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호(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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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
張龍虎

이름
장용호
출생
1928년[1]

충청북도 옥천군
사망
2023년 9월 16일 (향년 95세)
학력

직업
기업인
가족
배우자 장순경, 슬하 2남3녀
약력
뉴욕한인회장
YH무역주식회사 사장

1. 개요
2. 생애
3. 사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기업인. YH 사건 배경의 당사자다.


2. 생애[편집]


1928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1960년 고향 옥천에서 제5대 민의원선거에 출마했지만 낙마했다. 이후 1962년 12월부터 뉴욕의 코트라(KOTRA) 한국무역관에서 근무하면서 미국 가발 시장 성장세에 주목했다. 당시 미국 가발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964년 10월 중공의 핵실험 때문이다. 당시 미국 가발 시장의 90%는 중국산이었다. 그런데 중공 핵실험으로 인해 중국산 가발의 수입이 중단됐다. 그러면서 미국 가발 시장에서 중국산 가발이 사라지게 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게 됐다. 이것을 목도한 그는 1965년 서울 왕십리에 YH무역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처음엔 종업원 10명의 소규모 공장이었지만, 1970년 4천명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0년 1천만 달러를 수출해 철탑산업훈장을 받았고 국내 기업 수출 순위 15위를 기록했다.[2] 그는 뉴욕에 거주하며 'YH무역 뉴욕지사장' 직함으로 활동했으며 개인의 종합소득세 납부 실적 1971년 8위, 1972년 7위에 오를 만큼 부를 축적했고 1972년 뉴욕 맨해튼 32번가의 빌딩을 매입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1965년 '옥천장학회'를 세워 가난한 학생 200여명의 학업을 지원했다.

문제는 베트남 전쟁이 1975년 종료되면서 동남아가 정치적으로 안정을 취하게 됐고, 동남아에서 생산한 가발이 미국 시장에 진출을 하게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건비가 상승을 하게 되면서 가격 경쟁에서 동남아에서 생산한 가발과 가격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이는 가발산업의 사양화를 의미했고 그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YH무역 자산을 미국으로 빼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임금은 밀리기 시작했고 1978년 제2차 석유 파동까지 겹쳐 가발 수출이 감소하자 회사측은 1979년 4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폐업 공고를 냈다. 8월 9일 회사 기숙사마저 폐쇄하였고 노동조합은 사주가 재산을 빼돌리고 위장폐업을 한다면서 항의를 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게 됐고 이를 신민당사로 향한 여공들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후 1979년 8월 11일 새벽 YH무역 여공들이 신민당사에서 강제진압된 약 한달뒤인 9월 4일 권력의 비호 아래 재산을 해외에 빼돌려 불법치부하였다. 이후 YH무역사건이 유신정권 붕괴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그는 10.26 사건이 있은 후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후 1989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의 한인단체장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서 김영삼을 만났다. 그는 줄을 서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할 때 “제가 바로 YH무역의 장용호입니다. 어째서 저를 부도덕한 사업가라고 했습니까. 장학회도 만들고 자수성가해서 수출진흥에 이바지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아 미안하다, 나는 비서진에서 그렇게 말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미안하다”는 답변을 들었다.[3] 그리고 YH사건 당시 노조 때문에 회사가 넘어가 큰 손해를 봤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미국에 머물렀으며 1997년 뉴욕보다 기후가 좋아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3. 사망[편집]


2023년 9월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고향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선산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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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적상 1929년이다.[2] YH무역이 이런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YH무역 소속 여공들의 꼼꼼한 바느질 덕분이었다. 또한 미국 가발 시장의 90%를 차지한 중국산은 중국산 머리카락을 이탈리아가 수입해서 가공을 한 후 미국에 파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YH무역이 한국인 머리카락을 여공을 통해 가공을 해서 미국 시장에 내놓자 날개 듣힌 듯이 팔려나갔다. 워낙 꼼꼼한 바느질 솜씨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YH무역은 고속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3] 다만 이건 장용호 개인의 주장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김영삼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들 김영삼이 비서실만 의존하는 사람일리도 없고, 더군다나 YH무역 당시 경찰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가며 욕설을 듣고 신민당사 의원들까지 구타당한 그 사건의 원인제공자 편을 들어줄리 만무하니 비꼬기 발언이었을 가능성이 10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