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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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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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족
동셈족†
아카드인† | 바빌로니아인† | 고대 아시리아인† | 에블라
북서셈족
히브리인(유대인 | 사마리아인 | 이스라엘인) | 현대 아시리아인 | 페니키아† | 모압† | 암몬† | 에돔† | 아람† | 아모리인†(우가리트†) | 칼데아인
남서셈족
(아랍인)
베두인 | 아랍계 기독교인 | 나바테아인† | 사우디인(히자즈인) | 현대 이집트인 | 마그레브 아랍인(몰타인) | 팔레스타인인(이스라엘 아랍인) | 예멘인(하드라미인) | 오만인 | 걸프 아랍인 | 요르단인 | 시리아인 | 레바논인 | 이라크인 | 아프리카계 아랍인(아프리카계 이라크인 | 아프리카계 예멘인(아크담족) | 수단 아랍인(바까라족))
남셈족
사바인† | 소코트라인 | 마흐라인 | 암하라인 | 티그라이인 | 티그리냐인 | 티그레인

셈어파 지역
비아랍인 계열 독립국가들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 파일:에리트레아 국기.svg 에리트레아 |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에티오피아 | 파일:몰타 국기.svg 몰타
아랍 계열 독립국가들
파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 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파일:튀니지 국기.svg 튀니지 파일:리비아 국기.svg 리비아 파일: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국기.svg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자치 지역 및 다수 거주지(다수 거주국가 포함)
아라비스탄 | 하타이 | 잔지바르 | 코모로

언어
셈어파
사상
범셈족주의 | 아랍 민족주의 | 시오니즘
신화
아랍 신화 | 유대 신화 | 메소포타미아 신화(아카드 신화 | 바빌로니아 신화(칼데아 신화) | 아시리아 신화) | 가나안 신화(아람 신화 | 페니키아 신화(카르타고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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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2881F2-F247-40E0-8213-95E2B3F648B6.jpg

언어별 명칭
사마리아 히브리어
ࠔࠠࠌࠝࠓࠩࠉࠌ
(Shamerim)
유대 히브리어
שומרונים
(Shomronim)
아랍어
السامريون
(as-Sāmiriyyūn)
영어
Samaritans


1. 개요
2. 사마리아교
3. 언어
4. 역사
5. 현황
6. 타 집단과의 관계
6.1. 유대인과의 관계
6.2. 그리스도교와의 관계
6.3. 이슬람과의 관계



1. 개요[편집]


사마리아인은 중동히브리인들로부터 기원한 민족이다. 아시리아 제국에 정복된 이스라엘 왕국 주민들의 후손으로 이름의 유래는 분열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중심 지역이 된 사마리아이다. 21세기에도 독자적인 민족집단으로 존속하고 있다. 근연민족으로는 유다 왕국 주민의 후손인 유대인, 아랍화된 히브리인(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후손인 팔레스타인인이 있다.


2. 사마리아교[편집]


파일:40766433-8AE7-46D0-ADC7-7F12CC5FE150.jpg
파일:Samaritan Passover.jpg
토라를 들고 있는 사마리아인 장로
게리짐 산에서의 과월절 희생 제사

고대 사마리아인들에게는 바알 신앙 등 가나안 지방의 토속 신앙과 야훼 신앙이 공존하였다. 기원전 400년 이후에 다른 신들에 대한 신앙은 사라지고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 토라(Samaritan Pentateuch)를 중심으로 한 야훼 신앙을 갖게 된다. 사마리아 신앙에서는 사마리아 토라가 불변하고 진실한 경전이라 여기며 유대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마리아 신앙은 사마리아 대제사장을 수장으로 하며, 게리짐 산을 성소로 삼는다. 신학적으로도 그들은 사마리아 토라만을 믿었으므로, 당연히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성전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유대인들의 타나크에서 르호보암과 다윗 왕조를 따르던 이들은 남유다를 세우고 나머지는 여로보암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 남았다고 기록하는데 사마리아 토라에서는 대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이 각각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다고 기록한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타나크가 유대 지파의 정당성은 높여주기 위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실을 유대 지파로 기록했으며 12지파가 통일된 종교가 없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마리아인들이 아시리아의 점령기에 혼혈화되고, 다신교를 받아들이는 등 유대인들과는 종족, 종교적으로 이질화되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탄압했다. 훗날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에서 풀려난 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당시 사마리아인들도 지원을 제의했으나, 유대인들이 거절할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다. 유대인의 하스몬 왕조는 게리짐 산 성소를 파괴하는 등, 간약 시대[1]에 이르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원수 같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서기 4세기 이후 기독교가 주류가 된 로마 제국의 동부에서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박해가 있었으며, 제국을 등에 업은 기독교 측에서 교회를 짓기 위해 그들의 성소가 있던 게리짐 산을 점령하고 사마리아인들과 유혈 충돌을 빚었다.

