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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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관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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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1998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8번
팀 창단

양승관
(1982~1989)


홍문종
(1990)
LG 트윈스 등번호 44번
김정수
(1986)

양승관
(1990)


나진균
(1991)
LG 트윈스 등번호 85번
결번

양승관
(1991~1992)


장재중
(2004~2005)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85번
결번

양승관
(1994~1999)


김응국
(2006)
SK 와이번스 등번호 80번
박철우
(2000)

양승관
(2001~2002)


박종훈
(2003~200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90번
조용성
(2011)

양승관
(2012)


윤정호
(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88번
채종범
(2012)

양승관
(2013~2018)


채종범
(2019~2022)



파일:파주양승관감독.jpg

파주 챌린저스 단장
양승관
梁承琯 | Yang Seung-Gwan

출생
1959년 6월 2일 (64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인천숭의초 - 동인천중 - 인천고 - 인하대
포지션
중견수, 우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멤버
소속팀
포항제철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2~1989)
LG 트윈스 (1990)
지도자
LG 트윈스 코치 (1991~1992)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1994~1999)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01~200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주루코치 (2003~2004)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05)
SK 와이번스 재활코치 (2006)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 (2007~2010)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타격코치 (2012)
NC 다이노스 2군 타격코치 (2013)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 (2014~2016)
고양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7~2018)[1]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8)[2]
파주 챌린저스 감독 (2021)
프런트
파주 챌린저스 단장 (2020~)[3]
가족
동생 양후승, 동생 양주승[4], 아들 양원혁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BO 리그 초창기 인천야구 역사를 함께한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한 명으로 특히 강견 외야수로 유명했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인천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타자로 각광받았고, 인하대학교 야구부의 창단 멤버로 대학야구 타격왕, 홈런왕을 석권했다. 실업야구 포항제철 야구단을 거쳐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고향인 인천 연고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창단 당시 삼미는 원년 구단 6개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최약체였는데[5] 그 팀에서 유일하게 볼 만한 선수로 평가받았던 인물이 바로 양승관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강견 외야수를 꼽으라면 늘 언급 되는 인물 중 하나인데, 경기 시작전 롱토스로 몸을 풀때 홈플레이트에서 다이렉트로 중앙 펜스를 쉽게 넘기는[6] 무시무시한 강견을 자랑했다. 게다가 송구의 정확도도 대단해서, 엄청난 보살 장면을 밥먹듯 연출했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우익수 앞 땅볼 사건 즉 우익수에서 안타 타구를 잡아 1루로 던져서 우익수 땅볼을 만든 것. 그리고 이 때 타구를 친 선수는 전설적인 도루왕인 해태 타이거즈김일권이었기 때문에 양승관의 어깨가 그야말로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7] 또한 삼성 라이온즈황규봉이 삼미를 상대로 9회 1사까지 완벽하게 막아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뒀으나 양승관이 안타를 치면서 치욕스런 기록을 막을 수가 있었다.

원년부터 1989년까지 팀 이름이 삼미-청보-태평양으로 바뀌는 동안의 역사를 함께 했다. 특히 삼미의 영광과 시련을 중심에서 함께한 선수였는데 1983년 장명부의 가세와 함께 반짝 돌풍을 일으킬 때 3할 타자로서 한몫했고, 1985년 끝이 보이지 않던 18연패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했던 그 순간에도 양승관이 중심에 있었다. 특히 18연패를 끊고 시즌 2승째를 올린 경기 때는 1:0으로 불안하게 이기고 있던 8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MBC 청룡의 에이스 하기룡을 상대로 주자 일소 3타점 3루타를 터뜨리며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다만 청보 핀토스로 이름이 바뀐 이후론 타석에서의 활약이 미비했고, 부진과 여러 부상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결국 1989년을 끝으로 태평양 돌핀스에서 방출 당했다. 이후, 자신의 스승인 백인천이 있던 LG 트윈스로 가서 한 시즌을 더 뛰고 유니폼을 벗는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에는 LG 코치, 이후 연고지의 고향팀인 태평양 타격 코치로 돌아와, 현대 타격 코치, SK 타격 코치, 롯데 외야수비 코치 등을 역임하다가, 롯데 시절 그를 부른 백인천이 백골프로 흑화하면서 해임된 후, 한동안 프로 무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교인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8] 그리고 감독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2012년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감독을 맡아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넥센의 코치진 개편에 따라 2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NC 다이노스의 2군 타격코치로 새롭게 부임했다. 스카우트로 일하던 동생 양후승도 2군 재활코치에 선임되면서 형제 코치가 탄생했다. 2013 시즌 종료 후 NC 다이노스의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한편 동생은 다시 스카우트로 보직 변경.

