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커/선수 경력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장지커





1. 개요[편집]


탁구 선수 장지커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2010년[편집]


자국 리그에서는 2008년부터 날아다녔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조금 이후인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최상급 기량을 뽐냈다. 실상 프로 투어에서의 성적은 다른 중국 최고 선수들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1]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왔고 신예 선수들한테도 패배하여 프로 투어에서 자주 광탈하는 모습을 보였다.[2] 그래서 ITTF랭킹 1위기간이 동세대 라이벌인 마룽이나 쉬신, 그리고 전 세대 중국 챔피언들인 왕리친, 마린, 왕하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탁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들인 메이저대회(월드컵,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의 성적은 매우 훌륭하다. 중요한 경기에서 비로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룽에게 상대전적이 밀릴 때에도, 왕하오와 쉬신에게 세계랭킹이 밀릴 때에도 이들을 상대로, 특히 큰 경기에서 매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China Trials 결승전에서 마룽을 상대로 명경기 끝에 승리하며 우승했다. 2010년 월드컵 결승전에선 왕하오를 상대로 공격미스를 연발하며 패배했다.

3. 2011년[편집]


세계선수권에서 왕리친과 티모 볼을 잡고 결승에 진출했다. 탁구 역대급 경기력을 보여주던 마룽을 그에 못지 않게 역대급 경기력으로 누르고 올라온 왕하오가 다시 결승전에서 장지커를 만났다. 경기는 충분히 박빙이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장지커의 날카로운 서브와 공격이 빛났고 왕하오는 4강전에 비해 훨씬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세트 스코어 4:2로 장지커가 왕하오를 이기고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유명한 유니폼 찢기 세리머니가 바로 이 대회 우승 후에 나왔다. 이때부터 왕하오와 장지커의 눈물나는 악연이 시작되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다시 왕하오를 만나 2판을 진 상태에서 눈부신 경기력으로 4판을 연속으로 이기며 세트 스코어 4:2로 승리하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4. 2012년[편집]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였고 준결승에서 독일의 디미트리 옵차로프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다시 왕하오였다. 치열했던 1세트를 제외하면 장지커가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으며 세트 스코어 4-1로 왕하오를 이기고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3]이로서 장지커는 왕하오가 커리어 내내 이루지 못한 올림픽 단식 금메달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2년이 채 안 되는 초 단기간에 달성해버렸다.

5. 2013년[편집]


세계선수권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쉬신과의 준결승전에서 그야말로 침착함의 끝을 보여주며 4:0으로 승리해 자신의 경기력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왕하오를 만났다. 결과는 세트스코어 4:2로 또 다시 장지커의 승리였다. 장지커가 2세트를 연속해서 이기고 왕하오가 한 세트를 따내 세트 스코어가 2:1이었던 4세트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7:1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장지커가 백핸드 상회전 싸움을 내리 승리하며 결국 14:12로 역전해 내 세트 스코어 3:1을 만들었다. 왕하오도 5세트에서 뛰어난 경기력으로 게임을 따내며 6세트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6세트 경기 스코어는 장지커 5:7 왕하오인 상황, 왕하오도 좋은 랠리를 펼쳤으나 엣지로 인해 장지커가 포인트를 따서 6:7이 되었고, 그 후 장지커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5점 연속 득점을 해 6세트는 결국 11:7으로 장지커가 승리하고 2번째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나고 장지커는 왕하오와 악수한 후 이번에는 올림픽 때에 비해서 보다 진심으로 웃으며 장지커를 축하해주는 대인배 왕하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쏜살같이 관중석으로 달려가서 가족들 앞에서 환호를 받으며 표효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 세리머니엔 이유가 있는데, 이때가 처음으로 가족들이 경기장에 직접 와서 자신을 지켜보면서 응원한 경기였다고 한다. 이 경기 전까지 장지커는 경기 집중에 방해가 될까봐 부모님이 경기장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2014년[편집]


