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대군사 사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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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

파일:2039AD26-F62F-443D-A9DD-41644735E4B7.jpg

이름
조비
배우
리천
1. 개요
2. 행적
3. 평가
3.1. 묘사에 대한 긍정적 의견
3.2. 묘사에 대한 부정적 의견
4. 성격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군사 사마의에 등장하는 조비.

1부 군사연맹의 사실상 진 주인공이자 위나라의 마지막 불꽃. 작중 주역인 사마의와 함께 1부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인물로, 사마의, 조조만큼이나 복잡한 속내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1부 전반기의 사건은 조비와 조식의 후계자 자리다툼이 주된 갈등이기에 자연스레 사마의만큼의 비중을 차지한다.


2. 행적[편집]


관직은 오관중랑장으로, 궁중의 여러 대문을 지키며 숙직을 담당하는 자리다. 다른 형제들이 제후의 직위를 얻을 동안도 오관중랑장 자리에 머물며 조조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아우들, 특히 조식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미 당대의 재사로 유명한 양수가 조식의 최측근으로 자리한 상황에서, 자신 역시 참모가 필요함을 깨닫고 사마의를 끌어들이고자 노력한다. 끝내는 그를 얻는 데에 성공하지만, 정도를 걷는 것에 집중하는 사마의의 진언에 답답해 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거기에 작중 조비가 처음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은 감정적일 때가 많다. 따라서 대국을 넓게 보지 못할 때도 있기에 사마의의 조언에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막상 해당 상황에 처하면 충실히 조언을 따른다. 달리 보면 수하의 충언을 귀담아 듣는 자세를 가진, 좋은 군주의 재목.

조비의 위치는 장자로서, 당대에 당연시되었던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수많은 문무대신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1]. 반면 조식은 아버지인 조조의 적극적인 응원을 등에 업었다. 조조가 조식을 총애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이에 조비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세자 자리를 노리지만 이는 결국 아버지와 싸운다는 길을 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건이 잘못하면 처벌하지 않으셨겠지만,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저는 처벌하셨을 것"이라 일갈하는 것이 조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조비 내부에서는 계속 스스로를 괴롭히는 동력. 기존 삼국지와는 다르게 견씨도 조비가 택한 것이 아니라 조조가 정해준 것이었다. 조조는 큰아들의 아내로 포로를, 총애하는 셋째 아들의 아내로는 당대 최고의 가문 중 하나인 최씨 가문의 여식을 들인 것이다[2]. 여기에 조비는 견씨와 잘 지내려 했으나 그녀가 대놓고 조식을 마음에 드러내고 있음을 보이며 사이가 멀어졌고 견씨의 눈치없는 행동들이나 여러 오해들이 겹치며 냉대하게 되면서 서로 정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곽조(후일의 문덕황후)를 곁에 두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3]

이처럼 드라마 내내 조비는 조조에게 트집 잡히고 공격당한다. 조조가 한때나마 아꼈던 신하들을 잃는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조비를 수세 속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넣는데도 조비가 되려 납작 엎드려 이 모든 사태는 자신의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조조에게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것을 청한다. 조비의 이러한 점이 조정 중신들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 못마땅한 조조는 그렇게 중신들의 환심이나 얻으려하다간 한번의 실수로 오히려 그들로부터 위선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도리어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조비는 일견 그런 조조를 원망하면서도 그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계속 갈구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사마랑을 구하기 위해 조식의 사면을 요청해 달라는 사마의의 청을 들어주고자 조조에게 찾아가는데, 그때 작중 처음으로 조조에게 따뜻한 말을 듣고 크게 동요되기도 한다. 결국 세자책봉서를 받기 전, 업에서 일어난 난을 제압했음을 보고하며 아버지에게 칭찬을 듣자 "처음으로 부왕께 칭찬을 들었다."며 눈물을 흘린다. 격려하는 조조의 손을 붙잡고 한동안 놓지 못하기도 한다. 결국은 승리하고, 위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선양까지 일사천리.[4]

조씨 일족들의 대화에서 "점점 선왕(조조)을 닮아간다."는 평을 듣는데,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조진에게도 터놓고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이는 사마의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사마의의 구품관인법을 채택하고 통과시켜 친족 세력들의 힘을 빼놓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마의를 활용한다. 동시에 사마의의 친족들의 힘을 억누르고서 황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게 되는 것까지는 막고자 백령균을 사마의의 첩이자 첩자로 들여놓는다. 아버지의 유언인 "사마의는 이제 네 벗이 아니라 수하여야 한다."는 말을 철저히 지키지만, 사마의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이런 사마의와의 관계는 조비가 갈등 끝에 견복에게 사약을 내리면서 깨지고 만다. 사마의는 견복에게 내려진 사약을 보자마자 바로 조예에게로 달려가 그를 등에 업고 문덕황후에게 데려간 뒤, 문덕황후를 어머니라 부르라 강요한다. 이를 통해 조예는 '죄인의 자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황위 계승자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게 되나, 조예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으려던 조비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결국 사마의는 파직되어 고향인 온현으로 내려가게 된다.

