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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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葛京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촉한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행종(行宗)[1]으로 제갈첨의 차남, 제갈상의 동생.

263년에 등애종회가 이끄는 위군의 공격으로 촉이 멸망하자 264년에 조카뻘 되는 제갈현과 함께 하동으로 이주했으며, 진태시기거주에 따르면 태시(泰始) 5년(269년)에 내린 조서에서 조부인 제갈량이 그 마음과 힘을 다하고 부친인 제갈첨이 국난이 일어날 때 의롭게 죽었다고 해 천하의 착한 일이라 했고 제갈경은 재주가 있어 리(吏)를 역임하다가 미현의 현령이 되었다.

산도는 그 조부인 제갈량과 부친인 제갈첨이 촉에 있으면서 천명에 통달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다해 일했다고 하면서 제갈경에 대해서는 미현을 다스려 칭송을 받았으니 동궁사인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천거하면서 사람을 섬기는 도리를 밝히고 양주, 익주에 관한 논의를 돕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제갈경은 그 지위가 강주자사에 이르렀다.[2]

현존하는 제갈량의 직계 후손들은 모두 제갈경의 후손이다. 제갈현의 할아버지 제갈교양자이고 제갈량의 친자는 제갈첨 한 명뿐이었으며, 제갈첨의 장남 제갈상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고 차남 제갈경만이 후사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제갈씨의 시조인 제갈충은 제갈경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2. 창작물에서[편집]


진삼국무쌍6에서는 성도 공략전에 등장해 중편에서 남동쪽의 다리로 이루어진 잔도가 있는데, 잔도에서도 남쪽에 있는 파군 남채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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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자는 '종사를 (대신) 행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쪽으로 해석한다면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야 했던 장남이 죽으면서 뜻하지 않게 가문을 잇게 된 차남'인 그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 된다. 원대 판본에는 중종(仲宗)으로 나와있다.[2] 여기서 말하는 강주는 291년에 형주양주(揚州)에서 이할시킨 군들로 신설한 주(州)로 현재의 강서성, 절강성, 복건성 일대다. 익주에 파군 강주현(江州縣)이라는 한자까지 완전히 똑같은 지명이 있고 여기가 삼국지 시리즈에 개근하는 지역이라 인지도가 있는데다가 제갈경이 하필 촉한 출신이여서 헷갈릴 수 있는데 촉 쪽이 아니다. 오히려 삼국시대에는 손오 관할이였던 지역이다. 여기서 느낄만한 점은 제갈량의 손자는 현령, 자사고 그 라이벌이였던 사마의손자는 그 자사를 다스리는 황제라는 것이다. 다만 제갈경이 자사가 된건 사마충 시절이다. 사마의가 최후의 승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는 일이지만 이후 사마의의 자손들이 팔왕의 난, 영가의 난로 거의 몰살당한 것 보면...오히려 제갈경이 승자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