뒤셀도르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룽과 붙었는데, 이는 처음으로 그의 최대 라이벌인 마룽을 메이저대회 결승전에서 만난 것이다. 누구 하나 양보하는 모습이 없는 팽팽한 경기였으나 마지막 순간에 결국 장지커가 상대전적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룽을 상대로 승리하며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의 최대 라이벌인 마룽이 큰 대회에서는 다소 약하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었고 장지커는 그의 그랜드슬램 업적이 왕하오가 마룽을 잡아줬기 때문이라는 비아냥과 비판을 줄곧 받아왔었다. 그간 장지커가 마룽을 상대로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장지커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제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2인자 이미지가 강했었다. 그 후 앞서 설명한 2014년 뒤셀도르프 월드컵에서 장지커와 마룽은 드디어 처음으로 국제 그랜드슬램급 대회에서 만났고 세간의 관심이 이 경기에 쏠려 있었다. 결과는 장지커의 4-3 승리였다. 듀스 상황에서 장지커는 마룽의 서비스를 과감하게 백핸드 치키타로 마룽의 빈 포핸드 공간을 공격적으로 공략한 반면 마룽은 장지커의 서비스를 이도 저도 아닌 불확실한 리시브로 듀스 게임 두 개를 모두 장지커에게 내준 것이 가장 큰 패착이였다. 이 경기 후로는 장지커가 마룽을 만나지 않아서 운이 좋았다라는 과거의 비판을 잠재웠고 장지커의 실력을 회의적으로 보던 매스컴도 역시 큰 경기는 장지커라며 장지커의 메이져 대회 우승 기록의 꾸준함과 위대함을 인정했다.

7. 2015년[편집]


세계선수권 준결승전에서 중국 팀 동료인 팡보 선수를 만났고, 비록 어깨부상이 있었다곤 해도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눈에 띄는 경기력 차이로 팡보에게 패배했다.

8. 2016년[편집]


폼이 다시 올라와 쿠웨이트 오픈 결승전에서 마룽을 상대로 승리했다. 또한 Chinese Trials 에서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 다른 쟁쟁한 중국 선수들 대신 올림픽 대표로 뽑혀 올림픽 단식과 단체전에 전부 출전했다.

8.1.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편집]


단체전 4강전에서 한국 팀과 붙었고 선봉으로 출전했다. 마룽을 고전시켰던 정영식을 만나 1세트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허리를 의식하는 등 고전하다가 5세트까지 간 끝에 3-2로 역전승했다. 복식에선 쉬신과 함께 활약, 정영식-이상수 조를 접전 끝에 3-0으로 누르고 중국 팀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독일을 3:1로 이기고 온 일본과 단체전 결승 3게임에서 쉬신과 복식으로 출전하여 일본의 니와 코키-요시무라 마하루 페어를 세트스코아 3:1로 승리하였다. 다음 단식은 마룽이 출전하여 우승을 결정지었기에 단체전 결승전에선 단식으로 출전할 기회는 없었다.

단식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마룽이 상대였던 결승전에선 팽팽했던 1세트를 제외하면 그 어느 때보다 명백하게 실력차이가 났다. 어느 쪽이 이기던 둘이 붙었으니만큼 최고의 명경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조금은 허무하게 0:4로 패배하며 은메달을 차지했다. 사실 장지커가 첫 세트는 접전까지 밀어붙였으나 첫 세트를 패배하고 난 뒤부터는 마롱이 완전히 페이스를 잡으며 마롱이 그야말로 인생경기를 펼쳤다. 마롱은 이날 장지커를 그야말로 압도하며 2010년 때부터 지속된 마롱 vs 장지커 라이벌 구도를 승리로 마감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꾸준히 지속돼왔던 장지커의 지속된 부진[4] 때문에 애당초 개인전 결승전도 가기 힘들 것이라 예측하던 세간의 회의적인 시각을 깨고 개인전 결승전까지 무난하게 도달했다는 점, 그리고 단체전에서 미즈타니 준에게 목덜미가 잡힌 쉬신과는 달리 마롱을 가장 많이 고전시킨 대한민국의 정영식을 상대로 강철 멘탈을 보여주며 승리해 넌차이니즈한테 결국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지커는 중국 국가대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9. 2017년[편집]