2부 호소용음에서는 첫 화 대부분의 분량을 가져간다. 낙양에서 허도로 천도하려다 허도의 동문이 까닭없이 무너져 불안함을 느끼고는 다시 낙양으로 되돌아가는데, 1부 후반부부터 피를 토해왔던 조비의 병색은 이미 완연해져 있다. 자신과 모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벗인 사마의를 향한 그리움이 짙어만 가, 길에서 밭 매던 농부마저 사마의로 착각할 정도. "모든 벗에게 서신을 보낸 적이 있으나 사마의에게만은 그러지 않았다."며 편지를 쓰려다가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만한 글귀를 고르지 못했고 자신과 사마의가 부강하게 만든 이 나라가 그 증표인데 새삼 이런 것을 쓸 필요도 없었다고 말하며 결국 붓을 내려놓는다. 차기 황제가 될 조예로 하여금 사마의를 복권시키도록 하여 사마의의 충심을 그리로 돌리려 하나, 문덕황후의 요청에 따라 사마의를 부르게 된다. 안전을 확보하고자 급포까지 파견하는 것은 덤. 그러나 끝내 사마의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조예의 황태자 자리를 확고히 하며 나라를 부탁한 후, 조진, 조휴, 진군과 아직 오지 못한 사마의 네 사람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사망한다.

"보았느냐, 싸움은 시작되었다. 저들이 싸우게 내버려 두어라. 저들이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너에게 충성하도록 저 네 명을 적절히 쓰되, 압박을 가하거라. 고된 일이 될것이다."[5]

마지막 4번째 보정대신으로 온현에 귀향간 사마의를 호명하자 항의하는 조진과 싸늘해진 조휴, 진군을 보며 태자 조예에게,




▲ 호소용음 인물예고 조비 편.

병색이 완연한 가운데 사마의가 출사의 예를 다하는 것을 보는 조비의 장면에서 사마의에 대한 작중 조비의 끈끈한 군신의 정을 엿볼 수 있다. 1부 초중반 즈음 조조가 먼저 간 순욱의 환영을 똑같이 보는 장면이 있는데, 조조ㅡ순욱과 조비ㅡ사마의의 묘한 대비가 느껴진다. 가장 신뢰하던 군신관계와 주군이 신하의 환영을 본다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주공보다 먼저 죽은 신하(조ㅡ순), 신하보다 먼저 죽는 주군(조ㅡ사마)이라는 차이가 있다.


3. 평가[편집]



3.1. 묘사에 대한 긍정적 의견[편집]


조조의 장자로서 1화부터 출연해서 사마의와 엮이면서 1부 내내 상당한 비중을 지닌다.

조식과 치열한 후계자 경쟁을 펼치며 이를 위해 사마의에게 접근하여 그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고, 끝내 그를 얻는데 성공하였으나 정도에 충실한 사마의의 진언에 답답해하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사마의의 조언을 따르고 후에는 그의 조언들이 옳았다고 인정한다.

원전에서도 가후나 오질의 진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모습과 같이 수하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여 조조에게 제왕의 자질이 있다는 평도 받았다. 하지만 그뒤에도 계속해서 조식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조조의 압박에 내내 시달리며 고생 한다. 양수가 죽은 뒤 조조에게 인정 받을 때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을 들어본다며 눈물을 흘릴 정도.

조조는 조식이 자신에게도 없는 어진 면모를 지니고 있다며 조식을 후계자로 삼고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조식은 이런 아버지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조비는 장자로서의 입지와 신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후계자 싸움이 치열했던 것.

이렇게 아버지와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간절함이 있었고, 조식과 관련해서도 형제간의 갈등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감정을 느껴오다 조식의 칠보시를 듣고는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을 흘린다.

