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존 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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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찰스 존 코프 (고요한, The Rt. Reverend Charles John Corfe)나는 마치 나룻배 한 척으로 전쟁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초대 조선교구장 찰스 존 코프 주교, 그의 술회 중.
성공회 최초의 조선지역 파견 주교이자 초대 조선교구장.
2. 생애[편집]
2.1. 출생[편집]
1843년 5월 14일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 찰스 윌리암 코프(Charles William Corfe)와 어머니 제인 엘리자베스 코더(Jane Elizabeth Coder)사이에서 태어났다.
2.2. 조선의 첫 주교[편집]
이전부터 계속 제기되던 조선 선교가 1883년 한영조약이 체결되면서 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벤슨 대주교는 고교회파 선교단체인 SPG로 하여금 조선 선교를 준비하게 하였으며, 또한 북중국교구장 스코트 주교를 통해 £2500을 전달하면서 한국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3] '주교 없는곳에 교회를 가질 수 없다.'는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벤슨 대주교는 조선과 그나마 가까운 중국과 간접적인 관계가 있던 코프신부를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선임하였으며, 이윽고 1889년 11월 1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주교로 서품받으며 조선 땅으로 출발할 첫 걸음마를 떼게 된다.
2.3. 동역자를 찾아나서다[편집]
조선교구장 주교로 서품받은 이후 코프 주교는 같이 선교할 동역자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액의 선교자금과 무보수라는 조건 때문에 많은이들이 꺼렸다. 1890년 6월 24일 첫번째로 함께 갈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후에 3대 조선교구장이 되는 마크 트롤로프 신부였다. 이후 1890년 7월 25일부터 코프 주교는 미국 9개 도시, 캐나다 8개 도시, 일본 3개 도시를 순회하며 조선 선교에 대한 호의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 순회에서 캐나다성공회 뉴 웨스트민스터 교구 소속 사제인 스몰 신부와 피크 신부를 영입했고, 외과의사 와일스와 내과의사 랜디스 박사도 영입했다.[4] 한편 코프 주교는 1890년 7월 1일부터 조선 선교에 관한 정기 간행물인 모닝캄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2.4. 조선 땅을 밟다[편집]
1890년 9월 3일 조선선교부는 영국을 떠나 조선으로 출발했다. 9월 26일 부산을 경유하여 9월 29일 제물포에 당도하였고, 비로소 조선교구의, 대한성공회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3. 참고자료[편집]
- 《대한성공회 백년사》이재정 저, 대한성공회 출판부, 1990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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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즈베리 대성당에서 태어났다고.[2] 13년 9개월 27일[3] 그 이후에도 연간 일정 금액을 전달하였으나, £1500정도로 매우 빈약하였고, 선교도 일본이나 중국처럼 다양한 선교단체가 아닌 오직 SPG 한 단체만 선교를 지원하는 등 영국에서는 이렇다 할 큰 기대가 없었으나, 이 선교는 제국주의의 팽창의 도구가 아닌 단지 주변국 선교사들의 종교적 열정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의의가 있다.[4] 이 외에도 포우널 부제, 위너 부제, 데이비스 전도사도 영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