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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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의 3대조인 국조 원덕대왕의 왕후.
시호는 정화왕후, 그 외는 기록마다 전부 다르다.
2. 각종 기록[편집]
정화왕후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고려세계>에 기록된 《태조실록》, 《편년통록》, 《편년강목》, 이제현의 <논평>, 이 네 가지다. 이 중 《편년통록》과 《편년강목》은 같은 설화를 담고 있어 사실상 세 가지 기록밖에 없다.
《편년통록》과 《태조실록》, 《왕대종족기》, 《성원록》[1] 의 내용 모두 《고려사》에 실려있다. 《태조실록》, 《왕대종족기》와 《성원록》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고려사》 <고려세계>엔 이렇게 기록이 이상하다보니 태조 왕건의 조상에 대해선 역사기록이 없어 상세하지 않다고 명시했다.
국조(고려) 문서를 참고하면 좋다.
2.1. 태조실록[편집]
고려가 제작한 《태조실록》엔 국조의 비로 나온다. 그외 기록 무.
2.2. 편년통록 - 편년강목[편집]
고려 태조 신성대왕의 증조할머니로, 의조의 어머니. 정명왕후(貞明王后)라고도 불린다.
설화에선 이름이 진의(辰義)라고 나온다.
《편년통록》에선 진의의 아버지가 국조 보육, 어머니가 덕주이다. 덕주는 진의의 큰아버지 이제건의 딸로 진의의 어머니는 진의의 사촌이기도 하다.
진의는 당숙종과 결혼하여 작제건을 낳았다.
《편년통록》에 실려있는 작제건 설화에 따르면, 당나라 숙종이 보육의 집에 머무를 때 그의 두 딸을 보고 아름다움에 반해 옷을 꿰매 달라고 하였다. 보육은 이전에 술사가 했던 말[2] 을 기억하며, 이가 틀림없는 귀인이라 생각하고 딸과 인연을 맺어주기로 했다.
큰딸은 밖에 나가 없어 작은딸 진의가 옷을 꿰매 주어 인연을 맺고 아들을 낳으니 바로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인 의조 작제건이다.
2.3. 이제현 논평[편집]
이제현은 《왕대종족기》, 《성원록》을 인용해 보육과 국조 원덕대왕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제현은:
1. '보육성인(寶育聖人)'이란 사람이 이름 모를 딸을 낳았다.
2. '당숙종(唐肅宗)'이 이 딸과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았다.
3. 이 아들이 바로 국조 원덕대왕이며 그의 아내는 '정화왕후'이다.
4. 그래서 '의조'는 정화왕후의 아들이다. 그러니 정화왕후는 '태조'의 증조모다.
사실 이제현의 주장대로 하면 얼추 맞는다. 당숙종이 태조의 직계 조상이란 설화는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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