아내인 견씨 역시 치열한 후계 경쟁 동안 내내 조식만 편을 드는 등 믿을 이가 거의 없었고, 이는 조비가 곽조에게 빠지는 요인들 중 하나가 된다.

허나 양수가 말했듯이 이런 조식의 선량함은 정치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고, 조조도 "아비가 죽으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면서 안타까워 할 정도였던지라 점점 조비에게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결국 조조는 임종 때 조식에게 "네겐 군왕의 자질이 없었지만 내 욕심으로 너를 힘들게 했다"는 말을 하며 조식에게 사과한다.

즉위한 후 우금을 분사시키거나 진언하는 신하들을 좌천시키는 등의 일화는 나오지 않는데 유비가 자신의 참칭을 반대하는 신하들을 잡아죽이거나 좌천시킨 것이 나오지 않고 대의를 위해 즉위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사마의가 주인공이니 만큼 사마의가 진군과 함께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에 집중하는 이야기 전개이고 적벽대전이나 관도지전 등은 가볍게 넘기며 사마의와 그 주변에 집중하는 밀집도 높은 이야기 전개를 해왔던 작품이기 때문에 딱히 이상할 건 없다.

원전에서 조비가 사사로운 이유로 핍박했던 조홍을 본작에서 악역으로 만든 부분은 확실히 조홍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애초에 조홍도 식객들이 사고를 치거나 하는 부분을 관리를 하지 못 했고, 이것 때문에 조홍의 식객을 엄정히 처리한 만총이 조조의 치하를 받는 등의 문제들이 있었고, 조비가 조홍을 처벌하려 했던 일의 발단이 된 문제도 이것이었기에 조비의 비중이 큰 본작에서 조홍을 악역으로 만든 것도 제작진에서 생각 없이 한 것은 아니다.

또한 정의를 조홍과 똑같은 반열에 두려는 의견도 있지만 조비가 정의의 부마건을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정의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언급이 되었던 것이고, 애초에 후계자 싸움 끝에 조비에게 해를 입었다고 해서 정의를 악역으로 묘사하면 안 된다거나 정의가 선인이라는 건 지나친 비약이므로 조홍과 같이 언급될 바가 못 된다.

그리고 애초에 위에 언급했던 것들도 형주공방 당시 위나라 단독으로 관우와 붙는 것은 조조 입장에서 자신 없는 일로 설정된 것이나 2부에서 제갈량의 용병술 등에 관한 묘사이나, 학소가 제갈량에게 진창성을 빼았기는 부분 등과 같이 그냥 이야기 전개를 위해 필요한 창작물의 설정이나 각색으로 보면 될 일을 촉나라 인물이 아니거나 조비이기에 고깝게 봐서 트집을 잡으려고 나온 쪽에 가깝다. 아래 쪽과 같은 방식으로 따지고 들면서 조비가 미화된 것이나 편을 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특히 제갈량이 학소 잡은 것은 미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왜곡 창작 수준이나 마찬가지고 학소가 무덤에서 뛰쳐나와도 할 말이 없는 수준. 그냥 작품의 설정이나 각색이라고 보면 되는 일이다.

2부 1화에서는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나온다.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벗인 사마의를 향한 그리움이 심한 상태였으며 "모든 벗에게 서신을 보낸 적이 있으나 사마의에게만은 그러지 않았다."며 편지를 쓰려다가, 자신과 사마의가 부강하게 만든 이 나라가 그 증표인데 새삼 이런 것을 쓸 필요도 없었다고 말하며 결국 붓을 내려놓는다.

이후 사마의, 조진, 조휴, 진군을 보정대신으로 명하고 조예에게 "너와 네 어미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태후를 잘 모셔야 한다는 말을 남긴 뒤, 사마의가 출사의 예를 갖추는 환영을 보며 눈을 감는다.


3.2. 묘사에 대한 부정적 의견[편집]


실제 역사에서 조비는 원희의 아내였던 문소황후(견복)의 미모를 보고 사랑에 빠졌고, 조조는 그런 조비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둘을 결혼시켰다. 그리고 소설 삼국지연의도 이런 역사서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본작에서는 이 일을 조비는 견복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조조가 둘을 권모의 수단으로 결혼시킨 것 마냥 왜곡하여 이 일의 책임을 모두 조조에게로 돌려버렸다. 본작의 이런 묘사는 소설에서조차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묘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일은 그 당시 시대상에서도 매우 비판받던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대상에서는 별 문제 없는 행위였으면 또 모를까 당시에도 비판받던 악행에 대해 묘사하면서 적어도 절반의 책임을 져야하는 아들[6]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모든 책임을 아버지에게로 전가하는 이런 각색은 윤리적 측면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실제 역사에서나 본작에서나 이후 조비는 문소황후를 죽이게 되는데, 조비가 애초에 마음없는 결혼을 했다는 이런 거짓 각색은 조비가 문소황후를 죽이는 일을 감싸주는 묘사가 될 수 있다. 특히 본작에서는 견복이 조비 앞에서 대놓고 조식을 감싸는 등 조비와 견복의 사이가 나쁜 것이 견복의 잘못으로 보이게 하는 묘사가 종종 나온다.

