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노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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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범행
2.1. 발견된 사체와 용의자의 정체
2.2. 1차 살인
2.3. 2차 살인과 도주
2.4. 용의자 검거
3. 방송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97년 6월 30일 조경용역업에 종사하던 80대 노인[1]과 같은해 7월 12일 슈퍼마켓 주인인 노인이 40대 남성에게 폭행, 살해당한 사건. 이 문서는 신문기사 및 KBS 공개수배 사건25시의 방송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2. 범행[편집]



2.1. 발견된 사체와 용의자의 정체[편집]


1997년 7월 5일, 충북 제천경찰서에는 충청북도 제천시 천남동 제천조차장역 인근 빈집에 사람이 죽어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제천경찰서 형사들은 그곳에서 한 노인의 시신을 발견하였는데, 사건현장은 제천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외딴 집이라는 점에서 용의자는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과 피해자가 70대 이상의 노인으로 추정된다는 점, 현장에 피묻은 돌이 발견된 것을 보아 돌을 이용해 살해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만한 소지품 등이 없어 제천, 단양, 원주 등지의 가출자들과의 지문을 대조한 끝에 발견 이틀 만에 피해자의 신원이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사는 노인 황치배(사건 당시 82세)[2]로 밝혀졌다.

그렇게 원주의 황 노인의 집을 찾아간 경찰은 황 노인의 부인으로부터 일주일 전쯤 집에 자주 드나들던 '박 씨'라는 남자가 제천에 있는 사슴목장에 취직시켜준다며 데려갔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황 노인의 부인의 진술을 통해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하였다. 그후 황 노인이 원주의 한 공사장에서 받은 수표를 가지고 나갔는데 그 수표가 없어진 점에 착안, 황 노인이 받은 수표를 추적하여 '양호섭'이라는 이름으로 이서된 사실을 확인하고는 수표가 입금된 원주시 학성동의 한 슈퍼를 찾아가 용의자의 몽타주를 보여주자 슈퍼 주인은 근처 동네에 사는 남자라고 말했다.

이후 탐문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사체발견 2주 만인 1997년 7월 19일에 용의자는 경기도 양평군 출신의 박종수(사건 당시 43세)[3]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황 노인의 부인을 찾아가 박종수의 사진을 보여주고는 집에 찾아오는 남자가 맞다는 진술을 확보하였으며, 6살 때부터 껌팔이 등을 하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20살이던 1974년 충북 음성에서 절도죄를 저지른 것을 시작으로 사건 발생 3년 전 경기 남양주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수배가 내려지기까지 원주와 여주, 남양주 등지에서 총 7건의 사기, 절도전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2. 1차 살인[편집]


황 노인이 위탁, 관리하던 농장이 매물로 나오자 피의자 박종수가 농장을 사겠다고 황치배 노인을 찾아갔는데, 그후 두달 동안 황 노인이 사는 집을 찾아다니며 노부부의 환심을 샀다. 그렇게 노부부와 친하게 지낸 박종수는 1997년 6월 30일 오후 4시경 황 노인에게서 금품을 훔칠 목적으로 찾아가 자기가 아는 형님이 제천에서 큰 사슴 농장을 운영한다며 취직을 시켜 주겠다고 속인 뒤 그날 저녁 황 노인과 함께 기차를 타고 제천으로 향한다.[4]

그후 제천시 천남동 제천조차장역에서 내려 황 노인을 인근 빈집으로 데려간 뒤 돌변한 박종수는 황 노인을 마구 때리다가 반항하자 커다란 돌로 머리와 가슴을 내리쳐 숨지게 한 뒤 호주머니에서 현금 30만원, 수표 한 장을 빼내 달아났다. 그날 밤 11시, 박종수는 다시 원주로 돌아와 평소 알고 지내던 윤락녀 박 양을 만난 뒤 그녀의 휴대전화 연락처를 이용해 훔친 수표를 사용했으며, 다음 날 아침 7시에 뻔뻔하게 피해자의 집에서 아침식사까지 하면서[5] 피해자의 배우자에게 잘 지내고 월급도 60만원이나 받는다고 거짓말까지 쳤는데 피해자가 용돈이 필요하다고 통장과 도장을 달라고 요청까지 했으나 피해자의 부인은 어딨는지 잘 모른다고 하면서 결국 도장과 통장을 얻는 건 실패했다.[6]


2.3. 2차 살인과 도주[편집]


황 노인의 사체가 발견되고 일주일 뒤인 1997년 7월 12일, 황 노인 살해현장에서 300m가량 떨어진 한 슈퍼마켓에서 슈퍼마켓 주인인 권운용 씨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현장은 도난당한 물건이 없어 강도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은 적었으며, 평소 권 노인은 가족관계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가 원만했기에 주변 인물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용의점을 찾지 못하였으며, 일주일 전 황 노인 살인사건 현장이 가까이에 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 연관성이 있을거라 판단했다.

