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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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성주
출생일
1961년
학력
경북대학교 (사학과 / 학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 전공 / 석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 전공 / 박사)
현직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약력
한국상고사학회 회장
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센터장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관장
경북대학교 박물관 관장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1. 개요
2. 경력사항
3. 논저
3.1. 논문
3.2. 저서 및 번역서
3.2.1. 주요 저작
3.2.2. 번역서
3.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고고학자.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2. 경력사항[편집]


경북대학교 사학과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新羅·伽耶社會의 政治·經濟的 起源과 成長」이다.

서울대 재학시절에는 서울대박물관 소속으로 서울 석촌동 고분군 조사에 참여한적이 있으며, 석사 졸업 후 1987년부터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로 부임하였다.

창원대 박물관 재직기관 동안 경남 일대에 다수의 신라·가야 유적을 조사하였다. 대표적으로는 함안 도항리 고분군의 지표·표본 조사가 있으며,이외에도 창원 도계동유적, 마산 현동유적, 합천 저포리 유적, 함안 오곡리 유적, 울산 중산리 유적, 창원 가음정동 유적 등을 발굴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울산 중산리유적은 재직기관 동안에 가장 대표적인 발굴성과로써 2~7세기 대규모의 신라 고분군이 조사되었는데 특히 5세기 신라 적석목곽묘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얻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서울대 박사를 졸업한 이후 창원대, 부산대, 경북대에서 잠시 강사 생활을 하다가 2000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경남 일대의 다수의 구제발굴 조사에 참여하였다. 2002년 부터는 2012년 가을까지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로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2년부터 자신의 모교인 경북대학교의 고고인류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며 현재까지에 이른다. 부임 후 경북대학교 박물관장 및 학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외 경력사항으로는 2004년에는 한국상고사학회 출판위원 및 편집위원장, 2007년 강릉원주대 박물관 관장, 2010~13년에 제12대, 13대 한국상고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였다. 그 밖에 한국문화재연구조사기관협회 편집위원, 호남고고학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3. 논저[편집]


연구의 출발점은 원삼국 시대 토기연구에서 출발하였지만, 창원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다수의 신라, 가야 유적을 조사하였고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영남지역의 신라·가야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성과는 박사논문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연구방법은 당시로서는 보편적인 연구의 스탠다드였던 "형식학적 방법과 역사적 해석"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다양한 방법론을 통한 연구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특히 그의 석사논문은 형식학적 방법론 뿐만 아니라 토기의 태토와 성분분석과 같은 과학적연구방법도 차용한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논문이었다.

고고학 자료의 해석 역시 단순한 역사·정치적 해석보다는 사회구조, 사회의 변동 등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통 이러한 사회구조를 논하는 것은 선사시대의 연구에 주로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이성주의 연구는 역사적 해석 일변도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연구로써 본인의 이후 연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신라·가야와 관련하여 한 때 학계의 주된 담론이었던 신라가야 연대론에 이성주도 통시적 편년관을 제시한 바 있으나 이미 이희준, 김용성, 신경철 등의 주요한 인물들의 연대관이 저마다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수 없었다. 그러한 바 편년관 자체는 그렇게까지 인용되지 않는다.

이후 원삼국시대 중도문화유형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청동기시대까지 다루었으며, 한반도의 기원 전후한 시점의 사회변동 전반에 대해서 기술과 혁신이라는 테마 등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기도 하였다. 유물의 형식보다는 유물의 형식을 아우른 유물군의 변천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였으며 그러한 유물군이야 말로 의례행위의 상징으로써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뿐만아니라 기존에 막연히 고분군의 배치에 대해서 논하던 것을 GIS 기법을 통한 체계적인 분석방법에도 일찍이 관심을 보여왔으며 GIS 기법을 통해 고분군 성장의 과정과 함의에 대해서 연구한 사례도 있다.

자못 인상은 탈과정주의 고고학자스러운 편이지만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과정주의에 가장 충실한 편이며, 탈과정주의 고고학이라는 것이 현재진행형인 바 탈과정주의를 포함한 다각적인 연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특정한 전공분야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관련 시대 주변을 아울러서 연구하는 편이다. 이는 특정한 전공분야에 머무르는 것이 세부전공에 매몰되어 보편성을 잃는 것이라고 보는 본인의 견해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1. 논문[편집]


