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용비어천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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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4대 임금
이도

李裪

부모
아버지 이방원, 어머니 민다경
아들[1]
광평대군
배우
남다름 (소년) 육룡이 나르샤
송중기 (청년)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 (중년) 뿌리깊은 나무
조선 제4대 임금. 훗날 세종대왕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대군시절의 이름은 충녕대군이었다.

두말이 필요 없는 전형적인 희대의 천재캐릭터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태종이 저지르는 피의 학살을 보고 자라났기에, 치명적인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지독한 워커홀릭이자, 불면증 환자이며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백성과 수많은 보통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안간힘을 쓰며 견디는 의로운 군주다.
1. 개요
2. 작중 행적
2.1. 왕자 시절
2.2. 청년 임금
2.3. 훈민정음 창제 작업
2.4.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결
3. 성격 및 캐릭터성
3.2. 애민정신
4. 평가
5. 원작과의 차이점
6. 명대사
6.1. 청년 이도
6.2. 중년 이도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2011년 SBS 퓨전 사극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

2. 작중 행적[편집]



2.1. 왕자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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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녕대군 시절의 이도
육룡이 나르샤 최종화에서 등장하였다. 이방원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것을 연출하기 위해서인지 유년시절의 이방원 역을 맡았던 아역배우가 또다시 분하였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아버지가 외삼촌들을 죽일때 마방진을 만지고 있었으며 서책을 항상 끼고 산다. 그런 이도의 모습을 본 이방원이 너의 정치는 무엇이냐 묻자 정도전이 토지대장을 태웠을때와 같이 정치는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책을 없애라고 하는 명령에는[2] 그 명을 거두어 달라 빌면서도 살아있으면 무엇이든 해야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등 이방원이 그리워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말을 하였다.[3]

이후 방원과 동행하여 무휼을 소개받는데, 이때 무휼에게 "진중하게 생기신 것이 절 놀리시지는 않을 것 같네요" 라는 말을 듣는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무행도까지 함께 동행하면서 분이를 만나게 된다.

여담으로 어린 이도의 입에서 삼봉과 분이의 명대사가 튀어나온건 그가 육룡의 최종진화형[4] 임을 암시한다. 특히 드라마 상에서 한글의 창제가 백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 옛날 삼봉이 했던 말과 연결지음으로써 의의가 깊어진다.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도 보다 쉽게 글을 배울수 있게 됐고 그만큼 민본의 대의에 가까워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육룡의 못다한 꿈을 이도가 완성시킨 것이다.

2.2. 청년 임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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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도
젊은 시절엔 태종 이방원이 군권을 장악한 상왕으로 존재하기에, 거의 병풍급의 위력을 자랑하며 태종이 큰 일을 벌이며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경성전[5]으로 도피해 마방진을 풀면서 숨어있었다. 그러나 잡혀온 심온의 노비들이 의금부를 파옥하던 밤 똘복이를 결국 살려내며 태종의 그늘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그 다음에는 태종의 빈 찬합 하사→자결 권고[6]를 맞고 퇴위까지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에 몰린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고, 결국 자신이 왕이고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역이용해 연극까지 하며 태종의 그늘을 벗어나 군주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나 무휼과 함께 태종과 대치하는 씬은 뿌리깊은 나무의 명장면 중에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후 노환으로 죽어가는 태종 앞에서도 문으로 치세를 하며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2.3. 훈민정음 창제 작업[편집]


24년이 지나, 설정상 재위 후반기의 성인으로 배역이 바뀐 뒤에 등장하자마자 '하례는 지랄.'이라는 구수한 욕지거리로 성인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태종이 그렇게도 반대한 경연을 열고 또 그들의 논쟁을 즐기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관료들보다는 집현전 학사들을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이는 쪽인 듯. 경연 중에 대소신료들이 틀에 박힌 소리만 하자, 한자로 우라질[7]을 적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열정이 좋은 임금. 한글 창제에 뜻을 두고 옥떨이 등을 통해서 사람의 발음을 연구하는데 이를 가지고 나인들을 놀리기도 하고 내금위장인 무휼을 곤혹스럽게도 하는 등 짓궂은 면도 있으나 장계를 얼른 받기 위해 직접 똥지게도 지는 모습으로 보면 관료제의 폐해도 잘 알고 깨는 법 또한 알고 있다.