사마리아교는 유대교가 성전이 사라지면서 간략화되고 율법에 집중된 것과 달리 게리짐 산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 가나안 종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3. 언어[편집]


사마리아인들은 현재 일상 언어로 아랍어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외 사마리아 토라의 언어로서 사마리아 고유 언어인 사마리아 히브리어를 유지하고 있다. 사마리아 히브리어는 기원후 2세기부터는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사어가 되었고, 사마리아인들은 모어사마리아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아랍인들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아랍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사마리아 아람어는 10~12세기에 사어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히브리어 역시 사용하게 되었다.

사마리아 문자 역시 페니키아 문자의 직계 후손으로 유대인의 히브리 문자와는 다르다.


4. 역사[편집]






다윗의 치세에 히브리인들의 이스라엘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후, 히브리 민족 12지파 가운데 대다수인 10지파는 여로보암 1세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통치 아래에 남아 유다 왕국이 건국됨으로써 히브리인들의 영토는 분열하였다. 이스라엘 왕국은 유다 왕국의 독립 이후 세겜(현재의 나블루스)과 디르사, 사마리아와 같은 북쪽 지역에 수도를 두었다. 이스라엘의 군주 아합은 주변국들과 동맹을 맺고 카르카르 전투를 벌여 아시리아의 침공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내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점령되었다. 이 이스라엘 왕국의 유민들이 사마리아인들이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신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고,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에 있게 된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정책으로 유다 왕국의 유민들인 유대인들이 다시 가나안 지역에 돌아오면서 사마리아인들은 이들과 충돌하였다. 셀레우코스 제국 시대 사마리아인들은 헬레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서, 유대 지역과는 다른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또한 안티오코스 4세에게는 세금 면제를 탄원했으며, 게리짐 산 성소의 이름을 '제우스 헬레니오스'로 바꾸고 제우스에게 봉헌하였다.[2][3] 마카베오 전쟁 이후 들어선 유대인들의 하스몬 왕조사마리아를 침략하여 지배하게 된 뒤부터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탄압했다. 하스몬 왕조는 에돔, 모압, 암몬을 정복하고 이들 민족을 유대인으로의 강제동화정책을 펼쳤는데 사마리아인도 이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로마 공화국의 지원으로 헤로데 대왕헤로데 왕조를 세우고 사마리아를 정복하였다. 이후 사마리아는 에돔과 함께 유대에 편입되어 헤로데 아르켈라오스에게 분봉되었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의 영토는 그대로 로마 제국의 유다이아 속주가 되었고, 사마리아 역시 유다이아 속주에 속해있었다. 동로마 제국 시대 제노 황제는 사마리아인들을 박해하며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학살하였고, 사마리아 시나고그들을 성당으로 개조하였다. 제노는 더 나아가 게리짐 성소에 자기 아들의 무덤을 짓고 십자가를 달아 사마리아인들이 십자가 앞에 엎드리도록 하였다. 이에 반발한 사마리아인들은 484년 유스타를 왕으로 선출하여 반기를 들었지만 진압당했다.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사마리아 신앙을 금지하자 사마리아인들은 독립 국가를 세우려고 율리아누스 벤 사바르를 왕으로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531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가산 왕국의 도움으로 반란을 진압하였고, 수많은 사마리아인이 사망했으며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노예가 되거나 추방당했다.


5. 현황[편집]



고대 이스라엘 왕국 시절에는 12지파 중 무려 10지파를 차지하던 다수집단이었지만, 역사적으로 학살과 다른 민족으로의 동화를 겪어서 현대에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내에서 겨우 800명 남짓한 소수민족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마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에게는 현재까지 지파 개념이 남아 있는데,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지파는 레위 지파, 므나쎄 지파, 에브라임 지파, 이다말(아론의 막내아들) 지파, 베냐민 지파이다. 그중 베냐민 지파가 1968년에 단절되면서 현재는 네 지파만이 남아 있다(참고). 12지파 기준으로 보자면 요셉의 후손인 므나쎄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만이 온전히 남은 셈이다.[4]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아랍인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는 등 잘 지내는 편이다. 학살과 강제 개종으로 인한 지속적인 인구 유출로 현재 민족집단으로서 존속이 어려운 800명이라는 소수만 남아있고, 종교적인 이유에서 외부인의 진입이 쉽지 않아 유전병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후 소수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결혼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허락받았다기보다는 사마리아인 중 부유층들이 국제결혼으로 우크라이나인 여성과 재혼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맞다고 볼 수도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어와 전통 문화를 상당부분 보존하고 있어서 고고학 분야 종사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성서 시대 이래 그들의 성지인 게리짐 산에 있는 키르야트 루자(קרית לוזה, قرية لوزة) 마을에 인구의 약 절반이 모여 산다. 이 마을은 팔레스타인에 있고, 나블루스 시와 가깝다.

