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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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왕리친(王勵勤[1], 王励勤[2], Wáng Lìqín)
국적
중국파일:중국 국기.svg
출생
1978년 6월 18일(45세), 상하이시
신체
185cm, 75kg
종목
탁구
전형
오른손 / 쉐이크핸드 올라운드
특기
포핸드 드라이브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수상 기록



1. 개요[편집]


중국의 前 탁구 선수. 마린, 왕하오와 함께 2000년대 중국 탁구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2000년대 초중반 남자 탁구의 1인자였다고 할 수 있다. 왕리친의 가장 유명한 점은 모든 탁구 선수 중 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신체능력과 강력한 포핸드였다. 왕리친은 셰이크핸드 플레이어지만 포핸드 능력은 펜홀더에도 밀리지 않았다. 또한 185cm라는 장신에 팔다리가 길어서 기본적인 리치가 길었고 긴 스윙 팔로스루와 중심이동을 통해 그의 포핸드 드라이브에는 가속도와 힘이 더 붙었다. 비교적 큰 스윙으로 유명한 왕리친은 포핸드 드라이브시 손목도 활용했으며 크고 간결한 스윙을 적절히 혼용하는데 능했다. 포핸드 공격의 다양한 변화와 코스 선정, 특히 지속력 모두 훌륭했다. 기본적인 스탠스와 다음 볼 준비가 매우 안정적이고 운동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드라이브 랠리에서 쉽게 무너지는 경우는 왕리친에게는 드물었다. 왕리친은 상당한 장신임에도 몸이 유연해 일반적인 기준 이상으로 다리 간격을 벌리고 다리를 낮추고 몸을 비틀면서까지 중•후진 포핸드 드라이브 랠리를 이어가는 걸 자주 성공시켰다. 또한 경기운영과 체력이 좋아서 점수를 지고 있다가도 역전을 잘했고, 마지막 세트까지 가는 장기전에 가면 왕리친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리친의 백핸드는 주로 포핸드 공격을 만들기 위한 셋업 느낌의 안정적인 백핸드였지만, 그의 백핸드 플레이는 매우 지능적이고 날카로웠다. 왕리친은 서브 리시브같은 경우에만 포핸드 리시브 기술의 비중이 높았고, 사실 다양한 백핸드 기술의 수준도 굉장히 높은 선수였다. 당시 셰이크핸드 플레이어들 중 포핸드 리시브 기술과 포핸드 드라이브 능력이 가장 좋았지만 막상 왕리친의 경기를 보면 지나치게 포핸드에 집착하는 모습은 없고 침착하게 백으로 포핸드 공격찬스를 만들어내거나 백으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며 범실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셰이크핸더의 경기운영이 자주 나온다. 백핸드 찌르기로 직접 점수를 내는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3] 디펜스도 매우 좋았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백핸드 압박능력과 코스 가르기, 센스플레이도 고루 뛰어났다. 하지만 역대급으로 강력했던 포핸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백이 약하기는 했다. 때문인지 2001 월드컵 개인단식 결승전에서 백을 집요하게 노리는 블라디미르 삼소노프에게 0:4로 패배한 적도 있으며, 2007년 이후의 백을 마스터한 왕하오를 상대로는 백핸드에서 많이 밀리며 자주 패배했다.

왕리친의 플레이상의 약점은 부족한 백핸드였다고 할 수 있고, 왕리친의 아쉬운 점은 성격이 꽤 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올림픽같은 큰 무대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게 단점이었다. 실제로 왕리친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에 큰 경기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모습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해 단식에 뽑히지 못하고 복식만 출전했고,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때는 단식에서 각각 왕하오, 마린에게 패배했다.[4] 왕리친은 자기는 긴장을 많이 하면 때때로 그립을 제대로 못 잡고 실수가 많아진다고 하며, 이는 자신의 최대 약점이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왕리친은 읽기 까다로운 서브, 특히 왕하오, 장지커, 티모볼같은 선수들의 역횡회전 서브를 리시브 하는 걸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왕리친은 시기적으로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때이긴 하지만 마룽을 만날 때에도 유독 고전했다.