겸사복 강채윤이 똘복이이고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살린 최초의 백성이기에 강채윤이 가진 증오심 같은 것은 가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무휼이 강채윤을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을 말리기도 한다. 오래 전에 사라진 비밀조직 밀본이 연쇄살인 사건을 벌이며 자신의 계획과 왕권을 위협하는 와중에 어느 누구가 밀본인지 알 수 없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두를 포용하려 했던 자신의 정치 철학에 대해 회의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기로 결심한다. 이후 과도하다고 보일 정도로 문자 창제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가리온의 도움으로 발성기관의 해부까지 한 덕분에 그 동안 만들지 못했던 후음을 나타내는 'ㅎ' 계통의 문자들까지 만들어 모든 문자를 완성하고 뿌듯해한다. 그러나 죽은 줄만 알았던 똘복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고 문자 완성을 기뻐하지도 않은체 그저 넋만 놓고 있는 소이에 서운해하다가도 이후 소이가 실종되자 소이를 찾기 위해 내금위와 학사들, 궁녀들까지 동원하며 소이를 찾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결국 소이를 찾게되지만 이미 소이와 채윤이 재회한 뒤이기도 했고 소이의 행복을 위해, 결국 이도는 둘이 같이 떠나라고 전달한 후 궁으로 돌아선다. 소이의 기억력 덕분에 빠르게 진행됐던 훈민정음 창제 프로젝트가 큰 위험을 맞은 상황에서도 애써 소이를 찾지 않고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진행한다. 하지만 소이가 훈민정음 창제를 완수하기 위해 돌아오고, 이도에게는 이제 원래 계획대로 자신을 죽이려 하는 동시에 자신의 글자에 마지막 판관인 채윤을 설득해야 하는 크나큰 임무가 생기게 되었다.

이에 이도는 채윤이 자신을 죽이러 오지 않을 것임을 미리 간파하고 매우 대담하게 광화문부터 자신이 있는 경성전[8]까지 군사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채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채윤이 찾아와 자신의 목에 칼을 대지만 이도는 되려 칼날쪽으로 목을 들이밀며 채윤이 뒷걸음질 칠정도로 채윤을 당황시킨다. 이후 이도는 똘복이를 살린 것이 자신임을 밝히고 문자의 창제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지만 채윤은 오히려 문자를 알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 백성이라고 반박하고 다시 떠나버린다. 하지만 이도는 채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설득시킬지에 대해 고민한다.

한편, 그동안 모은 단서들로 이도가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정기준의 역습으로 문자 창제 사실이 누설되고, 조정 신료들과 혜강 선생이 이끄는 유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일단 문자 창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성전에 있는 문자 창제 관련 자료들을 빼돌리지만, 그마저 밀본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은 물론, 이를 운송하던 광평대군과 소이마저 모두 밀본에게 납치당한다. 다행히도 근처에 있던 채윤이 이를 발견하고 둘을 구출해내지만, 이도의 진심을 알고싶었던 채윤은 광평과의 내기 아닌 내기를 하면서 둘을 그대로 풀어주지 않는다. 즉, 다시말해 이도가 광평이 죽음을 맞이할 상황에도 꿋꿋히 글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문자의 판관이 되어 달라는 이도의 부탁을 채윤이 승낙할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채윤이 정말 광평을 죽일 것에 대해 내기를 하게된 것이다. 하지만 밀본은 채윤의 개입을 뒤늦게야 알아차려 저잣거리에 이도를 향한 협박용 궤벽서를 붙인 것을 미쳐 떼지 못했고, 이런 상황을 모르는 이도는 정말 밀본이 광평과 소이를 납치했다고 받아들이겠금 상황이 꼬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도는 눈물을 흘리며 끝내 글자를 선택하게 된다. 물론 광평은 채윤에게 잡혀 있었기에 멀쩡했고, 자신을 시험하던 채윤마저 이번 사건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2.4.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결[편집]