2016 시즌 종료 후 신진발굴을 위해 C팀 타격코치로 이동하였다.

2018 시즌 NC 타선이 이도형, 김민호 1군 타격코치 체제에서 프로야구 37년 역사상 가장 낮은 65의 wRC+를 4월까지 기록하면서 결국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다. 하지만 2018년 6월 3일 김경문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유영준 단장이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코치진 개편 때 김평호 코치와 함께 스스로 사임하고 팀을 떠났다.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 2020년에 파주 챌린저스의 단장으로 부임했고, 동년 12월 계약 만료된 양승호 전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직을 겸하게 됐다. 2021년 도중 후배인 김사율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다시 단장직만 수행 중이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미-청보-태평양
72
242
.269
65
6
1
8
40
32
3
23
.401
.327
1983
85
278
.302
84
15
2
9
30
41
0
28
.468
.365
1984
36
135
.289
39
13
1
2
17
14
1
10
.444
.338
1985
72
243
.210
51
12
2
5
31
17
0
17
.337
.260
1986
93
303
.205
62
17
0
7
26
29
3
19
.330
.251
1987
33
75
.213
16
1
0
0
5
11
7
9
.227
.298
1988
1군 기록 없음
1989
17
20
.100
2
0
0
0
2
0
0
2
.100
.18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LG
36
38
.289
11
2
0
0
3
6
0
3
.342
.342
KBO 통산
(8시즌)
444
1334
.247
330
66
6
31
154
150
14
111
.376
.304


5. 여담[편집]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김혁이 양승관 역을 맡아 감사용을 비롯한 삼미 선수들을 아니꼽게 생각한 캐릭터[9]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달리 실제로는 삼미의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언제나 선수들을 따뜻하게 독려했다고 한다.

  • 동생인 양후승과 양주승 모두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한 때는 3형제 모두 야구 지도자로 활동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로 아래 동생인 양후승은 고교 야구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고, 양주승 역시 오래동안 아마야구 지도자로 활약했다. 다만, 이들 형제 중에서 선수로서 가장 대성한 것은 큰형인 양승관이다. 양승관과 양후승은 청보 핀토스 선수 시절인 1986년 프로야구 최초의 한 경기 동일 구단 소속 형제 동반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10]


6. 관련 문서[편집]


[1] ~4월 30일[2] 5월 1일~6월 3일[3] 2021년에는 감독 겸 단장.[4] 3형제 중 막내지만 프로 선수 데뷔는 하지 못했다. 대신 모교인 인천숭의초등학교 야구부 감독만 20년 역임했다고 알려져 있다.[5] 단적인 예로 삼미의 원년 선수단에는 국가대표 경력의 선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 인천 출신 국가대표 스타로는 임호균김진우가 있었지만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석했던 관계로 1983년에야 선수단에 합류한다. 실제로 이들과 장명부가 합류했던 83년에 전년도 꼴지였던 삼미가 상위권에 들었다는 점을 보면 당대 프로야구에서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선수의 입지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야구팬들과 언론에서 "슈퍼스타즈에 슈퍼스타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을 자주 써먹었다.[6] 과거 숭의야구장에서 양승관의 워밍업을 본 이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양승관이 던진 공이 큰 포물선을 그리다가 야구장 밖 숭의운동장 주경기장 관중석에 떨어지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7] 여담으로 김일권은 삼미 상대로 홈스틸을 해냈을 정도로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8] 인하대는 2002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암흑기를 보내다가 허세환 감독 부임 후 2012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9] 경기 중 덕아웃에서 야구공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발로 거칠게 걷어차는 장면이 나온다.[10] 이후 같은 팀에서 뛰던 형제가 같은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일이 없었으나 양승관-양후승 형제의 홈런 이후 34년이 지난 2020년 SK 와이번스최정-최항 형제가 한 경기에서 동반 홈런을 터뜨리면서 기록을 이어나갔다. 양승관-양후승 형제, 최정-최항 형제와 달리 서로 다른 팀에서 뛰던 형제가 같은 경기에서 홈런을 주고 받은 기록도 있다. 2015년 LG 트윈스나성용NC 다이노스 나성범 형제가 홈런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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