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누스 벤 사바르

덤프버전 :

이름
율리아누스 벤 사바르
(Julianus ben Sabar)
출생
미상
사망
531년
직위
사마리아인의 왕
반란 대상
유스티니아누스 1세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반란자.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시기 동로마 제국의 압제에 맞서고자 하는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2년 만에 진압당했다.


2. 행적[편집]


사마리아인들은 로마 제국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래 종교 탄압에 시달렸다. 제노 황제 시기 많은 사마리아 장로들이 기독교 개종을 거부하다 살해당했고, 그들의 성지인 게리짐 산에 성당이 세워졌다. 사마리아인들은 이에 분노하여 484년 유스타를 왕으로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가차없이 진압당했다. 495년에는 아나스타시우스 1세를 상대로 재차 봉기하여 게리짐 산 정상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성당을 습격해 수비대를 학살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529년, 사마리아인들은 율리아누스 벤 사바르를 왕으로 옹립하고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프로코피우스에 따르면,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억압적인 조치를 취한 게 반란의 주 원인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스키토폴리스의 키릴에 따르면, 기독교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종교 갈등이 주 원인이었다고 한다. 반란군은 율리아누스의 지휘 아래 스키토폴리스와 사마리아 각지의 시골에서 거병하였고, 네아폴리스를 정복했다. 율리아누스는 네아폴리스 주교와 많은 성직자들을 처단하고, 교회를 파괴했으며,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이후 진압군에 맞서 2년간 게릴라전을 벌였으나 531년 가산 왕국의 지원을 받은 진압군에게 끝내 사로잡힌 후 목이 베어졌고, 그의 수급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넘겨졌다. 동로마군은 2만 ~ 10만 사이의 사마리아인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다. 프로코피우스에 따르면, 사마리아 농민 대다수가 반란에 가담했다가 몰살당하는 바람에,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사마리아에는 수년간 거주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2 16:44:37에 나무위키 율리아누스 벤 사바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