참고로 나무위키에서 역대 미디어 중 가장 조비를 미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진삼국무쌍에서 조차도, 실제 역사 그대로 조비가 견희를 보고 첫 눈에 반해서 아내로 삼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게임만도 못한 수준의 조비 미화.

이 정도로도 모자라 조비가 자신의 다른 부인들과 자식들은 제쳐두고 문덕황후(곽조)만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로 묘사한다. 이는 실제 역사를 따져보면 당연히 거짓이지만 극 내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조비가 견복과는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없다는 거짓 설정이 있고 조예가 조식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설정도 있으니 견복과 조예를 예뻐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부인들과 자식들까지 홀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처음에 조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문소황후지 문덕황후가 아니다. 문소황후에 대한 총애가 식은 후에도 다른 부인들을 모두 총애하였지 문덕황후만을 총애한 적은 없다. 또 조비는 수많은 여인들에게서 무려 9명의 아들을 얻었다. 이것이 지금은 비판받을 행위일지 몰라도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현대의 시청자들에게 조비를 매력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실제 역사와도 맞지 않고 시대상과도 맞지 않는 설정을 둔 것이다. 애초에 많은 첩을 들이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많은 첩을 들인 사람이 한 여자만 바라본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된다. 조예가 문덕황후를 증오하는 이유를 표현하기 위함일 수는 있지만 첩을 많이 들이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상을 무시한 묘사인 것.

게다가 조비가 헌제의 딸들을 첩으로 들인 것은 그 당시에도 비판받는 행위였는데, 이것도 헌제의 딸들을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받아들인 것처럼 왜곡한다. 그리고 헌제의 딸들마저 악인으로 왜곡해 버린다. 특히 실제로 문덕황후가 조비의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것이 조비가 문덕황후을 사랑한다는 거짓 설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헌제의 딸들 때문에 문덕황후가 유산하고 다시는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되었다는 억지 설정을 넣는다. 하지만 문덕황후가 조비의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해서 조비가 문덕황후를 총애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아이의 유무를 총애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면 조비가 문덕황후만을 총애한다는 판타지 같은 설정은 두지 않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사마의가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조비의 여성편력에 대한 변명과 조비의 여자 중 한 명이 아이가 없었던 이유에 대한 변명 때문에 스토리가 늘어지게 된 것이다.

또 본작에서 조비는 군왕의 자질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 조식은 그렇지 못한 인물으로 나오는데 그 이유로 조식의 선량함이 정치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든다. 하지만 선량함이라는 것은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왕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라 볼 수 있다. 진수가 조비를 평가하며 특히 인간성 부분에서 비판을 많이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당시에도 군왕의 자질을 평가할 때 인간성이라는 것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 선량함은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조비와 비교해 조식을 폄하하는 거짓 묘사일 뿐이다. 게다가 조비와는 달리 조식은 군재가 없었던 시인 정도로 묘사되지만 조식은 실제로는 군재도 뛰어난 편이었다.

조비가 사사로운 원한으로 죽이려 한 조홍은 굉장히 너프된 묘사를 받으며 조홍을 죽이려 한 이유도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묘사된다. 물론 조홍과 그 빈객들의 행실이 좋지 않았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조홍을 악인으로 볼 여지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조비가 조홍을 죽이려 했을 때 대신들이 대부분 조홍의 편을 들고 조비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즉 조홍이 악인인지 아닌지를 떠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조홍이 조비에게 당한 처분은 대다수의 신하가 조비의 편을 들지 않고 조홍의 편을 든 조비의 일방적인 갑질이었다는 것이다. 조홍을 악인으로 보는 관점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명백히 조비가 잘못한 일까지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좋지 못하다.

