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흐마스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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شاه تهماسب دوم
파일:Tahmasp_II_of_Persia.jpg
1704년~1740년 36세
1722년~1732년
1. 개요
2. 생애
2.1. 즉위 전
2.2.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1. 개요[편집]


사파비 왕조 10대 샤한샤.

2. 생애[편집]



2.1. 즉위 전[편집]


타흐마스프는 그 당시 이란의 샤였던 솔탄 호세인의 아들이었다. 솔탄 호세인이 1722년 아프가니스탄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했을 때, 타흐마스프 왕자는 그 왕좌를 차지하기를 원했다. 포위된 사파비드 수도인 이스파한에서, 그는 정부를 수립했던 타브리즈로 도망쳤다. 그는 몇몇 키질바시 부족들(미래의 통치자인 나데르 샤의 통제하에 있는 아프샤르족을 포함하여)뿐만 아니라 코카서스의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심지어 이전에 저항했던 레진의 그것)의 지지를 얻었다.

2.2. 러시아-페르시아 전쟁[편집]


1722년 6월, 인접한 러시아 제국의 황제였던 표트르 1세는 카스피해와 코카서스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경쟁자인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는 사파비 이란을 희생시키면서 이 지역의 영토 획득을 막기 위해 사파비드 이란에 전쟁을 선포했다.

러시아의 승리는 172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따라 데르벤트(다게스탄 남부)와 바쿠(바쿠), 길란주, 시르반주, 마잔다란주, 아스트라바드주를 포함한 북부, 남부 코카서스와 동시대의 이란 본토에 대한 사파비드 이란의 영토 양도를 승인했다.

타흐마스프는 또한 결국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의 인정을 받았고, 서로가 이란에서 너무 많은 영향력을 얻는 것을 걱정했다.

1729년까지, 타흐마스프는 그 나라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1731년 그의 어리석은 오스만 제국의 원정 이후, 그는 그의 아들 아바스 3세의 손을 들어 1732년 미래의 나디르 샤에 의해 폐위되었다; 둘 다 나디르 샤의 장남 레자 콜리 미르자에 의해 1740년 사브제바르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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