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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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송
張琴松

출생
1976년 (월일불명)
[[북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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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평양특별시
사망
2006년 8월 (일자불명) (향년 29~30세)
[[프랑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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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일드프랑스 파리
사인
자살 (음독)
국적
[[북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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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스웨덴 국제학교 (교명미상)
김일성종합대학
성별
여성
부모
아버지 장성택
어머니 김경희
조부모
할아버지 장용환, 할머니 불명
외할아버지 김일성, 외할머니 김정숙
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인물.

김경희장성택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자 김정은의 고종사촌 누나다.


2. 생애[편집]


김경희와 장성택의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스웨덴국제학교에 다녔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했지만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 스웨덴에서는 스웨덴 대사관 직원들이 1주일마다 장금송의 집을 청소해 주었으며 장금송을 볼 때마다 90도로 인사하면서 대장동지라고 부르며 설설 기어야 했다고 한다. 양녀라는 설이 있었는데 라종일은 낭설이라고 단호히 부인한 바가 있다. 장성택은 딸을 보기 위해 수시로 스웨덴노르웨이를 드나들었는데 가짜 여권을 가지고 입국하려다가 1991년 12월에 노르웨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때 북한에서 싹싹 빌어서 노르웨이 측은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장성택을 주 스웨덴 북한 대사관으로 인계해 주었다. 1996년 북한대사관의 담배 밀수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스웨덴의 여론이 악화되면서 프랑스로 유학지를 옮겼다.

1999년 장금송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2005년에 결혼 상대를 만나 살고 싶어했지만 북한 남자랑 결혼한다고 했어도 당에서 결정한 상대가 아니면 곤란할 판에 하필이면 그 상대가 프랑스인이라서[1] 북한 측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장금송의 운전기사가 이를 본국에 보고했고 북한 측은 파리 주재 유네스코 대표부를 통해서 장금송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이미 북한 생활에 질렸던 장금송은 연인과 헤어지고 강제 송환될 처지에 처하자 부모를 원망하면서 술에 찌들어 살았지만 리남옥이나 이한영 남매처럼 탈북할 배짱은 없었는지 2006년 8월 파리에서 유서를 남긴 후 자살했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며 시신은 이틀이 지나서 발견되었다. 프랑스 경찰도 "장금송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고 결론내렸고 시신은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김경희는 이 사건 이후 엄청난 후회로 쇼크사할 뻔한 적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 사건으로 김경희-장성택 부부가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다는 풍문이나 분석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장성택 일가의 말로를 보면 차라리 곱게 죽은 편에 속하긴 하지만 엄마 김경희의 존재도 있고 본인도 여자인 만큼 다른 장씨 일가들처럼 처참하게 죽었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단순히 장성택과 김경희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장성택이 자신의 권위를 저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니 살아 있다고 해도 아버지의 죽음을 막았을 가능성은 없다. 장금송에게 그게 가능했으면 정치국 위원에 경공업비서로 권세가 막강했던 김경희 손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3. 참고문헌[편집]


  • 라종일, 장성택의 길(서울: 알마, 2016).
  •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서울: 기파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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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에 따라 다른데 다른 북한 남자였다는 말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