-1 이성주, 1987, 善山伽耶古墳의 硏究, 영남고고학 4,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1987, 陜川 苧浦里 C地區 發掘調査槪報, 영남고고학 3,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1988, 삼국시대전기토기의 연구 - 영남지방 출토 토기를 중심으로, 한국상고사학보 1,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88, 原三國 土器 胎土의 類型, 영남고고학 5,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1991, Post-Modernism 고고학과 전망, 한국상고사학보 7,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91, 가야취락유적의 제문제(상), 한국상고사학보 5,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92, 아라가야 중심고분군의 편년과 성격, 한국상고사학보 10,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92, 蔚山 中山里遺蹟 發掘을 통하여 본 新羅墓制의 起源, 영남고고학회 학술발표회 1집
이성주, 1993, 낙동강동안양식토기에 대하여, 영남고고학회 학술발표회 2집
이성주, 1993, 신라·가야사회 분립과 성장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한국상고사학회 학술발표회 8
이성주, 1995, 考古學 知識 構築의 脈絡, 영남고고학 16,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1995, 신라·가야토기의 생산과 분매에 관한 연구, 한국상고사학보 18,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96, 청동기시대 동아시아 세계체계와 한반도의 문화변동, 한국상고사학보 23,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96, 신라식 목곽묘의 전개와 의의, 한국고고학전국대회 20회
이성주, 1997, 辰·弁韓 鐵製武器의 樣相에 대한 몇가지 檢討 - 起源期의 樣相과 變形過程을 中心으로 - , 영남고고학21,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1998, 韓國의 環濠聚落, 영남구주학회 합동고고학대회 3회
이성주, 1999, 고고학을 통해 본 아라가야, 한국고고학전국대회 23회
이성주, 1999, 분구묘의 인식, 한국상고사학보 32,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1999, 辰·弁韓地域 墳墓 出土 1~4世紀 土器의 編年, 영남고고학 24,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2000, 蔚山 茶雲洞·中山里遺蹟의 木棺墓와 木槨墓, 영남고고학회 학술발표회 9집
이성주, 2000, 타날문토기의 전개와 도질토기 발생, 한국고고학보 42,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2001, 4~5세기 가야사회에 대한 고고학 연구, 한국고대사연구 24, 한국고대사학회
이성주, 2004, 기술,매장의례, 그리고 토기양식 - 상주지역 낙동강이동 토기의식의 성립에 대한 해석 - , 한국고고학보 52,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2005, GIS를 이용한 신라고분군 공간조직의 분석, 한국고고학보 55,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2005, 嶺南地方 原三國時代 土器, 한국고고학전국대회 29회
이성주, 2006, 울산 중산리유적 출토 유리구슬의 특성, 역사와 세계 30, 효원사학회
이성주, 2007, 고령 池山洞古墳群의 性格, 대가야학술총서 5,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이성주, 2007, 원삼국시대 토기에 대한 이론적 논의의 방향 -영남지방의 토기자료를 중심으로-, 선사와고대 26, 한국고대학회
이성주, 2008, 원저단경호의 생산 -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체계의 재편, 한국고고학보 68,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2008, 양식의 생성 ; 신라, 가야양식과 소지역양식의 형성에 대한 검토, 한국고고학전국대회 32회
이성주, 2009, 신라·가야 토기양식의 생성, 한국고고학보 72,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2009, 原三國․三國時代嶺南地域住居와 聚落硏究의 課題와 方法(기조발표), 영남고고학회 학술발표회 18집
이성주, 2011, 원삼국시대 물레질-타날법의 전승과 토기생산의 전문화 -중부지방의 취락 내 토기생산을 중심으로-, 호남고고학보 39, 호남고고학회
이성주, 2011, 한성백제 형성기 토기유물군의 변천과 생산체계의 변동 실용토기 생산의 전문화에 대한 검토, 한국상고사학보 71,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2011, [동북아 초기문명론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반성] 巨視的 관점에서 본 東北亞 社會文化體系의 變動, 동북아역사논총 제33호
이성주, 2012, 王權에 대한 考古學的 論議, 영남고고학회 학술워크샵 2집
이성주, 2012, 의례, 기념물, 그리고 개인묘의 발전, 호서고고학보 26, 호서고고학회
이성주, 2012, 고대 창녕지역집단의 고고학적 논의, 군사연구 133, 육군본부
이성주, 2012, 先史時代의 다뉴브-序文-, 고고학탐구 12, 고고학탐구회
이성주, 2012, 마을(村落)과 都市에 관한 고고학적 논의, 고고학 11(2), 중부고고학회
이성주, 2012, 靑銅器時代東亞細亞世界體系和韓半島的文化變動, 南方文物 4, 江西省文化廳
이성주, 2013, 고고학에서의 과학적 논증절차의 문제, 인문학보 38, 강릉원주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이성주, 2013, 철기시대 東北亞 제 지역사회의 技術革新과 社會變動* -新製陶技術의 擴散과 受容의 과정을 중심으로-, 선사와 고대 38, 한국고대학회
이성주, 2014, 貯藏祭祀와 盛饌祭祀 : 목곽묘의 토기부장을 통해 본 음식물 봉헌과 그 의미, 영남고고학 70,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2014, 저장용 대형단경호의 생산과 한성백제기의 정치경제, 한국상고사학보 86,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2015, 風納土城 土器遺物群의 年代와 百濟土器 漢城樣式의 成立, 호남고고학보 49, 호남고고학회
이성주, 2015, 철기시대의 부족(1): 유럽과 한국 원사시대 집단의 시공간과 기록, 고고학탐구 15, 고고학탐구회
이성주, 2016, Recent Discoveries in Silla Settlement Archaeology,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29,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이성주, 2016, 初期鐵器時代와 原三國時代 考古學 資料의 認識 : 지역별 주거유적의 토기군과 자료의 공백, 고고학 15(2), 중부고고학회
이성주, 2017, 韓國考古學의 起源論과 系統論, 한국고고학보 102, 한국고고학회
이성주, 2017, 70~80년대의 한국고고학, 한국상고사학보 97, 한국상고사학회
이성주, 2017, 辰弁韓 ‘國’의 形成과 變動, 영남고고학 79, 영남고고학회
이성주, 2017, 支石墓의 축조중단과 初期鐵器時代, 영남문화재연구 30, 영남문화재연구원
이성주, 2017, 가야고분군의 의미, 가치, 활용, 경남발전 140, 경남발전연구
이성주, 2019, 최근 이론 고고학의 反-人間中心主義, 영남고고학 85, 영남고고학회



