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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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적
李信積

파일:육룡이신적2.jpg
파일:external/pds23.egloos.com/f0018015_4ea2ab4854920.jpg

본명
허강 (許强)
배우
이지훈 (청년)육룡이 나르샤
안석환[1] (노년) 뿌리깊은 나무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여진족 출신이나, 전장에서 만난 이성계에게 반해 그와는 의형제를 맺고 동고동락한다. 성격은 급하고 불같으나 이성계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충직한 장수이며 이성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최측근.

1. 개요
2. 작중 행적
3. 기타



1. 개요[편집]


드라마 용비어천가 시리즈의 등장인물. 실제 역사에는 없는 가상 인물이다.


2. 작중 행적[편집]



2.1. 육룡이 나르샤[편집]


고려 말 성균관 유생부터 조선 세종 때 우의정까지 지낸 인물.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관련 내용은 하단 기타 부분 참조.

반듯한 집안에서 올바르게 자란 모범생이었으나, 정도전의 혁명 사상을 알게 된 후부터 급진적 사상가로 거듭난다.

본명은 허강. 정도전을 비롯해 사대부 전체가 유배를 가는 동안에 은밀하게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맹자를 공부하고 있었고, 이에 눈에 거슬린 길유 패거리의 작당으로 동수가 죽자 이에 길유를 고발하지만 강찬성의 변심으로 오히려 허강이 벌을 받는다. 거기에 더불어 홍인방이 은밀하게 길태미와 작당하여 허강을 함정에 빠트리고, 아버지 허조가 길태미의 요구 조건[2]을 들어주면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명한다. 홍인방의 계략으로 인해 이방원이 적은 줄 알고 있는 벽서로 인하여 아버지인 허조가 자살하게 되고 본인 또한 성균관을 나가게 된다.

이후 정도전이 이끄는 밀본에 소속되면서, 이름 또한 이신적으로 바꾸고 이성계의 휘하에서 활동한다.

같은 밀본 소속이지만 연희와는 본의 아니게 사사건건 의견 충돌로 다투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하다.

22화에서 무휼과 조영규가 개경에 나돌고있는 십팔자위왕 노래를 부르며 춤을추다가 남은에게 주의를 듣자, 그 둘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알고있는지라 남은에게 그들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며 달랜다.

배우가 부상 당한 탓에 중반부터 등장하지 않다가 32화에서 정도전의 명으로 은밀한 무언가를 작업 중이라며 언급되었으며, 33화에서 그동안 조사해온 양전 사업의 결과물을 알리는 것으로 등장했다.

38화에서 이방원이 두문동의 유생들 상당수를 관직에 복귀시키자 조준과 함께 정안군이 큰 공을 세웠다고 치켜세운다.

39화, 40화에서는 정도전이 공신 책봉에서 이방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연희/화사단과 독자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등의 모습을 보며 삼봉이 변했다 판단했는지 이방원의 편에 서겠다며 찾아온다. 39화에서 과도한 권력을 가진[3]정도전이 여진족 추장과 밀약을 하면서 조정은 커녕 자신에게도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채 진행하며 자신은 버려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사실 정도전의 계략으로 정도전에 불만을 가진것으로 위장해서 이방원에게 첩자로 잠입시킬려고 한 것이다. 조영규나 하륜 등이 본 모습은 전부 이신적의 연기. 이후 초영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 무명의 본거지 하나를 알아내는 성과를 거둔다. 이후 삼자대면 직전 초영이 이 사실을 알아채자 손수 목졸라 죽인다. 사실 별로 신뢰감이 안가는데다 이신적을 막상 써먹을 데가 적어서인지, 이방원은 이신적을 방치해두었고 왕자의 난에서도 배제했다.

48화에서 쫓기던 남은을 찾게 되는데, 남은이 자신의 목을 이용해 이방원에게 신임을 받고 그 아래에서 입신양명하여 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남은의 말대로 그의 시체를 가지고 가 이방원을 따르겠다고 무릎을 꿇었는데[4], 이방원의 반응이 조금 이상해 혹시 자신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 걱정하고 그런 이신적에게 이방원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며, 하륜에게 이신적을 관직에 복귀시키라는 명을 내린다.

