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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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육군훈련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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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20%> 초대
김종갑 ||<width=20%> 2대
이성가 ||<width=20%> 3대
함병선 ||<width=20%> 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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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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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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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대
김문범 || 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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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근 || 44대
장종대 || 45대
이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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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 4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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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하 ||
|| 51대
서상국 || 52대
구재서 || 53대
김인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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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제21보병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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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식 ||<width=20%> 제2대
백남권 ||<width=20%> 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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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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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대
이재희 || 제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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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구 || 제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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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영일 ||
|| 제21대
고용복 || 제22대
이준 || 제2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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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
|| 제26대
강기창 || 제27대
권일상 || 제28대
엄항석 || 제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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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 제31대
황영수 || 제32대
강한석 || 제33대
장준규 || 제34대
정항래 || 제35대
안수태 ||
|| 제36대
김혁수 || 제37대
황병태 || 제38대
장현주 || 제39대
이상렬 || 제40대
남진오 ||




정남기
Chung Nam-gi

파일:정남기(갑종 182기·63년 임관) 101993.jpg}}}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63년 ~ 1999년
임관
갑종 182기
최종 계급
소장
최종 보직
육군제2훈련소장
주요 보직
육군교육사령부 전력개발부장
제21보병사단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군인. 최종 계급은 육군 소장이며 제21보병사단장과 육군제2훈련소장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광주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갑종 182기로 임관했다.

대령 시절 제39보병사단 참모장, 육군제2훈련소 29교육연대 연대장, 육군교육사령부 전투교리처장을 역임했다. 준장 진급 후에는 제32보병사단 작전 부사단장과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을 역임했으며, 1993년 소장으로 진급 후 제21보병사단장, 육군교육사령부 전력개발부장, 건군기념사업단 군외사업부장, 육군제2훈련소장을 역임했다.


3. 여담[편집]



  • 21사단장 재임시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단 전부대원들의 전투요원화를 지향했다. 그 일환으로 사단 직할대 소속 장병들의 전투능력 향상을 위한 병공통과제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행하고 이를 사후측정하여 관리하였다. 또한 사단 직할대 소속 장병들에게 혹한기의 GOP 환경을 체험하고 백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동료애, 자부심을 함양할 수 있도록, 매년 1월과 2월에 65연대와 66연대가 담당하고 있던 GOP 전선에 교대로 투입하여[1] GOP에 투입된 소초원들과 함께 생활하고 경계근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 21사단장 재임시 평소 엄정한 군기를 유지할 것을 간부들과 병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였으며, 전임자인 서충일 소장의 갑작스런 보직해임[2]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21사단을 정상화시키고 모든 장병들이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성공적인 지휘활동을 수행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1994년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 육군훈련소장 재임시 훈련병의 아버지 200여 명을 초청하여 2박3일 동안 훈련병인 아들과 함께 내무생활도 하고 똑같이 훈련도 받게하는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했었다. 당시 언론보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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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할대 별로 날짜를 조정하여 소규모 분대급 인원을 편성한 후 완전군장 행군으로 GOP 소초에 도착한 후 열흘정도 공동임무 수행 후 다시 완전군장 행군으로 자대 복귀하는 형식이었다. [2] 사생활과 관련된 투서가 청와대에 접수되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최전방의 전투사단장을 투서 하나 때문에 보직해임시킨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보다는 서충일 장군이 하나회의 핵심 멤버라는 점에서 김영삼 정부의 군내 사조직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군개혁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이 보다 설득력있다. 당시 언론보도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