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비아니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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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아니 형제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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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황금종려상
제29회
(1976년)


제30회
(1977년)


제31회
(1976년)

마틴 스코세이지
(택시 드라이버)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빠드레 빠드로네)


에르만노 올미
(나막신 나무)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제34회
(1981년)


제35회
(1982년)


제36회
(1983년)

알랭 타네
(라이트 이어즈 어웨이)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로렌조의 밤)


테리 존스
(몬티 파이톤의 삶의 의미)


역대 베를린 영화제
파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로고.svg
황금곰상
제61회
(2012년)


제62회
(2012년)


제63회
(2013년)

아스가르 파르하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시저는 죽어야 한다)


칼린 피터 네쳐
(아들의 자리)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Vittorio Taviani | Paolo Taviani
파일:Taviani brothers.jpg
출생
1929년 9월 20일(비토리오 타비아니) / 1931년 11월 8일(파올로 타비아니)
이탈리아 토스카나피사 산미니아토
사망
2018년 4월 15일(비토리오 타비아니, 향년 88세) /
이탈리아 라치오로마 /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직업
영화 감독, 각본가, 영화 편집자, 영화 제작자
활동
1960년 - 현재
장편 데뷔
1960년 《이탈리아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1. 개요
2. 생애 및 작품 활동
3. 작품 스타일
4. 필모그래피
5. 기타



1. 개요[편집]


60년대의 이탈리아 영화계는 전후의 피폐한 사회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담았던 네오 리얼리즘의 시대에 이은 춘추전국시대를 펼치고 있었다. 비토리오와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는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등 쟁쟁한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들의 다음 세대로 당대의 현실이나 역사에 주목하되, 주관적이고 비유적인 영화언어를 아주 과감하게 구사하는 작품세계를 펼쳤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는 일관되게 ‘유토피아와 혁명에의 이상’을 꿈꾸면서 폭력에 젖은 부조리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던졌다.

- 씨네21 영화감독사전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각본가.

형 비토리오 타비아니(Vittorio Taviani)와 동생 파올로 타비아니(Paolo Taviani)가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는 감독으로, 네오 리얼리즘에 기반한 목가적 감수성과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특징인 감독들이다.


2. 생애 및 작품 활동[편집]


이탈리아 토스카나피사도에 있는 산 마니아토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2년 터울을 두고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비토리오는 피아노, 파올로는 바이올린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는 형제를 데리고 자주 오페라를 보러 가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음악에 대한 교양은 형제가 나중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때 깊은 영향을 끼친다. 두 형제는 고등학교 시절 극장에서 우연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을 보게 된 후 강렬한 인상을 받아, 영화 감독의 꿈을 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타비아니 형제는 피사 대학교에 진학해 비토리오는 법률을, 파올로는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영화클럽을 결성해 영화 평을 쓰며 학창시절을 보낸다. 이때 피사대학 영화클럽에서 사회주의자 발렌티노 오르시니를 처음 만나게 되어 큰 영향을 받았으며, 한동안 공동작업을 하는 동지가 된다.

학교를 졸업한 형제는 피사를 떠나 로마로 간 후에 네오 리얼리즘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바티니를 만나 함께 각본작업을 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조감독, 스크립트를 거쳐 다큐멘터리 제작을 거치던 중 1956년 그들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1944년 7월 산 미니아토>를 완성한다. 이후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이탈리아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를 공동 연출하며 장편 데뷔를 하게 된다. 타비아니 형제는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관심을 돌렸으며 1962년 오리시니의 도움을 받아 <불타는 남자>로 첫 장편 극영화 데뷔를 가진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전복자들> (1967)이나 <성 미켈레의 수탉> (1972)같은 수작들을 내놓아 상업적인 성공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얻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르게 되며, 특히 1977년에 내놓은 <빠드레 빠드로네>는 칸 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었고 타비아니 형제를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 거장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주었다.

1982년작 <로렌조의 밤>으로 다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세계적 반열에 오른 형제는 1987년에는 할리우드에서 첫 영어 영화인 <굿모닝 바빌론>을 통해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와 그의 작품 '인톨러런스'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이후로도 '피오릴레'나 '종달새 농장' 같은 영화를 만들며 작품활동을 계속하던 중 2012년에는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통해 제6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노장의 녹슬지 않은 연출력을 과시했다.

2018년에는 형 비토리오 타비아니가 타계하면서 동생 파올로가 혼자서 연출을 계속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동생 파올로 타비아니가 단독으로 연출한 '레오노라 아디오'를 발표해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3. 작품 스타일[편집]


초기에는 네오 리얼리즘 사조에 영향을 받아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촬영과 비전문배우, 자연광 조명, 열린 이야기 구조를 지향해왔으나, 후기로 넘어오면서 점차 네오 리얼리즘에서 멀어져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건네는 식으로 스타일이 변해왔다.

특유의 목가주의적인 분위기가 특징으로 지적받는데, 비슷한 풍경을 자주 다룬 에르만노 올미와 같이 거론되기도 한다.[1]


4. 필모그래피[편집]


년도
제목
연출
각본
제작
비고
1960
이탈리아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L'Italia non è un paese povero



다큐멘터리, 요리스 이벤스와 공동 연출
1962
불타는 남자
Un uomo da bruciare



첫 단독 연출작
1963
결혼의 부조리
I fuorilegge del matrimonio



발렌티노 오르시니와 공동 연출
1967
전복자들
I sovversivi



제2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1969
전갈자리
Sotto il segno dello scorpione




1972
성 미켈레의 수탉
San Michele aveva un gallo




1974
알롱상팡
Allonsanfàn




1977
빠드레 빠드로네
La notte di San Lorenzo



제3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1979
초원
Il prato




1982
로렌조의 밤
La notte di San Lorenzo



제3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1984
카오스
Kaos




1987
굿모닝 바빌론
Good morning Babilonia




1990
밤에도 태양이
Il sole anche di notte




1993
피오릴레
Fiorile



제4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1996
친화력
Le affinità elettive




1998
투 리디
Tu ridi




2001
부활
Resurrezione



TV 영화
2004
루이사 산펠리체
Luisa Sanfelice



TV 영화
2007
종달새 농장
La masseria delle allodole




2012
시저는 죽어야 한다
Cesare deve morire



제6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2015
원드러스 보카치오
Maraviglioso Boccaccio




2017
레인보우: 나의 사랑
Una questione privata




2022
레오노라 아디오[A]
ti politici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5. 기타[편집]


  • 국내에서는 동세대 이탈리아의 감독들 중에서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편에 속한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백두대간 수입사에서 몇몇 작품을 수입해 소개했으며, 2010년대 작품도 두편이나 수입된 편이고, 좌익적 정치 성향이 있어도 동세대 감독들과 다르게 목가적인 감수성이 깃들어 있어 한결 보기 편한 작풍인 것도 한 몫한 듯. 빠드레 빠드로네 같은 경우엔 엄격한 시골 가부장에서의 탈출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성세대 시네필들에게 어필되었다는 감상평들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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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미는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레인보우: 나의 사랑을 제작해주기도 했다.[A] 파올로 타비아니 단독 연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