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시나/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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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존 시나WWE아이콘으로 군림하면서 수많은 선수들과 대립한 적이 있고, 그 중에서도 명대립으로 수많은 라이벌들을 만들었다.

존 시나와 더불어 아이콘이라 불린 헐크 호건, 브렛 하트, 스티브 오스틴 등은 시대의 라이벌로 각자 붙거나 혹은 당대 최고의 레슬러와 라이벌리를 이뤘다면, 존 시나는 데뷔 이후부터 숱하게 많은 대립을 가졌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상도 올라가면서 WWE의 기록적인 라이벌 캐릭터들도 양성해냈다. 국내 WWE팬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언급되는 선수라면 랜디 오턴, 에지, CM 펑크, 데이브 바티스타등이 꼽힌다.


2. 존 시나 vs 랜디 오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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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TLC에서 펼쳐진 통합 챔피언쉽[1] TLC 매치를 앞두고 나온 Tale of the Tape.

WWE 내에서도 팬들과 수뇌부가 가장 지지하는 라이벌리로 OVW 수련생 시절부터 만나 대립을 이뤘던 관계이다.[2][3] 이 둘의 첫 메인쇼에서의 경기는 의외로 RAW 위클리쇼에서 개최되었었다. 당시에도 아니 이런 드림매치 대진을 왜 위클리쇼에서 소진하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

존 시나를 탑페이스로 성장시킨 악역이 JBL이라면, 아이콘으로써 라이벌리를 자랑하는 상대가 바로 랜디 오턴이다. 한 쪽은 RAW, 한 쪽은 스맥다운의 최고 유망주였고, 대비되는 부분이 많은 두 사람의 대결은 스토리라인도 탄탄했다.[4] 다만 하도 좀 우려먹어서인지 TLC에서의 통합타이틀전이 확정되었을 때는 사람들이 좀 지겨워하기도 하였다.[5] 한창 대니얼 브라이언이 크게 지지를 받던 상황이기도 해서 관중들도 집중을 잘 하지 못하였다.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 랜디 오턴과 존 시나의 라이벌리 매치를 모아 업로드 했고, 현재 전적은 14:8로 시나 우세이다.

이런 오랜 라이벌리와는 별개로 3살 터울이지만 절친이기도 한데, OVW 시절 둘이 경기를 했을 때 심한 감기로 콧물을 계속 흘린 오턴이 그만 시나의 몸에 콧물을 묻히게 됐으나 시나가 불평 없이 경기를 마치자 존경심을 가졌으며, 바디빌더 경력이 있는 시나로부터 몸을 만드는 방법도 배웠다고 한다. 랜디 본인은 훗날 명예의 전당에 간다면 존 시나가 헌액해주기를 바랄 정도다.

3. 존 시나 vs 에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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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오턴 다음으로 큰 지지를 받았던 라이벌리로 에지와 존 시나의 대립이다.

