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스 팔리하피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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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Chamath Palihapitiya

출생
1976년 3월 9일 (48세)
[[스리랑카|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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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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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캐나다|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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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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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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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벤처 투자자, 기업인, 엔지니어
현직
소셜 캐피털 (CEO)
학력
워털루 대학교 (전자공학 / 학사)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2]

1. 개요
2. 커리어
3. 기타



1. 개요[편집]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캐나다미국 국적의 벤처 투자자이다. 과거 페이스북에서 주요 보직을 맡은 바 있으며, 올인 팟캐스트[3]트위터 비롯하여 TV 방송에서 자주 출연하는 등 왕성한 미디어 활동 덕분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2. 커리어[편집]


학사 졸업 이후 몬트리올 은행, AOL, 메이필드 펀드 등을 거친 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주축 팀 중 하나인 성장팀을 이끌며 VP로서 활동했다. 모바일 시대는 페이스북의 큰 1차 위기였는데, PC와 다르게 스크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배너광고를 넣기 힘들어 수익이 급감했다. 따라서 그의 주도로 페이스북폰과 페이스북홈, 새로운 운영체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했으나, 내부 반대에 못 이겨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규모를 축소시켰고 결과는 폭망이었다. 이로 인해 모바일 주도권을 구글애플에 넘겨주고, 이는 아직까지도 마크 저커버그가 자주 언급하는 후회스러운 순간으로 뽑힌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사했으며, 페이스북은 2012년 3월에 HTML5 기반의 페이스웹을 폐기하고 코드를 새로 짠 뒤, 네이티브 앱을 제작하여 모바일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메타:페이스북>이라는 책에 의하면, 독단적이고 불 같은 성격으로 인해 팀원들과 갈등이 매우 컸으며 항상 배척 당했다고 한다.

퇴사 이후에는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벤처 투자자 활동을 시작한다. 2011년, 소셜 캐피탈이라는 벤처 투자사를 설립한다. 슬랙, Yammer, Box 등에 초기 투자했으며, 2019년 버진 갤럭틱을 시작으로 SPAC 플랫폼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 이 외에도 소파이, 오픈도어 등과의 SPAC 합병이 대표적이다. 다만 2021년부터 미국이 경기둔화 사이클을 맞으면서 본인이 투자한 기업의 수익률도 상당한 낙폭을 겪는다.


3. 기타[편집]


  • 퇴사 이후에는 페이스북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자주 하고, 주활동 소셜 미디어도 페이스북이 아닌 트위터를 애용한다. 단기적인 시각에서 성장과 수익성만을 바라보고 회사를 키운 탓에 가짜 뉴스, 광고 남용, 혐오 컨텐츠, 여론 조작 같은 부작용들이 너무 크게 나타나고 있고, 이를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유저들을 광고주들의 요구에 의해 최적화된 데이터 생성기 정도로 취급했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는 억 단위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 만큼,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던 거대 분야라 기술 윤리성을 상당히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셜 딜레마”를 통해 그의 생각을 옅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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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 시절, 스리랑카를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원래 아버지 직장을 따라서 간 것이었으나, 스리랑카 내전이 발생해서 눌러 앉는다.[2] 호스트로 참여하고 있는 All-In 팟캐스트 주소.[3] 차마스 외에 Launch라는 엑셀러레이터 창업자인 제이슨 칼라카니스, Yammer 창업자 데이비드 섹스, 엔젤투자자 데이비드 프리드버그가 호스트로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