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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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 성명: 張潤植
  • 생몰: 1901~1949
  • 창씨개명: 長潤二(오사 준지)

일제강점기의 관료, 중추원 참의.


2. 상세[편집]


1901년 3월 14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1924년 3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3월 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교토제국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조선법제사를 연구하던 중 1927년 12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조선인으로서 고문 행정과에 합격한 것은 이창근에 이어 두 번째다.

일제강점기 관료 경력은 다음과 같다.

  • 1928년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속(屬)[1]
  • 1930년 경기도 산업부 산업과장
  • 1932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 농림국 토지개량과
  • 1935년 충청남도 내무부 산업과장 겸 물산진열소 소장
  • 1936년 평양세무감독국 경리부장
  • 1937년 평양세무감독국 세무부장
  • 1940년 대구세무감독국 세무부장, 직세부장
  • 1941년 황해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
  • 1943년 충청북도 참여관 겸 광공부 광공부장
  • 1944년 조선철도간선긴급증강 부산지방연락부 간사

1945년 6월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미군정에 의해 파면되었다.

1949년 8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했다.

1949년 11월 19일 사망했다.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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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임관 지위의 하급 보조 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