순군부[5]에 다시 복직, 일단은 입신양명하기 위해 반촌을 수색하라는 어명을 가지고 순군부 병사들과 반촌으로 들어온다. 송현방에 가 정도전에게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한 갑분이를 지목하여 모질게 매를 맞게 한다. 그리고 반촌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있을 것이라고 엄포하며 속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다음 명을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

훗날 밀본의 첩자로서 세종 때엔 우의정을 역임하기에 이른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이신적은 이방원의 밑에서 입신양명하라는 명을 지키지만, 그 외에 밀본을 되살리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2.2. 뿌리깊은 나무[편집]


태종이 상왕으로 있던 시기엔 동부대언으로서 세종을 보필했다. 그때까지는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으나, 우의정 겸 의금부 도제조로 있던 때, 밀본의 존재가 백일하에 드러난 8회에서 자신의 측근 장은성 앞에서 자신이 밀본의 조직원이라는 것을 밝혔다. 원래는 젊은 시기 재상총재제라는 대의에도 관심있었던 듯 하나 20여년간 밀본의 명이 내려오지 않아 그저 자신의 삶과 영달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우의정에 오른 뒤에도 밀본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쨌든 밀본의 일원이기에 조말생의 앞에서 밀본이 언급되자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조말생이 눈치를 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정기준의 정체를 알고 경악한다. 이후 몰래 세종과 이야기하려 했지만 마침 스포일러가 있어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기준이 돌아오고 밀본의 일원들이 회합을 가지며 세력을 다지는 가운데에서도 정기준이 밀본지서가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곤란하게 하는 등 정치적 수완에 능한 인물. 밀본지서를 빌미로 정기준을 괴롭히며 정기준을 습격하려 했으나[6], 윤평과 막수 덕분에 강채윤에게서 밀본지서를 되찾은 정기준에게 역습을 당하고 깨갱한다.

이후 정기준의 눈치를 보면서 슬슬 자기 이익을 챙길 생각을 하고 언제라도 또 정기준을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기준의 명으로 세종에게 재상총재제를 시행하자고 제안하고 자신이 실질적인 조정의 영수가 될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문자의 위력을 알아챈 정기준이 일단 훈민정음 반포부터 막는 것으로 다시 작전을 바꾸었으니, 그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정기준이 갑자기 문자 창제를 막자고 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만 정기준은 새로운 문자의 위험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럼에도 이신적은 정기준의 우려가 기우라고 생각하고 못마땅해 한다. 결국 이때부터 밀본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밀본의 재상총재제 대의를 신봉하는 심종수와 이리저리 논쟁하면서 한 배를 타는가 했는데 다시 갈라져 고민하던 중 세종의 부름을 받고 가서 밀본놀이를 하다가 세종이 정기준을 넘기라고 하는 말에 흠칫한다. 결국은 밀본이 정기준과 심종수로 갈라지고, 애초에 대의 같은 것은 없었던[7] 이신적은 심종수가 받아온 밀본지서와 연판장을 받아 태워버리고 증거를 인멸한 뒤 그대로 밀본에서 벗어나 조선의 노회한 관료로서 남게 된다.[8][9]

자기 잇속을 우선시하는 캐릭터로 나오긴 하지만 우의정까지 오를 정도의 능력과 경험은 헛된 게 아닌 게 황희와 함께 집현전 철폐를 조건으로 문자 반포에 동의한다고 세종에게 제안할 때, 황희가 미리 세종에게 언질을 받았다는 걸 눈치 채고 심종수에게 "황희가 우리와 같은 말을 한다고 우리 편이 된 게 아니다."라 말해주며 애송이 취급할 정도다.