마침내 정기준과 대면하여 논쟁을 벌이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토론 종결. 그러나 정기준의 "너는 백성을 사랑해서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너는 백성이 귀찮은 게다"라는 일갈을 듣고 자신이 새로운 글자를 만든 동기에 대한 고뇌에 빠진다. 그러던 중 개성으로 보낸 광평대군이 밀본에게 납치되고 결국 살해된 채로 돌아오자 이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강채윤의 일갈을 맞고 다시 정신줄을 굳게 잡은 뒤 한글반포에 나선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 조말생을 영입해 소이, 덕금, 근지, 목야등의 나인을 심문하는 척하며 궁 밖으로 보내 한글을 유포하게 만들고 본인은 반포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나 소이 납치 크리. 휘청 거리게 된다. 허나 다시 똘복이의 갈굼 과 나인의 정보로 이신적과 단판을 짓고자 대화. 정기준을 넘기고 재상총재제의 수장이 되라는 제안까지 건네게 된다. 그러나 다른 속셈이 있었던 이신적은 세종의 제안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또한 경연 중에 반포 계획을 말하면서 밀본을 하나의 붕당으로 인정할 테니 밀본원은 자수하라고 제안하나 밀본원들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9]

강채윤 일행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자신도 마침내 삼정승의 재가를 받고 반포를 준비하면서 훈민정음의 서문을 짓지만 완성을 하지 못한채 백관과 백성이 보는 앞에서 훈민정음 반포를 시작하나 정기준의 최종병기인 카르페이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거의 위기를 맞지만 내금위 병사들과 내금위장 무휼, 강채윤의 몸을 던진 희생으로 인해 목숨을 건지고 반포를 진행한다. 이 때 세종은 달려와서 중상을 입은 무휼을 붙들고 의원을 부르라 소리치지만 무휼은 오히려 세종을 붙잡고는 '반포를 멈추지 말라' 부탁한다. 또 소이가 죽기 전에 남긴 해례가 강채윤의 품에서 떨어질 때 백성들이 그것을 주워서 알아서 읽는 것을 보고 '유포' 역시 성공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미처 쓰지 못한 서문을 즉석에서 완성하고 훈민정음 반포에 성공했다.

처음 훈민정음 서문을 '내 이를 위하야' 까지만 쓰고 그 뒤로는 쓰지 못했었는데, 그 다음의 문장을 '어엿비 너겨(불쌍히 여겨)'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은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 죽어간 측근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진정 백성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치명상을 입고 도망쳐 경성전으로 이어진 비밀통로로 들어온 정기준과 대면. 정기준은 글자가 반포되어도 그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릴 거냐고 미래를 염려하지만 세종은 "너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게 되었다"며 "그렇게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투쟁하면 이기는 사람도 있고 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지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정기준의 최후를 지켜본다. 반포 1년이 지난 후에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잃은 쓸쓸함을 느끼지만 조선의 왕으로서 할 일을 해 나가며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도 4화에서 중년 세종이 처음으로 했던 대사인 "하례는 지랄!", "내 꼭 갈 것이라 이르거라!".

따지고 보면 작중에서 제일 성공한 인물이면서도 제일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게 된 인물. 자신이 원하던 바는 이루었지만 주변의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잃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여기서는 안 나왔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결국 이도 본인이 죽고 고작 4년여만에 둘째 아들이 자신이 아끼던 고명대신들을 죽이고 장손자를 내쫓는 만행을 저지르며 이도의 꿈을 아예 뒤엎어버렸다. 어찌보면 이후의 역사를 아는 입장에서 보면 이도는 이미 새드엔딩을 확정으로 맞은 셈이다.