3.2. 저서 및 번역서[편집]



3.2.1. 주요 저작[편집]


파일:신라·가야사회의 기원과 성장.png
▲ 『신라·가야사회의 기원과 성장』 (학연문화사, 1998년)

1998년 출간한 『신라·가야사회의 기원과 성장』은 그의 박사학위 졸업논문을 수정·보완한 책으로 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시절의 연구성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정치체의 형성과 성장과정을 추적하였다. 당시의 정치체 연구 트렌드인 개인과 집단의 비교를 통한 위계형성에서 벗어나 고고자료를 사회, 경제, 환경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여 고대국가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려 하였다. 당시로써는 생소한 티센 폴리곤 모델이나 토기의 성분분석 등의 과학적 분석이과 고분군 또는 취락의 입지환경 분석등을 사용하는등 선진화된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파일: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jpg
▲ 『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 (학연문화사, 2007년)

2007년 출간한 『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은 청동기ㆍ철기시대의 사회변동론을 연구한 책으로 오늘날 한반도의 중부 이남지역의 청동기 및 철기시대 사회와 그 변동에 대한 연구서이다. 고고학 자료 그 자체, 물질 문화 그 자체를 분석하고 고고학 그 자체의 이론적, 방법론적 전제에 기초하여 청동기와 철기사회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파일: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jpg
▲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
(학연문화사, 2014년)


2014년 출간한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은 원삼국시대 토기유물군과 그 변동을 해석한 책으로 토기제작에 있어 기술의 수용과 전파 그리고 생산체계를 분석하였다 단순히 토기분석의 수준을 넘어 토기를 제작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2015년 한국고고학회 주관 초대 삼불학술상을 수상하였다.


3.2.2. 번역서[편집]


칼리 시노폴리 저 (이성주 역) 토기연구법 (도서출판 고고, 2012)

콜린 렌프류, 폴 반 공저 (이성주·김종일 공역), 『고고학의 주요개념』 (도서출판 고고, 2010)

배리 컨리프 저 (이성주 역), 『영국 철기시대 사회』 (도서출판 고고, 2017)


3.3. 여담[편집]


  • 부친은 한국 고고학계 1세대 학자인 이은창 선생(1922~2019)으로 부자(父子)가 고고학자이다. 부인 이현주 박사도 부산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집안이 대를 이어 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은창 선생은 소학교, 중학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등으로 근무했다. 1967~1969년 충청남도문화재위원을 지냈다. 공주사범대와 영남대 강사를 거쳐서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 대전보건대 교수와 박물관장을 지냈다. 영남고고학회와 호서고고학회에서 각각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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