우의정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태생이 비밀조직인 밀본을 비밀리에 키우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지만 자신이 활동하는 시기에는 태종이 왕좌에 앉아있었던지라 비밀리에 키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태종에겐 밀본이란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제일 큰 적이었을테고 오랜 세월 와해되어 밀본의 조직원들은 서로가 누군지도 몰랐고 구심점이 되는 본원조차 명맥이 끊겨있었으니. 비록 뿌리깊은 나무보다 늦게 방영되었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의 묘사를 보면 관직에 있으면서 늘 이방원의 감시를 받았을 것이고 이방원 본인이 한때 정도전 밑에서 가장 뛰어난 브레인으로 활동했음을 알고 있는 이신적이라면 더더욱 조심성을 가지고 자신이 밀본과는 연을 끊었음을 내내 강조했을 것이다.[10]


3. 기타[편집]


실제 역사에서 이 무렵(세종 28년, 1446년)의 우의정은 '하연(河演, 1374~1453)'이라는 사람으로 황희가 연로했다는 이유로 사퇴하자 그 후임으로 영의정이 되는데 뒷날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덧붙여 정몽주의 마지막 직속 제자이기도 하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이신적은 당연히 실존인물이 아니다. 설정 상으로 이신적은 이방원의 사형으로 나오는데, 아직 어린 소년인 이방원에 비해 장성한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고 황희는 이방원과 실제로 4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육룡이 나르샤의 설정에 따르면 이신적은 황희와 적어도 동년배이며, 오히려 이신적이 나이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뿌나에서는 황희가 이신적을 하대한다거나 이후 심종수가 실질적 재상총재제를 언급하며 황희가 연로하니 실권을 이신적이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거나 하고 있으니 한참 후배가 된다. 이는 완벽한 설정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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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산 선생으로 출연하였다.[2] 길태미는 다른 권문세족처럼 땅을 차지하려 했지만, 허조가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바람에 실패했었다.[3] 이신적은 정도전 혼자 고려 시절 최영과 이인겸을 합친 권력을 독식했다며 이것은 균형에 맞지 않는다고 성토했다.[4] 아무래도 작가가 형가번오기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해당 스토리를 창작한 듯 하다.[5] 의금부가 아니다. 의금부로 이름이 바뀐 것은 태종 때이다.[6] 설령 습격했다고 하더라도 정기준의 옆에는 심종수가 있었다.[7] 다만 이신적에게 있어서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존경했던 정도전이나 남은이 추구했던 재상총재제가 더 중요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8] 육룡이 나르샤가 나온 과거 시점을 생각하면 이미 긴 세월이 지났던 탓도 있겠지만, 정도전과 정기준 차이를 직접 체험해봤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신적은 어쨌든 정도전이나 남은 같은 제대로 된 혁명가들을 보아왔고 이미 나이가 든 그 입장에서는 권력욕도 권력욕이지만 정도전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여긴 정기준을 따르기 힘들었을수도 있다. 거기다 글자에 대한 것도 그의 입장에서는 과대해석으로 보일테니.[9] 애초에 이신적은 오랫동안 세종의 곁에서 그 치세를 봐왔고, 자신이 젊을적 모셨던 정도전에게도 결코 밀리지않는 천재이자 틀림없는 성군인 세종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념이 옅어지고 권력욕이 앞선 노년의 이신적 입장에서는 자신은 이미 충분히 출세했으니 중요한 건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것이고, 대의로 보아도 세종은 특별히 문제도 없는데다 모실만한 가치가 있는 군주이며 선왕인 태종과 비교해도 하는 말은 까칠하되 모시긴 훨씬 쉬웠을 것이다. 즉 얌전히 세종의 신하로 남는다면 자신의 보신은 충분히 보장되는 것. 그에 반해 긴 세월 잠적했다 갑자기 나타난 정기준은 세종에 비해 그 능력이 의심스럽고 워낙 걸어야할 게 많은 도박이기에 쉽사리 따를 수 없었을 것이다.[10] 거기다 1차 왕자의 난에서 숙청 리스트에 올라와있던 사람 중에 정도전의 오른팔인 남은의 시신을 가져온 게 이신적이다. 손에 피를 묻히면서 온 이신적을 사형이라 부르면서 바로 관직에 복직시키라고 한 것도 이방원이다. 심지어 불교 혁파에 관한 상소문을 하륜을 통하긴 했지만 이신적에게 맡겼을 정도니 태종의 신임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물론 육룡 마지막화까지는 그가 이방원의 걸림돌이 되긴 했지만 이후에는 밀본의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지금의 이신적이 된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