3. 성격 및 캐릭터성[편집]


모티브가 된 세종대왕이 조선의 위대한 성군이고 그의 업적과 미담이 많은 만큼 결점이 없는 성격이다. 합리적이며, 인간적이다. 소통해야 할 때는 상대가 누구든 말을 막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꾸짖어야 할 때는 과감히 호통치며, 옳지 않은 일에는 맞서 싸우고, 옳은 일이라면 신분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추진한다. 아픈 과거와 현실의 부조리함에 큰 상심을 느끼며, 왕이라는 자리를 보는 사람이 미안해질 정도로 스스로 무겁게 책임진다.

하지만 신하들과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대해 연구하던중 개들이 짖는 소리가 '! 왕!' 거리는거 같다는 덕금의 주장에 '온 팔도의 개새끼들이 과인을 부르는것이냐'라는 드립을 쳐서 덕금을 곤란하게 하고 실실 웃는등 은근 장난기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10]

3.1. 욕쟁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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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아니, 이 무슨 재미난 얘기들을 하고 있었나 보오. 아, 이 궤벽서에 대해서 얘기들을 하고 있었소? 이 과인도... 재미난 얘기가 하나있는데 어떻게 들어들 보시겠소? 뭐 이것의 내용인즉, 어쩌구 저쩌구 잔뜩 써놨는데 간단히 얘기를 하자면 글자를 창제했느냐, 창제를 했으면 포기를 해라, 오늘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은 광평어찌어찌하겠다 뭐 이거지요. 음... 오늘까지 답을 하라 했으니 해야겠죠. 그것에 대한 과인의 답은 이렇소. 거기에 대한 과인의 답은...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것이오. 아니 이놈들이 왕손을 납거하여 겁박을 하면 과인이 '예예, 무섭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뭐 이럴줄 알았나보오? 아니 우리 조정과 왕실을, 이리도 우습게 알았냐는 말이오.
이신적: 전하, 광평대군 마마의 안위에 관한 문제이옵니다.
이도: 내 말이 그 말이오. 광평은 자신때문에 아버지가 대사를 그르치길 바라질 않는,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오. 아, 그리고 또 뭐였더라. 어, 글자. 과인이 은밀히 글자를 만들고 있다? 만들고 있고 말고! 이제 거의 완성이 됐소. 과인이 우리의 말과 소리를 본딴 이 조선의 글자를 만들었소.
최만리: 전하, 조선의 글자를 만드신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이도: 뭐, 그것에 대해서는 내일부터 경연에서 죽도록 할터이니 준비들 하시오. 아, 또한 밀본,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 자리에 밀본원이 있다면 똑똑히 전해주시오. "...겨우, 폭력이라니."[11]
[1] 실제의 세종은 18남 4녀라는 자식부자이고 작중 대사를 통해 세자나 수양대군, 안평대군과 같은 다른 자식들도 언급은 되지만 광평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2] 태종이 충녕대군이 보는 책을 치우라고 했다는 야사를 차용한 듯한데, 야사에서는 충녕이 하도 책을 읽어 눈병에 걸려 건강 보호 차원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1권이 방에 남아 충녕대군은 그걸 마르고 닳도록 읽어 이걸 안 태종이 책을 돌려줬다는 이야기지만, 드라마에선 다르게 각색되었다.[3] 방원은 이도가 세자의 전정에 누가 되지 않겠다고 하자 "넌 세자가 6년 걸린 책을 2달만에 떼지 않았느냐? 그게 누가 되는 것이다."하여 세자가 아닌 왕자면서 너무 똑똑한 아들이 장자에게 위협이 될 걸 우려하였다. 이도는 여기에 대해 항변 한 것. 자신이 그리워 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무휼을 소개해주고, 분이를 만나러 갈 때도 데려간 걸 보면 내심으론 이도를 아들 중 가장 아낀 것 같고, 결국엔 방탕한 장남 대신 보위를 물려주었다. 드라마적 해석이다. 실제 역사에서 태종과 원경왕후가 가장 사랑한 자식은 기록상 유추해 보면 양녕대군이다.[4] 다만 뿌리깊은 나무를 봤을 때 이방지나 무휼은 제외한다고 봐야한다. 이 부분은 무휼이야 직접 살아서 이도의 호위무사를 했고 이방지의 부분은 그의 제자인 강채윤이 보완해준다.[5] 경성전경복궁 강녕전 부속의 소침전이자 사랑방이다. 관련 글 보기 그런데 극중에서는 극 전개상 사실상 이도의 주요 거처로 나온다.[6] 이는 삼국지조조순욱과 관련된 고사. 사실 마방진을 풀 수있는 해답을 줬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극중 태종도 "그리 받아들인다면 어쩔 수 없고"라 하여 자결해도 할 수 없지만 실제 뜻은 그게 아님을 암시했다. 즉, 이도 세종에게 자신의 한계를 깨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세종은 찬합을 보고 사각형을 벗어난 거대한 마방진을 만들어내었으니, 다만 마방진으로 비유한 것은 아닌게 이도가 자기는 마방진으로 봤다고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니.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늘 궁지에 몰리거나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의미심장하다.[7] 원래 "우라질"은 형법의 이름인 "오라(밧줄에 묶음) + 질(감방으로 보냄)"이 욕설로 사용되다가 발음만 바뀐 것이다.[8] 젊은 시절 마방진을 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비밀리에 문자를 창제하고 있었다.[9] 이신적은 사실상 '밀본놀이'를 통해서 커밍아웃을 했지만...[10] 이때 덕금에게 "너는 어째 100번을 놀려도 100번을 속느냐"라고 말하는것을 보아 평소에도 여러번 놀려댄 듯하다.[11] 정기준이 충녕대군 시절 이도의 앞에서 태종을 대차게 디스하자 이에 분노한 이도가 정기준을 한 대 때렸는데, 이때 정기준이 이도를 비꼬기위해 한 말이다. 이 말을 기억해내고 그대로 되돌려 준 것.