2006년 무적 선역 기믹으로 압도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던 존 시나를 패배시킨 에지이며, 쓰러트린 방법도 머니 인 더 뱅크를 이용하여 체력이 빠진 시나를 기습하여 이긴 것으로 에지의 기회주의자 기믹에도 어울리며, 무적 선역이었던 시나의 패배에도 당위성을 부여한 대립이었다. 이후 둘은 WWE 챔피언십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놓고서 2006년부터 2011년 에지의 1차 은퇴까지 숱한 대립을 해왔다. 이 대립을 통해 이전까지 끽해야 하이미들카더 정도였던 에지는 탑 메인 이벤터이자 탑 힐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에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극의 기회주의자 기믹도 손에 얻게 되었다. 존시나와 랜디오턴의 라이벌리가 강력한 1인자 - 2인자의 관계라면 존 시나와 에지와의 라이벌리는 절대 선역 영웅과 아치에너미와의 관계에 가깝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존 시나에게 패배하는 시나리오 때문에 에지의 단일 챔피언 보유기간이 길지 못하다는 것[6] 그래도 서로 투닥이면서도 서로를 리스펙하다보니 2012년 당시 브록 레스너가 복귀하면서 시나와 갈등을 빚을 때 시나가 해메이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에지가 화를 내면서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2006년 당시 사다리 꼭대기 위에서 3단 테이블을 향해 AA를 먹일 정도로 강렬했던 싸움꾼인 그는 어딨냐며 이 업계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돈만 먹을 생각을 품고 건성투성이의 마음으로 복귀한 그를 슛으로 씹는 등 시나를 격려하는 현실 세그먼트를 보여줄 정도로 시나의 라이벌이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4. 존 시나 vs CM 펑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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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펑크의 파이프밤 이후로 벌어진 명대립으로, CM 펑크가 몇 번의 신랄한 마이크웤을 통해 시나가 엄청난 푸쉬를 받으면서 더 이상 언더독 선역이 아니라 압도적인 위상을 갖춘 뉴욕 양키스와 같은 존재로 거듭났음을 지적한다.[7] 이에 대해 시나도 전과는 사뭇 다른 대응을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존 시나의 대립 방식과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대립 중 하나.[8] 거기다 둘이 맞붙은 경기 자체도 매우 수준이 높았는데, 펑크는 물론이고 시나도 펑크와 경기할 때는 수어사이드 다이브, 파워밤 등 기존에 쓰지 않던 고난이도 기술을 적극 사용하고, 심지어 파일드라이버 접수까지 해줬다. 무려 5성이나 받았던 WWE 머니 인 더 뱅크(2011)에서의 경기는 당시의 대립 내용과 감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채 감상하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이후에 펼쳐진 경기들은 그런거 모르고 봐도 상당히 재밌는 경기들이 많다. 아예 믿고 보는 경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본 라이벌리는 WWE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이전까지 무개성 무적 선역으로 군림하던 존시나의 캐릭터성에 상당한 입체감을 부여하였으며 되도않는 언더독을 자처하던 존시나가 이 대립 이후 몇 년 뒤 스스로가 WWE를 대표하는 탑독이자 강력한 베테랑임을 자처하며 후배들을 양성할 수 있는 기초 토대가 되었기 때문. 또한 시나의 캐치프레이즈인 Never Give Up과 Rise Above Hates와도 잘 맞아 떨어지게 되어 결국엔 매니아들의 큰 리스펙트를 얻게 되는데 상당한 공헌을 한 라이벌리였다. 일단 본 라이벌리부터가 리얼리티 에라의 시작이었기에 WWE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대립.

CM 펑크 역시 존 시나와의 라이벌리 이후 434일 WWE 챔피언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존 라우리나이티스라는 공적을 상대로 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이어가게 되었고 사적으로도 그를 인정하며 좋은 관계를 지닌 등 리얼리티 에라를 이끈 수장들로서 원만한 사적관계를 보여주었다. 이후, 빈스 맥마흔에 대한 불만과 WWE 메디컬 팀에 대한 갈등으로 WWE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떠날 마음을 품고 있을 무렵인 2013-2014년의 시기에 자신은 완전히 챔피언십 전선에서 배제되며 TLC에서 시나가 랜디와 맞붙을 때 통합 챔피언십 벨트를 두고 슬래미 어워즈에서 세그먼트를 가지던 도중 애드리브로 대니얼 브라이언과 돌프 지글러를 샤라웃하면서도 CM 펑크를 지명하며 2011년 대립 당시 모두가 CM 펑크의 챔피언십 경기를 반대할 때 자신의 눈엔 당시 CM 펑크의 슬로건이자 별명인 Best in The World(세계에서 업계 최고인 사람)만이 보였다며 그와의 경기를 치룰 것을 뚝심있게 받아들였다고 리스펙트를 해주자 목 메인듯 감동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후에도 WWE 탈퇴 후 WWE를 씹을 때 시나를 내버려두며 비난을 딱히 하지 않는 등 현재에도 그를 좋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5. 존 시나 vs 데이브 바티스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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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의 완벽한 세대교체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라이벌리. 둘의 제대로 된 만남은 WWE 로얄럼블(2005)에서 최후의 2인으로 남았을때 부터 시작한다.[9]

이 때 각본상 우승자는 바티스타였으나 역대급 방송사고[10]이후 메인이벤터에 오른 둘은 RAW에서 바티스타가 트리플 H를 상대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올랐고, 존 시나가 JBL을 상대로 WWE 챔피언에 오르게 되며 WWE 역사상 가장 깔끔하고 확실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둘의 메인이벤트 챔피언의 위치가 바뀌어 바티스타는 스맥다운의 탑페이스로 존 시나는 RAW의 탑페이스로 활약하게 된다.

