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 핀토스/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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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5(전)
1985(후)
1986
1987

삼미
6위

후기 4위

6위

전기 6위

후기 7위

7위

전기 7위

후기 5위

태평양





청보 핀토스 1986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3~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청보 핀토스 1986 시즌 성적
순위



승률
1위와의 승차
6 / 7
32
2
74
0.302
36.0

1. 개요
2. 시즌 전
9. 총평
9.1. 타자
9.2. 투수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청보 핀토스의 1986 시즌을 정리한 문서.

2. 시즌 전[편집]


1985 시즌, 구단 인수후 치러진 후기리그에서 4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고, 1985년 시즌이 삼성의 통합우승으로 끝나며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자 플레이오프를 추가해 포스트시즌을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다가 전, 후기리그 2위 팀들에게도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주는 개편안이 실행되면서 가을야구 티켓이 늘어나자 포스트시즌 진출을 목표로 시즌을 준비했다.

우선 당시 야구 해설가로 이름을 알리던 허구연을 감독으로 선임했고, 지난 시즌 골칫거리였던 마운드를 보강하기 위해 지난 시즌 5점대 평균자책점에 KBO리그 한 시즌 최다패를 당하는 등 성적이 크게 하락한 장명부를 방출하고 그 대신 일본 프로야구에서 20승을 기록하는 등 상당한 활약을 했었던 김기태(재일교포)를 영입했다. 그 외에도 난카이 호크스에서 방출된 김신부를 영입하고 MBC와 OB를 상대로 투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는 등 투수진 강화에 초점을 두고 오프시즌을 보냈다.


3. 3~4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청보 핀토스/1986년/3~4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5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청보 핀토스/1986년/5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6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청보 핀토스/1986년/6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7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청보 핀토스/1986년/7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8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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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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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총평[편집]


프로야구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악의 시즌. 신생팀 빙그레로 인해 간신히 꼴찌를 면했으나 그 외의 지표는 매우 처참하다. 청보 핀토스의 1986 시즌과 비교대상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1999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2002 시즌 정도이다. 1986년이 역대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해 청보의 ERA는 3.99로, 압도적 꼴찌이다. 6위 빙그레와 비교해도 0.34 차이로 매우 부진했음을 알 수 있다. 시즌 타율 역시 최악이었는데, 0.219로 꼴찌를 기록하였다.

청보가 투타 모두 꼴찌를 기록하였음에도 실제 성적이 꼴찌가 아니었던 이유는 연장전 또는 1점차 이내의 접전 상황에서의 집중력이 빙그레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청보의 1986 시즌 연장전 성적은 6승 2무 1패로, 7개 구단 가운데 1위를 기록하였다. 7월 19일 엠비씨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승리나 무승부로 마무리지었다. 청보의 1986 시즌 1점차 이내 승률은 0.448로, 0.194를 기록한 빙그레에 비해 2할 이상 높다. [1]



9.1. 타자[편집]


  • 정구선김진우가 그나마 팀의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각각 2할6푼과 2할8푼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 중상위 수준 타자에 속했지만 청보 내에서는 기량이 압도적인 선수들이었다.
  • 권두조는 1984년 삼미 시절과 1985년 괜찮은 활약을 했으나 1986년 들어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수립하였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역대 최저 타율(0.162), 역대 최저 출루율(0.237), 역대 최저 장타율(0.188), 역대 단일 시즌 최저 OPS(0.425)[2] 역대 단일 시즌 최저 WAR(-2.47) 등 각종 지표에서 좋지 않은 기록을 수립하였다.
  • 이선웅은 전해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잠재력을 터트리는 듯 했으나 올해는 1할4푼1리를 기록하며 고꾸라졌다. 다만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는 편이다.


9.2. 투수[편집]


  • 일본에서 합류한 김기태김신부가 청보 핀토스의 핵심 투수로 활동하였으나 각각 ERA 3.18과 3.21로 리그 평균과 비교하였을 때 부진하였다.
  • 최계훈은 청보 핀토스 내에서 유망주로 꼽히던 인물이었으나 1986 시즌 내내 부진하였다.
  • 정은배는 2승 9패를 기록하였고 이듬해부터 불펜 역할을 주로 맡게 되었다.
  • 조병천 역시 1승 6패로 부진하였다. 이 1승마저 청보 다음으로 못하는 팀 빙그레를 상대로 거둔 것이며, 양승관의 석점홈런이 없었다면 1승마저도 없었을 것이다.

10.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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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6년 창단 첫 해 빙그레 이글스는 뒷심 부족으로 인하여 무려 29번의 1점차 패배를 당했는데, 이듬해 1987년 시즌 중반 배성서가 기자들과 말을 나누면서 "으하하하하, 올해는 1점차 패배가 많이 줄었다. 한번 세어 봐, 몇 번 안 된다구" 라면서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을 구기면서 한 기자에게 귀띔하기를, "젠장, 그런데 2점차 패배가 늘었단 말이지..."[2] 이 기록의 2위 박진만과 무려 0.79나 차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