파일:Samaritan_neighbourhood_(Holon)_(4).jpg
홀론의 사마리아 시나고그

1954년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인 우대 정책으로 텔아비브 시 외곽에 인접한 홀론(חוֹלוֹן) 시에도 모여 산다.


6. 타 집단과의 관계[편집]




6.1. 유대인과의 관계[편집]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모두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는 같은 히브리인, 즉 동족들이었다. 그러나 북왕국의 후손인 사마리아인들은 토라를 게리짐 중심으로 읽었고, 남왕국은 예루살렘 중심으로 읽었다. 남북의 이러한 차이와, 사마리아가 이방 문화에 오염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인식이 두 집단 사이의 긴장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유대인들에게도 할 말이 꽤 많았던 건 사실이며 이는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처우와는 별개다. 이스라엘이 망할 때 상당히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탈출에 성공해서 유다 왕국으로 도망쳤던 건 사실이며 그 시기에 유다가 극적인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이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된다. 또한 유다가 이후 북진해서 이스라엘의 영토 일부를 점령했을 때 그 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은 유다에 동화되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을 다룬 구약 성경에즈라서에도, 유대인들이 이방 민족과 혼인 혼혈을 많이 했으며 이교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적어도 근동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선 정체성과 문화를 꽤 보존한 상태였고 이는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물론 현대적, 역사적 상식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차별하는 이유가 나름대로 근거는 꽤 있으나 합당했다곤 보기 어렵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또한 바빌로니아의 경우 아시리아와는 달리 유대 지역의 모든 지방 세력들까지 철저하게 파괴하려 하진 않았고 주로 예루살렘 주변의 수도권에 관리 역량을 집중했으며, 때문에 유다의 수도권 격인 예루살렘 주변 벤야민 일대 지역 토호들은 나름대로의 세력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현대 한국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의 부류들인데, 적어도 알려진 자료로 판단하면 이들이 유수에서 돌아온 부류와 딱히 갈등이 있었다는 조짐은 없고, 또한 사마리아인에게 더욱 우호적이었다는 개연성도 보이지 않는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유대인의 비판은 혼혈 그 자체보다는 이방 종교와의 혼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위 '역사' 문단에도 말했다시피 셀레우코스 제국의 영향 때 사마리아인들은 헬레니즘 종교를 수용하였는데, 마카베오 전쟁 등으로 헬레니즘 제국에 강렬히 저항하던 유대인들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 또한 그리스식 이름이 퍼지고 경전을 그리스어로 서술하는 등 헬레니즘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만, 성소 이름에 제우스를 박아놓을 정도로 막나가지는 않았다.

카라임파 유대교와 교리가 어느정도 겹친다.


6.2. 그리스도교와의 관계[편집]


파일:Jacob's_Well_in_2013.jpg
파일:Church_of_Bir_Ya'qub.jpg
야곱의 우물
야곱의 우물에 세워진 정교회의 성 포티니(Αγία Φωτεινή η Σαμαρείτις) 성당. 포티니(Φωτεινή)는 사마리아 여자의 이름이라 전해진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 4장 9절 (공동번역 성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요한의 복음서 4장을 보면 예수는 그들을 박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를 보면 유대인들에 대한 당시 사마리아인들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이 당시 사마리아인을 취급하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선한 사람의 예시로 들기도 하였다.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마리아인도 많이 나온다. 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처럼 결국 기존의 정체성을 버리고 로마인이 되는 길을 걷게 된다.

십자군 전쟁 시절에는 2등시민 대우를 받기는 했으나, 유대인처럼 학살당하지는 않았다.


6.3. 이슬람과의 관계[편집]


아랍의 정복 기간 이래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사마리아인들은 아랍 무슬림으로 동화되어 팔레스타인인이 되었다.

나블루스와 근방 무슬림 인구 대다수는 이슬람 통치기, 특히 오스만 제국 시절에 강제로 개종당한 사마리아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전 대통령이자 역사학자였던 이츠하크 벤츠비에 따르면 사마리아인이 이슬람 통치자에게 툭하면 학살당할 뻔한 걸 이슬람으로 개종한 친족들이 종종 막아주었다고 한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의 갈등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과의 갈등으로 재탄생한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요르단강 서안지구가 유대 사마리아라고 칭해지면서 생긴 오해이다. 팔레스타인인들 대부분은 오히려 옛 유대인들의 직계 후손이며, 지역에 따라 사마리아인의 후손인 경우도 많다. 차이가 있다면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의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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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사이의 시대; 대략 기원전 3~4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전까지의 시대로, 하스몬 왕조의 성립을 다루는 마카베오기같은 문헌이 이 시대의 문헌이다. [2] 『유대고대사』 12.257-264, 358-361[3] 마카베오하 6:2[4] 레위 지파는 의외로 12지파에 들어가지 않는다. 제사장 가문이기 때문. 게다가 이다말 지파는 레위 지파의 방계라고 볼 수 있는 지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