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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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의 정경(正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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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자 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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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헌자 사앙 ||<width=20%>
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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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조간자 조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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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지양자 순요 ||<width=20%>
22대

조양자 조무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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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씨 6대 종주
지양자
知襄子


자(子)

지(知), 순(荀)

요(瑤)
아버지
지선자(知宣子) 지신(知申)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453년

1. 개요
2. 생애
3. 사후



1. 개요[편집]


진(晉)나라 말기의 실권자. 본명은 지요(智瑤).[1] 지씨 가문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지백(智伯) 요(瑤) 혹은 지백(智伯)이라고도 불린다. 시호가 양이라 지양자라고 불려서 이 문서의 제목이 지양자이다. 지선자 지신(智申)의 아들.


2. 생애[편집]


아버지 지신이 그가 재주가 뛰어나서 뒤를 잇게 하려 했으나 친족인 지과(智果)가 그의 인격이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2] 반대했으나 지신은 지요를 후계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 지신이 죽자 그 뒤를 이었다. 한강자 한호(韓虎), 위환자 위구(魏駒), 조양자 조무휼(趙無恤)을 협박해 땅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한호와 위구는 후환이 두려워 들어주었으나 조양자만은 거절했다. 이에 지양자가 크게 분노해[3] 조씨 가문의 중심지인 진양(晉陽)을 포위했다.[4]

진양은 조씨 가문이 민심을 사놓고, 또 성벽이 든든하고 물자가 넉넉해 쉽게 함락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 지양자는 수공을 썼다. 그리하여 진양성에 물이 들어찼다. 그러나 조양자의 군사 장맹담이 몰래 한강자와 위환자를 설득해 지백을 치고 진나라를 3개로 나누어 가지자고 해서 오히려 지백을 들이치게 하니 지백은 역관광을 당했다.[5]다굴에는 장사 없다. 그리고 지양자는 패해 죽고 그 일족은 몰살 당했다.[7][8] 그리고 그 땅은 조씨, 위씨, 한씨가 각기 나눠 가졌다. 이것은 진출공 20년(기원전 455년)의 일이었다.[9]


3. 사후[편집]


지백이 죽은 뒤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뼈를 술잔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기에는 음기(飮器)라고 기록되어있는데, 학자마다 그 뜻을 다르게 풀이했는데, 위소(韋昭)는 술 마시는 도구라고 했고, 진작(晉灼)은 소변 누는 그릇이라고 했다. 여씨춘추에도 오줌 그릇이라 되어있다.

비록 지요는 횡포를 부리고 조씨에게 패해 죽었지만, 인재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중항씨와 범씨의 연합 정권을 섬기던 사(士) 신분의 예양(豫讓)을 알아보고 대단히 중용했다고 한다.[10] 그 예양은 지백이 죽자 달아난 뒤 조양자에게 그 원수를 갚기 위해 2차례나 암살 시도를 벌이나 결국 두번 다 실패해 죽게 되었고, 죽기 전에 조양자에게 부탁해 조양자의 옷을 받아 그것을 3번 찌르고 자결했다고 한다. 진(晉)나라의 식자들은 그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지씨 세력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지씨 중 위에 언급한 지과만이 홀로 살아남아 성을 보(輔)로 바꿔 보과(輔果)로 살아갔다.
[1] 원래 씨를 적용해서 순요(荀瑤)라고도 한다.[2] 아주 근거없는 말만은 아닌듯한게 조양자 조무휼이 조씨를 물려받기 전 지양자에게 굉장히 괴롭힘을 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술을 뿌리고 구타하고 모욕했다고(...) 심지어 지가 조씨 종주도 아닌 주제에 조씨에게 조무휼을 폐하라고 권했다. 물론 이미 조무휼의 자질을 알아본 조간자는 무시했다. 다만 이 점을 보면 어쩌면 지양자도 조간자처럼 조무휼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제거하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묘하게 조무휼만 괴롭히거나 끝내는 조무휼을 잡으려다 자기가 당한 것을 봐도 그렇고... 거기다 예양의 일화를 보듯 지양자는 사람 보는 눈은 있던 것으로 보이니 예양처럼 조양자 역시도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3] 사실 지양자와 조양자의 악연은 조간자 생전부터 있었다. 그 때는 조양자가 참고 넘어갔지만 이때는 조양자가 조씨의 당주쯤 되었기에 그냥 넘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4] 참고로 진양은 현 타이위안으로 조양자 전대의 조가의 종주인 조간자 시절에 세워진 도시다.[5] 앞서 보았듯 한씨와 위씨는 이미 지씨에게 땅을 뜯긴 상황이라 지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씨가 망해봐야 좋은건 지씨 뿐이었다. 실제로 조양자도 한씨와 위씨에게 "우리 망하면 다음은 당신들 차례" 라고 설득했다. 게다가 어차피 지씨도 조씨도 서로 싸우느라 힘이 빠져 있었으니 한씨와 위씨 입장에서는 조씨를 도와줘도 별로 힘을 안 빼도 되고 그 다음에는 막판에 도와준거를 근거로 조씨와 함께 지씨의 땅을 사이좋게 냠냠할 수 있다. 그러니 조양자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한씨와 위씨가 솔깃할 타이밍에 딜을 건 것이고 한씨와 위씨도 나름대로 좋은 타이밍에 지씨를 쳤다고 볼 수 있다.[6] 한강자와 위환자의 신하들에게까지 땅을 준다면, 결국 두 사람의 세력만 커지는 일이 될 테니까.[7] 상술했던 지양자의 친족 지과는 한강자와 위환자의 변심을 눈치채고, 지양자에게 두 가문을 먼저 치든가, 아니면 한강자의 총신인 단규와 위환자의 총신인 조가에게 만호의 땅을 주고 그 주인들을 설득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양자가 땅 욕심이 나 둘 다 듣지 않자, [6] 지과는 일이 글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지과는 그날로 지양자와 연을 끊고 자신의 가족들만 데리고 떠나 성을 보(輔)씨로 바꿨다. 그래서 지씨 일족들이 멸족하는 가운데 그들은 멀쩡할 수 있었다. [8] 다만 살아남은 지씨도 있었고 이들은 주로 서쪽의 진나라로 망명했다.[9]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지양자의 지씨는 한씨, 위씨, 조씨의 협공에 망했지만 한때는 지씨도 이들과 협공하여 다른 가문을 몰아낸 바 있다. 지양자의 할아버지인 지문자가 위씨, 한씨와 함께 조간자를 도와 중항씨와 범씨를 몰아낸 바 있기 때문.[10] 흥미롭게도 예양이 섬기던 그 중항씨와 범씨를 멸한건 지요의 할아버지인 지문자였다. 이 때문에 조양자가 전에 섬기던 주인들을 너의 주인이 죽였는데 누군 따르고 누군 안 따르는게 말이 되냐고 따지자 예양은 중항씨와 범씨는 자신을 범인으로만 대했지만 지씨는 자신을 선비로 대했기에 자신 또한 선비로서 보답하려는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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