그러던 중 권 노인의 산책코스가 황 노인의 살해현장 인근을 지나간다는 점에서 권 노인이 박종수의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 또는 박종수가 범행을 저지르고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으며, 황 노인의 부검 당시 황 노인은 살해 직전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박종수가 황 노인과 함께 슈퍼마켓에서 술을 마신 후 범행을 저지른 뒤 피해자와 같이 있었다는 걸 은폐하기 위해 1997년 7월 12일에 목격자이자 슈퍼마켓 주인인 권 노인도 살해하고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게 박종수를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박종수가 사창가를 자주 드나든다는 점과 중앙선 열차를 자주 이용하면서 이 일대 지역의 목장이나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점[7]에서 청량리와 원주, 제천 일대의 사창가와 중앙선 밤열차를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이어가던 중 중앙선의 중간 기종점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새로운 제보를 받게된다. 박종수가 1997년 8월초,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목장에서 3일간 일을 하다가 잠적했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양호섭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것, 그리고 일하던 중 오른손 약지 한마디가 잘렸다는 제보를 받는다.[8]


2.4. 용의자 검거[편집]


용의자 박종수는 도피 6개월째인 1998년 상반기 중요 지명피의자 종합수배 고유번호 7번, 죄명 '강도살인'[9] 용의자로 수배되었고[10] 도피 11개월째인 1998년 5월 28일 기차를 타고 가다가 방송을 기억하던 한 승객의 신고로 경기도 양평군에서 붙잡혀 충북 제천경찰서로 인계된 뒤## 이튿날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이후의 정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계획적인 살인까지 그것도 2명이나 살해했으니 무기징역이나 사형 선고를 받았을확률이 굉장히 높다.


3. 방송[편집]


1997년 8월 26일 MBC 경찰청 사람들 202회 용의자를 찾습니다에 공개수배되었으며 다음해 KBS 2TV 공개수배 사건 25시 1998년 3월 11일 방영분에서도 수배했다.[11] 경찰청 사람들의 경우 피해자의 이름은 김도건으로 가명 처리되었으며 범인에 의해 입막음 당한 목격자이자 슈퍼마켓 주인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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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BC 경찰청 사람들에선 60대로 오기되어 있다.[2] 1915년 7월 15일생[3] 1954년 2월 26일생. 상체가 길고 다리가 짧으며 팔자걸음을 걷는다.[4] 황 노인의 집이 있는 지정면과 가까운 만종역에서 기차를 탔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참고로 지정면에 위치한 서원주역은 2012년 9월 25일에 개통하였으며, 이후 중앙선 서원주-제천 구간 이설에 따라 2021년 1월 5일부터 만종역에는 중앙선 열차가 정차하지 않게 되었으며, 원주역 역시 학성동에서 무실동으로 이전하였다.[5] 여기서 더 어이없는 것은 밥 두 그릇을 먹었다.[6] 박종수가 황 노인의 통장을 얻는다한들 황 노인이 사망한 시점에서는 비밀번호를 알아낼 방법이 없기에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7] 박종수가 범죄를 저지른 지역은 최초 범행지역인 충북 음성을 제외하고는 중앙선 열차 선상 또는 그 인근 지역이었다.[8] 공개수배 사건 25시 방영 당일에도 안동시의 한 양돈단지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9] 당시 사용된 명칭은 강도치사. 수배전단 상 강도살인이라는 죄명은 2002년부터 사용되었다.[10] 당시 2번은 동일 혐의(살인)로 최초 수배된 박래현, 4번은 신안 예비신부 살인사건 용의자 정효실이었다(박종수와 같이 공개수배 사건 25시 1998년 3월 11일 방영분에서 수배됐다.).[11] 공개수배 사건 25시 방영 당시 신안 예비신부 살인사건도 함께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