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왕국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الغساسنة
Ghassanid
파일:Ghassanid_Kingdom_Map.svg.png

1. 개요
2. 역사
2.1. 건국
2.2. 전성기
2.3. 몰락과 멸망
3. 기타

가산 왕조 (220 ~ 638년)

1. 개요[편집]


가산 왕국의 영토

레반트 지역에 존재하던 아랍인 국가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발해 현재 요르단 일대에 정착한 아랍인 일파가 세운 나라다. 아랍과 그리스의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수도는 시리아 서남부[1]의 자비야이다.

가산 왕국은 동로마 제국의 속국으로서 같은 아랍계 국가이나 사산 왕조의 속국이었던 라흠 왕국과 대리전을 치렀다. 명군이었던 문디르 3세가 동맹이었던 동로마 측에게 암살된 이후 쇠퇴하였으며 7세기 초 남쪽의 헤자즈 지방의 아랍인들이 이슬람 제국을 세워 침략해오자 멸망했다. 동로마 황제 니키포로스 1세가 가산 왕국 왕족 출신이라고 한다.

2. 역사[편집]



2.1. 건국[편집]


구전에 따르면 가산 왕국의 아랍 부족인 아즈드 족들은 남부 아라비아의 예멘 일대에서 요르단 일대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3세기 경) 쿠란의 전승에 의하면 예멘의 마리브 댐 붕괴가 사바 일대에 살던 그들의 대이동을 유발시켰다고 한다.[2] 이 1차 이주로 왕국이 세워졌지만 세력이 미약하였다. 왕국이 제대로 모습을 갖춘 것은 6세기에 일어난 2차 이주를 통해서였다.

역사가 이븐 칼둔에 의하면, 6세기 초엽에 예멘에 위치하였던 유대교 국가인 힘야르 왕국의 군주 두 나와스의 기독교 박해가 있다. 동로마 제국과 대립하게 된 그는 유대인의 정체성 확립을 부르짖으며 기독교도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하였고[3], 아랍인 기독교도들이 상당수 희생되어[4] 살아남기 위해 가산인들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6세기 초)

2.2. 전성기[편집]


473년, 가산 왕국의 군주 아모르케소스는 동로마 제국의 팔레스타인 변방(現 요르단)을 봉토로 수여받아 그 동맹국이 되었다. 동시에 로마가 파견한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원래 단성론 기독교를 믿던 가산인들은 510년까지 니케아-칼케돈 파[5]를 받아들였다.

2.3. 몰락과 멸망[편집]


613 ~614년에 걸쳐 사산 제국에게 유린당하며 쇠퇴하였고 638년에 같은 아랍 세력이면서도 이슬람 세력인 정통 칼리파(라쉬둔) 이슬람 제국에게 멸망당하였다.

비록 멸망하였지만 종교적 동질성이 있는데다가 민족도 같아서 이슬람 세력은 가산 왕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으며, 가산 왕조의 일부 후손들은 레바논으로 이주해 아직까지도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3. 기타[편집]


2015년 토탈 워: 아틸라 모래의 제국 DLC에서 플레이어블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힘야르 왕국, 악숨 왕국, 타누흐, 라흠, 가라만테스가 플레이어블로 결정되면서 플레이불가 세력으로 나오며 동로마와 방위동맹을 맺고 사산 왕조, 타누흐와 전쟁 상태다. 그렇기에 백훈을 때려 잡은 사산 왕조 유저나 생존을 위해 도망다녀야 하는 타누흐 유저의 첫번째 목표이기도 하다.[6] 단, 모드를 사용하면 플레이가 가능하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09 04:08:12에 나무위키 가산 왕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었던 다라 지역에 위치하여 있으며 골란 고원 근처이다.[2] 지금도 아랍 속담에는 "사바인들처럼 흩어진다"라는 것이 있는데, 가산인들의 이주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3] 쿠란에서는 أصحاب الأخدود(아샤브 알 우쿠두드), 즉 대박해로 기록하였다.[4] 지금도 생매장된 아랍인 기독교도들의 무덤이 예멘에 남아있다.[5] Nicene-Chalcedonian Christianity. 가톨릭정교회의 분열 전 로마의 국교이자 소위 정통 교리로 인정받은 것.[6] 단 이때의 가산 왕국은 아직 세력이 미약한 수준으로 아직 동로마의 동맹도 아니었기에 적합한 고증은 아니다.