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고타의 아우구스타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영국의 왕세자비.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공녀이자 조지 3세의 어머니이다. 남편이 국왕이 되기 전 사망하여 왕비가 되지는 못하였다.
2. 작위[편집]
-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타 공녀 전하 Her Serene Highness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 (1719년 11월 30일 ~ 1736년 4월 17일)
- 웨일스 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1736년 4월 17일 ~ 1751년 3월 31일)
- 웨일스 선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owager Princess of Wales (1751년 3월 31일 ~ 1772년 2월 8일)
3. 생애[편집]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안할트체르프스트의 막달레나 아우구스타의 딸로 태어났다. 1736년 4월에 조지 2세의 아들 웨일스 공 프레더릭과 결혼했다. 부부는 나이 차이가 12살이나 났지만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16살에 외국으로 시집온 아우구스타는 영어를 못했으며 시누이가 핀잔을 줄 때까지 인형을 가지고 놀곤 했다. 이러한 미숙한 부분으로 인해 아내가 남편을 의존하면서 부부가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프레더릭은 아내에게 잘해주었으나 그녀의 어리숙함을 이용해 자신의 정부를 궁녀로 들이기도 했다.
프레더릭은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아우구스타와 그녀의 시부모님의 사이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 아우구스타가 첫 아이를 임신하자 프레더릭의 어머니 안스바흐의 캐롤라인은 출산을 참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어머니가 있길 원하지 않은 프레더릭은 진통이 시작된 아내를 다른 궁전으로 옮겼다. 이 때문에 아우구스타는 아이를 받을 준비가 안 된 궁전에서 힘겹게 아이를 낳아야 했다.
1751년에 남편 웨일스 공 프레더릭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당시 아우구스타는 아홉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며 프레더릭의 맏아들인 조지 3세는 당시 12살이었다. 아들의 장례를 간단하게 끝낸 조지 2세는 어린 후계자를 걱정해 조지 3세가 미성년자일 때 즉위할 경우 아우구스타가 섭정을 할 수 있게 법적 장치를 준비했다. 조지 2세의 유일하게 살아있는 아들이었던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은 반발했지만 법안은 통과되었다. 이후 아우구스타는 영국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여성이 되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타는 존 스튜어트와 스캔들이 나면서 빠르게 인기를 잃었다. 존 스튜어트는 조지 3세의 가정교사였다. 아우구스타는 생전 웨일스 공과 가까웠던 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사람들은 둘 사이를 의심했다. 한번은 존과 아우구스타가 단 둘이 만났다는 말이 돌면서 소문은 확신이 되었다. 아우구스타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언론은 그녀를 비난했다. 이 스캔들로 그녀는 죽을 때까지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아우구스타는 1772년에 인후암으로 사망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4. 자녀[편집]
5. 미디어에서[편집]
- 드라마 《샬럿 왕비: 브리저튼 외전》에사는 배우 미셸 페얼리가 맡았다.[4]
6. 여담[편집]
- 아들들의 결혼에 대단히 불만스러워했다. 먼저 맏며느리이자 조지 3세의 아내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아우구스타는 사람을 심어놔서 며느리 샬럿의 행실을 보고받기까지 했다. 또한 다른 아들들도(조지 3세의 형제들) 하나같이 자신의 허락없이 신분이 떨어지는 여인과 결혼하자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5]
- 큐 왕립 식물원의 규모를 확장시킨 인물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30 16:18:01에 나무위키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공작부인 아우구스테, 영국의 왕비 캐롤라인 등[2] 조지 4세,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더릭 왕자, 윌리엄 4세, 뷔르템베르크의 왕비 샤를로테,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왕자 등[3] 프레데리크 6세 등[4]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캐틀린 스타크를 연기했다.[5] 3남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은 사생아 출신의 과부인 마리아 월폴과 결혼했고, 4남 컴벌랜드 공작 헨리도 평민 출신의 과부인 앤 호튼과 결혼했다. 당연히 둘 다 형이자 국왕인 조지 3세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한 결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