조비가 일족까지 몰살시킨 정의 또한 비슷한 대우를 받는데 정의는 조홍보다 억울할 것이 없다는 말이야말로 완전히 어불성설이다. 조홍과 그 빈객들은 역사서에서 간간히 사고를 치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정의는 그런 점도 없다. 조홍은 빈객문제로 보아 악인으로 볼만한 근거라도 있지 정의는 그런 근거 자체가 부실하다는 뜻이다. 즉 조홍보다도 더 억울한 묘사를 받은 것이 정의이다. 그리고 정의가 조식의 편을 들게 된 것은 조비가 정의의 혼사를 순전히 못생겼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방해하고 청하공주를 무능한 호색한인 자신의 친구 하후무와 결혼시켰기 때문이지만 본작에서는 이런 조비의 암적인 면모는 보여주지 않고 정의를 악인으로 각색하여 조비를 위한 변명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조비 미화 때문에 선악 이분법적인 묘사가 늘어나서 극의 퀄리티가 하락하게 된 것.

게다가 조비의 이런 치졸한 짓을 감싸주기 위해서인지 본작은 삼국지에서 무능한 인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하후무마저 버프를 시켜준다. 하후무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무능한 인물이라 나무위키 하후무 문서에서는 하후무를 삼국지 인물 중 가장 역사왜곡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본작의 하후무 묘사 앞에서 그런 평가는 무색해진다.

위에서 언급된 것 외에 조비의 수많은 악행과 실패는 사실상 다루어 지지 않는데,[7] 이 점에 대해서 사마의가 주인공이니 조비의 악행을 적당히 덮어준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지의 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마의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1부에서는 조비를 주인공급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저런 논리는 조비라는 인물이 비중이 없을 때나 성립하는 것이지 조비가 비중이 높을 때는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조비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긍정적인 모습만 비중있게 다루고 부정적인 모습은 전혀 다루지 않는데 이것을 미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조비는 오나라 정벌을 자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이를 이루기 위해 신하들의 반대는 모조리 묵살하며 매년 오나라와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때문인지 조비의 재위기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중요한 사건임에도 본작에서는 조비의 오나라 정벌 실패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조비가 죽을 때 위나라가 굉장히 부강한 국가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는 조비가 매년 군사를 일으키며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국력을 낭비했다는 것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엉터리 묘사일 뿐이다.

또 본작에서 조조와 조예는 사마의를 비열하게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본작에서 조씨들은 기본적으로 사마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조, 조예와 같은 포지션이라 할 수 있는 조비는 이들과는 달리 사마의를 비열하게 견제하는 역할에서 빠지고[8] 이는 극중에서 주인공인 사마의의 운신이 자유로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결론적으로 극의 긴장감이 완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조비의 비열한 면모를 각색한 것이 극 내적으로 바라봐도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주인공인 사마의도 본작에서 조비 정도의 수혜는 받지 못했으며 사실상 1부의 진 주인공은 조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조비 미화를 보여준다.

긍정적 의견에서 조조가 관우를 두려워한 것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과 조비를 미화한 것을 비교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도 조조는 관우가 북진하자 이를 두려워해서 하북으로 천도하려고 했었다. 실제로도 조조는 관우를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정도를 오버해서 표현했다고 해서 조조가 부당하게 겁쟁이로 폄하된 것은 아니고 관우가 부당하게 군신으로 찬양받은 것은 아니다. 이런 각색이야말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각색의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과한 각색을 지적하면 촉빠니 조비까니 운운하는 것은 진영논리에 불과하다.

또 조비가 미화되었다 치면 제갈량은 더하다고 주장하며 학소의 일을 드는데, 제갈량과 조비 둘 다 수혜를 받았으면 말 그대로 둘 다 수혜를 받은 것이지 제갈량이 조금 더 수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보다 조금 덜 수혜를 받은 조비는 미화된 것이 아니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논리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모두 간파 당하는 등 꼭 수혜만을 받은 것도 아니며 실제로도 최고의 명사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조비의 경우 무능하고 성격 더러운 인물로 평가 받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의 많은 실책 모두가 생략당하며 군왕의 자질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제갈량이 조비보다 수혜받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묘사는 학소가 무덤에서 뛰쳐나와도 할 말 없는 수준의 역사왜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면서도 비판하지 않고 그냥 창작물의 설정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창작물의 각색은 그냥 보면 될 일이라는데 창작물은 무슨 각색을 하든 비판없이 그냥 봐야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허구적 사실을 그린 다른 드라마나 소설과 달리 사극은 실존했던 인물,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그 해석은 그 사건의 실제 성격과 인물들의 실제 행적, 사료 등에 의해 제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당장 우리나라 사극만 봐도 실존했던 단체의 실제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은 설정이 있었고, 이를 시청자들이 비판하자 제작진은 그러한 의견을 수렴하여 가상의 단체로 수정하였다. 즉 드라마가 드러내고 싶은 주제의식이 무엇이든 그것은 가상의 인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그 인물의 실제 행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설정을 두는 것이 비판받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대중은 사극을 통해서 역사를 받아들이며 결코 모든 시청자가 사극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극은 그 어떤 장르의 드라마보다 각색에 신중해야 한다. 본인과 다른 이런 생각도 존중해야지 창작물의 각색은 그냥 봐야한다는 본인의 생각만이 옳고 객관적이라 주장하며 과도한 역사왜곡에 대한 비판을 집요하게 지우려고 드는 것이야말로 좋아하는 작품의 과도한 역사왜곡을 남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에 가깝다.