이 시기에 스맥다운 vs 로우 시리즈에서는 각각의 탑 페이스로 둘을 커버 이미지로 올렸고, 때로는 브랜드가 달라도 협력하는 사이였지만 2008년에 바티스타가 RAW로 드래프트 된 후로 우발적인 상황이 생겨 WWE 섬머슬램(2008)를 시작으로 맞붙게 되었다.

이후 악역 바티스타와 선역 존 시나의 대립이 제대로 이뤄진 것은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2010)에서 빈스 인 더 뱅크 이후의 대립이었다.

이후 레슬매니아 26에서 대립한 둘은 그 다음 PPV인 WWE 익스트림 룰즈(2010)WWE 오버 더 리미트(2010)에서 I Quit 매치까지 치르게 되고 이 경기에서 패배한 바티스타는 이후 은퇴를 선언한다.[11]

둘의 경기합은 꽤 잘 맞는 편이라 경기 퀄리티도 대체로 준수한 편.

[1] 승자는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한다.[2] 존 시나존오공, 랜디 오턴랜지터라고 불릴만큼 둘의 위상은 매우 강력했지만 동시에 1인자와 2인자 라이벌리에 가까웠다.[3] 그리고 나이, 경력 등 많은 면에서 이 둘은 공통점이 많다. 반면 다른 라이벌인 에지, 펑커, 바티스타는 시나와 공통점 자체는 거의 없다시피하다.[4] 2004년에 발매된 스맥다운vs로우의 인트로 영상에서도 각 브랜드 대표로 존시나와 랜디오턴이 맞붙는 영상으로 시작된다. 둘 다 단순 유망주였음에도 당시엔 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드림매치급 라이벌리였다. 다만 이들의 메인쇼에서의 첫 경기는 맥빠지게도 PPV도 아닌 RAW 위클리쇼에서 치루어졌다.[5] 그도 그럴 것이 이 둘이서 이 마지막으로 맞붙었을 땐 시나의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기 전이다보니 여전히 매니아들이 시나를 좋아하지 않았었다.[6] 에지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과 WWE 챔피언을 합쳐 총 11번에 챔피언에 올랐으나 전부 합쳐 보유기간은 400일 남짓이었다. 그 중에서 존 시나와의 대립에서 벨트를 잃은 것이 4번이다.[7] 사실 일찍이 매니아들이 엄청나게 싫어하던 몇 년 전부터 이미 존시나는 언더독이 아닌 탑독이었다. 방송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을 뿐이었다.[8] 시나는 이후 아예 대놓고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으며 등장한 적이 몇 번 있다.[9] 사실 원래는 바티스타를 세대 교체의 주역을 내세우려고 한게 아닌 랜디 오턴을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내세우려고 하였으나 랜디 오턴의 행실 및 턴페이스의 부작용으로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면서 바티스타가 세대교체의 주역이 되었다.[10] 우승자인 바티스타가 실수로 존 시나와 같이 링 밖으로 떨어져서 무승부 처리가 될뻔한 걸(심지어 바티스타의 다리가 바닥에 먼저 닿았다) 즉석에서 존 시나가 기지를 발휘해 내가 이겼다!는 포즈를 먼저 취했고 이를 빠르게 눈치를 챈 RAW쪽 심판과 스맥다운쪽 심판들이 각자 자기브랜드의 선수들이 이겼다고 판정하는 등 아슬아슬한 애드립이 이어진 끝에 겨우 수습하였다. 이 와중에 빈스 맥마흔은 이 상황을 수습하러 나오다가 매우 큰 부상을 당하였다. 퇴장할 때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다.[11] 이후 바티스타는 영화판과 종합격투기판을 전전하다 2014년, 2018년~2019년에 한 번씩 복귀하지만 각각 어소리티와 vs 트리플 H라는 더 중요한 각본이 있었기에 시나와 더 이상의 대립은 없이 은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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