밀본광평대군을 인질로 잡고 글자를 포기하라고 협박을 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이도의 답변.#[12]

[12] 정확히는 밀본이 납치한 광평과 소이를 강채윤이 중간에 빼돌렸지만, 이도를 시험하고자 풀어주지 않았고, 이도는 그대로 이를 밀본이 둘을 납치했다고 받아들인 상황이였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중년 이도의 첫 등장씬.#}}}
궁궐이라는 벽을 넘어 백성과 소통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 일환인듯(?) 청년 시절 주워들은 '우라질'이나 '지랄' 같은 쌍욕을 심히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엄청난 욕쟁이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가볍고 웃기지만, 그 내면에는 백성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봐야 하는 답답한 심정을 표출하려는 욕구, 백성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말을 쓰려는 가치관이 담겨 있다. 이런 이도의 생각은 훈민정음이라는 위대한 결과물의 원동력이 된다.

3.2. 애민정신[편집]



자신의 밀명을 받은 천지계원들이 밀본에 의해 하나 둘씩 목숨을 잃는 상황에 좌절하며.#[13]}}}

[13] 이러한 세종의 울부짖음에도 소이는 계속해서 '전하의 책임이 아니옵니다'라는 같은 글귀를 써서 건내고, 세종은 이를 모두 꾸기거나 바로 낚아채 소이의 옆으로 내던지지만 끝내 붓을 휘갈기는 소이의 손을 제지한 채 울음을 터뜨린다. 배우의 열연 덕분에 뿌리깊은 나무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이다.