4. 성격[편집]


일반적인 조비 이미지와는 다르게 싸이코스러운 면모가 전혀 없다. 오히려 대범한 편. 다만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환장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긴 한다. 특히 정(精)에 대해선 누구보다 의심이 많고 질투가 심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오관중랑장 시절부터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던 탓에 이렇게 된 것.

이러한 모습은 부인인 견복곽조를 대할 때 확연히 드러나는데, 곽조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이면서, 견복과는 동생 조식과의 관계를 의심해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면서 살벌한 관계를 유지하다, 조식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견복의 모습을 본 조비가 분노해 그에게 사약을 내리며 결국 파경으로 끝난다. 비록 견복을 사사하긴 했으나 한평생 견복의 마음을 얻고 싶어 했던 조비에게, 죽는 순간까지 조비를 저주하는 말을 내뱉고 죽은 견복의 마지막 모습은 조비의 마음 속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고, 이는 조비가 일찍 사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5. 관련 문서[편집]



[1] 그 중에는 동생 조식의 장인인 최염과 조조가 총애하는 신하인 순욱도 끼어있다.[2] 이는 조식이 견복을 마음에 두는 것을 안 조조가 의도적으로 행한 것으로, 이를 통해 조식에게 경쟁심을 부추기려 했으나 정작 그렇게 된 건 조비...[3] 곽조를 후처로 들인 데에는 사마 가문을 감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4] 사실 조조는 조비가 더 합당한 군왕의 재목임을 알고 있었다. 극 초반 조비가 조조가 의대조 사건에 연루된 양수를 살려 두는 이유를 간파하고 이참에 사마의도 조정에 출사시켜 사마 가문과 양수의 가문을 적절히 이용해 가문 간 충성 경쟁을 유도하자는 진언을 올리자 조조가 제법이구나 하고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미소를 지으며 조비를 내려다 보는 장면이 있다. 이 때 이미 권모를 쓰는 명민함을 갖추고 조정의 절대적 지지까지 얻는 조비를 조식을 왕위로 점찍고자 한 조조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서서의 형주행 사건에서 조비가 급포를 잡아 올리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게 되니 아버지 조조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고 급포를 잡지 못하면 교사부 직 수행 능력의 부족을 조정의 중신들에게 공표하는 셈이 되는 이도 저도 아닌 난처한 상황에서 조비가 허도의 시장 바닥에 인의라는 깃발을 내걸고 급포의 자수를 호소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는데 이 때 조조에게 불려가 인의로운 처결을 하면 아버지의 관대함에 모든 백성이 감읍할 것이라고 하자 조조가 이를 비웃으며 "백성들이 감읍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의 인덕이겠지."라고 맞받아치는 데서 조조가 조비를 경계하는 태도가 매우 잘 드러나 있다.[5] 조예에게 남긴 유언. 조비는 조조를 닮았던 것이었으며, 후일 조예는 제 어미를 죽인 아버지의 유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행보를 보인다.[6] 말이 절반이지 범죄로 대입하면 엄연히 조비가 주범, 조조가 공범(혹은 관점에 따라 교사범)인 사건이다.[7] 그나마 위에서 언급된 것들도 조비를 위한 수많은 변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적어도 본작에선 이런 조비의 행위들이 악행으로 보이지는 않는다.[8] 조비도 사마의를 감시하는 역할로 을 보내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은 극 중에서 조조와 조예가 사마의를 괴롭히는 방식에 비하면 아주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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