4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린가오위안을 잡고 4강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전에서 판전둥을 만나 1:3으로 패배했다. 2017년 6월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대한민국의 이상수에게 힘싸움에서 밀리며 1:4로 패배해 32강에서 탈락해버렸다. 그리고 이 이후부터는 부상으로 인해 아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어 항상 최상위권이었던 세계랭킹이 50위 밑으로 내려갔고 조금 지나선 아예 150위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10. 2018년[편집]


5월에 열린 홍콩 오픈에서 예선전은 무난히 승리하는 모습이었지만 32강에서 일본의 요시무라 마하루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3:4로 패배했다. 이어지는 중국 오픈에서도 32강에서 최연소 괴물 선수 하리모토 토모카즈에게 0:4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하지만 2018년 6월 일본 오픈에서 결승전에 진출했다![5] 이 대회에서 마룽을 꺾은 하리모토 토모카즈와의 결승전에서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이며 풀세트 접전까지 갔으나 경기 중에 허리통증이 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고, 7세트의 2번째 듀스 상황에서 자신의 롱서브는 읽혀서 공격미스를 하였고 마지막에 하리모토의 롱서브에는 리시브 범실을 하며 아쉽게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분명히 이길 기회가 있었기에 더더욱 아쉬운 패배였다.[6]

얼마 후 장지커는 Euro-Asia Championships이라는 대회에서 요나단 그로스와 바스티안 스테거를 상대로 승리했다. 사실상 이 대회가 한 시대를 풍미한 장지커라는 선수의 마지막 빅 대회에서의 모습이었다.[7]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22:47:40에 나무위키 장지커/선수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ITTF월드 투어 우승 횟수는 각각 마룽 28회, 왕리친 21회, 마린 20회, 쉬신 18회, 왕하오가 13회인 것에 비해 장지커는 6회의 우승을 달성했다.[2] 프로 투어에서 성적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들, 장지커가 우승한 6개의 프로 투어 결승전 상대는 각각 마린, 티모 볼, 마룽, 쉬신이라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자들이었고, 이 중에서 마룽만 3번 잡고 우승했다. 하지만 장지커도 그랜드 파이널에서 마룽에게만 4회 연속으로 탈락한 바 있고 마룽은 그랜드 파이널 우승 횟수만 총 6회인데 비해 장지커는 0회 우승이라 3대 메이저 대회 외적인 부분에서 장지커와 마룽은 차이가 심하게 많이 나긴 한다.[3] 경기가 끝나자마자 장지커는 쏜살같이 달려가 시상식 자리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하였고 바로 돌아와서 왕하오와 감동적인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왕하오는 웃지만 울고 있다...[4] 어디까지나 중국 국가대표 기준, 그리고 장지커 기준에서 부진이다. 장지커는 실제로 2015년과 2016년에 넌차이니즈에게 번번히 패배하며 불안한 경기력을 드러냈으나 가장 중요한 2015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넌차이니즈에게 패배하지 않고 4강까지 도달해 동메달을 수상했으며 2016년 단체전 세계선수권에서도 넌차이니즈에게 패배하지 않았다. 만약 이때 넌차이니즈에게 패배했다면 아무리 장지커를 애지중지하는 류궈량 감독이라도 장지커를 판젠동과 쉬신 대신에 리우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5] 사실 티모 볼과의 준결승전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티모 볼 선수가 목 통증을 이유로 기권해 부전승으로 결승에 올라갔다.[6] 하지만 이 대회 전체 기간 동안 하리모토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대단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매우 굉장했고, 장지커도 간만에 투혼을 발휘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장지커에게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는 적었다.[7] 한때는 장지커가 역대 최고의 탁구선수로서 역사를 더 써내려갈 것이란 의견도 있었으나,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마룽을 상대로 0:4로 완패한 시점에서 평가가 갈렸다. 반면 마룽은 2015년 세계선수권 우승,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우승, 2017년엔 장지커와 동일하게 세계선수권 2연속 우승 달성, 2019년에마저 세계선수권을 우승하며 3연속 세계선수권 우승을 달성,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우승으로 2연속 올림픽 우승과 커리어 더블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해 이제는 명실공히 탁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발드네르, 장지커가 아닌 마룽임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