왕리친은 세계선수권 개인단식 3회 우승,[5] 올림픽 복식 금메달, 그랜드파이널 3회 우승, 세계선수권 복식 4회 우승, 월드 투어 단식 21회 우승을 포함해 수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올타임급 커리어를 쌓은 레전드 선수이다. 왕리친은 그랜드슬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총 56개월 동안 지킨 그는 2000년대 탁구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들 중 한 명이자 탁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강했던 탁구 선수 중 한 명이다. 막강한 포핸드, 탄탄한 기술,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성실한 준비 움직임, 철저한 몸관리와 진지한 태도 등, "강한 탁구 선수란 어떤 선수인가?" 하면 망설임 없이 그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왕리친은 한결같이 곧은 모습의 스포츠맨이었다.


3.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2000 시드니
남자 복식
금메달
2008 베이징
단체전
동메달
2004 아테네
단식
동메달
2008 베이징
단식
세계 선수권
금메달
2001 오사카
단체전
금메달
2001 오사카
남자 복식
금메달
2001 오사카
단식
금메달
2003 파리
남자 복식
금메달
2004 도하
단체전
금메달
2005 상하이
혼합 복식
금메달
2005 상하이
단식
금메달
2006 브레멘
단체전
금메달
2007 자그레브
혼합 복식
금메달
2007 자그레브
단식
금메달
2008 광저우
단체전
은메달
1999 에인트호번
남자 복식
은메달
2000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은메달
2007 자그레브
남자 복식
은메달
2009 요코하마
단식
동메달
1997 맨체스터
혼합 복식
동메달
1999 에인트호번
혼합 복식
동메달
2005 상하이
남자 복식
동메달
2013 파리
혼합 복식
동메달
2013 파리
남자 복식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단체전
금메달
1998 방콕
혼합 복식
금메달
2002 부산
단체전
금메달
2002 부산
단식
동메달
2002 부산
혼합 복식
동메달
2002 부산
남자 복식
월드컵(단식)
은메달
2000 쿠르마외르
단식
동메달
2001 양저우
단식
동메달
2003 장인
단식
동메달
2006 파리
단식
동메달
2007 바르셀로나
단식
월드컵(단체전)
금메달
2007 마그데부르크
단체전
금메달
2011 마그데부르크
단체전
금메달
2013 광저우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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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체자[2] 간체자[3] 사실 왕리친의 게임 스타일은 상당히 지능적인 편이었다. 포핸드 드라이브 일면도가 아닌, 아주 노련하게 게임을 운영하는 스타일이었다. 세계선수권에서 마린을 상대로 한 경기들도 파워의 압도라기보다는 경기운영과 멘탈의 승리에 가까웠다. 물론 기본적으로 기량과 체력이 뒷받침되니 좋은 경기운영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4] 왕리친은 마린에게 강하고 왕하오에게는 약한 이미지가 있다. 사실 왕리친은 2000년대 중후반 이전에는 왕하오를 상대로도 10승 1패의 성적을 거둘만큼 압도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그 유일한 1패가 하필 2004 아테네 올림픽 준결승전이었다. 그리고 왕리친은 2006년 말 이후부터는 왕하오를 상대로 1승 13패라는 매우 좋지 않은 전적을 기록했다. 왕리친은 마린을 상대로도 세계선수권에서는 다 이겼지만 다른 대회에선 패배한 적도 꽤 많았고, 그 대표적인 게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이었다.[5] 경기를 살펴보면 3번의 결승전 모두가 굉장히 어려운 경기였고, 전부 불리한 경기를 역전하며 쟁취한 우승이었다. 2001년에는 쿵링후이를 상대로 0:2로 지고 있다가 3:2로 승리했고, 2005년에는 마린의 뛰어난 경기력에 밀려 거의 모든 세트의 초반 분위기를 내주었음에도 순간순간마다 침착한 경기운영으로 역전을 해내며 4:1로 승리했다. 2007년에 다시 만난 마린과의 결승전에서는 세트 스코어 1:3, 게임 스코어 2:7이라는 누가 봐도 패배가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 굳건한 뚝심을 유지하며 결국 4:3으로 역전해내며 승리했다. 쿵링후이와 마린의 팬들은 이 경기들의 결과를 매우 아쉬워했지만, 왕리친의 역전과 뚝심에 감동을 받은 탁구인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