옥좌에 앉은 채 죽은 정기준을 마지막으로 보며 말하는 독백.}}}
조선만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백성들에게 역병에 대한 경고문을 뿌렸지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많아 이 경고문을 읽지 못해 미리 대비 하지 못하였고 이에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기 때문이였다. 처음에 이도는 경고문을 통해 소식을 전했음에도 백성들이 한자를 몰라 따르지 못했다는 관리의 말을 들었지만 이를 믿지못하여 관리를 꾸짖었다. 하지만 신하들의 걱정에도 직접 역병 현장에 가서 하루종일 농사를 짓느라 글자를 배울 시간조차 없는 백성들의 현실을 그제야 깨닫고 큰 충격을 받게된다. 실제로 작중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이도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여러가지 잡다한 것들을 많이 해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이 백성들의 실생활에는 별로 큰 도움과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에 크게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역병 현장에서 궁으로 돌아온 후 이도가 여러 발명품들을 내던지고 책을 찢어버리는 것을 정인지가 말리면서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읊자, 이도가 "네깟 놈도 정치가라고. 너는 숲만 보는 것이냐? 나무는 보질 않아? 풍성한 숲 안에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썩어가는 것은 네 눈엔 보이질 않느냔 말이다."라며 분노에 찬 일갈을 한다.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었던 것임에 상심하며 "세 살배기 어린 애처럼 세상을 향해 떼를 쓰고 있을 뿐이야"라고 분노를 표출하지만, 애라면 키우라는 소이의 대꾸를 읽고 그제부터 글자를 만들 것을 결심한다.

4. 평가[편집]



5. 원작과의 차이점[편집]


원작에서 세종에 대한 서술은 많지 않고 자주 등장하지도 않는다. 훈민정음 창제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것만 똑같고 그저 간혹 등장하며 '주상'이라고 언급되는 조연급 인물. 세종 본인보다는 세종 치세의 사건이나 배경에 대한 것들이 더 많이 언급되며, 원작 소설이 채윤의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드라마는 조선을 이끄는 군왕으로서의 세종의 모습과 인간 '이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포커스를 많이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14]

또한 원작에서는 채윤이 주역이다 보니 조선의 임금답게 뭔가 고고하고 구름 위의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드라마에서는 총명하고 공명정대한, 일반적인 세종의 이미지 역시 보여주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책략도 쓸 줄 알고 걸죽한 욕도 잘하고 신경질적 히스테리도 부리는 다면적인 캐릭터로 조명해 냈다. 거기에 고기를 좋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강채윤이 나오면 무협지인데 이도가 나오면 사이코드라마라는 평도 있었다고.

거기에 한석규의 열연이 세종의 캐릭터를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는 평. 이만원신으로 유명한 젊은 세종(송중기)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 신문지상에 '3단 열연'으로 알려진 윤평과의 대면 장면과 아들 광평대군의 죽음을 접했을 때의 모습들[15]은 화제가 되었다.

6. 명대사[편집]



6.1. 청년 이도[편집]


[14] 그러나 원작에서도 드라마판 이상으로 멋진 명대사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은 마지막 부분 "후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지 않는다. 지금의 백성들이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음 또한 서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염려하는 것일 뿐..."[15] 아들의 시신을 보더니 소이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나 떨어지는 아들의 손을 계속 머리 위로 올리는 모습 등.

6.2. 중년 이도[편집]



6.2.1. 지랄하고 자빠졌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랄하고 자빠졌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도의 명대사이자 뿌리깊은 나무가 남긴 최고의 유행어.

7. 기타[편집]


  • 한석규는 이도 역을 통해 1991년 데뷔 이후 약 20년만에 생애 첫 연기대상을 수상하였다. 그것도 2003년 올인의 이병헌 이후로 8년 만에 남자 단독 대상 수상이다.
  • 이후 한석규는 8년만에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다시 세종 역을 맡았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한석규와 최민식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건내주며 세종과 장영실 중에서 배역은 둘이 알아서 고르라고 전하자 한석규가 고민끝에 먼저 세종을 골랐다고 한다. 뿌리깊은 나무를 찍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는데, 그 때동안 세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이번엔 다른 결의 세종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또한 한석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연기했을 때 장영실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는데, 드라마를 하면서 '그런 군주에게 친구가 있다면 누구였을까'라는 생각을 품었었고 이에 장영실을 홀로 상상하곤 했었는데, 이번 천문에서 그런 부분을 풀어내서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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