그제큐티브
  • 피에로


5. 기타[편집]


일명 '폰티악아이스크림'이라는, 엔지니어계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가족이 폰티악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이상하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 A/S 기술자가 직접 가서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한 결과 내린 답은 연료 계통에 발생한 베이퍼 록 현상. 그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연관된 이유는, 가게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구입하는 시간이 다른 아이스크림에 비해 짧아서 엔진이 충분히 식지 않아 베이퍼 록 현상이 더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이야기가 실제 사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978년 한 자동차 잡지에서 사례로 등장했다고는 하나 그 출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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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몇몇을 제외한 당대 폰티악의 주요 라인업들은 중산층을 겨냥한 차들이었다. 주류까지 스포티한 라인업으로 바꾼 건 1980년대 중후반부터이다.[2] 1969년에 존 재커리 들로리안(DMC의 창업자)이 기획한 2세대 그랑프리가 대범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1세대 대비 판매고를 4배 이상 높게 기록했다. 나아가 1996년에 나온 6세대 그랑프리도 매년 15만대 이상의 내수 판매량에 상위 트림의 비중이 높게 나오는 등, GM W-바디 중형차 라인 최고의 흥행을 달렸다. 동시대의 그랜드 앰은 기본형이 고성능 버전보다 3배 더 많이 팔리는 등, 렌터카 및 사업차로 구매하거나 저가를 이유로 구입하는 고객이 많아 고전하는 편이었다.[3] 특히 1980년대에 등장한 3세대 그랜드 앰이 이런 별명으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수요를 끌어모으곤 했다.[4] GM 내부와 당시 정부가 파견한 전문가 집단들은 물론 본인도 뷰익만큼의 회생 효과는 못 볼 것으로 판단해 어쩔 수 없이 폐지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 라인업이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개선되기 시작했고, 당시 본인도 폰티악을 후륜구동 전용 브랜드(중형차인 폰티악 G6의 후속을 캐딜락 ATS 기반으로 만들 예정이었다)로 개편할 생각이 있었다며 당시 폐지된 브랜드들 중 새턴과 더불어 가장 아쉬웠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5] 물론 GM도 X-바디나 J-바디 전륜구동 소형차들을 만들어 대응했고 폰티악 브랜드로도 차가 출시되었으나, 그 전까지 작업해 본 경험이 없었던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을 연비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너무 무리한 속도와 규모로 개발하다 보니 품질 문제가 심각해졌다. 또한 소형부터 대형까지 소형화와 전륜구동화를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1980년대 중순의 호황기에 대형차 고객층을 잃는 등 문제가 더 커졌고, 엔-달러 간 환율 문제까지 불리하게 겹치자 같은 가격의 일본 차에 비해 편의장비가 빈약해져서 '가격 대비 가치' 부문에서조차 밀리게 된다.[6] 2000년대 GM의 회장인 릭 왜고너는 폰티악과 뷰익을 없애고 싶어 했는데, 부회장이었던 밥 루츠는 브랜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해 그 둘을 살려냈었다.[7] 물론 폰티악도 쉐보레와 함께 소형차를 취급해 왔다. 다만 1980년대 들어서 개성이 흐려진 탓에 형제 격인 차가 다수 배치된 쉐보레에게 판매량을 뺏긴 경우도 상당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G3나 G5처럼 딜러점의 요구로 인해 급히 그릴만 바꿔서 투입된 차들도 섞여 있었다.[8] 홀덴 코모도어를 리뱃징한 차량. 브랜드가 단종되면서 쉐보레 SS가 후속이 되었다. 단, 폰티악과는 달리 V8 6,200cc 사양만 수입된다.[9]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재즈의 비클 모드로 나온다.[10] 2세대 후기형부터는 몬타나로 개명. 국내에는 형제 격 차인 올즈모빌 실루엣이 수입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